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쟁이, 루쉰
왕시룽 엮음, 김태성 옮김 / 일빛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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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나름 익살맞게 하려고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식 표기법이라면 '환쟁이'이가 맞는 표현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그림쟁이라면 천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아마도 조심스럽게 하다보니 그렇게 붙여진 제목인지도 모르겠다.  

문학가겸 사상가로 잘 알려진 루쉰이 그림도 그렸다고 하니 그가 달리 보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의학을 공부하다 문학으로 진로를 바꿨고, 그는 평생 문학을 연구하고 글을 쓰는데 바쳤다. 그 사이 언제 또 그림까지 익혔을까, 놀랍기도 하다. 물론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산 사람에 비하면 그 숫자는 얼마 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그가 남긴 그림만해도 100여점이라고 하니 비전문가로선 결코 적지 않은 작품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사람이 한 가지만 잘하지 않고 여러 방면에서 두루 잘 하거나 어쨌든 한 가지 이상을 잘할 때 나는 약간의 심통이 난다. 난 한 가지도 재대로 못 하는데 저 사람은 왜 이렇게 잘 할까 하는 질투쯤? 루쉰이 글만 잘 썼던 게 아니라(그를 단순히 이렇게 표현하는 건 어패가 있긴 하다.) 그림도 잘 그렸다니 이건 질투라기 보다 신을 원망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가 남긴 그림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산수화 같은 것을 생각하면 크게 오산이다. 그가 남긴 그림은 주로 낙관이나 전각, 책의 표지 그림 또는 학교 교휘 그런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보기에 따라선 다소 생소하고 지루하고 그래서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라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랬다. 저자가 무슨 뜻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명이 그다지 풍부하지도 않다. 지극히 건조하달까?  

그래도 새삼 이책을 보면서 놀라운 건, 그가 다른 서양의 문학을 번역하는데도 힘을 썼다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한 것엔 단순히 돈벌이 수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양의 문학을 당시의 중국에 소개함으로써 중국을 개도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건 확실히 루쉰다운 태도다.  

그래도 루쉰이 그림엔 확실히 재주가 있었던 건 사실이었던 것 같다. 의대시절 그는 해부도를 그렸는데 그것을 본 선생이 해부도는 미술이 아니라며 보기 좋게 그리기 보다 정확하게 그리라고 충고를 했더란다. 하지만 루쉰은 입으로는 그렇겠다고 했지만 속으론, '역시 제가 그린 그림이 낫군요. 물론 실제 형태는 머릿속에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49p)라고 했다니, 그의 의학 공부를 얼마나 지루해 했는지 그리고 미술에 대한 애정이 얼마만한 건지 나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미술은 문학책이 아니어설까? 좀 건조한 책이긴 하지만 루쉰을 동경하고 그에 대해 알고 싶다면 한번쯤 봐도 좋을 듯하다. 참고로 난 루쉰을 동경하고 그에 대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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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4-15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쉰에 대한 이런 책도 있군요. 중국의 루쉰, 일본의 소세키, 한국의 이광수는 동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알고 있어요. 소세키만 재주꾼인줄 알았더니 루쉰도 만만찮군요. 저도 루쉰에 관심있는데 스텔라님을 따라가며 배워야겠어요.

stella.K 2010-04-14 19:33   좋아요 0 | URL
아이고, 아닙니다.
전 그저 루쉰 그 이름이 좋을뿐이지 그다지 많이 아는 것도 없답니다.
제가 오히려 반딧불이님께 배워야죠.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0-04-1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루쉰이 아큐정전의 루쉰이겠죠?
가끔 눈팅만 하고 다녔는데, 님이 남긴 댓글보고 용기를 내서 댓글 남겨요.
원고청탁서는 궁금할 거 같아 잠깐 올렸다 내렸어요.^^

stella.K 2010-04-15 12:47   좋아요 0 | URL
앗, 이런...민망하네요.
저에게 댓글 남기시길 뭐 그리 어려우시다고...ㅜ
제가 무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모쪼록 순오기님 좋은 원고 쓰시기 바랍니다.^^

Tomek 2010-04-15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은 불공평해요. 한 사람에게 이렇게 재능을 집중시키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쩌라고...
ㅠㅠ

stella.K 2010-04-15 12:47   좋아요 0 | URL
제 말이요. 흐흑~
 
쉘 위 토크 Shall We Talk - 대립과 갈등에 빠진 한국사회를 향한 고언
인터뷰 지승호& 김미화.김어준.김영희.김혜남.우석훈.장하준.조한혜정.진중권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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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로 유명한 지승호 씨가 또 하나의 책을 냈다. 아마도 그가 낸 책중 가장 최근의 책은 아닐까 싶다. 참 부지런도 하다. 이번엔 특별히 '대립과 갈등에 빠진 한국사회를 향한 고언'이란 부제를 달고, 김미화, 김어준, 김혜남, 김영희, 우성훈, 진중권, 조한혜정, 장하준 등 8명의 각계 각층을 대변하는 사람들을 인터뷰 해 실었다.  

