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피플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하루키의 단편집을 읽기는 얼마만인가? 난 하루키 팬은 아니지만 이렇게 저렇게 읽어 온 바에 의하면, 하루키는 장편 보단 단편을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아주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이란 단편집이나, 아예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온 단편집 등을 읽어보면 정말 아기자기 하면서 그만의 독특함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하늘에서 깨가 부슬부슬 쏟아질 것만 같고, 꽤 사랑스런 소설이란 생각을 했다.

 

나는 그 기대와 설렘을 안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어 가면서 느꼈던 건, 몽환적이면서도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독특함은 여전했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기대했던 감동은 그다지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최근작도 아니고, 오히려 작가의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는 걸 다시 한 번 재편집한 책인데, 하루키는 이 단편 소설들을 쓰고 있을 즈음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이란 소설도 썼을 것이다. 그런데 난 어쩌면 그리도 치즈케이크만을 편애했던 것일까?  

 

특히 이 책에서 한 작품인가를 제외하고 섹스 얘기가 안 나오는 작품이 없다. 그만큼 그건 그의 주특라고 생각하는데, 난 거기서 내가 하루키를 너무 많이 알아 버렸구나 하며 식상해 버리고 말았다. 이는 내가 '치즈케이크...'를 좋게 기억하는 건 아마도 섹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언젠가 그는 한 인터뷰에서, 본인은 섹스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다고 했던 걸 기억한다. 솔직히 그렇게도 생겼다. 그의 외모도 외모지만 그의 생활은 거의 수도승에 가깝지 않은가? 어느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작가가 되려면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삶을 경주하는 작가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드라마나 영화 같은데서 담배나 뻑뻑 피워대고, 인스턴트 음식으로 대충 떼우는 고시생과 혼동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 물론 작가지망생의 이미지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는 자신의 작품에 섹스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게 또 아주 묘사가 뛰어나고, 감동(?)스러우냐면 그렇지도 않다. 지극히 단순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솔직히 없어도 되는 건 아닐까? 어떤 땐 좀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뭘까? 한번쯤 뇌까리게 된다.

 

글쎄, 나도 모를 일이지. 작가 자신이 정확히 얘기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 식대로 추측을 해 본다. 그건 하루키가 섹스를 (수컷의 그것처럼)지극히 일상적으로 생각하거나, 소설에서 섹스 이야기가 빠지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거나 그렇지 않을까?

 

뭐 같은 예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 오래 전, 습작품으로 유년 시절의 성심리를 소재로 한 작품을 쓴 적이 있었다. 워크숍 작품으로 기한 내 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어떤 작품을 쓸까 고심 끝에 그것을 소재로 했던 것이다.

운이 좋았던지 나는 대체로 좋은 평점을 받았다.

 

그때 깨달았다.  짧은 시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써라.

더구나 나는 성인의 그것이 아니라 유년에 있는 아이의 그것으로 잡았던 게 유효했던 것 같다. 좋은 점수를 받아서 좋긴 했지만, 내가 뭐 섹스중독자도 아니고 이것에 맛들여 글을 쓸 때 계속 이런 걸 쓰면 어쩌나 겁이 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 후 나는 그 작품을 다시 꺼내보지 않았고, 결국 흐지부지 어디론가 사라져 지금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좀 아쉽긴 하다. 그거라도 붙들고 있다가 훗날 등단을 노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건, 그 이야기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쓴 소설이니 어렴풋하게라도 기억이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작품을 쓴 기억만 나지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다. 

 

남자는 섹스를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여자는 마음이 동해야 몸도 따라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하루키가 알았더라면 그래서 여성 독자를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섹스를 과연 그런 식으로 표현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더 의미롭게 표현했거나 아예 없는 것으로 하지 않았을까? 

 

남자가 섹스를 말하는 것도 참 여러 가지라는 걸 나는 비교적 최근에야 알았다. 보통 신앙을 가진 남자들은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하지만 그들도 어딘가에서는 할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 어느 중년의 집사가 무슨 모임에서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름 진지하게 하는 걸 들었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순간 섹스란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비해 어떤 타입은 일부러 들어보라는 식으로 마구 지껄이기도 한다. 그땐 여자라곤 나 하나였고 시커먼 남자들이 서너 명 있었다. 그리고 가볍게 한 잔 하는 자리였다. 공교롭게도 그는 나를 그다지 안 좋아한다는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남자였다. 우리가 뭐 10대 20대도 아니고, 새삼 내외할 것도 없지 않냐해서 까발리는데, 그건 공교롭게도 자기 와이프와 새로운 체위에 돌입하려다 냅다 차였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못 들어 줄 건 없지만, 우리나라 말은 팩트가 아니라 뉘앙스라는 거. 나는 속으로, 이 인간이 이 타임에서 왜 이런 주둥이를 놀리는 걸까?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웃고 넘겼는데 속으론, '재밌냐? 니 와이프가 너 이러고 다니는 거 아냐?' 했다.

