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밥상 - 평범한 한 끼가 선물한 살아갈 이유
염창환.송진선 지음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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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췌장암 선고를 받은 후 그를 위한 상차림은 내 담당이 되었다. 

우리 집은 오래도록 엄마가 음식을 해 놓으면 차려 먹는 것은 스스로 알아서 차려 먹는 주의라 우린 한 집에 살아도 언제, 뭘 차려 먹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오빠와 나 사이가 세상에 둘도 없는 애틋한 오누이 지간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나이가 많아도 장가는 커녕 집에서 독립할 줄 모르는 오빠에 대해 나는 적잖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오빠가 성격이 좋아 가족들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집안 식구를 '소 닭 보듯' 했다. 어쩌면 그리도 벽창호 같던지. 

그게 어쩌면 오래 전 사업 실패로 가산을 탕진한 것에 대한 후유증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득이나 과묵한 성격에 장남으로서 회생의 길은 오래도록 보이지 않았으니 가족들 볼 낫도 없고 점점 더 두터운 마음의 벽돌을 쌓아 갔을 것이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그런 사람을 오래도록 참고 인내하기란 쉽지 않다.   

아직 암인 줄은 모르고, 오빠의 몸이 첫 전조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던 날(사실은 그게 첫 번째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빠는 그 보다 더 오래 전에 뭔가를 감지했을 것이다. 단지 별거 아니려니 과묵한 성격이었으니 표현을 안하고 있었을 뿐이었겠지)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작년 설이었다. 무슨 일인지 하루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언니네 식구들이 아침 일찍 도착해 놀다가 저녁무렵 돌아가는데도 나와 보질 않는 것이었다. 그걸 이상하게 여긴 엄마가 그때서야 물어 보니 속이 아파서라고 했다. 엄마와 나는 뭔가를 잘못 먹고 크게 얹혔다고 생각했다. 생전 뭘 잘못 먹고 탈이 나 본적이 없는 오빠였는데 그런 오빠도 이제 늙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하루종일 뭘 못 먹었으니 이때쯤 뭘 먹겠지 싶었는데 차려라도 달라는 듯 꼼짝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밥상을 차려주긴 했지만 순간 부아가 났다. 나도 피곤해 죽겠는데 누가 누구더러 밥상을 차려 달라는 말인가? 그렇다고 화가 난다고 해서 화를 쏟아 부을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엄마의 화살이 나에게 쏟아질테니까. 그래서 애꿎은 반찬그룻에 화를 풀곤 했다. 그걸 밥상 위에 일부러 요란하게 놓는 것이었다.

그런 내 기분을 오빠가 몰랐을까? 알았을 것이다. 밥을 빌어 먹으러 온 거지에게도 그렇게 줘서는 안 되는 법인데, 음식도 좋은 마음으로 담아 줘야 그 사람이 먹고 건강해진다는데 그때 내가 그렇게 화를 내서일까? 그것이 오빠가 건강한 사람으로써 먹은 마지막 밥상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먹은 첫 끼니는 아니었을까? 오빠는 그 이후로 선고를 받을 때까지 쭉 죽으로 버티고 있었으니까. 그 이후는 말 할 것도 없고.

정 없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해 준다는 게 얼마나 어색한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하지만 또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뭘 해 준다는 것은 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해 주다 보면 정이 생기기도 한다. 그걸 오빠와 난 오래도록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영문도 모르고 죽으로만 버텼던 오빠가 첫 퇴원을 해서 먹은 건 밥이었다. 담당 의사가 죽만 먹으려 하지 말고 밥을 먹으라고 권하길래 그러기로 하고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예전만큼은 못 먹겠지만 그래도 반 공기는 먹지 않을까 싶은데 그 반 공기에서 반을 또 덜어내는 것을 보고 나는 다시 한 번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전까지 오빠는 무엇이든지 수북히 담아 먹곤 했다. 그랬던 오빠가 이것 밖에 못 먹는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오빠를 위한 밥상을 매일 차리면서 오빠가 식탁에 나와 앉아 먹으면 나는 내 방에 들어 와 울거나 한숨을 내쉬는 날이 많아졌다. 밥 공기에 4분의 1을 먹기를 몇 번을 숟가락을 들었나 놨다를  했고, 그나마 오빠가 숭늉은 목넘김이 좋은 것 같아 끼니 때면 거의 빠지지 않고 식탁에 놔주곤 했다.