내가 이 책을 잘못 보긴 잘못 보았다. 난 이렇게 쟁쟁한 인터뷰이들이 한꺼번에 등장해서 그들의 삶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 하나 같이 나라 걱정하는 소리들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라 걱정하는 거야, 어제 오늘의 이야기도 아니고, 내용도 좀 뻔해 솔직히 읽으면서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저 '대립과 갈등에 빠진 한국사회를 향한 고언'이란 부제를 조금 일찍 발견했더라면 나의 책읽기가 조금은 즐겁지 않았을까? 어쩌 자고 난 이걸 나중에 발견해서 '책읽기의 괴로움'을 가중 시켰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전혀 유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몇몇 인터뷰이들의 인터뷰는 상당히 유익했다고 본다. 특히 김미화씨나 김영희씨 또는 김어준씨의 인터뷰는 확실히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라고 해도 좋을 만한 김미화씨. 난 그녀가 점점 보면 볼수록 좋아진다. 그렇지 않았도 자신의 특징 중 하나를 뽑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안 좋아하면 못 견디는 성격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럴까? 확실히 그녀를 보면 사람 좋은 냄새가 난다. 그녀가 자신의 성격을 그렇게 말했을 땐 그만큼 본인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소리도 될 것이다. 사실 사람 좋아하는 성격을 가지기란 요즘 같은 세상에 흔한 성격은 아닌 성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그녀의 소탈한 성격이 인터뷰 중에도 그래도 베어 있어 흐뭇하다. 그녀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또한 김영희 씨도 남 다르단 생각을 해 본다. 그에 관해서는 이미 '무릎팍 도사'를 통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그의 방송에 대한 소신이나 방송의 미래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서 반가운 마음이 든다. 한편, 나름 즐거운 마음으로 읽은 대목은 아무래도 김어준 씨가 아닌가 싶다. 특별히 저자와는 막역한 사이라서 그런지, 격이 없이 대화하는 게 인상적이다. 말하는 것도 독설에 가깝고. 그러면서도 어느 부분에선 정말 맞는 이야기를 한다. 특히 그의 '사랑론'(?)이나 '상담'에 관한 철학은 가히 새겨들을만도 한다. 또한 조한혜정씨의 말도 새겨볼만 하고. 나머지 우석훈이나, 장하준, 진중권이야 더 말해 뭐하겠는가? 그 이름만으로도 아우라가 느껴지는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솔직히 난 이 세 사람은 건너 뛰었다. 그것은 내가 그다지 경제에 관심없는 탓일 것이다.ㅜ) 

그런데 내가 이 책을 통털어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김혜남씨의 인터뷰 부분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금은 거의 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이지만, 확실히 이 분야에 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의 말은 솔깃하다. 인터뷰 중, 그녀가 앞으로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불안'과 '공포'라고 했는데 갑자기 급관심이 생겼다. 특히 정치가 대중들을 공포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그녀는 경계하고 있는데 이건 확실히 새겨볼만 한다.   

   
  실은 다음에 준비하는 책이 공포에 관한 것이거든요.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주된 정서가 공포기 때문이에요. 정치도 공포를 통해서 사람들을 통치하고, 사실은 경제도 불안을 자극해서 물건을 팔고, 교육도 공포를 통해서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전반적으로 지배당하고 통제당하고, 감시당하면서 뒤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정서 같습니다. 불안해지면 사람들은 죽자 살자 노력하거든요. 행복이라든지 인간적이라든지 이런 것에 눈을 돌릴 수도 없고, 오직 자기밖에 안 보이거든요. 욕망은 승화시킬 수도 있고, 퍼져나갈 수도 있고요. 욕망이 날들 보기에 좋지 않으면 다른 멋진 욕망으로 바꿀 수도 있고, 척이라도 할 수 있는데, 불안은 옆에 있는 사람을 못 봐요. 자기밖에 못 보고, 오로지 그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 서바이벌이 문제가 되는 거거든요. 성공이 문제가 아니고 생존이 문제가 되는 거죠. 그래서 더 절박한 거고요. (178p)  
   

