-
-
여성 셰프 분투기 - 음식에 가려진 레스토랑에서의 성차별
데버러 A. 해리스 & 패티 주프리 지음, 김하현 옮김 / 현실문화 / 2017년 5월
평점 :
여성의 성차별이나 젠더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널리 퍼져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분야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요리는 오래도록 여자 고유의 영역이었던 만큼 오히려 다룬다면 남성의 젠더화를 다룰 것 같지만 여성의 젠더화를 다루었다. 그것은 여자는 요리사로서만 그 존재를 한정하며, 남자는 군데에서 나온 셰프로 그 영역을 확장하며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요리뿐만이 아니라 주방 업무를 총괄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이게 사실일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이건 군대에서 여자가 대장이 됐을 때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요리의 세계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 뭔가 빼앗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이 빼앗긴 분야에서 여자들이 어떻게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는지를 나름 소상히 다루었다.
주방은 불과 칼을 다룬다는 점에서 거친 곳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더구나 이 군대에서만 존재했을 셰프가 미식의 장에 도입되기 전에는 여자들은 가정에서 가족들을 위한 한 끼 분량의 요리를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미식의 장은 뭐든 대규모로 이루어지니 힘없는 여자 보다는 힘 있는 남자들이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여성이 사회에 인정받고 적응하려면 모든 걸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다못해 요리까지도 말이다.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해서 본 건 챕터4의 ‘나쁜 년이거나 여성스럽거나 엄마 같거나’다. 그래. 그렇게 집을 나와 빼앗긴 미식의 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저 셋중의 하나는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미식의 장에서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직장에서 여자는 저 셋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의 각각의 정의는 이렇다. 남성적이고 권위적인 관리 방식을 따르는 건 ‘나쁜 년’이고, 여성스러운 건 친근한 관리 방식을 의미하며, 엄마 같은 것은 그야말로 부엌에서 엄마나 큰누나 같은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다. 책은 앞의 두 방식은 여자가 전문 셰프로 삶을 헤쳐 나가는 데 전혀 이상적이지 않으며 엄마 같은 세 번째 방식이 유리하다 못해 추천하기까지 한다.
물론 여성에게는 엄마나 누나 같은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난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뭔가 부조리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여성적인 것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며 여성들 중엔 엄마가 되고 누나가 되는 경험 없이 미식의 장에 들어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말을 다시 풀어보면 남자들은 그저 무슨 일에든지 어쭈쭈나 해 주는 엄마 같고 누나 같은 사람에게 엉덩이나 토닥임 받기를 바란다는 것인데 그건 여자를 너무 한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긴, 원형적으로 볼 때 여자가 가족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기 위해 부엌에 있다는 것 자체가 엄마나 누나의 마음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여성 셰프는 바로 이런 이미지로 상명하복의 군대식 남성 셰프를 점령해 갔을 것이다.
남성 셰프는 개인으로 간주되고 오로지 자신이 내놓은 결과로만 평가받는 반면, 여성 셰프는 소수자로서 눈에 잘 띄기 때문에 한 여성 셰프의 특성이 모든 여성 셰프의 리더십 능력을 가리키는 표지가 된다.(257P) 그러니까 남자와 똑같은 것을 가지고 무기삼지 말라는 말이다. 그것은 빼앗긴 들에 봄을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불러들이는 꼴밖엔 되지 않는 것이다. 남자에겐 없는 여자만이 가진 장점으로 자신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난 여기서 저자의 시선이 좀 의심스러워졌다. 저자는 여성의 장으로 대표될만한 장이 남성이 장악하면서 여성이 거기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에 골몰한 나머지 남자를 객관적으로 볼 신경이 없었던 것 같다. 남자들만 득시글거리는 곳이 과연 야성의 동굴이기만 할까?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은 독특하게도 여자(아이)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남자 아이들이 고립된 곳에서 자연스럽게 역할놀이에 빠져든다. 그러면 야성과 이기적 본능을 드러내는 그룹과 서로를 돌봐줘야 나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이타적이고 문화적인 그룹으로 나뉘는 것을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미안하다. 난 이 작품을 책으로 기억하지 않고 영화로 기억한다). 이것이 남성성을 대표한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인간 역학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주방을 단선적으로만 보여주는 건 신빙성이 떨어져 보인다.
