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푸른빛이었다 -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우주로 가는 길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 지음, 김장호.릴리아 바키로바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 때문에 우리는 요즘 그 어느 때 보다 우주에 관한 관심이 상종가를 치고있다. 그것에 편승해 유리 가가린의 자서전이 나왔다. 사실 이 사람이 최초의 우주인이었다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사람의 인간적인 면면은 아는 바가 없어 내심 궁금했었는데 때마침 나와줘서 흥미를 가지고 읽었다.

내가 가가린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건, 그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비로소 신이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고 고백했던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아이러니 하게도 공산주의자면서 그런 고백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특이하다고 해야할지 아쉽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그 자신의 신앙 고백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여러가지 추측을 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꼭 신앙 고백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주를 다녀 오고 나서 분명 자신의 삶이 그 전과 그 이후가 확연히 달라졌을 것임에도 그것에 관한 언급없이 그저 가가린 자신의 긍정적이고 성실한 삶과 (당시의) 소련을 찬양하는 것으로만 끝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그것이 가가린이라고 하는 인물의 전부를 보여준 것인지 아니면 청소년을 겨냥한 책이었던만큼 편집을 그렇게 해서인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그래도 모르긴 해도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후자쪽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 사람의 본격적인 평전을 다루어 놓은 책이 없다는 것에 더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우주에서 보는 지구는 어떤 것일까? 나 역시 심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나마 우리는 스타워즈 같은 영화로 우주의 신비와 상상력을 달래고 있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고 또 실제로 느낀다면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우주공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바가 없어 뭐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왠지 우주를 개발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 나의 이런 생각이 무지의 소치를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성을 쏘아 올리는 것 까지는 이해 한다고 쳐도, 달에 뭔가를 세우고 화성을 관측하고 하는 것들이 웬지 또한번 오만의 바벨탑을 세우는려는 것은 아닌지 해서 편치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지구를 너무 많이 혹시시키고 더럽혀 오지 않았는가? 또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 개발이란 이름으로 그같은 일을 하는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부디 앞으로의 우주 개발은 그런 오만한 실수없이 좀 더 겸허한 자세로 이루어지길 바랄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 고전시가로 만나는 조선의 풍경
김용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랫만에 시조를 접했다. 더 정확히 이 책은 시조에 저자의 풀이를 더했다. 우리나라에 시조가 그렇게나 많이 있는 줄은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래도 이 책에 수록된 시조는 일부를 담았을테니 모아보면 엄청나지 않을까? 

동양화가 여백의 미를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오랫만에 접하게 된 시조에서 그런 여백의 미가 느껴졌다. 초등학교 땐가? 중학교 때 죽어라 외웠던 시가 여기 수록되어 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로 시작되는 시조를 이 책에서 다시 읽게되니 괜히 감회가 새롭다. 그 땐 정말 선생님한테 혼나지 않으려고 외웠었다. 그땐 그냥 좋은 의미, 유유자적한 옛 한량이 지었으려니 했다. 하지만 그 배경을 보니 그 시조는 그렇게 싯적 서정만을 닮고 있지 않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면서 쓰러져간 고려의 마지막을 목도하며 쓴 시조이니 그 마음이 얼마나 산산이 무너져 내렸을까?

이렇게 한장 한장 시조를 읽고 저자의 해설을 읽으려니 마음이 편해지고, 정말 우리 옛 조상은 풍유와 멋을 아는 민족이었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오늘 날은 어떠한가? 우리나라 국회는 하루도 바람잘 날 없고 당리당략에만 빠져 매일 싸우는 모습만 보여준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어떠한가? 0교시를 부활시킨다, 야간 자율학습을 부활시킨다 말이 많다. 어떻게 된게 정권이 한번 바뀌면 없었던 것도 다시 생기고, 있던 것은 없어져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정치인들의 싸움질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공부를 선택해서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한창 뛰어놀고, 생각도 많이하고, 많이 보고 느껴야할 나이에 여전히 공부하느라 책상에만 붙들려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젠 안타깝다 못해 쓰리기까지 하다. 정권이 바뀌면 우리의 아이들이 좀 여유로운 환경속에서 공부를 하게될까 싶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옛날엔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자연을 벗삼아 이치를 깨닫고 문사철에 뛰어난 학자도 배출됐다. 그런데 왜 오늘 날엔 그렇게 할 수 없을까? 우리의 아이들이 매일 또는 매주 시 한 편 또는 시조 한 편 여유로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정서는 얼마나 풍요로와 질까?

