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된 죽음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8
장-자크 피슈테르 지음, 최경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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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오 문학이란 장르가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책을 소재로한 문학을 일컫음인데 당장 생각나는 대표적인 작품을 꼽자면 '장미의 이름'이 아닐까? 그밖에도 '꿈꾸는 책들의 도시'나 '바람의 사나이'등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은 뭐가 있을까? 오래전에 <TV 문학관>에서 김탁환의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의 원작을 방영한 것을 최근에 본적이 있는데 정말 재미있게 봤다.  

솔직히 우리나라가 책을 참 안 읽는 민족 중 하나라는데 과연 이런 고급한(?) 문학을 구사하는 작가가 있을까 싶었는데 보면서 과연 김탁환이다! 찬탄을 자아냈다.(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는 좀 아쉬웠다.) 그후 이걸 책으로 읽어 볼까해서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찾아 봤더니 절판되었다고 한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우리나라는 알려진 책 보다 안 알려진 책들이 너무 많고 이미 알려졌더라도 그것의 책으로거의 생존은 참 짧은 것 같다. 그래 어쩌자고 그 책이 절판이 되었더란 말인가? 정말 서럽다. 잊혀진다는 것은!(물론 헌책방 같은데 가면 아직은 구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약간은 다른쪽으로 흘러갔다. 이번에 읽은 이 책 '편집된 죽음' 역시 상당히 재밌고 흥미롭게 읽힌다.  

이야기는 영화를 보는 듯하고 더구나 스릴러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어(작가는 스릴러가 아니라 서스펜스라고 하긴 하지만) 다음 장을 기대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건 복수극이다. 과연 이런 완벽한 복수극이 있을 수 있을까 싶게 기가막힌 운도 따라준다. 너무 완벽해 현실에선 존재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래서 사람의 로망을 채워주기도 하지만. 이 채울길 없는 인간의 로망을 책이나 영화가 채워주지 않는다면 무엇이 채워 줄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잘난 사람의 복수는 쾌감이 반감이 된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어딘가 찌그러져 있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며, 뭔가 당하기만 하는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뭐든 완벽해 보이고 잘나 보이는 사람한테 하는 복수가 좋아 보인다. 왜냐구? 대리만족의 쾌감이 있으니까.  

세상에 잘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평범하거나 평범 이하의 삶을 사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문제는 그 몇 프로 되지 않는 인간이 평범 내지는 평범 이하의 사람을 가지고 놀고 짓밟는다는 것이다. 그랬을 때 자극을 받는 것은 그들의 정의감이다. 정의란 이름으로 그 잘난 사람을 응징하는 것이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이 책의 주인공도 우리가 볼 때 꼭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가 가진 기술 중에 '위조문서 전문가'가 포함되어 있다. 아무나 갖는 능력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이 놈의 '평범'이라는 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상대적일 뿐이다.  

사람은 어떤 막다른 골목이나 위기의 순간에 자신이 가진 능력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주인공 에드워드도 애인 야스미나가 죽은 것이 그의 친구이자 적인 니콜라의 짓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어떻게 자신에게 복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까?  

역시 이 작품의 압권은 주인공의 복수의 과정이다. 유려한 심리 묘사와 책의 위조 과정이 마치 영화를 보듯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어느 영화 감독이 영화화 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만하다 싶다. 기회가 되면 영화로 보고 싶은데 아직 영화로 보기엔 다소 요원한듯도 하다.(언제 방영했었나? 아는 분은 연락 바람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단점을 굳이 꼽자면 허리우드 냄새가 나도 너무 많이 난다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적 글쓰기 보단 아예 허리우드적 글쓰기를 작정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작품은 다분히 나르시즘적이다.(차라리 아예 작가를 나르시스트라고 해야하려나?)  

솔직히 나는 친미도 아니고 반미도 아닌데 영화나 글쓰기만큼은 허리우드적이 되는 것을 지극히 경계하고 싶은 사람중의 한 사람이다.  

물론 세계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것에 나름 고민을 갖는 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허리우드적인 것이 꼭 세계적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왜 소설이나 영화가 허리우드를 쫓을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오히려 세계화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이것은 내가 시나리오를 공부한 탓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공부해 보라. 허리우드 작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그것의 좀비가 되어 이 모양이 되는 것이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나 할까?ㅋ)  

그래도 뭐 일단 '재밌다'는 점에선 이의를 달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허리우드표는 재밌는 것' 또는 '재밌는 건 허리우드' 뭐 그런 공식이라면 문제는 여전히 남을테지만 어쨌든 재밌는 건 사실이다.  

