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라쿠 김홍도의 비밀
백금남 지음 / 한강수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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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집어 들은 건 순전히 어느 한 책 때문이고 그것을 드라마로 만들어 지금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기 때문이란 걸 부인할 수가 없다. 또한 그것은 신윤복을 다루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김홍도를 알고 싶어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관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의 화인에 대한 삶은 이제까지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가 요즘 팩션이란 장르를 힘잆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팩션이 어느 한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것이라 읽다보면 실제로 그 사람의 삶이 어땠나 궁금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신윤복이든, 김홍도든 그들의 삶이 어땠는지 정확한 사료가 없다고 하니 안타깝다.

그래도 이 책을 보면 저자가 김홍도를 작품속에서 살려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저자는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세계 3대 초상화가로 일컬어지고, 빈센트 반 고흐와 같은 유럽 인상파 화가들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일본의 천재 화가 도슈사이 샤라쿠, 그가 김홍도라는 가설(334p~335p)에서 이 책을 쓸 생각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서익채라고 하는 당시 검시관을 통해 사라진 김홍도를 추적하고, 조희룡이란 제자를 통해 스승 김홍도를 추억하는 것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물론 서익채나 조희룡은 가상의 인물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야기는 상당히 짜임새가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와 공력을 들였을지 알 것 같다.

특히 난 조희룡이가 스승을 추억하는 장면에서 김홍도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예술에 대하여 그리고 천재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김홍도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마직막 부분에서 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닥 크게 문제 삼을 건 못되지만, 그래도 그때 당시 한 여자에게 애인이 있을 거란 건 어찌보면 현대적 감각을 유지하고 싶었던 작가의 작은 바람 때문은 아니었을까 해서 실소를 하기도 했다. 뭐 없으란 법도 없겠지. 아무리 엄격한 유교 사회라 할지라도. 그리고 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약간 김이 빠지는 듯한 느낌도 없진 않다. 그래도 관심을 갖고 읽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서든 팩션이란 문학장르를 통해서든 나 같은 벽안의 독자가 우리 예인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건 반가운 일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해서 일선 작가들의 수고와 선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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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6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6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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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작가를...아니 작가의 작품을 알긴했지만 나는 작가를 쉽게 좋아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작가와 독자도 궁합이 있는 것일까? 여타의 독자들이 신경숙이란 작가에게 매료 당하고 있었을 때, 나는 작가의 작품엔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어쩌면 콧대 높은 독자이거나 맹꽁이 같은 독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작품에 변화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이것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좋은 기회에 이 작품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왜 하필 작가는 엄마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엄마를 생각하면 여러가지 마음이 든다. 우선 고마움, 미안함, 측은함 등등.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에게 고마우면 고맙다, 미안하면 미안하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쉽게 말하지 못했다. 마음은 그렇지 않는데 목구멍에서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 마음 한쪽에 멍울져 남아있다. 난 왜 이리도 엄마에게 이 말을 못하는 못난 딸이 되었을까?

나의 엄마는 속정은 깊으시지만 그것을 웬만해서 드러내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당신의 감정 또한 웬만해서 잘 드러내지 않으시는(아니 어쩌면 못하시는) 분이셨기에 그 성격 그대로 자식들이 물려 받았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가끔 말하곤 한다. 우리가 '오사박 하지 못하다'고. 즉 정 깊고 살갑지 못하다는 뜻이리라. 그럼 난 속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당신을 닮은 걸 어쩌라구.'하지만 그것이 엄마 당신에겐 얼마나 큰 외로움일지, 아쉬움일지를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잘 알지 못했다.      

오히려 사랑한다는 말, 미안한다는 말은 그가 나와 어느 정도의 거리가 유지됐을 때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늘 너무 가까이 오래 있으면 그 표현이 얼마나 어색한지 한국 사람이면 다 안다. 그러니 얼마나 모순이랴. 정작 고마워 해야할 사람에게 그리 말하지 못하는 것은.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엄마를 또한 아내를 잃어버린 큰 아들과 남편, 딸과 화자의 싯점에서 그의 부재를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렇게 작가는 어쩌면 나처럼 엄마의 눈을 보고, 손을 감싸 안고, 고맙다, 미안하다 말할 수 없는 것이기에 차라리 이 방법으로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 소설을 잃고 눈물을 흘리지 않겠으며,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소설속의 엄마는 결코 세련되거나, 학식이 많거나,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아무리 이런 것으로 결정되는 사회라고 해도 우리의 기억속의 어머니는 작가가 말하는 어머니와 그 맥을 같이한다. 

