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모래 - 이시카와 다쿠보쿠 단카집
이시카와 다쿠보쿠 지음, 엄인경 옮김 / 필요한책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시가 문학에 단카라는 게 있단다. 나로선 처음 듣는 것인데 57. 5. 7. 731자로 구성되는 일본의 전통 문학 방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시조 같은 거라고나 할까? 이 단카가 있기 전 와카가 있었다고 한다. 이 와카는 주로 귀족과 승려 계층이 즐겼는데 메이지 유신 이후 국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와카로부터 독립되어 사용됐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하면 좀 뭐하긴 하지만 시조든, 단카든 뭔가의 틀에 맞춘다는 게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그것도 문학의 도구라면 도구고, 유희라면 유희가 아닐까.

 

단카하면 이시카와 다쿠보쿠를 말하지 않고선 논할 수 없고, 그는 우리나라의 백석이나 최승희의 영적 스승으로 추앙을 받는다고 하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도대체 그가 누구 길래 백석과 최승희가 무릎을 끓는단 말인가.

 

그는 1886년에 태어나 나이 27세에 요절한 시인이다. 집안 환경이 불우해 학력도 중졸이 전부다. 그 때문에 변변찮은 직장을 전전하기도 했지만 일찌감치 소설가의 꿈을 꾸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설가로서 이렇다 할 문학적 성과 이루지 못하고, 그 후로도 꾸준히 소설을 쓰긴 했지만 당대에 인정 받을만한 작품은 없었다. 단카집 <한 줌의 모레>는 거듭되는 좌절 속에 실패를 고통스럽게 받아들인 시점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까? 언제나 그렇듯 문학 작품은 작가의 삶이 녹아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책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특히 그는 가족들이 폐병으로 사망하기도 하고 그 자신도 같은 병을 앓으면서 늘 죽음에 대한 그림자를 느꼈다. 그래서 쓴 단카가 있다.

죽음에 관해

마치 평소의 지약(항상 지니고 다니며 먹는 약) 먹는 것처럼 나는 생각하노라

가슴이 아파지면

그뿐 아니라 그는 어렵게 얻은 아이가 한 달도 못돼 죽음을 지켜봐야 했으니 과연 죽음은 늘 그 가까이에 있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가출을 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가출했다 돌아온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덤덤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부모와 자식

제각각 동떨어진 마음 가지고 조용히 마주하는

서먹함은 왜일까

 

이렇게 그의 시는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삶에 대한 풍경과 느낌을 그때그때 단카로 옮겼던 것 같다. 그리고 살면서 행복해 본 적이 없어서일까 문장에서 전해지는 생생함이 결국 애잔함으로 남는다.

 

학력이 짧다고 해서 배움이 짧은 것은 아니다. 그는 단카 이후 리얼리즘-프롤레타리아 문학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는데 이는 말년에 사상가로 거듭났던 계기가 되기도 했단다.

 

누군가 나를

피스톨 가지고서 쏴 주지 않으려나

얼마 전 이토처럼 죽어 보여주련다.

(이 단카는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가리킨다. 19091926일에 안중근에 의해 하얼빈에서 암살된 이토 히로부미의 사망 소식을 접한 다쿠보쿠는 <이와테 일보>에 추도문을 발표하는 한편, “한국인의 입장과 애처로움을 이해한다고 쓴다. 이는 후에 발표한 시 <한 스푼의 코코아>의 첫 구절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과 연계되어 그가 안중근을 시상의 제재로 삼았다는 근거로 제시된다. 89p)

모르긴 해도 그는 안중근의 죽음을 보면서 그런 문학 세계를 구축해 나가지 않았을까?

 

그의 작품은 대체로 고독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다 슬프고 고독한건 아니다. 어떤 작품은 나름의 위트를 가진 것도 있다. 삶이라는 게 그런 것 같긴 하다. 슬픈 것 같아도 즐거움이 있고, 즐거운 것에도 슬픔이 있다. 그런 것처럼 오래 살았다고 문학에 족적을 남기는 것도 아니고, 요절을 했다고 해서 문학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비록 그는 자신이 원하던 소설을 이루지 못했지만 단카 하나로 문학사에 족적을 남겼으니 그 하나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훌륭한 문학가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단카를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뿌듯한 독서가 됐다.

문학을 설핏 알기 시작했던 사춘기 시절엔 시가 좋았다.

그러다 어른이 되면서 시를 잊고 살았다.

나이 들고 다시 시가 좋아졌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다시 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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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27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카와 단카를 보면 절제미가 느껴져요. 비록 문장에 드러나지 않은 글쓴이의 감정을 정확히 맞출 수는 없지만, 독자는 단어와 문장만으로 글쓴이의 감정이 어떤 건지 얼추 이해하려고 해요. 그래서 시는 계속 봐야 합니다. ^^

stella.K 2017-06-27 18:40   좋아요 0 | URL
아, 맞아. 절제미! 그 단어를 빠트렸네.
그래서 일본문학이 좋은건데 말야. 큭 ㅠ

2017-06-27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6-27 18:40   좋아요 0 | URL
앗,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