오빠가 일평생 좋아했던 음식은 라면 포함한 면류였다.  

라면 한 번에 먹으면 하나 가지곤 부족해 꼭 두 개씩 끊여먹곤 했다. 저녁에 퇴근하고 들어와 마땅히 먹을만한 반찬이 없으면 으레 라면을 먹곤 했다. 그 라면은 누구에게도 뺏기기 싫었는지 엄마가 라면을 사 놓으면 사 놓는 족족 다 털어 먹고도 부족하면 직접 몇 개를 사서는 자기 방에 쟁여두고 먹었다.

나는 바로 오빠의 이런 점이 마음에 안 들었다. 자기가 라면을 먹었으면 먹은 것만큼 채워 두기도 해야지 자기 배만 챙기는 건 어느 계산법이란 말인가? 한 마디로 가족을 위해 희생할 줄 모르는 점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빠에 대해 섭섭해 하던 내가 오빠를 위해 울고 있는 것이다. 옛날처럼 라면 욕심내도 좋으니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차라리 좋겠다 싶었다. 그런 오빠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게 잘 믿기지가 않았다.

솔직히 오빠에 대한 나의 감정은 섭섭함이 지나쳐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나는 오빠 보다 먼저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먼저 죽어서 동생에게 자신이 얼마나 무심했는지 가슴 깊이 후회하며 살게 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 생각한 것이 죄였을까? 오히려 그 벌을 내가 받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오빠가 정말 세상을 떠나자 알았다. 내가 오빠에게 그렇게 못 되게 굴었던 건 사랑 때문이었다는 걸. 평생 그 누구에게도 사랑 같은 건 구걸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오빠가 없고보니 내가 오빠를 향한 마음 하나, 생각 하나가 사실은 사랑 받지 못해 생긴 거란 걸 그제야 깨닫 게 되었다.  

건강 할 땐 사랑이 그렇게 중요한 줄 모른다. 물론 사람이 건강을 잃으면 인생에 있어서 막대한 손해를 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건강한게 과연 좋기만 한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건강을 잃어 떠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 끈끈한 유대 관계를 갖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런 것을 보면 아프다는게 꼭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걸 오빠를 간호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이 책 또한 바로 그런 책이다.

죽음이 아니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진실들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그런데 참 특이하다. 그 진실의 이야기가 음식과 관련이 되어져 쓰여졌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식사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쓰여져 있는데, 꽤 감동스럽고 가슴저미기까지 한다. 책은 말한다.

우리가 일상처럼 하는 말 중에 '먹는 즐거움'이란 말이 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행복한 일은 음식과 함께할 때 그 기쁨이 배가 되고, 슬픈 일은 맛있는 음식으로 충격을 줄일 수 있다. .....

몸의 병으로 음식 섭취 자체가 불가능해진 사람들에게 '먹을 수 있다'라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 마지막 희망이자 목표가 되기도 하고, 때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이유가 된다. (32p) 

 

그래서 죽음이 아니면 평상시에는 가족이라도 마주칠 일 없을 것만 같던 사람들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음식을 앞에 놓고 극적인 화해를 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안녕을 고하고, 떠나 보내기도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슴저미는 애틋한 광경인가.

평소 자신을 거들떠도 보지 않던 남편을 위해 손수 병간호에 나선 어느 여인의 사연이 눈에 밟힌다('그녀의 막장인생 드라마'181p). 나와 어느 부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감정이입이 된다. 

죽음이 아니면 화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래서 죽음은 삶 보다 위대한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인간을 화해와 용서로 이끄니까.

나도 그랬다. 오빠가 죽는다는데 오빠에 대한 케케묵은 감정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고 오빠를 향한 연민만이 남았다. 이렇게 될 것을 난 왜 그렇게 오빠를 미워했던 것일까?

오빠가 죽기 한 달여를 앞두고 나는 거의 매일 오빠를 보러 병원에 갔었다.