상황은 조금씩 달라도 옛날 우리네 엄마들은 거진 대부분은 이러고 사셨다. 어쩌면 그것이 여성의 삶이고, 일생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그처럼 쉽지 않은 삶을 살아 가면서 가정이란 끈을 놓지 않았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엄마들은 그리고 딸들은 너무 쉽게, 엄마 같이 살지 말라고 또 엄마 같이 살지 않을꺼라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 누구 누구의 아내, 누구 누구의 엄마로 남는 것을 안타까와 하고, 거부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일뿐 그것을 선택했다고 잘 사는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부르짖고 외치는 동안 여성성이 뭉게지고 말았다. 여기서 말하는 여성성이란 무엇일까?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하고 있듯이 '생명 탄생과 그 돌봄' 즉 모성애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빼고 얘기해 봤더니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사막처럼 변해버린 세상이다.   

소설에 보면 엄마인 화자가 너희들이 한창 자라느라 먹을 것을 밝힐 때 오히려 두려움을 느꼈다고 고백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회상하기를 죽어가는 개 조자도 아내의 손에서 토실토실 잘 살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은 어머니를 가리켜 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희망으로 알았다고 회상한다. 이것이 바로 여성성 모성애인 것이다. 자기는 없고 남을 위해 바쳐진 삶.

그런데 우린 지난 세기 동안 페미니즘이란 미명하에 여성의 삶은 너무나 많이 전투적으로 바뀌었다. 착취 당했다고 하고, 상처 받았다고 하고, 도전적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생명 탄생과 돌봄'이란 여성성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왠지 여자가 결혼을 해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을 '전락'이라고 지나치게 폄하하고 경도 되어진 시각에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도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도 학교에 가야하는 우리를 위해 새벽이면 일어나 도시락을 싸야했고 그것을 지겨워 했다. 그것도 우리가 아무 반찬이나 안 먹으니까 특별히 신경을 더 써야했다. 그러니 세상에 어떤 사람이 지겨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 것을. 그 의무에서 벗어난지 한참 지난 후에도 엄마는 그때를 돌이킬 때면 진저리를 낸다. 그래도 엄마는 그 의무를 포기한 적이 없다. 그리고 무엇이던지 잘 먹고 건강한 우리들을 내심 뿌듯해 하셨다.

그래도 엄마가 나은 자식 넷중 내가 가장 엄마의 애간장을 녹였던 문제 많은 자식이기에 엄마는 한동안 자식을 온전히 키우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사셨다. 그때도 난 엄마를 조용히 다독이지 못했다. "엄마, 그건 엄마 책임이 아니야. 내 운명이 그런 거야."라고. 어쩌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엄마의 일말의 남은 자존심을 쓰러버리는 것이 되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내가 꿋꿋이 당신 앞에 살아주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언제부턴가 나보다 더 자유하고 당당해 보였다. 엄마는 지금도 "너희들이 시집 장가를 갔으면 내가 이 고생을 안해도 되는데" 하면서 당신이 손수 장을 봐다 이것저것 반찬을 만들곤 하신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우리만 편하게 먹고 살기 위한 것만이겠는가?

오래 전 어느 해 봄, 교회에서 태안으로 야유회를 간적이 있었다. 그때 가족도 함께 와도 된다고 하길래 나는 엄마에게 같이 갈 건지를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었다. 평소 낮선 사람들 틈에 끼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엄마가 의외로 순순히 따라나서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그곳에서 나는 특산물을 싼 값에 사기 위해 그 길을 나선 것이다. 다른 사람은 그냥 구경하고 놀기위해 온 것이었지만, 엄마는 오로지 어디에 뭐가 있고 이걸 살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나중에 서울에 도착하니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은데 우리 짐이 한보따리였다. 엄마가 현장에서 물건을 살 때도 나는 사지 말라고 창피하다고 옆구리를 찌르곤 했었다. 그래도 엄마는 나의 이런 반응엔 아랑곳하지 않고 얼마나 뿌듯해 하던지. 그 사온 것 가지고 두고두고 맛있게 먹었으면서도 말이다. 엄마는 그때 그랬다. 이것이 어디 나 혼자 먹자고 이러는 거냐고. 

그래. 모성애란 그런 것일 것이다. 나 혼자만 먹을 수도 있는데 가족과 함께 더불어 먹고 함께 잘 사는 것.  누군가는 그랬다. 돌볼 대상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정신병에 걸리는 법이 없다고. 정신병은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서 생겨나는 거라고.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견 맞는 얘기 같다. 

난 안다. 엄마가 그리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게 사시는 그렇게 아직 돌볼 대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대상이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할 때 당신은 비로소 정말 늙어버리릴 거라는 것을.

