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수업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판미동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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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나 타미로는 나에겐 낮선 작가다. 이미 여러 권의 작품을 내놓았고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하는데 나는 이 작품이 처음이다.  서간문 형식을 취했다고 하는데 어찌보면 일종의 서사시처럼도 읽힌다.  그래서 문장이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그렇지. 사람은 몇몇개의 형용사와 명사로 자신을 규정하고 그속에 안주하길 바란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또 생각 보다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그속에 안주하도록 되어 있지 못하다. 소설속 주인공처럼 또는 그 보다 더한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랬을 때 소설속 주인공은 어떻게 그 고통을 벗어나는가 그 과정을 시적인 언어로 그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겐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에겐 불행은 가장 행복할 때나 평안할 때 또는 이제 겨우 살만하다 싶을 때 다가오지 않는가? 이렇게 얘기하면 각본 같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불행은 누구도 피해가지 않는다는 건 진리다. 가족중 그렇게 불의의 사고가 아니더라도 같이 살다 평안속에 사별하게 되어도 그것 자체만으로도 슬픔이고 불행이 된다. 떠난 사람은 떠난 것이지만 남아 있는 사람에겐 많은 숙제가 남는 것이다. 인간은 왜 죽어야 하는가? 이렇게 고통스러울 때 신은 있는가? 우린 그 슬픔을 견디고 잊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 아마도 이 질문이 작가에겐 제목대로 '영원의 수업'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도 꼭 책의 주인공처럼 따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 그런 슬픔이 닥쳤을 때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대부분은 시간이 가면 잊혀진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삶은 그러한 고통속에 또 다른 차원의 성숙으로 가는 티켓을 숨겨두고 있다.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이 수업의 목적은 아닐까?

 

삶 자체는 평안히 살기 위함도 아니고, 고통 자체로만 점철되어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내 삶을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그건 수업이 될 것이다. 인생은 평생 배우기 위함이라고 하지 않던가?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이 인생이고, 사는 것 아니 살아내는 것 자체가 수업이라면 그건 배울만한 것이 될 것이다. 난 이 수업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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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3-1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수업이란 말이 좋습니다.
늘 인생 수업 중이에요.

stella.K 2015-03-13 10:41   좋아요 0 | URL
오, 언니! 이 짧고 못 쓴 리뷰에 댓글 달아 주시고
황송하옵니다.ㅎ
저는 학교 수업은 젬병인데 그 나머지는 다 수업 받는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ㅋㅋ
 
블론드 1
조이스 캐럴 오츠 지음, 강성희.송기철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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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연히 마릴린 먼로의 전기 다큐를 보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마릴린 먼로도 먼로지만 저자가 워낙 유명한 작가라 작가의 필체에서 나오는 그녀를 어떻게 형상화 했을지 궁금했다.

 

글쎄.. 간단한 소회를 남기자면, 캐롤 오츠가 글을 이렇게 쓰는구나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것인데, 읽기 전부터도 결코 만만찮은 페이지 수를 자랑하는만큼 글은 뭔가모를 유장함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어렵다거나 지루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딱히 빠져들만큼은 아니다. 그래서 약간의 지루함은 또 감안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지루함이란 또 어디서 오는 것일까? 1권은 주로 마릴린 먼로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소녀 시절 그리고 그녀가 막 세상으로 나오기 직전의 상황에 집중되어 있다. 사생아에 엄마 손에서 자라지 못하고 조부모의 손에서 어느만큼 자라다 고아원에 보내진다. 거기서 양부모에게 넘어가긴 하지만 그마저도 엄마, 아빠라 부르지 못하고 이모와 삼촌이라 부르며 자란다. 16세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지만 남편이 2차 대전 참전하므로 파탄에 이른다. 그렇다고 먼로가 그걸 아주 슬프게 여겼던 건 아닌 것 같다.

