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쟁이, 루쉰
왕시룽 엮음, 김태성 옮김 / 일빛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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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나름 익살맞게 하려고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식 표기법이라면 '환쟁이'이가 맞는 표현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그림쟁이라면 천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아마도 조심스럽게 하다보니 그렇게 붙여진 제목인지도 모르겠다.  

문학가겸 사상가로 잘 알려진 루쉰이 그림도 그렸다고 하니 그가 달리 보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의학을 공부하다 문학으로 진로를 바꿨고, 그는 평생 문학을 연구하고 글을 쓰는데 바쳤다. 그 사이 언제 또 그림까지 익혔을까, 놀랍기도 하다. 물론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산 사람에 비하면 그 숫자는 얼마 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그가 남긴 그림만해도 100여점이라고 하니 비전문가로선 결코 적지 않은 작품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사람이 한 가지만 잘하지 않고 여러 방면에서 두루 잘 하거나 어쨌든 한 가지 이상을 잘할 때 나는 약간의 심통이 난다. 난 한 가지도 재대로 못 하는데 저 사람은 왜 이렇게 잘 할까 하는 질투쯤? 루쉰이 글만 잘 썼던 게 아니라(그를 단순히 이렇게 표현하는 건 어패가 있긴 하다.) 그림도 잘 그렸다니 이건 질투라기 보다 신을 원망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가 남긴 그림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산수화 같은 것을 생각하면 크게 오산이다. 그가 남긴 그림은 주로 낙관이나 전각, 책의 표지 그림 또는 학교 교휘 그런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보기에 따라선 다소 생소하고 지루하고 그래서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라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랬다. 저자가 무슨 뜻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명이 그다지 풍부하지도 않다. 지극히 건조하달까?  

그래도 새삼 이책을 보면서 놀라운 건, 그가 다른 서양의 문학을 번역하는데도 힘을 썼다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한 것엔 단순히 돈벌이 수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양의 문학을 당시의 중국에 소개함으로써 중국을 개도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건 확실히 루쉰다운 태도다.  

그래도 루쉰이 그림엔 확실히 재주가 있었던 건 사실이었던 것 같다. 의대시절 그는 해부도를 그렸는데 그것을 본 선생이 해부도는 미술이 아니라며 보기 좋게 그리기 보다 정확하게 그리라고 충고를 했더란다. 하지만 루쉰은 입으로는 그렇겠다고 했지만 속으론, '역시 제가 그린 그림이 낫군요. 물론 실제 형태는 머릿속에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49p)라고 했다니, 그의 의학 공부를 얼마나 지루해 했는지 그리고 미술에 대한 애정이 얼마만한 건지 나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미술은 문학책이 아니어설까? 좀 건조한 책이긴 하지만 루쉰을 동경하고 그에 대해 알고 싶다면 한번쯤 봐도 좋을 듯하다. 참고로 난 루쉰을 동경하고 그에 대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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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4-15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쉰에 대한 이런 책도 있군요. 중국의 루쉰, 일본의 소세키, 한국의 이광수는 동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알고 있어요. 소세키만 재주꾼인줄 알았더니 루쉰도 만만찮군요. 저도 루쉰에 관심있는데 스텔라님을 따라가며 배워야겠어요.

stella.K 2010-04-14 19:33   좋아요 0 | URL
아이고, 아닙니다.
전 그저 루쉰 그 이름이 좋을뿐이지 그다지 많이 아는 것도 없답니다.
제가 오히려 반딧불이님께 배워야죠.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0-04-1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루쉰이 아큐정전의 루쉰이겠죠?
가끔 눈팅만 하고 다녔는데, 님이 남긴 댓글보고 용기를 내서 댓글 남겨요.
원고청탁서는 궁금할 거 같아 잠깐 올렸다 내렸어요.^^

stella.K 2010-04-15 12:47   좋아요 0 | URL
앗, 이런...민망하네요.
저에게 댓글 남기시길 뭐 그리 어려우시다고...ㅜ
제가 무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모쪼록 순오기님 좋은 원고 쓰시기 바랍니다.^^

Tomek 2010-04-15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은 불공평해요. 한 사람에게 이렇게 재능을 집중시키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쩌라고...
ㅠㅠ

stella.K 2010-04-15 12:47   좋아요 0 | URL
제 말이요. 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