왜 더운 여름엔 이런 류의 소설을 읽으라는 건지 이제야 알 것도 같다. 강추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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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노석미 그림 / 살림Friends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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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즈 네신은 터키의 유명한 풍자작가라고 한다.   

그의 작품 몇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바가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난 그의 작품을 이전에 대해 본적이 없었고 이 작품에서야 비로소 그를 만났다.  

작가가 유명하긴 유명한 사람인가 보다.  우리가 잘 아는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터키작가 오르한 파묵도 경의를 표한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난 또 유감스럽게도 아직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터키 작가는 아지즈 네신이 처음이었고 그건 다소 낮선 경험이기도 했다.  

사실 뭐 꼭 '낮설다'는 표현을 굳이 써야하는 걸까? 문학이란게 국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긴 해도 결국 인간에 관해 말하고 인간성을 추구하는 게 문학이고 보면 하나로 통하는 뭔가가 있다. 그래도 굳이 낮설다고 표현하는 것은 아무래도 터키는 우리나라로 치면 제3세계 국가일 수 밖에 없고 그동안 국내에 터키 문학이 그다지 많이 소개가 되지 않았으며 거기에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그 나라가 이슬람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처음 대해 본 문학작품 치고는 묘한 매력이 묻어난다. 이국적인 매력이라고나 할까?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다. 작가는 짧은 글 속에 자신의 유년 시절을 잘 녹여내고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재료로 이렇게 글로써 빛어낼 수 있다면 우리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글로써 표현해 볼 수 있을까?

사람이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자신 안에 있는 여러 가지가 자극 받을 수 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나 역시 어린 시절이 많이 떠올랐다. 예를들면,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오줌 싸고 돌아와 엄마를 속여 옷이 갈아 입은지 오래 됐으니 빨아야할 것 같다고 하나 하나 벗어내고 다른 옷으로 갈아 있은 기억. 아버지 친구분들이 술이 취에 밤늦게 들이 닦쳐서는 술김에 어린 나와 내 동생에게 돈을 준다는 것이 5천원짜리를 받은 것이다. 그때 돈 5천원이면 상당히 큰 돈이었는데, 그 시절 나와 동생은 엄마에게 하루 군것질 10원씩을 받고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5000일은 엄마에게 손벌리지 않아도 될 테니 동생에게 너와 나 둘이만 아는 비밀로 하자고 했다가 실패했다.(그때는 5000일이 얼마나 긴 세월인지를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날 위해 피아노를 사 주셨지만 난 그것을 기뻐하기 보다 부담스러워 전전긍긍했던 기억 등이 읽으면서 오버랩이 되었다.    

작가가 이미 고인이 된지 오래고, 모르긴 해도 노년에 이르러 썼던 것 같기도 한데 역시 어린 시절은 늙어도 변하지 않은 채 우리안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아득해져 오는 느낌이다. 작가도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지 않았을까?  

작가는 가난해도 좋은 부모님 밑에서 비교적 평화로운 유년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물론 어머니가 병약했던 건 작가에겐 안타까움이었겠지만 곳곳에 부모님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묻어나 있다. 

작가는 특별히 풍자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풍자 작가라. 이것이 보기엔 쉬운 것 같아도 풍자를 표현하긴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인생을 관조할 줄 알아야 하고 거기서 유머를 길러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은 항상 물어 본다고 한다. 왜 풍자 작가가 되었느냐고. 그러면 그 자신도 모른다고 대답한 후 하지만 자신을 풍자 작가로 만든 것은 자신의 삶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눈물 속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고 있다.(24p)  

작가의 말이 참 의미심장하다. 그의 눈물이 자신을 풍자 작가로 만들었다니!  그렇다. 이건 분명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은 눈물뿐이고 고로 슬픔과 고통이 많다. 하지만 거기서 위트와 유머를 건져 올릴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다. 그 하나의 풍자를 건져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과 인생을 곱씹은 나날이 있어왔는지 우리는 다 알 길은 없다. 하지만 문학이란 도구는 얼마나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가? 

세상에 아지즈 네신만한 또는 그 보다 더한 눈물과 아픔을 지닌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자신 안에만 간직하고 있지 않고 문학으로 승화시킴으로 그는 오늘 날까지도 터키가 가장 추앙해마지 않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군가의 삶도 귀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슬픔이 그 누군가에겐 웃음이 되고 약이 될 수만 있다면 그의 삶은 그 누군가에게로부터 경의를 받아 마땅한다. 그것이 비록 많은 사람은 아니어도 말이다. 