 

알겠지만 마릴린 먼로의 실제 이름은 노마진 베이커다. 그 이름이 어떻게 마릴린 먼로가 되었는지 보여주고 1권은 끝을 맺고 있는데, 내가 아무래도 관심 있어하는 건 그 이후인 것 같긴하다. 이를테면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밀러와의 결혼은 어땠을까? 그녀는 그를 어떻게 느꼈을까? 그 이후 몇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던 것으로 아는데 그 나머지는 2, 3권에서 다뤘을 것이다.

 

그런데 1권을 읽어 본 바에 의하면 2, 3권에 도전하는 게 약간은 자신이 없어졌다. 전기나 전기소설은 그 사람 뿐만 아니라 그 사람 주변을 둘러싼 시대적 상황이나 사람들을 아는것이 더 묘미일 수 있는데  과연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워 졌다. 그래도 한 가지 경의를 표하고 싶은 건 작가의 우직함이다. 어떻게 해서 먼로의 전기 소설을 쓸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한 사람의 일생을 웅숭 깊게 그래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어 줄만 하다. 기회있는대로 나머지 책에도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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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13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권은 억지로 다 읽을 수 있는데 문제는 3권 이상이면 독서 진도가 느려지거나 아예 중도 포기해요. 읽을 책이 너무 많으니까요.. ^^;;

stella.K 2015-02-14 11:3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웬만치 재미있지 않으면 나도 3권은 벅차더라.
2권은 어떻게든 읽겠는데...
그렇지 않아도 알라딘내에서만 하더라도 3권까지 읽고 리뷰 쓴 사람이
거의 없어.ㅋ
 
잭나이프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뉴엘 베른하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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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칼로 찌르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얼마나 부조리한가?

사람을 찔렀으면 살인이거나 살인미수가 되고, 경찰이 오고, 구급차가 와 한바탕 난리가 일어나야 하는데 운이 좋은 건지 몽롱한 꿈을 꾸고 있는 건지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친구 조차 어떻게 된 거냐고 묻지도 않고 그저 몸이 안 좋은 것에 대해서만 걱정하고 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주인공은 모른 척 시치미 떼고 다시 일상을 살아도 될 텐데 자신이 칼로 찌른 상대가 누군지 추적해 보기로 하고 몇번의 조회 끝에 마침내 상대를 만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또 묘한 건 그렇게 만났음에도 서로에 대한 확인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내가 당신을 찔렀나요?'라든가 '댁이 나를 찌른 사람?'이냐고 되묻지도 않고 둘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즉 살인미수자와 살인당할 뻔한 사람과의 사랑과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 수 있을까? 가끔 인간은 자신을 위해한 범인을 사랑하게 되는 정신작용에 휩싸이기도 한다는데 이 두 사람도 비슷한 것 같다. 

격렬한 감정적 사랑 후에 오는 강렬한 질문, "이 사람은 왜 나를 사랑하는가?"이건 좀 어리석은 질문인 것 같긴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처럼 가장 본능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결국 주인공이 알아 낸 건 그렇게 이상적인 것이 아니다. 즉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는 그런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건 나를 죽이려 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건전하고 이상적인 남녀간의 사랑 같은 것으론 이해할 수 없지만, 인간의 욕망의 원리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인간의 욕망이란 게 그다지 건강하고 정상적인 것은 아니니까. 그것을 안 순간 주인공은 사랑하는 애인이 자신을 언젠가 떠날 것을 알고, 또 떠나 보내지 않기 위해 그 사람이 원하는 사람으로 연기할 것을 다짐하는 것에서 이야기는 끝이난다. 결국 사랑은 없거나 사랑의 다른 말은 욕망이란 말일 것이다.