 정말 그렇지 않은가? 더 정확히는 정치가 그렇다기 보다 공포가 사람을 다스리는 통제 수단이 된 것이다. 이건 확실히 위험한 것인데, 그가 언제 이것에 관한 저작물을 낼지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조한혜정씨의 인터뷰도 주목하여 볼만 하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남은 임기를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것으로 안다. 아무리 권세가 하늘을 찔러도 역대 어느 대통령도 이것에서 이긴적이 과연 이 말이 현실성 있는 말인가? 그냥 구호성에 지나지 않는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한 건데 아무튼 믿음이 가지 않는다. 

사실 변명 하나를 하자면, 내가 우석훈이나 장하준이나, 진중권에 관한 부분을 주마간산씩으로 대충 훑고만 것은 그들이 좌파 지식인의 선봉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이명박 정부가 욕을 먹고 있는 것과 관련이 없지 않다. 솔직히 너무 많은 욕을 먹으니 내가 다 민망할 정도다. 마치 내가 욕을 먹는 것 같다(그렇게 따지자면 난 김어준씨의 인터뷰도 읽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양반은 워낙에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는 존재라 나라도 그 궁금증을 피해갈 수가 없다). 욕을 먹는 쪽이 있으면 욕을 하는 쪽이 있기 때문인데, 하도 욕을 먹으니 욕을 하는 쪽도 왜 욕을 하나 듣지 않게 되었다. 솔직히 오늘 날의 한국의 현주소를 읽으려면 좌파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들처럼 논리적이고, 정확한 진단을 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비해, 우파는 과대망상에 메시아 컴플렉스까지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나라의 앞으로를 볼 때 일정 부분 우파를 의지해 갈 수 밖에 없는 구조와 요소들이 있다. 그런데 비해 좌파는 상당히 현실적이다. 그러나 좌파나 우파나 둘 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은 나름의 진단과 전망을 내놓기는 하지만 좌파든 우파든 이렇다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설혹 제시한다고 할지라도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기엔 강력하지도 못하다. 그러다 보니 좌우가 갈라져서 서로 너 잘 났니, 나 잘났니 하며 싸움만 한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도 난 김혜남씨가 어떤 저작물을 내놓을 것인지 궁금할 다름이다.  

우리나라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없다고 한다. 다른 나라 국민은 이만큼 관심이 없다는데 왜 우리나라는 이토록이나 관심이 많은 것일까? 그만큼 정치가 불안해서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건 집단성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민족성 때문은 아닐까 싶다. 난 솔직히 그들만큼 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좀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국민이 정치에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위에 계시는 분들이 좌우간 알아 잘 해서 말이다.(이렇게 말하면 너무 속 보이는 일일까?) 아무튼 우린 (아직) 그렇게 되기엔 너무 음흉한 구석도 많고, 투명하지가 못하다. 그래서 이렇게 말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젠 좀 들었으면 좋겠다. '고언'을 한다고 하지 않은가? 서로 말하려고만 하고 듣지는 않으려고 하니 읽으면서도 안타까운 마음만 더해 갔다. 언제쯤이면 말하는 시대에서 듣는 시대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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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3-28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지승호 인터뷰집 <희망을 심다>를 낭독하고 있어요.
박원순과의 인터뷰에요. 책속에 내용이 중첩되는 것이 흠이더군요.
님의 글 마지막 문장이 와닿네요. 잘 듣는 것! 많은 걸 포함하는 말이에요.
아무튼 별은 셋이네요.^^

stella.K 2010-03-29 11:28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아마도 객관적으론 못해도 별 네개겠지만
이건 순전히 주관적인 별점이어요. 전 솔직히 시사쪽엔 별 관심이 없걸랑요.
그건 시사 자체라기 보단 말들이 너무 많아 질린 탓이겠죠.
그래도 뭐 별 세 개면 나쁘지 않다는 뜻이니 나름 참고가 되겠죠.^^

Tomek 2010-03-31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은데 너무 많은 책이 밀려있어서 조금 미뤄야할 것 같아요. 지승호 씨 인터뷰 굉장히 좋아하는데. 전 영화감독들 인터뷰와 신해철 씨 인터뷰가 좋더군요. ^.^;

stella.K 2010-03-31 12: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영화 감독 김지운 인터뷰집 생각나요.
좀 오래 전의 일인데 그거 리뷰 써서 적립금 받고 지승호 씨께
책 선물했었어요. 우리 알라디너이시긴도 한데
요즘엔 활동을 안하시네요.ㅜ
 
찬란 문학과지성 시인선 37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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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시를 잘 읽지도 않으면서, 또한 아주 오랜만에 시를 읽었다. 