오늘 아지즈 네신은 특별히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추하고 풍자하므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있다. 한번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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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 이야기 2 - 홀로서기
시모무라 고진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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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가 점점 더 성숙해져 간다. 그도 그럴 것이 지로는 이제 본격적인 사춘기가 되었다.  

1권에서는 제멋대로고 자아가 강한 천둥벌거숭이 였다면 2권에서의 지로는 진지하다.

사람이 진지해진다는 것은 나와 세계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냐에 골몰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2권에서의 지로는 여전히 고집이 세고 동시에 의협심도 강하다. 하지만 세상과 어떻게 타협하고 조화시켜 나갈 것인가에 더 많이 치중하다 보니 쉽게(?) 자신의 뜻을 바꾸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로선 바람직해 보인다. 그것은 지로 주위에 좋은 선생님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어른이 없다면 지로는 자기가 보는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다소는 삐뚤어지고 독단으로 흐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한 인간이 성숙하기까지 주위 사람의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1권에 이어 2권에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바로 이러한 사람 때문에 독단으로 흐를 수 있는 것도 막을 수 있으며 세상을 좀 더 긍정하고 넓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아사쿠라 선생님은 지로에게 있어 얼마나 좋은 선생님이 었던가?

물론 지로 주위에는 항상 좋은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로의 친할머니는 여전히 지로에겐 부담스럽고 싫은 존재다. 하지만 1권과 달리 그는 이제 할머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됐으며 때론 불쌍하다고도 고백한다. 물론 할머니와 좋게 지낼 수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런 중에도 그런 마음까지 먹을 수 있다는 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때론 사람의 새로운 발견은 시간이 흘러야 진가가 들어나는 경우도 있다. 지로에게는 새어머니가 그랬는데 그전까지 그에게 새어머니의 존재는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새어머니를 새롭게 조망하게 되는 건 상황과 환경의 변화가 가져다 주는 축복이 아닐 수가 없다. 

어찌보면 지로는 오늘 날을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하고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오늘 날 지로같은 청소년이 없으란 법은 없겠지만 이만큼 진지하고 어른스러울 수 있을까? 

학원 다니기도 빠듯한 오늘 날의 청소년들이 언제 이렇게 자기 앞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진지해져 볼 수가 있겠으며 언제 어른들의 말을 청종할 시간이나 기회가 있을까? 그런 기회를 가져도 과연 좋은 말을 들려줄 그런 어른이나 선생이 있을까?  

물론 이것은 또 어쩌면 기우인지도 모른다. 일각에서는 오늘 날의 청소년들이 공부만하고 자기가 관심있는 것이 아니면 나머지 것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런 이기적이지만은 않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로벌 리더로서 내일을 준비하는 청소년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고 말할 사람이 있다면면 다행이다. 나는 청소년 아이들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으니까.     

며칠 전 청소년들이 시국선언을 했다. 이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겠다. 그것을 알려면 청소년들이 시국선언을 하게 된 배경이 무엇이며 과연 시의적절한 것인지도 생각해 볼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런 것을 보면 하나 드는 생각은 우리의 아이들이 생각없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런 중에도 아이들을 잘 지도하고 조언해 줄 선생님이 계시다면 좋을텐데 하는 바람을 가져보게 된다.  

무조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너희들이 무슨 주제넘게 시국선언이냐고 윽박지르거나 반대로 그러한 청소년들의 까지도 정치에 이용해 먹는 선동적인 어른이 있다면 반성할 일이다. 단지 청소년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게 될지라도 그것을 긍정해주고 앞으로 그것이 그들 자신에게 미쳐질 것들에 대해 그리고 나라의 장래에 이득이 될 것인지 실이 될 것인지를 스스로가 판단해 볼 수 있는 그런 것으로까지 사고를 넓혀 주고 재생산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지로가 뜻있는 친구와 함께 뜻하지 않게 정치적 사건에 연루된 아사쿠라 선생님 구명 운동을 하는 과정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읽으면서 오래 전 나는 주일학교 교사를 한 일이 있었는데 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얼마나 좋은 선생님이 었을까 반성을 하게도 된다. 

