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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수업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판미동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수산나 타미로는 나에겐 낮선 작가다. 이미 여러 권의 작품을 내놓았고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하는데 나는 이 작품이 처음이다. 서간문 형식을 취했다고 하는데 어찌보면 일종의 서사시처럼도 읽힌다. 그래서 문장이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그렇지. 사람은 몇몇개의 형용사와 명사로 자신을 규정하고 그속에 안주하길 바란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또 생각 보다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그속에 안주하도록 되어 있지 못하다. 소설속 주인공처럼 또는 그 보다 더한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랬을 때 소설속 주인공은 어떻게 그 고통을 벗어나는가 그 과정을 시적인 언어로 그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겐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에겐 불행은 가장 행복할 때나 평안할 때 또는 이제 겨우 살만하다 싶을 때 다가오지 않는가? 이렇게 얘기하면 각본 같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불행은 누구도 피해가지 않는다는 건 진리다. 가족중 그렇게 불의의 사고가 아니더라도 같이 살다 평안속에 사별하게 되어도 그것 자체만으로도 슬픔이고 불행이 된다. 떠난 사람은 떠난 것이지만 남아 있는 사람에겐 많은 숙제가 남는 것이다. 인간은 왜 죽어야 하는가? 이렇게 고통스러울 때 신은 있는가? 우린 그 슬픔을 견디고 잊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 아마도 이 질문이 작가에겐 제목대로 '영원의 수업'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도 꼭 책의 주인공처럼 따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 그런 슬픔이 닥쳤을 때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대부분은 시간이 가면 잊혀진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삶은 그러한 고통속에 또 다른 차원의 성숙으로 가는 티켓을 숨겨두고 있다.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이 수업의 목적은 아닐까?
삶 자체는 평안히 살기 위함도 아니고, 고통 자체로만 점철되어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내 삶을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그건 수업이 될 것이다. 인생은 평생 배우기 위함이라고 하지 않던가?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이 인생이고, 사는 것 아니 살아내는 것 자체가 수업이라면 그건 배울만한 것이 될 것이다. 난 이 수업이라는 말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