IQ 못지않게 SQ니 GQ가 높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하지 않은가? 하나를 포기할 줄 모르면서 하나를 더하려고 하니 여유를 모르고 무한경쟁만 하려 드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 국회로 가면 멱살잡고 싸우는 것이고.

갑자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만일 우리의 금뺏지들이 시조를 읊듯이 국회에서 회의를 진행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웃길 것이다. 하지만 익숙해 지면 그들도 여백의 미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 그래서 타인도 배려할 줄 알고, 역지사지의 도리도 깨우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름 잊혀진 옛 조상의 흔적을 느낄 수 있게해 줘서 좋았다. 어떻게 인간의 삶 전반 각 분야마다 그렇게  빼어난 시조를 읊을 수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저자의 해설이 평이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고즈넉한 밤 조금 조금씩 읽고 하루를 마감한다면 그것도 영혼을 위해 좋을 것같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4-19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19 1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21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로시 밴드 Dorothy Band 3 - 완결
홍작가 글 그림 / 미들하우스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를 그다지 많이 접해 보지 않아서일까? 그래도 만화를 싫어한다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접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일뿐이라고 말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되려나?

사실 만화는 주로 어린이들이 많이 보고, 실제로 어린이들을 주요 타켓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물론 요즘엔 이 분야도 많이 발전이 되어서 다양한 독자층을 확보하려고 애쓰고 있는 모양인데 그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뭘까? 어린이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하지 않았다고는 하는데 난해한 건지, 코드가 나와는 안 맞는건지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것으로 보아 그들은 이 작품이 이해가 가든지, 통하는 뭔가가 있는가 보다. 그렇다면 그냥 나와는 코드가 다르다라고 해 두기로 하자. 가끔 그런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예술작품이 있지 않은가? 그것 때문에 기죽거나 괴리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나의 코드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가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작품이 있지 않은가?

오즈의 마법사가 그다지 쉽게 이해되는 작품이 아니지만 어린 아이들 사이에선 영원한 고전인 것처럼, 이 작품도 거기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하니 그냥 그런가 보다고 끄덕거려 주는 수 밖에. 나 같이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에게 이 만화적 대사도 그닥 와 닿지 않는다. 그냥 짓꺼리는 거라면 나도 얼마든지 짓꺼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래도 나는 이 젊은 작가의 작품에서 뭔가의 패기가 느껴졌다. 독특하게도 팬으로 만화를 그리지 않고 연필로 그렸다는 점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사실 나 개인적으론 어느 때부턴가 팬 보다 연필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작가는 끊임없이 자기를 재창조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이 작가를 주시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한 생각이 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3-07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10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 한국 시나리오 선집 -하 - 제24권 2006 한국시나리오선집
영화진흥위원회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과연 우리나라에 시나리오 책이 얼마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검색을 해 봤다. 그랬더니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제법 많이 나와 있었다. 그래도 희곡집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권수를 자랑하고 있다. 얼마 전, 나의 사부님께 인사겸 찾아 뵜을 때 이 부분에 대하여 의문반, 걱정반으로 여쭤 보았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이 영화 자본주의의 논리지. 영화시장은 돈이 안될 것 같으면 관심을 두지 않거든."  어찌보면 선생님의 그 말씀은 나라도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씁쓸했다. 그저 어딜가나 돈.돈.돈. 과연 돈 가지고 예술을 논하고, 예술을 생산해 낼 수 있을거라는 게 뭔가 맞지 않아 보인다. 이 땅엔 돈에 영혼을 판 좀비만이 득실거리고 있는 건 아닐까? 젠장!

그러면서 남의 나라 부러워할 자격이 과연 있는 걸까? 얼마 전, 허리우드 작가들의 파업을 우리는 신문지상을 통해 접해서 알고 있다. 그 기사를 접하고 나는 좀 놀라웠다. 그쪽 나라 작가들이 그토록이나 입김이 세단 말이야? 오죽했으면 난다 긴다하는 배우들까지도 보이콧을 하고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것에 대해 나의 사부님은 얼마 전 '씨네21'과의 인터뷰를 통해 엄청 부러운 일이라고 솔직히 고백하셨다.