     ​          

처음엔 참 독특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기가 시작되고도 한동안 대사없이 주인공의 상황과 생각만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게다가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같게 한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작가가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썼단다. 어쨌거나 프랑스 소설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선 나쁘지 않은 독서경험이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 알고 싶어 자꾸 의심하게 만들었다. 즉 내가 지금 잘 읽고 있는지, 뭐 하나 놓치고 지나간 건 없는지. 물론 이건 나의 평소의 독서습관이긴 하다. 그리고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건 어렵고 재미없는 책 보단 내가 좋아하고 흥미를 느낄만한 책에 더 집중된다.

주인공에 대한 작가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특히 사랑에 빠진 여자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또 그것이 나중에 어떤 반전에 이용되는지를 되집어 보면 작가의 필력이 정말 대단하다 싶다. 나중에 꼭 한 번 다시 읽게될 작품 같고, 더불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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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12-21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는데요...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니. 게다가 사랑에 빠진 여자의 심리라니.
사랑에 대해 뭔가 한 수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관심 가네요.
아무래도 모르겠는 게 사랑에 대한 것이 아닐까 해요.
드라마를 보니깐,
여자를 임신까지 시켜 놓고 싫다고 도망가는 남자가 있질 않나,
미워하면서 이혼까지 한 마당에 아내에게 남자가 생기니까 질투를 하지 않나,
밉다고 서로 할퀴며 살다가도 남편이 아프기라도 하면 눈물을 빼지 않나...
도대체 사랑의 감정이란 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다르게 표현하면,
알 수 없는 건 인간, 이 되겠습니다.

벌써 한 해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네요. 잘 보내시길...

stella.K 2014-12-21 11:38   좋아요 0 | URL
ㅎㅎ 전 이 책 의외로 반전이 있어서 좋았어요.
100페이지 조금 넘는 책인데 정말 깔끔하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랑이라고 하는 것들 거의 대부분은
집착이고 미친상태인 것 같아요. 언니가 예로 들으신 것만 해도
보면 말이어요.ㅋ

네. 고맙습니다. 언니께서도 마무리 잘하셔요.^^
 
안중근, 아베를 쏘다
김정현 지음 / 열림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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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2004년 한일월드컵을 양국이 함께 치르게 되었다고 했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왜 이렇게 되야되는 것일까? 그전에 올림픽도 치뤄보고, 아시안게임도 치러봤는데 하물며 월드컵 하나 자국의 힘으로 치루지 못할까? 도대체 세계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어떻게 보길래 이런 결정이 났을까 의아스러웠다. 

뭐 좋은 뜻으로 받아 들일려면 받아 들일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역사적으로도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니었으니 이 기회에 우호적 관계가 돼라고 그런 건 아니겠는가?  

그런데 또 보면 꼭 그런 선한 의도만 있었을까? 그건 마치 담임 선생이 유독 싸우는 같은 반 악동 두 명에게 뭔가 둘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미션 하나를 주고(그래봐야 교실청소나 주번이 다겠지만) 그러면 친해질까 아닐까를 지켜보겠다는 의도와 같은 건 아니었을까? 의심이 많은 나로선 별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다.

솔직히 나 같으면 안 했으면 안했지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월드컵이 보통 기횐가? 한 번 치르면 100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 국제 경기다. 함부로 고사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나마 우리가 일본 보다 앞선 기량으로 대회를 마쳤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독도 문제며, 위안부 문제 등 마치 찰거머리처럼 달라 붙어 온갖 문제란 문제는 다 일으켜 놓고 해 볼 테면 해 봐. 뭐 그런 식이다. 도대체 일본과 우리나라는 무슨 마가 끼었길래 이러는 것일까? 이제 좀 청산할 거 청산하고 쿨하게 각자의 길을 가면 안 되는 걸까? 오죽하면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다고 외치며 죽어 갔던 것처럼, 누구라도 혀를 깨물며 나는 일본이 싫어요라고 외치며 죽으면 이 문제가 해결이 될까? 하긴, 그래봐야 웃음거리 밖엔 되지 않겠지.