그때 오빠의 입맛은 들쑥날쑥이었다. 그때는 이미 밥을 끊은지도 오래됐고, 곡기를 끊을 수 없으니 엄마는 죽을 쒔다.  녹두죽,  잣죽, 전복죽, 야채죽 등을 번갈아 쒀서 조그만 용기에 조금씩 나눠 담으면 난 그것을 들고 오빠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거의 대부분은 못 먹겠다고 퇴짜 맞고 집으로 다시 가져 오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오빠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가져 온 죽을 맛있게 다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더니 질문이 많아졌다. 나에게 이것저것 성경에 관해 묻는 것이었다. 그게 참 낮설기도 했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오빠에 대한 정을 새삼 떠올리게 만들어 마음이 순간 복잡했다.

그리고 내가 믿는 하나님께 살짝 원망이 들기도 했다. 오빠에게 이런 마음을 주시려면 좀 더 일찍 주실 일이지 왜 이런 마지막 순간에 이토록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겁니까!

사람이 죽을 때가 가까우면 마음이 변한다더니 오빠는 그때 완전 무장해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힘들테니 보호자를 위한 간이침대에 누워 쉬라고까지 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게 나와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오빠의 죽음에 가장 가슴이 무너졌을 사람은 엄마였을 것이다. 평생 우리를 먹이고, 입혔던 사람.

이 자식 먼저 앞 세우자고 그렇게 힘들 게 낳아 두 젖 물리지 않았을 텐데 어쩌자고 그 아들은 머리 하얀 어미를 두고 먼저 간 걸까?

멋 없고, 정 없던 아들이긴 했지만 그냥 무탈하게 살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리라고 생각했단다. 그런 아들이 암에 걸렸다고 했을 때 당신은 새파랗게 질려 병원에서 오자마자 오열했었다.  죄라면 낳고 먹이고 입힌 죄 뿐인데 왜 오래 살아 이런 몹쓸 꼴을 봐야하는 거냐고 엄마는 한탄 했었다. 

 그런 엄마가 아들이 투병에 들어가면서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구운 굴비를 50이 다 된 아들을 위해 직접 찢어 가시를 발라 밥 숟가락에 올려주기 까지 하는 것이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과연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또한 오빠를 보면서는 자식은 몇 살을 먹어도 부모님 앞에선 한 없는 어린 아이라는 알았다. 그렇게 병든 아들이라도 죽어 없는 것 보다 살아 있는 것이 낫을 것이다.

우리 시대 부모님은 달리 이렇다 할 삶의 재주가 없으셨다. 그저 하루하루 가족과 함께 먹고 사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이 더 중요했을까? 당신의 손으로 밥상 차려내며 사셨던 우리네 어머니들에게 자식을 먼저 앞세운다는 건 확실히 가혹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는 것을.

아들을 그렇게 먼저 보내놓고 엄마는 모란 시장으로 김칫거리를 사러 나가셨다. 무슨 정신이 있어 그렇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슬프면 슬픈대로 목놓아 울지 김칫거리가 뭐 그리 급하다고 그렇게 길을 나섰던 것일까? 

처음엔 말리기도 했지만 나중엔 못 이기는 척 말아 버렸다. 그것도 당신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식이라면 그렇게 하도록 놔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아들을 잃은 슬픔을 길에 쏟아 버리지 못하고 못내 집에 돌아와 쏟아내는 것이었다.  

김칫거리는 산 사람을 위한 거지만 당신의 마음은 죽은 아들에게 가 있는 것이다. 

살아 있는 식구들이 아니면 삶의 의미가 없는 게 엄마고, 모성애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땐 먹는 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저렇게 난리법석인가 짜증날 때도 더러는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우리를 위해 해 준 음식의 나날 중 그렇게 오빠와 나를 화해로 이끈 그 하루의 음식이 숨어 있는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쩌면 엄마는 그 하루를 위해 전부를 희생하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오빠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죽으면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지금쯤 천국에서 엄마의 음식을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책은 말한다.

 

우리는 먹는다는 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지 자주 잊는다. 먹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가. 늘 기억하려 한다. 먹기 싫다는 이유로 생각 없이 남기는 음식이 지금 몸이 아픈 누군가에게는 죽기 전 꼭 먹고 싶은 마지막 희망의 음식일 수도 있음을.
(37p)

 이 책은 작년에 오빠를 잃고 읽었던 김여환의 <죽기전에 더 늦기 전에>와 많이 닮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책 모두 다 호스피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김여환의 책이 호스피스와 웰다잉에 대해 (실제적인 사례와 함께) 이해를 돕는 책이라면, 이 책은 앞에서 말했던대로 죽어가는 자의 마지막 음식이 죽은 자와 남아 있는 자를 어떻게 위로하고, 연결시키는지를 에세이 형식으로 썼다. 