이것은 또 페미니즘이 자칫 범할 수 있는 우이기도 할 것 같은데, 페미니즘이 인간 그것도 여성을 이해하고자 생긴 분야라면 인간 소외의 사례만을 집중적으로 다루지 말고 좀 더 총체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 본 챕터 ‘나쁜 년이거나 여성스럽거나 엄마 같거나’는 앞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하다가 말미에 가선 실제로 그렇게 심각했던 것은 아니라고 꼬리를 슬그머니 내리기도 한다. 그러면 김이 좀 빠지기도 한다.
이렇게 남성들의 세계에서 여성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넘어야할 산은 또 있다. 그건 성희롱이다. 이건 이 책 침입자에서 형제가 될 때까지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이건 주방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직장에서도 아니 어쩌면 남녀가 모이는 어느 곳에서도 보편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은 왜 성희롱을 하느냐인 것이다. 성희롱은 남자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도 한다. 단지 그 빈도수가 여자 보다 남자가 훨씬 많다는 것. 짐작해 볼 수 있듯이 남자들이 그러는 건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가장 질 낮은 방법이다. 또한 이성을 얕잡아 보는 수단일 수 있으며, 이성에게 갖는 두려움이나 적개심을 드러낼 때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책에서처럼 여성에게 성적인 농담을 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알아보고 싶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 여성 셰프는 너무 예민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중요한 또 하나, 이성에게 어필하고 싶으나 그것을 모를 때 그 같은 우를 범한다는 것이다. 그때 얼굴이 빨개지면 장난은 안 끝나요. 밤새도록 이어질 걸요. 그 사람들은 모두에게 그런 행동을 해요. 게이한테도 하죠. 이때 절대로 흔들리면 안 돼요. 하지만 한 번 내 능력을 입증하면 엄청 재미있어져요. 그때부터 남자들은 자기가 뭘 잘못해서 여자 친구가 화가 났는지 물어보기 시작하거든요. 여자 친구의 입장을 알아야 하니까요.(195P) 어쩐지 웃픈 느낌이 든다.
내가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문득 얼마 전 군부대 내에서 상사의 성폭력에 시달려 자살한 어느 교관이 생각이 났다. 그녀는 죽지 말았어야 했다. 물론 난 이미 다른 나라 사람이 된 그녀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남자가 얼마나 시답지 않은 이유에서 성범죄를 저지르는지를 알면 오히려 그녀는 살아 자신이 당한 일을 세상에 알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새삼 이 성희롱의 문제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다 훨씬 더 많이 다루어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즈음 뉴스나 시사 보도 행태가 남성의 시각에서 자주 사용한다는 것을 볼 때 말이다. 그러니 남성의 입장에서 성희롱이 자주 언급되는 것은 별로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1분에 몇 명의 사람이 성폭력을 당하는지를 안다면 몇 초만에 한 번씩 알람 울리듯 한다고 해서 결코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에 마음은 똑 같다. 미식의 장에서 남성 셰프들이 엄마나 누나를 선호한다면 여성 세프들은 아빠나 오빠 같은 사람을 원할 것이다. 음식은 문화적인 것이기 때문에 남자의 야성만을 가지고는 음식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잘 조합이 되어야 비로소 훌륭한 음식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꼭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리 미식의 장도 좋고, 페미니즘도 좋지만 사회생활의 기본은 내가 나를 대우해 주지 않으면 남도 나를 대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은 여성들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기위해 쓰인 것도 같다. 참고해 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