아무튼 지로는 참 멋진 아이다. 본권은 청소년기가 주를 이루어 씌여진만큼 청소년기는 아무래도 생각이 많은 시기라 내용 역시 어느 만큼은 사변적인 생각과 대화체 문장들이 많아 보인다. 그래서 어찌보면 조금은 지루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만큼 작가 자신의 생각을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에 읽는데 어려움이 있거나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다. 

1권 때도 그랬지고 자전적 소설이라 더욱 그렇긴 하겠지만 이 소설은 가식이 전혀 없다. 조미료 치지 않는 인생에 대한 담백함 그 자체만을 담았다.(어찌보면 7,80년대 소설을 읽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내용면에서나 형식면에서나) 그래서 누구는 건조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배재되 있기 때문에 인생의 맛 그 순수함을 느낄 수 있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좋다는 느낌을 받는다. 진실을 담은 문학 작품은 그래서 그 생명력을 오래 유지하는가 보다.(우리나라엔 이제 소개가 됐지만 일본에서는 꽤 오래된 작품인 듯 하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더불어 또 하나 생각한 것은 우리도 이 책처럼 자기 자서전 하나 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그것이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이든 아니던 지간에 말이다. 그러면 지로처럼 감사할 것들이 훨씬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앞으로의 삶을 조금 더 진지하게 살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은 자기 살아 온 걸 책으로 쓰자면 10권쯤 나올 것이라고 하면서 왜 단 한 권도 쓰지 않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작고하신 이청준 선생의 '자서전들을 씁시다'란 책이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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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군화>를 리뷰해주세요.
강철군화 잭 런던 걸작선 3
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 궁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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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좋은 소설을  읽었다. 

이미 100여 년 전에 잭 런던에 의해서 씌여졌고 우리나라에선 아직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때 운동권에선 많이 읽혀졌던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난 왜 이제야 이 책을 알았을까? 하긴 난 그 시절 운동에 대해선 그다지 아는 바도 많지 않았고 거의 무관심 했으니 이런 책이 인구에 회자가 된 줄은 알지 못했다. 그때만해도 불온서적이 아니었겠는가? 그러고 보면 세상 참 좋아졌다.  

저자는 서기 27세기 통일된 사회민주주의의 문헌학자 앤서니 메러디스가 에이비스 에버하드의 원고를 공개하는 형식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그것은 20세기 초 에이비스 에버하드의 남편이자 사회주의자였던 어니스트 에버하드의 일대기를 에이비스의 입을 빌어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당시 미국의 과두지배체제(소수의 사람이나 집단이 사회의 정치. 경제적 권력을 독점하고 행사하는 정치 체제)하에 자본가들은 넘쳐나는 잉여를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자본을 추척하고 있었고 이를 비판하며 중산층의 몰락과 늘어난 노동자들의 실업과 빈곤의 문제로 허덕이는 가운데 이런 불공평한 세상을 바로 잡겠다는 사회주의자 어니스트와 이에 동조하는 세력의 투쟁을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어니스트가 여러 지식인들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어니스트가 꿈꾸는 세상에 대해 이론적인 것을 증명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와 그의 추종세력의 투쟁 과정이 사실적이며 박진감 있게 그려져 있다.

물론 작품은 어느 한쪽의 승리를 그리지 않고 사회주의자 계속적인 투쟁을 다짐하며 끝을 맺고 있다. 여기서 나는 '물론'이란 단어를 썼는데 그것은 100년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계급 투쟁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어찌보면 앞으로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지구가 없어지지 않는한 숙명의 라이벌로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전망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의 입장에선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며 저자는 이렇게 열린 결말로 끝을 낼 수 밖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잭 런던이 초두에 '서기 27세기 통일된 사회민주주'를 언급한 것을 보면 그는 아마도 사회주의가 승리하게 되길 바라며 이 책을 썼던 것 같다. 

애석하게도 잭 런던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 사회주의가 승리하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지금은 21세기 초 이 책을 읽은 벽안의 독자인 나 역시 사회주의가 승리하는것을 살아생전에 볼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잭 런던이 말했던 과두지배체제와 강철군화의 망령은 20세기 초가 그랬던 것처럼 21세기 초에도 여전히 아니 더 또렷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보라. 오늘 날 세계를 지배하는 세력은 80%의 노동자 집단이 아니다. 단 20%의 자본가 집단이 세상을 지배한다. 아니 누구는 상위 3%만이 세상을 지배한다고도 한다. 그리고 못 사는 사람은 여전히 못 살고 잘 사는 사람은 여전히 더 더욱 잘 산다. 우리가 비난해 마지않는 건 이런 비대칭의 사회가 아니다. 문제는 그런 자본가들이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하여 눈을 뜨지 않는 것과 그들의 오만과 횡포다. 