지난 여름을 지내오면서 한 국무총리 후보가 민족 비하 발언을 했다고 결국 총리 후보를 사퇴 했다. 하지만 우리 엄마 세대만 하더라도 솔직히 맞는 말이라고 한다. 적어도 부인하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전후 맥락은 동영상을 보지 않아 뭐라 말하기가 어렵지만 그도 마냥 우리나라를 비하 하자고 했던 말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언제적 동영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요즘 그런 말을 하면 오해의 소지는 있어 보이긴 한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앞서가는 민족인데. 더구나 남의 집 애는 흉 봐도 되지만 우리 집 애 흉 보면 기분 나쁜 것도 사실 아닌가?  

김연아를 비롯한 스포츠 스타들 한류 스타들 그들이 한국을 알린 건 사실이지만 정말로 애국한 건가? 그건 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냥 돈 번 거고 겸해서 나라도 알린 것 아닌가? 일부에서는 어떤 아이돌이 부른 노래가 하도 좋아 그걸 애국가로 지정해 달란다. 재밌자고 한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좀 해도 너무 하지 않나 싶다. 나도 애국의 길에 대해 학교에서 따로 배운 기억은 없지만 이 정도는 아니지 않나 싶다. 나라를 되찾겠다고 피를 토하며 쓰러져갔던 우리의 조상님이 알면 경천동지 할 일은 아닐까 싶다.

나라를 지키는 방법. 어떻게 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저 무조건 일본의 만행에 비난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그건 누군가가 나는 일본이 싫어요 했다가 오히려 웃음을 사는 것 보다 더 웃긴 일이 될 수도 있다. 요즘엔 이승복처럼 공산당이 싫어요 해서 먹힐 시대가 아니란 말이다. 

적어도 난 이 책의 출현이 반가웠다. 
우린 흔히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를 독일과 홀로코스트의 역사에 비유하곤 하는데, 즉 독일은 자신의 역사를 반성하고 용서를 구했는데 일본은 그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출판이 영화 또는 기타 공연에서 자기네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들을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얼마만한 노력을 기울였을까?   

물론 찾아 보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물이 그다지 많아 보이진 않아 보인다. 그나마 뮤지컬에서 <명성황후>나 같은 안중근을 다룬 <영웅> 정도와 최근엔 이순신 장군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나름 문학계에서 지명도 있는 작가가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이 반가웠던 것이다. 그러므로써 안중근이란 역사적 인물이 다시 조명을 받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의 말이 좀 비장하게 들린다. 작가는 그러지 않아도 그의 100주년 기념으로 어느 극단에서 대본으로 써 달라는 걸 고사했다고 한다. 나름 성인이라 할 수 있는 분의 일대기를 쓴다는 것이 굉장한 부담이었나 보다. 그러나 그는 소설로 완성해 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안중근도 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니 책을 끝낼 수 있었다고. 

그러나 독자인 내가 읽어 본 바에 의하면 안중근은 그냥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무학이었고, 무직이었지만 상당한 학식을 가지고 있었고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또 어쩌면 작가의 입김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안중근의 평전과 자서전을 바탕으로 썼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코 입김만으로는 그렇게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등을 죽일 수 있었고, 재판정에서 일본이 우리나라에 지은 죄에 대해 15가지로 말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이 책은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즉 첫 장면이 안중근이 아베를 만나는 장면과 마지막엔 그가 아베를 총으로 쏴 중태에 빠트리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선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것으로 처음에 나는 작가가 너무 무리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다. 그냥 안중근의 전기 소설로 써도 무방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엔딩에서 저자가 왜 그런 시도를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이를테면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한 지금의 일본 아베 수상에 대한 분노와 우리가 완성해야 할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역설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알겠지만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그가 옥중에 있을 때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완성을 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결국 국가 원수를 죽인 혐의가 인정돼 31세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니까. 그리고 너무나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가 죽었다고 해서 그의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의 저항정신, 그의 삶은 오늘 날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동양평화론도 잊혀지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안중근이 만일 살아있다면 정말 또 살인을 저질렀을까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결코 이등박문에게 총을 겨누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을 의연히 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안중근이 아베에게 총을 쐈다고 했을 때 작가가 안중근을 두 번 살인자로 만드는구나 했다. 이 설정을 과연 그가 살아 있다면 받아 들였을까?