'찬란'이라...뭔가 찬란하단 말인가? 왠지 그 앞에 '유치'란 말을 조어로 넣어줘야만 할 것 같다. 난 그렇게 해서 그 단어를 받아들이곤 했으니까. 그만큼 나의 삶은 이 '찬란'이란 단어를 한번도 찬란하게 받아 들이지 못할만큼 유치하고 허접했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시는 대체로 어려웠다. 시인의 마음을 알 수가 없으니 어려울 밖에.

'찬란'은 무엇일까. 시인은 말한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다고. 빛이 번쩍거리거나 수많은 불빛이 빛나는 상태, 또는 그 빛이 매우 밝고 강렬하여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운 상태.  

그러나 내가 읽어 본 시인의 작품들은 그런 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오히려 너와나, 그것과 이것, 현재와 과거가 만나지지 못한 '찰라'의 아쉬움을 노래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다. 표제작을 볼까? 

햇빛의 가랑이 사이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 만나
는 것도
무시무시한 찬란이다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
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

지금껏으로도 많이 살았다 싶은 것은 찬란을 배웠
기 때문
그러고도 겨우 일 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찬란이다
                -'찬란' 중에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 만나고, 지금껏 많이 살았다 싶은 것과 겨우 일 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찬란이란다. 시인이 말한 이 두 가지는 사실 해와 달이 포개어지는 개기일직처럼도 느껴지지만 이건 그저 인간의 의식에서나 가능할 뿐 실제에서는 결코 만나지지 않을 것이다. 

그뿐인가? 시인은 '생활에게'란 시에선 이렇게 말한다. 

일하러 나가면서 절반의 나를 집에 놔두고 간다
집에 있으면 해악이 없으며
민첩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은 다행한 일
(중략)
반죽만큼 절반을 뚝 떼어내 살다 보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없으며
(중략)
그중에서도 살아갈 힘을 구하는 것은
당신도 아니고 누구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고 불안도 아닌
그저 애를 쓰는 것뿐이어서
단지 그뿐이어서 무릎 삭는 줄도 모르는 건 아닌가
  

개인적으로 난 이 시가 그 난해한 시들중 그나마 제일 마음에 와닿았다. 그것은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히 자극적이다. 그 시절 나는 학교 다니는 것이 너무 싫어 학교에 있으면서 집에 있는 나를 상상하며 학교에 있는 시간을 버티곤 했다. 글쎄, 그 의식은 꽤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지금까지 종종 여기에 있으면 저기 있는 나를 상상하고, 저기에 있으면 여기에 있는 나를 상상하며 내가 어딘가에 있음을 견뎠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남는 건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어느 곳에도 나는 없었던 것 같다. 온전한 실존주의자로 살아 간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가? 나는. 그래서 무엇을 갈구하고, 누구를 갈망하기에도 나는 온전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이렇게 나이 먹어간다. 시인의 말마따나 무릎이 삯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작품의 분위기는 대체로 허무와 이루지 못한 아쉬움과 더불어 전생과 회귀를 표현하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를테면, 위의 시들과 더불어 <절연>이란 시는 또 후자의 것을 내포하기도 한다. 

어딘가를 향하는 내 눈을 믿지 마오
흘기는 눈이더라도 마음 아파 마오
나는 앞을 보지 못하므로 뒤를 볼 수도 없으니
(중략)
묶지 않은 채로 꿰멘 것이 마음이려니
잘못 알어 밉게 녹는 것이 마음이리니

눈 감아도 보이고 눈을 감지 않아도 보이는 것은
한 번 보았기 때문
심장에 담았기 때문
(중략)
지독히 전생을 사랑한 이들이
다음 생에 앞을 못 본다 믿으니
그렇더라도 눈을 씻어야 다음 생은 괜찮아진다 믿
나니

많이 오해함으로써 아름다우니
(이하 생략)    