사실 읽다보면 우울하고, 슬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린 언제든 죽는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해 기를 쓰고 살지 말고, 잘 죽기 위해 살면 삶을 사는 수준이 확실히 달라진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다 갑자기 들이닥치면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아는 사람은 안다. 그건 죽음을 항상 생각해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어떤 사람이 별이 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 나중에 죽음이 나를 찾아 온다해도 덜 당황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이 참 고맙다.       

작가는 언제 또 이런 책을 기획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썼던 것일까? 이 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별 가족들이 위로를 받았을까를 생각하면 나도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작가는 모름지기 이렇게 휴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공저자인 염정환 교수도 참 남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완화 의학을 전공하고 호스피스 활동에 헌신하는 또 한 사람의 진정한 의사를 알게 된 것 같아 반가웠다. 

앞서 소개한 김여환 씨나 염정환 교수는 우리나라의 호스피스에 대한 잘못 된 인식을 바꾸는데 앞장서는 사람들이다. 

호스피스 병동하면 죽음의 마지막 종착역쯤으로 생각하고 가기를 거부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호스피스는 라틴어의 손님이란 말에서 유래된 말로써, 끝이 아니라, 통증을 완화하여 환자가 삶의 여유를 찾는 곳이고 마지막 순간까지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269p) 이라고 한다.  그러니 정말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겠고, 이 분야에서 일하겠다는 의사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세상에 나쁜 의사도 있겠지만 염정환 교수처럼 사람의 아픔을 보듬는 의사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에게도 독자의 한 사람으로써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책과 더불어 김여환의 <죽기전에 더 늦기 전에>도 함께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두 책 모두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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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0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0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경계에 선 여인들 - 역사의 급류에 휩쓸린 동아시아 여성들의 수난사
야마자키 도모코 지음, 김경원 옮김 / 다사헌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나니 왜 이리 마음이 복잡한지 모르겠다.

읽을 땐 이런 역사가 있었나? 놀랍다가도, 끝에가선 뭔가 불온한 생각이 들었다. 지식을 넓히기 위해 독서를 해야하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어떤 책이든 자신이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대해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과연 무엇인가? 이 책은 나에게 좋은 책인가에 대한 물음은 한 번쯤 묻고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이 책 <경계에 선 여인들>이 일본 사람이 아닌 제3국의 작가가 썼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다. 이 책이 아무리 잘 쓴 책이라 하더라도, 일본이란 나라가 우리나라에 행한 원죄 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작가도 자국이 지은 원죄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자국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기술하지마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어느 부분에선 너무 솔직해 혹시라도 저자가 자국의 극우파들로부터 위협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우려가 될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일본의 극우파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는가?

 

그럼에도 작가가 이 책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각 장마다 일일이 문헌들을 수집하고 꼼꼼히 읽은 흔적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사례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어 역사서라도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아 흥미로웠고, 평이하게 쓴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이 책은 다소 한계는 있어 보인다. 제목이 그렇다고는 하나 이 책은 '아시아 여성 교류사'라고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역사적 배경을 일본의 태평양 전쟁이라고 한정했을 때 그 범위가 너무 좁은 것은 아닌가 한다. 어찌 여성 교류사가 태평양 전쟁 전후에만 국한될 수 있겠는가. 그 이전에도 있었을 것이고, 그 이후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태평양 전쟁을 배경으로 했다는 것은, 저자 역시 일본 편향적 시각에서 어떤 이유로든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일 게다. 