그런데 과연 그도 고개를 끄덕였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그는 이등을 죽이겠다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었다. 이등을 죽임으로 인해서 자신이 체포되고 재판정에 설 때 그렇게 일본의 15가지 죄과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 일을 감행했다. 마찬가지로 아직도 깨닫지 못하거나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일본을 위해 그는 기꺼이 암살범이 되길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안중근이 우리나라에서나 영웅으로 칭송하지 아직도 일본이 자신들의 죄과를 인정하지 않으니 사건으로만 보자면 여전히 미제의 사건일 뿐이다. 해결되지 못한 미제의 사건으로 남는다는 건 일본에게 사과 받아야 할 부채가 남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안중근은 기꺼이 또 다시 저격을 감행할 것이란 말이다. 그뿐 아니라 그가 이등을 저격하고 보여준 그의 태도나 행동들은 비장하면서도 가히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는 또 그러한 태도와 행동들을 보여 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에 해결되지 않는 의구심이 남아 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우리 자신을 어떻게 생각해 왔기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하는 것이다. 그게 단순히 오랑캐 기질이니 침략적 기질이니 하는 것으로 설명이 되는 것일까?

안중근이 죽기 전 그의 어머니가 보낸 편지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아들 중근에게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내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317P)
  
세상에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 어미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어미는 물 한 모금인들 편안히 마셨겠는가? 또한 어미뿐이겠는가? 그의 아내와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죽어간 사람이 수천, 수만인데 이게 단순히 오랑캐 같은 일본의 침략과 만행 때문이라고만 해도 되느냐는 말이다.
역사이래로 우리의 국왕과 지도자들은 나라를 온전히 지킬 마음이 있었을까? 그런 의문 또한 있는 것이다. 그것을 강대국의 틈바구니 어쩌구 하면서 나라의 지형의 문제로만 돌려도 되는 것인가? 과연 우리는 나라를 지킬 의지가 있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누구는, 일본은 우리가 우리나라를 아는 것 보다 우리나라를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무서운 말이다. 그러니까 일본이 그런 헛소리를 해도 된다고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어디가서 김연아가 애국을 하니, 어느 아이돌 노래 가지고 애국가로 삼자. 한류가 우리나라를 지켜줄 것이다 이런 철없는 소리 함부로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학교를 떠나 온지가 너무 오래되긴 됐다보다 이제까지 한국사가 필수가 아니었단다. 우리가 역사가 아니면 어디서 애국의 길을 배우겠는가? 과연 우리나라 교육은 재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책이 조금 더 재밌고 흥미로웠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한다. 이왕 판타지를 구사하겠다면 말이다. 좀 허구의 인물도 넣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또 그러기엔 작가는 진실을 추구하고 싶었고, 더불어 자신의 생각도 논리적으로 세우길 바랐던 것 같다.
그래도 이만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노고가 느껴진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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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8-3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정현 저자가 '아버지'란 장편소설을 쓴 작가가 맞네요. 저자 사진을 보니..,
그 책이 베스트셀러였던 옛날, 제가 그 책을 읽고 실망했다는 거죠. 밑줄을 그을 데가 하나도 없었어요...
이 사람, 소설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구나, 했어요.
논픽션을 읽는 느낌이랄까요. 문학의 맛이 하나도 안 났어요.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이젠 문장이 많이 좋아졌겠죠?