이 시는 어느 시각장애자를 모델로 쓴 시 같기도 하다. 어찌보면 헬렌 켈러를 연상케도 하고. 하지만 이렇게 전생과 회귀를 미망하는 마음이 나타나 있기도 하다. '많이 오해함으로써 아름다우니'이 말이 참 희망적여 보인다. 그래도 시각장애자의 오해와 비시각장애자의 오해는 다를 것이다. 전자는 실상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좋고, 아름답지 않을까를 생각하겠지만, 후자는 두 눈을 다 가지고도 온갖 추문의 상상을 하는 존재들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시각장애자 보다 나을 것이 뭐가 있는가? 빛을 보기 원하는 그들과 매일 빛을 보고 빛속에 살아 가면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한다면 말이다. 이것을 깨닫는 빛이 번쩍거리는 순간 어디쯤에 시인이 말하는 '찬란'이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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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3-0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병률의 최근 시집이군요.
제가 얼마전부터 자꾸 '찬란한'이라는 낱말이 맴돌았는데 말에요.

stella.K 2010-03-08 10:44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사실 시를 읽은지가 하도 오래돼나서 모처럼 읽었는데 어렵더군요. 이 허접한 리뷰를 읽어주시다니 그저 감읍할 다름이옵니다. 흐흑~
 
왕세자의 입학식 - 조선의 국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키워드 한국문화 4
김문식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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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아홉 살 밖에 되지 않은 순조의 맏아들 효명세자가 그의 스승인 대제학 남공철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왕세자: 어떻게 하면 성인이 될 수 있을까요? 

남공철: 저하, 이 물음은 참으로 종묘사직과 신민들의 복입니다. 세자께서 어린 나이에 입학하여 성인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하는 뜻이 있으니......요임금도 될 수 있고, 순임금도 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왕세자: ......효도를 하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남공철: ......다만 덕을 닦고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니,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또한, 수신은 제가, 치국, 평천하,의 근본이 되는 것이므로, 효도하는 큰 근본으로는 이것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13p) 

 
   

 아무리 왕의 아들이라고는 하나 아홉살바기 어린 아이가 그 꼬물대는 입으로 저런 말을 했다니 그것을 상상하는 나로선 대견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나인들 스승에게 저렇게  질문할 수 있겠으며, 스승이 저리 대답하시는 바를 다 알아 들을 수 있었을까? 책을 다 읽고나니 새삼 조선시대 입학례는 성대하기도 했거니와 엄숙하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사람들 일생에 있어 평균 3~4번의 입학을 한다고 치면 과연 저런 입학식을 단 한번이라도 치뤄 보겠는가? 싶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학문을 숭상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이책의 저자가 중국의 입학례와도 비교하는 글을 썼는데, 확실히 우리나라가 중국 보다 조금 더 앞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우리 조상들은 배움을 중하게 여겼다. 그중 특이한 건, 왕실과 관련된 모든 행사는 다 궁안에서 치르되 이 왕세자의 입학례만큼은 궁이 아닌 성균관에서 치뤘다고 한다. 그런 것만 봐도 왕세자의 귀한 몸이라고 해도 배움에 관해서는 엄격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저자는 이책을 통해 조선 왕실의 역사를 가늠해 볼 수 있게 해줬다. 왕세자의 입학례는 주로 10세를 전후에서 거행했다고 한다. 물론 조선 왕실을 거쳐간 모든 왕세자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특수한 사례도 있어 20세를 훌쩍 넘겨 입학례를 거행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광해군은 23세 때, 효종은 27세, 영조는 29세가 되어서야 입학식을 거행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광해군은 전쟁을 치르느라, 효종은 형의 사망으로 후에 왕위 계승자가 되느라 늦어졌다고 하니, 이 왕세자의 입학례도 역사의 부침을 타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특히 임진왜란 직후 핍궁한 궁안의 살림에 왕세자의 입학례를 두고 의복 조차도 갖출 수 없어 이를 두고 중국에 도움을 받을까를 의논했어야 했다는 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라 안팎의 사정을 고려하여 그 사안은 없던 것으로 했다고 한다. 나라가 어려울 때는 거창한 형식 보다는 입학례의 정신을 더 뜻깊게 생각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렇다고 왕세자의 입학례가 거창하고 화려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의식이 거행되는 중 왕세자가 스승에게 올리는 예물이 있었는데 그것이 퍽이나 소박해 보인다. 제자가 스승에게 올리는 예물은 술과 육포 정도였다고 하니 소박하지 않는가? 그래도 입학례가 끝나면 그 배움의 길이 가히 고행이다 싶다. 무엇보다 아무리 왕세자란 고귀한 신분이라도 그 신분이 스승 보다 높지가 않았다. 그러므로 왕세자는 스승의 말에 절대복종 해야 했다.  