 

그런데 읽다보면 처음엔 일본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옹호하지 않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이는 저자가 일본을 옹호하고, 안하고를 떠나 그 시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가감없이 보여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이를통해 일본이 아무리 군사독재를 대내외적으로 펼쳐 나갔더라도 그 나라 국민이 모두 다 행복했던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일본이 아무리 조선을 신민화 했을지라도 그 나라 국민 모두가 행복했던 건 아니라는 것이다. 행복했다면 권력을 가진 정치가를 포함한 상류층었겠지.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일본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는 피해의식을 다소간 완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전쟁은 피해국이나 가해국이나 여성과 아동, 노인에겐 너무 가혹하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제 7장의 내용을 보면서, 조선이 해방됐을 때 우리나라는 과연 일본인들에게 중립적인 태도로 일관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조선이 해방되자 기다렸다는 듯 일본인에 대한 보복을 감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매스컴에 너무 길이 들여진 나머지 우리가 일본에 대해 어떤 식으로 보복했는지에 대해서 알아 본 적이 없다. 그저 피해입은 사실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쇄뇌 당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매스컴이란 가치 중립적인 것이라고는 하나, 또한 그만큼 자국을 위한 도구도 없지 않은가? 

 

물론 내가 이렇게 썼다고 해서 누가 좌파적 성향에, 일본을 옹호하는 성향까지 보인다라고하면 그건 확실히 지나친 편집증일 것이다. 그렇게 까지는 오버하지는 말자.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처음엔 저자의 솔직한 태도에 경의감마저 들다가도, 나중엔 이거야 말로 오버 센스는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저자에겐 좀 미안한 얘기지만, 일본이 한때는 강대국이라고 할지 모르나 우리도 강대국의 국민으로 살았다고 해서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고, 우리도 힘들었다고 징징대는 인상을 지울 수 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난 7장이 그런데, 논의의 시작은 좋았다. 조선 기독교 남성과 기독교 일본 여성이 서로의 반려가 되어 조선의 고아들을 돌본다는 건 확실히 이념을 넘어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나온 이야기를 읽어보면 왠지 결국엔 고진감래 끝에 일본 여성이 승리한다는 뭐 다소 신파스러운 이야기로 끝을 맺는 분위기라, 다 읽고 나면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뭐란 말인가? 어쨌든 끝까지 (교묘하게)일본이 잘 났다는 건가? 역사서를 역사서로 바라보지 못하고, 이런 치졸한 생각이 고개를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이 글 처음에, 이 책을 일본인이 아닌 제3국의 사람이 썼다면 차라리 낫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라고, 한편 또 드는 생각은 이 책을 달리 바라볼 수는 없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국가의 개인에 대한 폭력'이다. 그것에 관해서 '제 3 장, '일본의 성노예'의 비극'을 중심으로 그 얘기를 해 볼까 한다.

 

작금의 사안이 사인인만큼, 내가 저자에게 감사했던 건, (다른 장도 그렇긴 하지만 특히) 3장을 통해 종군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 줬다는 것이다. 이미 보도를 통해 접했지만, 일본의 극우파들은 미국에 있는 자유의 소녀상을 철거해 달라고 요구했다 철퇴를 맞았다. 언제까지 그들은 역사를 망각한 척 할 건지 모르겠다. 

 

3장은 바로 왜 일본이 전쟁을 치르는데 위안부가 동원 됐어야 했는지, 이를 위해 조선과 중국 또한 제 3 국의 여성들이 어떻게 동원이 되었는지, 이들이 나중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여기엔 의외로 네덜란드 여성이 끼어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선 누가, 왜 종군위안부를 설치했느냐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저자는, 아마도 '군대'라는 조직은 으레 필연적으로 '창부'를 필요로 한다는 초자연적인 테제가 근저에 있는데, 이를 실현하려는 방책을 취하려 한 것은 아닌가 추측한다(150p)고 했다. 이것은 또한 공창 제도에 근거를 두고 있기도 한데, 전쟁에 동원된 인력은 주로 건강한 젊은 남성이라고 했을 때, 이들이 전쟁이 없을 땐 문제가 안 되겠지만 전쟁에선 자신의 성적 욕구를 풀어버릴 곳이 없으니 전쟁터에서 같이 이동할 수 있는 종군위안소가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종군위안소가 없으면 전쟁 현지에서 부녀자를 강간하는 사례가 빈번한데 이것은 엄연히 군법에 위반되는 것으로써, 적지 않은 군인이 군법을 위반하고 처벌을 받는다면 군사력이 현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로 종군위안소가 필요했다는 것이다(~151p).