그분은, 우리나라 시나리오 작가들은 형편없는 대우를 받고 있다고 했다. 지금 기억에 남는 말은, 어떤 작가가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되어서 500만원에 어느 영화사에 판권을 넘겼다고 한다. 그런데 그 영화사는 시나리오만 사 들였지 7년 동안 그 작품 가지고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영화사에 팔려고 했는데 판권을 이미 넘긴 상태라 작가는 아무런 권한이 없으므로 법의 저촉을 받는다고 했다. 뭐 이런 엿 같은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내가 쓴 시나리오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니...지금 우리나라에 시나리오 작가의 위상은 영화판에서 타이피스트 정도 밖에 안 된다고 성토 하셨다.

좋은 시나리오가 있어야 좋은 영화도 만들텐데 시나리오 작가들을 키우질 않는다. 설혹 좋은 시나리오를 쓸 자질을 갖춘 사람이 있으면 뭐하겠는가? 영화 제작자들이 그 시나리오 보고 이리 가위질하고 저리 가위질을 해 작가의 창작 의욕을 꺽고 있는데...그것은 영화판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한때 음지에서 연극 대본 하나 써 보겠다고 멋 모르고 길을 나섰다 깨진 나였으니 그 상황이 어떨지 감히 상상이 간다. 그러고 보면 난 김수현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엔 김수현 같이 깐깐한 작가가 더 많이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현 씨를 보라. 그는 너무나 완벽한 대본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쯤되고 보니 우리나라의 연출가도 쥐락펴락 하지  않는가? 그만큼 작가는 자기 작품에 최선을 다 해야하고 그것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다는 좋은 선례를 남기고 있다. 처음부터 영화제작자들에게 말랑말랑해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거든 그렇게 해라. 그러나 내 작품에 무한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거든 영화판 김수현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사실 시나리오는 문학의 한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서 하나의 설계도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예전에 시나리오 쓰는 법을 배웠는데도 기억에 남는 것은 몇개되질 않는다. 그 상태에서 워크샵에 낼 시나리오를 쓰려니 쓰면 쓸수록 자신이 없었졌다. 나는 시나리오 용어 조차도 제대로 쓰지 않은 채 그저 지문에만 의존해서 글을 써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글 쓰기를 멈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구? 소설은 서술과 문체라 마구 자유롭게 늘려써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다(물론 그렇다고 소설 쓰기가 만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나리오는 고도의 테크닉과 러닝 타임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매우 함축적이고 그 짜임새가 촘촘하다. 난 그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그래서 비록 습작이지만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거기엔 나의 의지박약도 한 몫하고 있음을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가 영화 중흥기를 맞으면서 영화 시나리오는 그 어느 때보다 내용면에서나 아이디어면에서 탁월한 끼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러니 기가 죽을 수 밖에.

그러나 읽으면서 내내 만화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마치 영화 자체보다 제작일지가 더 흥미를 자극하는 것처럼 수록된 작품을 읽어내는 것은 마치 X-파일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대사나 지문, 영화용어에서 그런 흥취를 더하였을 것이다. 특히 내가 감동적으로 읽었던 시나리오는 <천하장사 마돈나>다. 나는 이 작품을 영화로도 봤는데 인상 깊고도 사랑스러운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시나리오로 읽는 기분은 어떨까? 다음은 그 작품을 일부다.

   
 

아버지: 쓸데없는 짓 했다..건방진 놈.

  이를 악무는 동구. 다시 침묵이 이어지는 식탁.

  아버지, 갑자기 한쪽 엉덩이를 들고 방귀를 뀐다. 길고 요란하게, 뿌웅----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꾹 참는 동구.

  고문이 따로 없는 밥상인데, 아침 햇살은 곤혹스러울 만큼 따뜻하다. (282p)

 
   

 장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것을 상상만 하는 것으로도 묵직한 뭔가가 느껴진다.또 다른 곳을 보면,

   
 

엄마: ...내가 왜 당신이 싫은지 알아...?

아버지: ...

엄마: 맨날 술 먹어서 싫고...맨날 소리 지르고 집어던지고...당신...너무너무 싫은 사람인데...무엇보다 진짜싫은 건...당신은 당신 자신을 너무 미워해...

(중략)

엄마: 근데...동구는...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아. 나 그거 되게 감사해. 알아, 앞으로 동구가 얼마나 힘들게 살게될지...아마 지금보다 더 많이 싸우면서 살아야겠지...근데, 난 결정했어. 그 싸움, 말리기보단...잘 싸울 수 있게 응원해 주기로.(중략)

  아버지, 껑충 짧게 타버린 꽁초를 힘겹게 빤다. 그 모습을 잠시 보는 엄마.