사실 왕세자의 스승이란 신분은 왕 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어찌보면 절대성역이란 생각도 든다. 오죽했으면 그 시대는 제자의 책이 스승의 그것과 같은 높이에서 볼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즉 스승은 책상에 책을 놓고 볼 수 있어도, 제자는 책을 바닥에 놓고 볼 수가 있었다. 이에 몇 세대에 걸쳐 몇몇의 왕이 사랑하는 자기 아들을 생각하여 이 부분을 개선해 줄 것을 건의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것이 관례며 스승과 제자 사이에 지켜야할 예법이라며 왕의 건의도 묵살했다는 것이다.(키워드 속 키워드6)  

이것은 확실히 명암이 있어 보인다. 사실 처음에 나는 뭐 이런 걸 가지고 왕과 왕세자를 가르치는 선생 사이에 마찰이 있는 것인가? 좀 더 큰 대의를 가지고 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것은 마치 우리나라 국회의 당파들의 싸움이 이런 작은 것에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던가?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면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문제도 크게 보고 부풀리고, 이슈화 하는 것 알고 보면, 이런 것은 그런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역사에서부터 나온 것은 아닌가? 그래서 발전이 없는 것은 아닌가, 혼자 씁쓸해 했다.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 보면 지금이야 책상 없는 공부를 감히 생각해 볼 수나 있는가? 그러나 그 시절엔 그렇지가 못했을 것이다. 역사란 오늘의 시각해서 새롭게 해석은 할 수 있지만, 또 가급적 그 시대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태도도 견지해야 할 것이다. 즉 왕세자의 스승들이 반대했던 건 그것이 예법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지 않는가? 조선시대는 특별히 유학의 시대로, 군신간의 예의, 사제지간의 예의를 귀중히 여겼다. 이런 것은 오늘 날의 후대 사람들이 배울만한 덕목이 아니던가? 

스승의 권위가 얼마만 했는지는 <예기>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 보면,  

   
  모든 사람이 국왕이지만 국왕이 신하로 대접할 수 없는 경우가 두 번 있다. 하나는 제사를 지낼 때의 시동인데, 제사에서 시동은 조상의 신주를 대신해 앉아 있기 때문에 조상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다른 하나가 바로 국왕의 스승인데, 스승은 국왕의 신하이기는 하지만 함부로 대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를케면, 왕세자가 대리청정을 할 때에는 국왕에 필적하는 지위가 있으므로, 모든 신하들이 절을 올려도 왕세자는 답례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스승에 대해서는 반드시 답례를 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는데, 대리청장을 할 때에도 스승에 대한 예우는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104p)        
   

 그러니 왕은 차마 왕명으로도 아들에게 책상 하나 놓아줄 수 없고, 스승 또한 왕의 말이라 해도 일언지하에 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과연 그 시절 제자된 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닐 성 싶다. 

또한 조선 시대는 장유유서의 윤리가 강했던 시대라고 볼 수가 있는데, 그래서 배우는 자리 역시 나이순으로 서로가 자리를 양보해서 나이 많은 사람이 좀 더 좋은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여기엔 왕세자나 왕세손이라고 해서 예외를 두지 않았다고 하니 과연 역시 배움에 있어서 특권 의식은 찾아 볼 수가 없는 것 같다.  

사실 어느 시대, 어느 곳이나 이의를 제기하는 청개구리는 있게 마련이다. 선조 때 이해수란 한 유생이 이에 반기를 들었다고 한다. 장유유서가 아닌 성적순으로 앉자고. 이에 그 이름도 유명한 이이 선생께선 "장원을 높이는 것은 동시에 합격한 사람들의 모임에서나 시행하는 하는 것입니다. 성균관은 인륜을 밝히는 곳인데 어떻게 장유유서를 폐지할 수 있겠습니까. 또 장원이 어떻게 왕세자 보다 높겠습니까? 옛날에 왕세자가 입학하면 나이 순으로 앉았으니 장원은 따질만한 것이 못 됩니다."(105p) 라며 그 의견을 묵살하였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이 이해수란 사람 장원을 했던 사람이었나 보다. 그래서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이런 교묘한 의견을 냈던 건 아닐까? 그가 만일 오늘 날, 우리나라 중학교와 고등학교 실정을 본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그런데 이렇게 왕세자의 입학례도 순종의 입학례를 끝으로 그 전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것은 한일합방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아무튼 이책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앞서도 말했지만 전통적인 우리나라 교육은 전인교육에 바탕을 둔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시대라고 입신양명을 위해 학문에 정진했던 사람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왕세자 입학식만 봐도 옛 조선시대 학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땠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그것은 오늘 날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린 과연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할만한 세상에 살고 있는가? 왕세자 입학식은 읽기만 해도 진지함이 묻어난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나라 교육은 열의는 있어도 진지함은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 교육에 장유유서의 윤리가 어디 있으며 예의와 법도가 어디 있는가? 