     

과연 그럴듯한 논리이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드는 건, 정말로 종군위안소가 필요했느냐는 것이다. 물론 전쟁의 극도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긴장감 못지 않게 피로감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위안소에 갈 시간에 잠을 더 자는 게 낫지 않았을까? 게다가 평화시 일본의 성도덕의 체계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문란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오히려 전쟁을 빌미로 도덕을 해이시켜 버렸던 것은 아닐까? 전쟁이 애초에 말이 안 되는데 거기에 무슨 도덕과 윤리를 찾겠는가? 그런 건 평화시에 찾는 것들 아니겠는가?

 

또 하나의 의문은, 이렇게 종군위안이 일본 군인에게만 국한 된 것인지, 세계 다른 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세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없을지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유독 전세계에 일본 위안부 문제가 알려지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지금도 골머리를 썪히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일본의 종군위안의 문제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적인 결합'은 인류를 영속시키는 중요한 동기라는 점에서 그 관계의 근저에는 '자연'이나 '신'이 부여한 '행복'이 일본군의 강제적인 '성노예 정책'에 의해 철저하게 부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근대국가의 법률'을 위반한 행위임은 말할 것도 없고, '지상의 모든 생명에 대한 자연법'까지도 교란시키고 모독하는 행위였다(149p)           

그러니 이것에 대해 일본이 뭐라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저렇게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종군위안의 문제를 시인하는 꼴이나 다름이 아니겠는가? 중요한 건 이 문제에 대해 성숙한 태도를 보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인데, 그런 점에서 일본은 아직도 미성숙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또 따져봐야 하는 건, 그 시대 일본의 모든 군인들이 다 성적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종군위안소를 좋아했느냐는 것이다. 물론 군국주의에 소수가 존중 받아을리 만무했겠지만, 분명한 건 모든 사람들이 전쟁을 찬성하지 않았던 것처럼, 종군위안 역시 찬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종군위안부들 대부분은 영문도 모르고 착취를 당해 대부분은 불행한 길을 갔지만, 또 몇몇은 그 지옥해서 필사의 탈출을 하는데 성공했다. 거기엔 또 종군위안부를 반대했던 군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위안부와 함께 군대를 탈출해 삶을 꾸리다가 종전을 맞이하기도 했다고 한다(물론 이건 0.1%도 안 되는 아주 운 좋은 케이스일 것이다). 

 

나는 여기서 바로 '국가의 개인에 대한 폭력'을 말하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해국이라고 해서 폭력이 없는 것이 아니고, 피해국이라고 해서 없거나 작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의 개인에 대한 폭력은 어느 나라나 다 있을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의 경우를 다루긴 했지만, 일본이 가해국으로서 피해국인 한국 역시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로인해 국민의 삶을 불행으로 내몰리게 했다는 점에서 일본이 한국에게 저지른 과오에 비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지도자를 잘못 세웠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역사가 끝임없이 가르쳐 주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국가라도 개인에겐 국가가 있어야 한다. 나라 없는 개인이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 역사가 또한 가르쳐 주고 있지 않는가? 이건 정말 모순이고, 부조리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자. 나는 이 책을 읽었을 때야 비로소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무엇을 했을까?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울 줄만 알았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과거의 정부를 대신해서 사죄하려 했는가? 조금이나마 보상하려고 노력했는가? 묻고 싶다. 어쩌면 일본이 이 문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 보다 그들을 적극 대변해 주고, 보호해 주지 못한 우리나라 정부가 더 문제는 아닐까? 그래서 일본이 너희들도 책임지기 싫어하는 것을 우리가 왜 책임지려 하느냐며 맞받아치는 건 아닐까? 이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책을 읽은 나의 이 글의 결론은 이것이다. 여인, 아동, 노인 등이 보호받지 못한 나라는 결코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없으며, 그 나라에 사는 남성 역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주권을 올바로 행사하지 못한 나라는 강대국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일본과 우리나라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좋은 나라는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책을 읽으면 일본 여성의 의식구조가 어떤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점만 유의한다면 이 책은 나름 읽어 볼만한 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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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1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군한테 성노예가 된 분들 역사는 '일본사람이 캐내고 보관해서 알려준 자료'가 많아요. 일본 군인으로 전쟁 총알받이가 되어야 했던 이들이 나중에 참회록을 쓰면서 이런 사실을 많이 증언해 주기도 했습니다. 꽁꽁 숨긴 간부나 군인도 많았지만, 양심선언을 한 이들이 꽤 많아요. 그런 기록과 자료가 바탕이 되어, 오늘날처럼 이럭저럭 지난 역사를 말할 수 있기도 합니다.