어느 책에서 그러는데 문장력은 얼마든지 노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하네요.
글 잘 쓰기 위한 사고력이야 독서로 그리고 체험으로 커버해야겠지만...
저도 '노력'이란 놈을 가져볼까 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stella.K 2014-08-31 18:15   좋아요 0 | URL
헉,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인기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예나 지금이나 지나치게 주목받고 잘 팔리는 소설은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버릇이 있긴 하죠.
아무튼 아버지가 대박을 칠 때 저는 안 봤고
마침 안중근에 관심있고, 작가도 알겸 기회가 있어 보게된 거예요.
어떤 리뷰어가 언니 비슷한 지적을 하긴 했어요.
이게 소설 맞냐고. 특히 판타지.
그런데 저는 이맘도 읽기에 나쁘지는 않다고 봤어요.
물론 이 보다 더 잘 쓴 전기 소설을 읽는다면 또 다를지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작가가 대본을 쓰지 않는 건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 쓰기와 대본 쓰기는 좀 다른데 작가가 자기 자신을 잘 알았던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4-09-04 17:35   좋아요 0 | URL
충분히 그럴 수 있지요. 베스트셀러는 내용만 좋으면 되지 문장력은 상관 없지요.
중년 남성인 아버지를 그렇게 구체적으로 그린 작품이 없었거든요. '아버지'라는 소설로 대중은 아버지의 고독한 위치를 알게 된 거죠.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서 관심 갖게 된 거죠. 그전까진 주로 어머니, 모성... 뭐 이런 데에 주목한 소설이 많았죠.

예를 들면 명퇴, 라는 말이 처음 나올 때 누군가가 회사에서 명퇴 당한 중년 남자를 사실적으로 잘 그려 냈다면(문장력이 탁월하지 않아도) 그것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겠지요. 독자들의 공감만 얻을 수 있다면요. 대중은 탁월한 문장력을 보고 책을 사기보단 내용을 보고 사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 같이 글을 쓰는 사람들은 문장력을 따지겠지만요...
결과적으로 김정현 작가가 그 시대와 딱 맞는 소재를 잘 선택한 결과 같아요.(그때 명퇴, 라는 말이 있었나 헷갈림.) 이것을 소재주의라고도 하지요. 잘 선택한 소재로 덕을 보는 거요. '88만원 세대' 같은 책이 그래요. 이 책처럼 시대와 어울리는 내용으로 얼마든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지요. 문장력은 베스트셀러에서 중요한 변수가 아니고, 문학상 수상작으로 뽑을 땐 중요한 변수겠지만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stella.K 2014-09-04 19:01   좋아요 0 | URL
오, 맞아요. 이렇게 명쾌할수가?
꼭 언니한테 과외수업 받는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TV 피플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하루키의 단편집을 읽기는 얼마만인가? 난 하루키 팬은 아니지만 이렇게 저렇게 읽어 온 바에 의하면, 하루키는 장편 보단 단편을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아주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이란 단편집이나, 아예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온 단편집 등을 읽어보면 정말 아기자기 하면서 그만의 독특함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하늘에서 깨가 부슬부슬 쏟아질 것만 같고, 꽤 사랑스런 소설이란 생각을 했다.

 

나는 그 기대와 설렘을 안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어 가면서 느꼈던 건, 몽환적이면서도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독특함은 여전했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기대했던 감동은 그다지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최근작도 아니고, 오히려 작가의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는 걸 다시 한 번 재편집한 책인데, 하루키는 이 단편 소설들을 쓰고 있을 즈음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이란 소설도 썼을 것이다. 그런데 난 어쩌면 그리도 치즈케이크만을 편애했던 것일까?  