오늘 우리는 이렇게 얉은 책으로 나마 옛날의 입학식의 의미를 되새겨 봤다. 하지만 앞으로 100년, 200년 후, 우리는 후손들에게 지금의 입학식과 교육을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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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03-04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인 성'이라는 한자에 귀이가 들어가는 것은...
귀를 기울이라는 뜻이랍니다.
아래 삐침이 몸을 기울이는 모양이라고 해요.
남에게 귀기울일 줄 알고, 말을 조금만 하는 사람...

stella.K 2010-03-05 11:16   좋아요 0 | URL
오,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고맙습니다.^^
 
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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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놀랍다. 무엇보다 역사 드라마는 우리가 몰랐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 주니 그건 가히 보물 같은 것이라고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역사 드라마를 믿는 사람은 없다. 역사 드라마란 그저 있었던 사건에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니 그저 그것이 하나의 가교 역활을 해서 덕분에 그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일종의 흥미유발 정도가 전부가 아니겠는가.  

몇년 전, 한 TV 드라마에서는 정조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가 인기를 모은 바있다. 그 바람에 유독 그때를 전후해서 정조 관한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었다. 나 또한 그 드라마가 아니었으면 이 '정조'라는 인물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가졌을까? 하지만 난 그 드라마 덕분에 정조에 대해 관심은 가졌지만 (부끄럽게도) 지금까지 그에 관한 어떠한 책도 재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야 이책을 접하면서 정조 읽기의 숙원(?)을 풀었다.고 한다면 너무 속보이는 언사려나? 

사실 글은 말 보다 강한 임펙트가 있다. 말은 한번 뱉어 버리면 흔적이 남지 않지만, 글은 그렇지가 않다. 특히 그 글이 여러 사람을 두루 아우르지 않고 어느 한 사람만을 위한 글일 때 그것이 받는 사람에게 어떤 것일까? 특히 우리는 편지라고 하면 사랑하는 연인끼리 주고 받는 '연서'를 생각할 때가 많다. 그도 그렇지만 만일 임금에게 받는 편지라면 어떨까? 임금도 인간인지라 생면부지의 일개 백성에게 편지를 쓸리는 없고, 그에 상응하는 신하들과 편지를 주고 받는다는 건 가히 상상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정조가 놀랍게 다가 왔던 건, 그 어찰(임금의 편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 믿을만한 신하들과 나눴던 것이 아니라 임금과 대립했던, 다시 말하면 정적에게(도) 보냈다는 것이다.  

알겠지만 그 사람이 유능한 정치가냐 아니냐를 보여주는 건, 뛰어난 언변이나 정책이 말해주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정적을 얼마나 요리(?)를 하느냐가 관건인지도 모른다. 심환지(1730~1802). 그는 유감스럽게도 정조의 믿음직한 신하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조의 반대편에 서서 조금의 틈만 있으면 그의 왕권을 무력화 시킬려고 했던 사람이다. 정조는 왜 그토록 자기를 미워했던 신하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던 것일까? 앞에서도 썼듯이 정조는 정적조차 자기편으로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됐을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도 밀고 당기기가 필요한데 하물며 정적이랴? 어르고 달래지 않으면 살얼음판 같은 조정을 이끌고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 중심에 심환지가 있었다.  