억울하면 출세하랬다고 자본가들은 그들에 대하여 놀리기만하고 자꾸만 자본주의의 환상만을 심어준다. 그리고 조금만 자기네들의 세계가 위태로워지면 잭 런던이 말했던 '강철군화'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위태롭게 만든다.    

바로 어제 우린 한 나라라의 대통령을 지냈던 어르신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에 충격과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그 어르신의 죽음을 언론에 공식 발표했던 그분의 최측근중 한 사람은 울먹이며 우리나라의 언론을 비난했고 특히 조중동이 그분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통탄해 마지 않았다.  

조중동 그들이 누구인가?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고 권력의 단물을 달게 빨아 들였던 21세기 강철군화들이 아닌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어니스트의 아니 잭 런던의 통찰에 거의 전율하다시피 했고, 어찌보면 이런 계급 사회의 문제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잭 런던은 먼 미래 27세기엔 사회민주주의가 승리해서 오랜 과거의 일을 보여주는 것처럼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열린 결말이라고 해도 긍정적인 결말처럼 보인다.     

글쎄, 서기 27세기라. 정말 그때쯤이면 잭 런던이 바라던대로 사회민주주의가 실현되어 있을까?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민주주의가 아닌 사회에서 살아 본적이 없고 자본주의가 아닌 세상에서 산적이 없다. 그래서 솔직히 죽을 때까지도 사회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는 세상을 보고 죽을 것 같지는 않다. 하다못해 사회(민주)주의의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독교회 조차도 자본주의의 단물을 빨아 먹은지가 오래됐는데 내가 어디서 잭 런던이 말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이상향을 보겠는가?  

그래. 내 당대에선 사회민주주의 승리를 볼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먼 미래에서라도 사회민주주의가 승리하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훗날에 강철군화에 짓밟혀 비명에 돌아가신 전직 대통령도 그 죽음이 헛되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덧) 이 작품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정말 탁월한 작가는 통찰력이 있으며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를 생각해 보았다. 또한 잭 런던은 상당히 지적이면서 뛰어난 문체의 소유자였다. 오죽하면 각주조차도 재미있다.  

그래서일까? 나 개인적으로는 미국 문학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않지만 잭 런던의 작품은 앞으로 몇 작품 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말랑 말랑한 소설만 읽어 온 나에게 이런 소설은 모처럼 의식을 깨우는 맛이 있어서 좋았다. 내가 알고 보는 세상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모르는 세상을 알 필요가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  

장 지글러의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내가 지금 어떤 사회속에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벽안의 독자들에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여러분도 노동자계급도, 우리 모두 인류 역사의 장을 어둡게 만든 그 어떤 전제정치보다 잔혹하고 끔찍한 강철군화 아래 짓밟히겠지요. 그런 전제정치에 잘 맞는 이름이죠. 강철군화!" (1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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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2009-05-25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제가 22년 전에 읽은 책이라서 반갑네요. 대학 새내기때 읽었던 책인데, 읽고 나서 어찌나 충격이 컸던지 지금도 그 느낌이 있답니다. 정말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stella.K 2009-05-26 10:4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빨려들어가듯 읽었습니다.
잭 런던 참 매력적인 작가더군요.^^

2009-05-25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로 이야기 1>을 리뷰해주세요.
지로 이야기 1 - 세 어머니
시모무라 고진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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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두꺼워서(무려 600페이지가 넘는다) 읽기가 좀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런 묵직한(내용으로 보나 두께로 보나)책이 한 권도 아니고 무려 세 권이란다. 앞으로 2,3권을 계속 읽을지 모르겠지만(기회만 된다면 모두 완독하고 싶은 생각도 확실히 있다. 그런데 왜 서평단은 1권만 보내주는지 모르겠다. 이왕 서평단에게 서비스 할 것 같으면 끝까지 잘 해라! 2,3권은 너희들이 사서 봐라는 식의 이런 이벤트는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1권까지의 나의 소회를 먼저 말한다면, 근래에 보이드문 만족한 독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어떻게 보면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고 많은 자잘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큰 감동은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읽다보면 주인공이 세상과 자아에 눈 떠가는 과정에서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가 있다. 또한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면서 아련해지는 순간이 참 많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묻게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어찌보면 철학적 질문이라기 보단 교육학적 질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했다. 이 질문이 교육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인간은 많은 혼란을 겪게 될 것 같다. 