얼마 전, 나는 우연히 물어 본적이 있다. 엄마는 언제까지 월경을 했냐고. "마흔 여덞까지 했지, 아마." 한다. 엄마가 그쯤했다면 나도 대충 그맘 때까지 할 것이다. 그때까지 얼마가 남았을까 헤아려 본다. 엄마는 월경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됐을 때 너무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웬지 나는 그때가 됐을 때 좋아만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난 아직도 돌볼 대상이 없기 때문에. 엄마의 삶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 그 삶에 이를 수 있겠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삶은 이렇게 오래도록 엄마에게 기생에서 연명하고 있는데, 앞으로 우리 엄마는 누구에게 의탁했으면 좋을까 가끔 막막해지곤 한다. 그나마 엄마가 신앙을 가지고 저리 꿋꿋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엄마가 믿는 그분께 감사치 않을 수가 없다. 나이를 먹으니 엄마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눈물 지을 때가 많아졌다.

"주님, 저의 엄마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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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흙 2008-11-21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또 울었어요. 이글 읽고서. '사랑한다는 말, 미안한다는 말은 그가 나와 어느 정도의 거리가 유지됐을 때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습니다...

stella.K 2008-11-21 18:32   좋아요 0 | URL
에고, 이제보니 파란흙님 울보셨군요.^^
 
오, 나의 마나님
다비드 아비께르 지음, 김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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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결혼한 여자들 거의 대부분은 결혼은 여자에겐 하나도 좋은 것이 아니며 남자들에게만 좋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말에(어느만큼은) 동의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결혼은 남자들에게도 힘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결혼이 남자들에게도 어려운 것은,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한 가정의 가장이요 그 가정을 책임져야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 날과 같이 경제가 불안하고 직장에 오래 살아남기란 게 쉽지 않은 세상에서 남자가 가정을 책임져 나가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렇지 않더라도 책에서처럼 그럴 염려는 아직 없는 부르조아 인텔리 부부라고 해도 아내와의 소득격차 때문에도 남자들은 은근히 열등감을 갖는다고 한다. 게다가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을 몰라 좌충우돌하고 왕따가 되기도 하지 않는가? 그러니 결혼은 남자에게도 결코 좋은 것이라고마는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결혼을 한다.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면서 왜 결혼을 하냐고 물으면 결혼은 또 그 나름의 신비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결혼에 대해 함부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금물일 것 같다.

결혼을 주제로한 작품은 많다. 이 작품도 그런 작품중의 하나다. 내가 읽으면서 조금 의아해했던 건 결혼 안하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라 중 하나인 프랑스의 작가가 결혼의 풍경에 대해서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솔직하고 시종 유머 감각을 잃지 않으며 썼다. 어찌보면 작가 자신의 이야기일 것 같은 이 작품은 페이소스마저 느끼게 해 주는데 비록 결혼에 대해서는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 솔직함 때문에 이 작품이 사랑스럽게도 느껴진다.

사실 결혼하면 누구만 좋고 누구는 나쁘고가 어디 있겠는가? 행복하면 다 같이 행복하고, 힘이 들면 다 같이 힘든 것이 결혼일 것이다. 그렇게 이분법적 사고는 결혼생활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이 남자의 시각에서 서글픈 결혼생활을 읊조리는 것이라 조금은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관점에선 남자들의 결혼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들을 수 있어 나름 읽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재치가 느껴지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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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8-10-22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명절이 힘들어진 것 외에는 다 좋아진것 같은데요.... 결혼이란 누굴 만나 사느냐에 좌우되지 결혼 그 자체가 좋다 나쁘다 따질 것은 아니라고 봐요.^^

stella.K 2008-10-22 11:14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어요. 야클님!
정말 그렇겠죠? 결혼 자체가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는 거겠죠?
근데 야클님도 명절 땐 힘 드시구나.ㅎ

메르헨 2008-10-24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제목이 그래서 프랑스작가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결혼...좋아요.
영원한 내편이 있다는거.
내가 보는 세상만 있는게 아니더군요.^^
아이가 생기고나선 더욱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고 넓어진 느낌이랄까요?
그러면서도 때로 힘들긴 하죠.^^
스무살을 넘기면서 아버지의 어깨가 참 무거웠겠다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남편(내편)을 보면 든든하면서도 측은하죠.
스텔라님의 쓰신 리뷰를 보면 꼭 그 책이 보고 싶더라구요.ㅋ 지름신 강림~

stella.K 2008-10-25 11:42   좋아요 0 | URL
ㅎㅎ 별로 잘 쓰는 리뷰도 아닌데 예쁘게 봐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보세요.^^

진달래 2008-11-0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하면서 여자나 남자나 다 변화가 있는데, 그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결혼 성공에 대한 관건이 아닐까요... 전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데 좋단 넘이 없어서... ㅋㅋ 너무 속보이는 남자의 엄살이 전 귀여웠어요. 이 작품에서... ^^;;

stella.K 2008-11-04 13: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엄살.ㅎㅎ
저도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요.^^
 
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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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조금은 특이하다. 언듯 봐서는 늘 피곤에 찌들은 무기력한 현대인을 지칭하는 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읽다보니 독특한 소설이란 생각이 들긴한다.