 

그런데 비해 하루키처럼 일상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그냥 식욕을 채우고, 스포츠 하듯 하는 것. 뭐 그런 것 말이다.

 

그러고 보면 하루키는 그렇게 매력적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긴, 그의 사진에 찍힌 얼굴을 보고 매력적이라고 느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는 그냥 작가일 뿐이다.

 

최근 새롭게 시작한 노희경의 드라마가 있다. 거기서 보면 조인성이 작가로 나온다. 그것도 추리작가. 작가란 누가 보기엔 개떡 같은 상황도 교묘하게 이용하고 울거먹는 족속들이다. 그게 다른 사람 이야기라면 화낼 필요도 없는데, 이것이 내 상황을 이용해 먹는 거라면 정말 화가 많이 날 것이다. 그때 우리의 공효진이 그런 말을 한다. 이 상황이 재밌냐고, 재미있어서 니 작품에 써 먹을 생각하냐고. 그러자 조인성이 멋있게 한방 날린다. 그래. 그렇다. 나의 상처도 작품에 이용해 먹는데, 남의 상처 좀 이용해 먹는 게 뭐 어떠냐고.

 

그게 좀 치사하긴 하지만 맞는 얘기다. 세상에 비밀이 어딨겠는가? 4사람 내지 6 사람만 건너면 우린 다 아는 사람들이라는데. 하지만 중요한 건, 나의 아픔이 그 누군가에겐 약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처 받은 위로자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독자들은 소설을 읽는 것인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하루키에 대해선 많이 알려진 부분이 있고, 여기 실린 작품들은 비교적 그의 초기에 해당하는 작품이고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처럼 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작품이 몇 눈에 띈다. 이를테면,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고도 자본주의'라든지, '잠' 같은 작품은 확연히 그런 게 느껴진다.

 

특히 '잠'에서의 주인공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느낀 부분들을 묘사하는 이라든지, 불면증 때문에 잠에 대한 책들을 뒤적인 것을 읽으면 이건 정말 하루키가 언젠가 한 번은 불면증에 시달렸고 그것을 달래려고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잠을 연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만든다.

 

또한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같은 작품은 작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 보는 것 같고(이때도 섹스 얘기를 하는데 정말 재미없게 쓴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즉 말하자면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고백록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행여나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독자나 인터뷰어에게 부탁하건데 이거 당신 이야기냐, 아니냐 그런 걸로 작가를 짜증나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작가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요리하는 사람들이다. 내 이야기, 남의 이야기 구분하지 않는다. 다른 물어 볼 것도 많은데 그런 촌스러운 질문으로 귀한 기회를 허비하는가.   

 

그런데 얼마 전에 안 사실인데, 일본에선 하루키가 우리나라만큼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 나라에선 안티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느낌이다. 우리나라의 한 권위있는 출판사는 그의 작품을 세계 명작  목록에 넣었다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고 하는데, 나 개인으로도 하루키는 확실히 좀 애매한데가 있는 작가는 아닌가 싶다. 적어도 그의 작품은 기존의 잣대와 사고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작가는 아닌 것 같다. 그만큼 새로운 사고방식과 열린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작가는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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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8-13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의 책이군요. 이런 책이 나왔는지 몰랐어요.
그의 책은 몇 권 읽었는데 좋았던 것도 있고 그저 그런 것도 있었어요.
작가라고 해서 다 잘 쓸 수는 없는 거겠죠.

늦여름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에요. 만끽하시길...

아, 공감3 중에서 하나는 제가 누른 거랍니다. ㅋㅋ

stella.K 2014-08-13 12:24   좋아요 0 | URL
아, 오랜만이십니다.
저도 하루키는 별론데 워낙에 매스컴에서 띄워주는 게 있어서
그 부분은 좀 마땅치 않아요.
그냥 열심히 쓰는 작가로는 인정을 해 주겠는데 말이죠.
전 단편집이 좋았는데 오랜만에 읽었지만 그도 별로더군요.

이 리뷰 오랫동안 공감1이었는데 갑자기 3으로 올라가 있어서 놀랐어요.
그중 언니가 누르신 거군요. 고맙습니다. ^^

2014-08-13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