지로의 경우를 보자. 그는 날 때부터 교육을 위해 남편이 어느 초등학교 교지기(아마도 지금의 수위쯤 되는 것 같다.)로 있는 유모의 집에 일정 기간 위탁되어 진다.  

참 단순하지 않은가? 과연 교지기가 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남의 자식인데 그 집에 잠시 위탁되어진다고 해서 과연 교육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오히려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인생 초반 지로는 엄마와 적지 않은 갈등을 보인다.  

어디 그뿐인가? 친할머니와 갈등, 형제들 특히 동생과의 갈등은 내내 지로를 힘들게 만든다. 그러니 지로의 교육을 위한 선택을 위해 교지기의 집에 맞겨진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로가 인복은 있는가 보다. 1권은 지로 인생의 청소년기까지만 다루고 있는데 중간 중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서 좋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초기 엄마와 친할머니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암초 같은 존재였다. 사실 어찌보면 이들도 긴 안목에서 봤을 때 지로에게 꼭 나쁜 사람으로만 비쳤던 것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 나쁜 사람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이니까.  또한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야 내가 성숙해진다. 당시는 괴롭긴 하겠지만.

아무튼 그런 가운데서도 지로 인생에 있어서 정말 다행인 것은 그의 아버지가 그리고 유모가, 의붓 외할아버지와 중학교에 들어와서 만난 선생님에게서 좋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중학교 생활이 심드렁 할 때 만났던 선생님은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되고 인생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또한 그것은 지로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이 부분은 정말 나에게도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나 또한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나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쳤던 선생님이 몇 분 계셨다. 그중에서도 가장 잊지 못할 선생님이라면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던 담임 선생님이셨는데 지금도 기억하는 건 이선생님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고, 내가 신앙에 귀의하게 된 것도 이선생님의 영향이 크다.    

그러고 보면 어른은 말 그대로 선생(先生)이고, 선생이어야만 한다. 

책에도 보면 지로의 친할머니는 지로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내놓은 인물로 나오는데 아이를 탓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짓이다. 지로가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다 지로보다 나이 많은 어른이었다. 아이가 나쁘다면 누구에게로부터 영향을 받았겠는가? 그것 또한 어른이다. 그러므로 아이를 나무란다는 건 정말 쓸데없는 짓이다.  

그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면 어른이 먼저 훌륭해지면 되는 것이다. 아니면 나 자신 훌륭해 질 수 없다면 훌륭한 어른 밑에 있도록 해줘야 한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 주위에 내 아이를 맡길만한 훌륭한 어른이 있는가? 우리의 아이가 언젠가 나를 보고 배울지도 모르는데 나는 과연 본받을만한 어른인가? 이것에 우리는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오늘 날의 교육도 그렇다. 지식을 전수하는 면에서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열이란 건 세계적으로 그 명성과 권위를 자랑하지만 진정한 전인교육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이 전인교육이라는 건 아무리 교육공학이 발달이 되어도 사람이 아니면 전수할 수 없는 것인데 누가 전달해 줄 것인가? 과연 이 책에 나오는 선생님들이 이 시대에도 존재할까?  

무엇보다도 이 책이 나에게 감동스러웠던 건 지로가 인생의 수 많은 역경과 안개속을 하나 하나 헤치며 나가는 장면이 참으로 좋았고 지로가 정말 사랑스러운 존재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런 점에서교육의 완성은 인격의 완성을 이루는데 있다는 생각을 새삼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사랑 받기에 합당한 존재들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자기 존재와 사명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이해하는데 이 책은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강점은 자신의 경험과 깨달은 바를 고백적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체험에서 나오는 고백처럼 울림이 강한 것도 없을 것이다.  

책이 지나치게 두껍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일수도 있겠지만 쉽게 풀어낸 문체가 읽는데는 전혀 부담을 주지 않았고 몰입도 좋았다. 일독을 강추한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고 싶다면...!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시누헤1,2>. 자아에 눈 뜨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나 개인적으론 그다지 권할 생각은 없는 작품이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남에게 이기는 길을 구하지 말라. 나를 이기는 길을 찾기에도 인생은 짧다." 

"......다른 이의 허물을 사랑하는 것이 지혜이며 용기다."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다면 너의 고통부터 견뎌라." 

"......나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니더라도 그를 위해 좋은 일이라면 그를 위해 실천하라." 

"......젊음은 누구에게나 불행하다. 불행을 이겨내지 못하면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다." (5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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