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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노석미 그림 / 살림Friends / 2009년 5월
평점 :
아지즈 네신은 터키의 유명한 풍자작가라고 한다.
그의 작품 몇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바가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난 그의 작품을 이전에 대해 본적이 없었고 이 작품에서야 비로소 그를 만났다.
작가가 유명하긴 유명한 사람인가 보다. 우리가 잘 아는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터키작가 오르한 파묵도 경의를 표한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난 또 유감스럽게도 아직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터키 작가는 아지즈 네신이 처음이었고 그건 다소 낮선 경험이기도 했다.
사실 뭐 꼭 '낮설다'는 표현을 굳이 써야하는 걸까? 문학이란게 국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긴 해도 결국 인간에 관해 말하고 인간성을 추구하는 게 문학이고 보면 하나로 통하는 뭔가가 있다. 그래도 굳이 낮설다고 표현하는 것은 아무래도 터키는 우리나라로 치면 제3세계 국가일 수 밖에 없고 그동안 국내에 터키 문학이 그다지 많이 소개가 되지 않았으며 거기에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그 나라가 이슬람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처음 대해 본 문학작품 치고는 묘한 매력이 묻어난다. 이국적인 매력이라고나 할까?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다. 작가는 짧은 글 속에 자신의 유년 시절을 잘 녹여내고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재료로 이렇게 글로써 빛어낼 수 있다면 우리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글로써 표현해 볼 수 있을까?
사람이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자신 안에 있는 여러 가지가 자극 받을 수 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나 역시 어린 시절이 많이 떠올랐다. 예를들면,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오줌 싸고 돌아와 엄마를 속여 옷이 갈아 입은지 오래 됐으니 빨아야할 것 같다고 하나 하나 벗어내고 다른 옷으로 갈아 있은 기억. 아버지 친구분들이 술이 취에 밤늦게 들이 닦쳐서는 술김에 어린 나와 내 동생에게 돈을 준다는 것이 5천원짜리를 받은 것이다. 그때 돈 5천원이면 상당히 큰 돈이었는데, 그 시절 나와 동생은 엄마에게 하루 군것질 10원씩을 받고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5000일은 엄마에게 손벌리지 않아도 될 테니 동생에게 너와 나 둘이만 아는 비밀로 하자고 했다가 실패했다.(그때는 5000일이 얼마나 긴 세월인지를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날 위해 피아노를 사 주셨지만 난 그것을 기뻐하기 보다 부담스러워 전전긍긍했던 기억 등이 읽으면서 오버랩이 되었다.
작가가 이미 고인이 된지 오래고, 모르긴 해도 노년에 이르러 썼던 것 같기도 한데 역시 어린 시절은 늙어도 변하지 않은 채 우리안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아득해져 오는 느낌이다. 작가도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지 않았을까?
작가는 가난해도 좋은 부모님 밑에서 비교적 평화로운 유년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물론 어머니가 병약했던 건 작가에겐 안타까움이었겠지만 곳곳에 부모님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묻어나 있다.
작가는 특별히 풍자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풍자 작가라. 이것이 보기엔 쉬운 것 같아도 풍자를 표현하긴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인생을 관조할 줄 알아야 하고 거기서 유머를 길러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은 항상 물어 본다고 한다. 왜 풍자 작가가 되었느냐고. 그러면 그 자신도 모른다고 대답한 후 하지만 자신을 풍자 작가로 만든 것은 자신의 삶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눈물 속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고 있다.(24p)
작가의 말이 참 의미심장하다. 그의 눈물이 자신을 풍자 작가로 만들었다니! 그렇다. 이건 분명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은 눈물뿐이고 고로 슬픔과 고통이 많다. 하지만 거기서 위트와 유머를 건져 올릴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다. 그 하나의 풍자를 건져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과 인생을 곱씹은 나날이 있어왔는지 우리는 다 알 길은 없다. 하지만 문학이란 도구는 얼마나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가?
세상에 아지즈 네신만한 또는 그 보다 더한 눈물과 아픔을 지닌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자신 안에만 간직하고 있지 않고 문학으로 승화시킴으로 그는 오늘 날까지도 터키가 가장 추앙해마지 않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군가의 삶도 귀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슬픔이 그 누군가에겐 웃음이 되고 약이 될 수만 있다면 그의 삶은 그 누군가에게로부터 경의를 받아 마땅한다. 그것이 비록 많은 사람은 아니어도 말이다.
오늘 아지즈 네신은 특별히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추하고 풍자하므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있다. 한번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