엄마: ...아프지도 말고...죽지도 마...

  아버지를 보는 엄마. 두 눈에 고이는 눈물.

엄마: 당신 아파도 안 볼 거고...당신 죽어도...안 볼 거니까...그냥 그대로...살아 있어...

  아프게 듣고 있는 아버지. 얼굴에 한 줄기 눈물이 뚝, 흐른다.

엄마: ....당신 우는 거 보니까 이상하게 맘이 편하다.

  눈이 반짝이는 엄마, 그러나 끝내, 눈물을 참는다.(342p)    

 
   

이 부분은 대사도 좋고, 그림도 그려진다. 그러니 나 같은 문자중독자(?)는 영화를 소장하고 싶기 보다 시나리오 대본집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선다. 그렇다면 내가 애초에 이 글 초두에서 말했던 작자들이나 출판인들은 영화 제영화시장의 자본의 논리 틈새를 공략할 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엔 드라마와 소설을 동시에 팔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은 일반대중이 그 어느 때보다 영화에 관심이 많은데 비해 안타깝게도 그들은 시나리오를 일반 대중에게 팔겠다는 의지도 마케팅도 없어 보인다.

당장 이 책의 장정을 보라. 페이지는 거의 500페이지를 육박하고 있지만 표지디자인도 웬만한 동인지 정도로 후지고 허접하다. 이래가지고서야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이젠 잘난 영화 DVD로만 간직하게 하지말고 책으로도 소장할 수 있도록 예쁘게 만들줄도 알아야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산의 와인 예찬 - 내 인생의 와인들
심산 지음, 이은 그림 / 바다출판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저자 심산은 나의 사부님이시다. 언젠가 사부님의 홈피를 방문했다가 놀라운 발견을 했다. [와인셀러]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으시고 모 영화잡지에 연재한 와인에 대한 글을 올려 놓으시는 거다. 그리고 그 분량이 제법된다. 

문인들 중 주당들이 많고 사부님 역시 빠지지 않는 주당이시라는 걸 알고 는 있었지만, 13년 전 짧은 기간동안 그분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사부님은 늘 맥주만 드셨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 오전 시간을 이용해서 일주일에 한번 사부님을 만나고, 낮시간에 점심겸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술이 맥주 밖엔 없었으리라. 그러던 사부님이 어느 날 나를 포함한 몇몇의 동기 문하생 앞에서 데낄라 음주법을 시연해 보이셨다. 산이 좋아 당신의 존함 조차도 산으로 명명하셨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혁명가 체 게바라를 좋아하시는 사부님에게 데낄라는 또 얼마나 잘 어울리는 술이었을까? 손등에 뿌려진 하얀소금을 혀에 살짝 데시고 데낄라를 원샷하시곤 레몬 한쪽 쭈욱 짜서 베어 무시는 그 모습에서 묘한 야성미가 느껴졌다. 그런 사부님이 와인이라니...?

주당들에게도 자기 좋아하는 술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술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는 나지만 데낄라를 마시던 사부님을 알기에 와인은 좀 의외였다. 이를테면, 데낄라는 남성적인데 비해 와인은 섬세한 여성을 닮은 술이 아닐까? 그렇다. 나의 사부님은 그렇게 남성적이셨다. 그러신 분이 작심하시고 와인을 공부하시고 이젠 아예 와인을 강의하시며, 와인을 예찬하시고 나오신다. 도대체 와인이 뭐길래 이토록 사부님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최근 몇년 사이 와인 붐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꾸준히 늘어 날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난 와인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고 앞으로도 관심을 갖지 않을 확률이 농후해 보였다. 그런데 나의 사부님이 이렇게 와인과 사랑에 빠지셨으니 웬지 모르게 관심이 갔다. 아마도 생판 모르는 사람이나 나의 가족중 누가 와인과 사랑에 빠졌다고 해도 난 별 관심이 없었을 게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사랑에 빠지셨다니 괜시리 여인네 질투심일까? 적어도 와인의 무엇이 그토록 사부님을 사로잡는 걸까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 책의 특징은 여느 와인책과 달리 스토리텔링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와인에 대하여 직설화법으로 풀지 않고 와인에 사람의 이야기를 접목시켜 설명하고 있다. 예를들면 이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와인 중 '시라'라고 하는 포도주가 있다. 이것은 원래 프랑스의 '론'이라고 하는 지방이 원산지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그냥 설명하기 보다 책속에 화자가 자신의 연애 경험을 바탕으로 '이 여인을 시라라고 하자...' 하며 자신이 만난 여인을 빗대어 포도주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같은 여성이라고 해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여성은 덕스러운 반면, 어떤 여성은 섹시하고, 어떤 여성은 고고한 반면 어떤 여성은 야성적이고, 어떤 여성은 변덕스러울 수 있다. 그것을 와인의 품종과 맛에 비유 했으니 독특한 발상이고 기발하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여성과 포도주를 한데 엮었으니 내가 와인의 무엇이 사부님을 사로잡았을까 관심을 가질 밖에. 그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글들이 사부님의 홈피에 올라 가기 시작하면서 화자는 분명 사부님일테니 과연 그 연애에 대한 추억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가 허구냐를 놓고 갑을논박 댓글 전쟁(?)이 벌어졌다. 물론 사부님은 끝까지 이것은 어딨까지나 이미지일 뿐이라고  일갈하신다. 그렇다면 또 그렇게 믿는 수 밖에.ㅎ 그만큼 글은 관능적이고 매혹적으로 첫 3분의 1정도를 장식한다.