무중력 증후군이라. 뭔가를 풍자하는 듯도하다. 이를테면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집단 무의식을 약간은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해 볼려고 하는 건 아닌가? 요즘의 혼돈의 사회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한때 아니 지금도 그 충격에서 완전히 자유한 것도 아니지만, 쇠고기 광우병에 대한 집단적 반발 또 그에 대한 지나친 우려라는 인식속에서 도무지 누구의 말이 옳고 이 현상을 뭐라 규정지을 수 있으며 이것을 주도하는 세력을 뭘까? 우리는 어디에 서야하며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렇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앞서 말한 그로테스크한 풍자 소설이란 시도는 좋았지만 그 깊이엔 미흡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나름 구성은 좋았지만 읽으면서 지루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냥 흔히 있을 수 있는 상황에 몇가지 그로테스크한 상징을 섞어 놓은 것 같다. 그냥 인간의 행동 양식을 지배하는 집단적 무의식이 무엇인지를 좀 더 깊이있게 파헤쳤더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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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08-08-20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재도 특이하고 주제도 있었지만 문제는... 재미가 좀 덜 했다는 거...
에효... 전 공감이 잘 안 가더라구요. ㅋㅋ
 
시계탑
전아리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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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그렇게 유명한 줄은 몰랐다(아마도 본인은 지금쯤 이 유명하다는 말을 꽤 부담스러워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읽어보니 그럴만 하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만한 문체를 가지고 이런 소설을 쓴다는 게 가히 놀랍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왠만한 작품에 이런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교만해서인지 아니면 뭘 몰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기고 뛰고 나른다는 요즘의 작가들에게 함부로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작가는 뭔가 다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주인공 연이를11살 때부터 19세까지를 홀수 나이로 아우르고 있다. 연이의 삶을 이루고 있는 주변은 어둡고 칙칙하다. 띨멍한 병욱이, 알콜중독자인 아버지, 늘 다른 사랑을 꿈꾸는 엄마, 자기 세계에만 웅크리고 있는 같은 반의 서영이 등. 하나 같이 밝은 구석이라곤 없다. 그 가운데 영악한 아이로 자라는 연이의 내면 세계 역시 음습하며 어찌보면 스산한 느낌마져 들게 한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도 울지 않는 아이. 학교에서 여행을 보내 주는 것도 겉으로는 근사한 이유 같아도 그 속내를 알고 보면 좋은 것마는 아니지만 그것을 냉정히 이용할 줄 아는 아이. 연이는 꿈은 꾸지 않지만 현실을 그 어떠한 미사여구나 어줍짢은 해석없이 담담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은 병욱과 서영이 셋이서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바로 얼마 전에 본 연극 <청춘예찬>을 떠올리게도 한다. 물론 연극의 내용은 좀 다르긴 하지만 그것 역시 어두운 10대 말을 다루고 있고 보고나면 조금은 우울해진다. 책을 읽다보면 나의 11세는, 13세는...17세, 19세는 어떠했는가를 반추하게 만든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처럼 특별하지는 않았다. 부모를 잘 만난 덕에 사치스럽진 않아도 별 부족할 것 없이 살았다. 그런데도 나 역시 그때를 떠올리면 웬지 공허롭고 우울하다. 너무 엉터리 같이 살아 10대를 다시 살아보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10대를 다시 산다고 좋을까?

누가 10대의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했는지, 비전을 가지라 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전체 사춘기 아이들 중  상위 3% 이내의 아이들에게나 해당되는 말 아닌가? 그 반대의 아이들은 오히려 세상을 냉정하게 이용해 먹는 방법을 터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또 왜 사춘기 소설은 그토록 칙칙해야 하는 것인지 작가에게 묻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 밝게만 그려도 구라 같지 않은가?

어쨋거나 이 영악하기 이를데 없는 이 책의 작가 만큼은 지켜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그만한 나이에 이런 작품을 쓴다면 앞으로 그녀가 30대가 되고 40대가 될 때는 어떤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작가의 건필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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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8-06-27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이 지켜보고 싶다하니 나도 지켜보고 싶어지는 이 마음!!
잘 지내죠? ^^

stella.K 2008-06-27 16:18   좋아요 0 | URL
앗, 플레져님! 오랫만이어요.
잘 지내죠? 자주 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