 

특히 이 책에서 한 작품인가를 제외하고 섹스 얘기가 안 나오는 작품이 없다. 그만큼 그건 그의 주특라고 생각하는데, 난 거기서 내가 하루키를 너무 많이 알아 버렸구나 하며 식상해 버리고 말았다. 이는 내가 '치즈케이크...'를 좋게 기억하는 건 아마도 섹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언젠가 그는 한 인터뷰에서, 본인은 섹스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다고 했던 걸 기억한다. 솔직히 그렇게도 생겼다. 그의 외모도 외모지만 그의 생활은 거의 수도승에 가깝지 않은가? 어느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작가가 되려면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삶을 경주하는 작가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드라마나 영화 같은데서 담배나 뻑뻑 피워대고, 인스턴트 음식으로 대충 떼우는 고시생과 혼동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 물론 작가지망생의 이미지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는 자신의 작품에 섹스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게 또 아주 묘사가 뛰어나고, 감동(?)스러우냐면 그렇지도 않다. 지극히 단순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솔직히 없어도 되는 건 아닐까? 어떤 땐 좀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뭘까? 한번쯤 뇌까리게 된다.

 

글쎄, 나도 모를 일이지. 작가 자신이 정확히 얘기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 식대로 추측을 해 본다. 그건 하루키가 섹스를 (수컷의 그것처럼)지극히 일상적으로 생각하거나, 소설에서 섹스 이야기가 빠지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거나 그렇지 않을까?

 

뭐 같은 예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 오래 전, 습작품으로 유년 시절의 성심리를 소재로 한 작품을 쓴 적이 있었다. 워크숍 작품으로 기한 내 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어떤 작품을 쓸까 고심 끝에 그것을 소재로 했던 것이다.

운이 좋았던지 나는 대체로 좋은 평점을 받았다.

 

그때 깨달았다.  짧은 시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써라.

더구나 나는 성인의 그것이 아니라 유년에 있는 아이의 그것으로 잡았던 게 유효했던 것 같다. 좋은 점수를 받아서 좋긴 했지만, 내가 뭐 섹스중독자도 아니고 이것에 맛들여 글을 쓸 때 계속 이런 걸 쓰면 어쩌나 겁이 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 후 나는 그 작품을 다시 꺼내보지 않았고, 결국 흐지부지 어디론가 사라져 지금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좀 아쉽긴 하다. 그거라도 붙들고 있다가 훗날 등단을 노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건, 그 이야기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쓴 소설이니 어렴풋하게라도 기억이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작품을 쓴 기억만 나지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다. 

 

남자는 섹스를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여자는 마음이 동해야 몸도 따라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하루키가 알았더라면 그래서 여성 독자를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섹스를 과연 그런 식으로 표현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더 의미롭게 표현했거나 아예 없는 것으로 하지 않았을까? 

 

남자가 섹스를 말하는 것도 참 여러 가지라는 걸 나는 비교적 최근에야 알았다. 보통 신앙을 가진 남자들은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하지만 그들도 어딘가에서는 할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 어느 중년의 집사가 무슨 모임에서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름 진지하게 하는 걸 들었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순간 섹스란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비해 어떤 타입은 일부러 들어보라는 식으로 마구 지껄이기도 한다. 그땐 여자라곤 나 하나였고 시커먼 남자들이 서너 명 있었다. 그리고 가볍게 한 잔 하는 자리였다. 공교롭게도 그는 나를 그다지 안 좋아한다는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남자였다. 우리가 뭐 10대 20대도 아니고, 새삼 내외할 것도 없지 않냐해서 까발리는데, 그건 공교롭게도 자기 와이프와 새로운 체위에 돌입하려다 냅다 차였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못 들어 줄 건 없지만, 우리나라 말은 팩트가 아니라 뉘앙스라는 거. 나는 속으로, 이 인간이 이 타임에서 왜 이런 주둥이를 놀리는 걸까?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웃고 넘겼는데 속으론, '재밌냐? 니 와이프가 너 이러고 다니는 거 아냐?' 했다.

 

그런데 비해 하루키처럼 일상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그냥 식욕을 채우고, 스포츠 하듯 하는 것. 뭐 그런 것 말이다.

 

그러고 보면 하루키는 그렇게 매력적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긴, 그의 사진에 찍힌 얼굴을 보고 매력적이라고 느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는 그냥 작가일 뿐이다.