하지만 말했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능과 매혹으로만 일관하지는 않는다. 뒤로 갈수록 남자들만이 느낄 수 있을 법한 진한 우정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고, 그 밖에 저자가 만난 사람등 주변의 이야기도 끼어들어 책의 재미를 더한다. 그러나 어찌보면 이 책을 통해 와인을 얘기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사람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약간은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같이 와인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벽안의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와인이 이러 이러한게 있었구나 아는 것만으로도 유익할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개기로 얼마 전에 열렸던 사부님의 강연회에 다녀왔다(그때 나의 사부님은 우리가 와인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을 10가지 키워드로 강연하셨다.). 거기서 알았던 건 와인은 살아 있는 술이며 4천 가지가 넘고, 지금도 계속 새로운 와인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와인이 살아있는 술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와인은 사람의 생의 단계와 함께 할 수 있다. 즉 예를들면 내가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났다면 그 아기가 태어난 해에 만들어진 포도주를 12병들이 박스로 사다놓고, 그 아기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여자아이인 경우 첫월경을 할 때, 중학교 졸업, 고등학교 졸업, 대학교 졸업, 취직  때, 결혼할 때 등 해서 기념할만할 때 딴다는 것이다. 이만하면 와인이 그 사람의 생애와 가족의 돈독함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깨달았다. 왜 나의 사부님이 그토록 책의 첫머리 3분의 1을 할애해 가면서 여성을 빗대어 와인을 설명했는지를. 그것은 바로 와인이 살아있는 술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것은 섬세하게 다루어 주지 않으면 안된다. 여성은 섬세하고 여성은 그렇게 섬세하게 배려해 주는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와인도 그런 술이 아닐까?

이 책에 나오지 않는(그것은 그분의 싸이트에서만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즉 '전직애인연합'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저자가 여자만 보면 사귀자고 했고, 실제로 사귀었다 이러 저러한 이유에서 헤어진 여자들끼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친구가 되어 속칭 연합을 만들고 자신을 씹고 있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 얘기를 읽으면서 킥킥대며 정말 많이 웃었다. 여자만 만나면 사귀자고 했을 사부님이 귀여웠고(이런 말해도 되나...?), 전직애인 연합이 조직되었을 정도니 자신이 한 일은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어느새 이 부분에서 신화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와인도 그러지 않았을까? 처음엔 그저 치료를 목적으로 했던 술이 지금은 세계적인 명품의 반열에 올랐고, 호사가의 멋과 풍유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켰을뿐만 아니라 이젠 일반인의 관심을 독차지 하다시피했다. 와인에 관심을 가질 정도면 우리나라도 꽤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와인과 국민소득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나름 아쉬운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와인 못지 않게 우리나라 전통주도 김치만큼이나 세계적인 주목을 가질만도 한데 왜 전통주는 아직도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조상 대대로 마셨던 막걸리는 살아 숨쉬는 술이 아니라 죽은 술이라고 단언했을 때 아쉬움이 컸다.

이 책의 장점은 스토리텔링 기법을 가지고 썼다는 것외에도 저자의 문체의 적확함이 이 책을 더 빛나게 한다. 솔직히 난 이점 때문에 읽으면서도 가슴을 쓸어내렸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 이 책은 글쓰기를 공부하는 사람에겐 참고가 될만하다 하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2-10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2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