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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나이프 ㅣ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뉴엘 베른하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람을 칼로 찌르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얼마나 부조리한가?
사람을 찔렀으면 살인이거나 살인미수가 되고, 경찰이 오고, 구급차가 와 한바탕 난리가 일어나야 하는데 운이 좋은 건지 몽롱한 꿈을 꾸고 있는 건지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친구 조차 어떻게 된 거냐고 묻지도 않고 그저 몸이 안 좋은 것에 대해서만 걱정하고 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주인공은 모른 척 시치미 떼고 다시 일상을 살아도 될 텐데 자신이 칼로 찌른 상대가 누군지 추적해 보기로 하고 몇번의 조회 끝에 마침내 상대를 만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또 묘한 건 그렇게 만났음에도 서로에 대한 확인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내가 당신을 찔렀나요?'라든가 '댁이 나를 찌른 사람?'이냐고 되묻지도 않고 둘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즉 살인미수자와 살인당할 뻔한 사람과의 사랑과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 수 있을까? 가끔 인간은 자신을 위해한 범인을 사랑하게 되는 정신작용에 휩싸이기도 한다는데 이 두 사람도 비슷한 것 같다.
격렬한 감정적 사랑 후에 오는 강렬한 질문, "이 사람은 왜 나를 사랑하는가?"이건 좀 어리석은 질문인 것 같긴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처럼 가장 본능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결국 주인공이 알아 낸 건 그렇게 이상적인 것이 아니다. 즉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는 그런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건 나를 죽이려 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건전하고 이상적인 남녀간의 사랑 같은 것으론 이해할 수 없지만, 인간의 욕망의 원리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인간의 욕망이란 게 그다지 건강하고 정상적인 것은 아니니까. 그것을 안 순간 주인공은 사랑하는 애인이 자신을 언젠가 떠날 것을 알고, 또 떠나 보내지 않기 위해 그 사람이 원하는 사람으로 연기할 것을 다짐하는 것에서 이야기는 끝이난다. 결국 사랑은 없거나 사랑의 다른 말은 욕망이란 말일 것이다.
처음엔 참 독특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기가 시작되고도 한동안 대사없이 주인공의 상황과 생각만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게다가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같게 한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작가가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썼단다. 어쨌거나 프랑스 소설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선 나쁘지 않은 독서경험이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 알고 싶어 자꾸 의심하게 만들었다. 즉 내가 지금 잘 읽고 있는지, 뭐 하나 놓치고 지나간 건 없는지. 물론 이건 나의 평소의 독서습관이긴 하다. 그리고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건 어렵고 재미없는 책 보단 내가 좋아하고 흥미를 느낄만한 책에 더 집중된다.
주인공에 대한 작가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특히 사랑에 빠진 여자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또 그것이 나중에 어떤 반전에 이용되는지를 되집어 보면 작가의 필력이 정말 대단하다 싶다. 나중에 꼭 한 번 다시 읽게될 작품 같고, 더불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