원래 임금에게서 어찰을 받으면 그 수신인은 그것을 태워버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단다. 왜냐하면, 임금의 어찰은 극비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정조의 경우 극비에 속하는 내용이 많았고, 그것의 철저한 비밀유지를 위해 폐기를 요구한 밀찰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13p) 하지만 심환지는 그러지 않았다. 할 수만 있으면 정조가 보낸 편지는 최선을 다해 보관하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추측컨대, 그에게도 정조는 정적이었다. 나이도 그가 정조 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거의 아버지뻘 이거나 못해도 작은 아버지뻘은 되었을 것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점점 달라진다. 미워도 미움이 다가 아니고, 사랑해도 그 사랑이 전부가 아니다. 모르긴 해도 심환지는 정조를 볼 때 애증과 연민을 교차하고 있지 않았을까? 게다가 정조의 편지는 당시 돌아가는 정치의 판세를 어느 땐가는 자기에게 유리하게 써 먹는데 사용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그도 선비일진대 나라에 대한 충절을 앞세우면서 누대에 걸친 종묘사직을 바로하기 위함이란 대의 명분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임금의 편지다. 이것을 어찌 함부로 다룰 수 있으랴? 아무리 법이 그러해도 그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정조는 심환지에게 편지를 보낼 때 나라에 대한 극비 사항만을 논하기 위해 편지를 사용했던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낙서같은 쪽지 편지도 보냈다고 한다. 그것을 보면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도 볼 수가 있는데, 인자한면도 있지만 아버지 같고, 작은 아버지 같은 사람을 심하게 꾸짖는 내용도 있어 우리가 정조에게 보는 어진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폭로하기도 한다. 역사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될 것인데 당시 심환지는 정조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기 위해 그의 편지를 가지고 있었을런지 모르지만, 우리 후대의 사람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사료가 되었겠는가? 

사실 이렇게 심환지가 가지고 있는 어찰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정조 이미지를 깨우긴 하지만, 나는 그래야만 했던 정조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마이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동서양 어느 임금, 어느 군주에게나 통하는 뭔가의 아우라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조가 임금이 되지 않았다면 심환지를 어떻게 대했을까? 상상해 보면 알 수도 있는 면모라고 생각한다.   

이책은 사실 그다지 두꺼운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읽기는 녹녹치 않다. 저자가 정조 어찰이 갖는 면모를 충실히 전달하기 위해 도판도 세심히 사용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거기에 나온 정조의 필체는 거의 악필에 가깝다(적어도 내가 볼 땐). 하지만 정조는 너무도 바빴던 임금이었다. 일일이 퇴고할 여력이 없었고,  편지를 주고 받았던 사람이 심환지 한 사람만도 아니었을 것이다. 또 그럼에도 불불구하고 당시 씌였을 의성어를 과감하게 사용함으로 그의 유머와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과연 멋진 임금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정조는 역대 어느 임금 보다 어찰을 많이 썼던 임금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린 편지가 갖는 위력이 어느 만큼일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할 때. 내 속내를 들어내 보여야 할 때, 편지만큼 강력한 도구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린 이 '편지쓰는 마음'을 점점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그것이 아니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도구는 많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또 그렇지 않으면 내 안에 갇혀서 나만 바라보고 살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하긴, 정조 시대 때 달리 마음을 표현하고 전할 수 있는 도구가 얼마나 되었겠는가? 

흔히들 편지를 아날로그의 산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은 예견하기를 좋아하는 동물이어서, TV가 나왔을 때 영화가 살아 남을까를 걱정했고, 책의 종말을 예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디지털 시대라고 하는 이 최첨단 시대에도 버젓이 살아있다. 하물며 편지의 종언을 얘기할 자 그 누구랴?  

아마 모르긴 해도 심환지만큼 정조에 대해 가장 잘 말할 사람도 없지 않을까 싶다. 그는 누구보다도 정조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장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 정조의 마음을 뒤엎고 그는 정조의 또 하나의 정적인 정순왕후의 치세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리고 그는 정조의 죽음을 목도해야만 했다(지금까지의 정설로는 심환지가 정조를 죽게 만들었다는 설이 있는데, 이책의 저자는 정조가 독살 당하지 않고 자연사했을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타당한 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과연 그렇겠구나 싶기도 하다). 그런 심환지의 마음은 또 어떠 했을까? 정치도 정적도 세월 지나면 무의미한 것을. 정조의 죽음 앞에 가장 많이 슬퍼했을 사람은 바로 심환지는 아니었을까? 그런 심환지도 결국 가고, 그가 남긴 정조 어찰은 이렇게 남아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심환지는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편지는 이러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이책을 읽으면서 정조의 면모를 새롭게 알 수 있게되서 좋았다. 한번쯤 읽어 보기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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