 

최근 새롭게 시작한 노희경의 드라마가 있다. 거기서 보면 조인성이 작가로 나온다. 그것도 추리작가. 작가란 누가 보기엔 개떡 같은 상황도 교묘하게 이용하고 울거먹는 족속들이다. 그게 다른 사람 이야기라면 화낼 필요도 없는데, 이것이 내 상황을 이용해 먹는 거라면 정말 화가 많이 날 것이다. 그때 우리의 공효진이 그런 말을 한다. 이 상황이 재밌냐고, 재미있어서 니 작품에 써 먹을 생각하냐고. 그러자 조인성이 멋있게 한방 날린다. 그래. 그렇다. 나의 상처도 작품에 이용해 먹는데, 남의 상처 좀 이용해 먹는 게 뭐 어떠냐고.

 

그게 좀 치사하긴 하지만 맞는 얘기다. 세상에 비밀이 어딨겠는가? 4사람 내지 6 사람만 건너면 우린 다 아는 사람들이라는데. 하지만 중요한 건, 나의 아픔이 그 누군가에겐 약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처 받은 위로자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독자들은 소설을 읽는 것인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하루키에 대해선 많이 알려진 부분이 있고, 여기 실린 작품들은 비교적 그의 초기에 해당하는 작품이고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처럼 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작품이 몇 눈에 띈다. 이를테면,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고도 자본주의'라든지, '잠' 같은 작품은 확연히 그런 게 느껴진다.

 

특히 '잠'에서의 주인공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느낀 부분들을 묘사하는 이라든지, 불면증 때문에 잠에 대한 책들을 뒤적인 것을 읽으면 이건 정말 하루키가 언젠가 한 번은 불면증에 시달렸고 그것을 달래려고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잠을 연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만든다.

 

또한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같은 작품은 작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 보는 것 같고(이때도 섹스 얘기를 하는데 정말 재미없게 쓴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즉 말하자면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고백록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행여나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독자나 인터뷰어에게 부탁하건데 이거 당신 이야기냐, 아니냐 그런 걸로 작가를 짜증나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작가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요리하는 사람들이다. 내 이야기, 남의 이야기 구분하지 않는다. 다른 물어 볼 것도 많은데 그런 촌스러운 질문으로 귀한 기회를 허비하는가.   

 

그런데 얼마 전에 안 사실인데, 일본에선 하루키가 우리나라만큼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 나라에선 안티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느낌이다. 우리나라의 한 권위있는 출판사는 그의 작품을 세계 명작  목록에 넣었다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고 하는데, 나 개인으로도 하루키는 확실히 좀 애매한데가 있는 작가는 아닌가 싶다. 적어도 그의 작품은 기존의 잣대와 사고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작가는 아닌 것 같다. 그만큼 새로운 사고방식과 열린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작가는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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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8-13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의 책이군요. 이런 책이 나왔는지 몰랐어요.
그의 책은 몇 권 읽었는데 좋았던 것도 있고 그저 그런 것도 있었어요.
작가라고 해서 다 잘 쓸 수는 없는 거겠죠.

늦여름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에요. 만끽하시길...

아, 공감3 중에서 하나는 제가 누른 거랍니다. ㅋㅋ

stella.K 2014-08-13 12:24   좋아요 0 | URL
아, 오랜만이십니다.
저도 하루키는 별론데 워낙에 매스컴에서 띄워주는 게 있어서
그 부분은 좀 마땅치 않아요.
그냥 열심히 쓰는 작가로는 인정을 해 주겠는데 말이죠.
전 단편집이 좋았는데 오랜만에 읽었지만 그도 별로더군요.

이 리뷰 오랫동안 공감1이었는데 갑자기 3으로 올라가 있어서 놀랐어요.
그중 언니가 누르신 거군요. 고맙습니다. ^^

2014-08-13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