정대협이 서기 앞서, 또 정대협이 선 뒤, 일본 학자와 시민들이 크게 도와주었어요. 일본 정부와 일본 시민은 '다른 차원 사람'이라고 할까요?

네덜란드와 일본은 서로 역사가 깊습니다. 하멜 같은 사람은 일본에 가려다가 그만 한국에 온 사람이지요.

일본에서 위안소를 둔 까닭은, 전쟁터에서 '성욕에 굶주린 젊은 병사'들이 적군 여성을 수없이 강간하면서 성병에 걸린 나머지, '전투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일본 제국주의 군대 정책은 '점령지 여성을 강간하는 것으로 문제가 다 풀리리라' 여겼지만,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깨달아(?) 위안소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에 '성매춘 업소' 동네를 만들어요. 한국에도 곳곳에 있잖아요. 서울에 여러 곳, 인천에 옐로우하우스, 목포에 부산에 어디에 저기에... 끝도 없이 많지요. 이런 곳이 모두 다 '위안소'와 똑같아요. 미국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와 독일과 에스파냐와 포르투갈도, 다 이런 '위안소'를 만들었습니다.

stella.K 2014-01-19 15:12   좋아요 0 | URL
와우, 이 역사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시네요. 네덜란드는 그런 역사가 있었군요.
그러니 우린 얼마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겁니까?
이 분야에 대해서만도 알려고 들면 한도 없고, 끝도 없겠어요.
이 책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더군요.
긴 글 고맙습니다.^^
 
강원용 나의 현대사 1 - 엑소더스 강원용 나의 현대사 1
강원용 지음 / 한길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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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운이 좋았다. 처음으로 가 본 중고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한 것은. 

독서를 계획적으로 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닥치는대로 읽는 주변도 못 된다. 그런데 이 책 1권과 2권을 발견한 순간 날 데려가라고 아우성 치는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 오래 전 나는 이 책을 읽어 보겠노라고 찜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제목도 이것이 아니었다. <빈들에서>란 제목으로 3권으로 나왔었다. 그것을 언제 또 제목을 바꿔 5권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 책은 현재 알라딘에선 품절로 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찜해놨던 책을 찾는 이 없어 품절이 될 때까지 나는 이 책에 참으로 무심했다. 그리고 허겁지겁 중고 서점에서 산 꼴이라니.

 

변명을 하자면 이 책은 저자의 자서전이자 현대사 증언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알다시피 역사는 그다지 만만한 분야가 아니다. 현대사는 더 더욱. 더구나 저자가 말하는 현대사와 내가 느끼는 현대사가 같지가 않다. 저자가 말하는 현대사의 범위란, 해방전후로부터 시작해서 저자가 죽기 전까지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야말로 386 세대다. 현대사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적어도 그때를 이해할 안목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안목이 너무 없었다고  해야하려나? 나의 현대사란 고작 민주화 운동과 최루탄 뭐 이런 것이 전분데, 저자의 세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도 나이를 먹는 것일까? 요즘엔 그나마 없던 역사에 실눈만한 관심이 생겼다. 그러니 이 책의 아우성도 들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지난 가을부터 읽기 시작해서 아주 조금씩 읽고 있었는데 이제야 겨우 1권을 마쳤다.  1권을 다 마친 나의 느낌은, 이 책은 한마디로 상당히 흥미롭다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목사가 쓴 현대사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게 뭐 그리 대수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역사는 교과서처럼 그냥 기술을 하기 위한 거라면 재미없을지 모르겠다. 목사가 썼기에 일반의 싯점이 아닌 기독교적 관점에서 썼다는 것이다. 특히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이 흥미로운데,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했으니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느냐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기록은 누가 기록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리 하는 부분이 있다. 또한 이 책은 저자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으니 객관성을 논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새삼 읽으면서 깨닫는 건, 기독교 목사면서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에 함께 한다는 것이 흔한가 일인가 싶기도 하다. 나만해도 최루탄이 터지면 도망하기 바빴지, 왜 최루탄을 쏘는가? 왜 화염병을 던지는가 알기 위해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다.

 

그렇게 나는 늘 아웃사이더를 자처했었다. 사람은 대체로 자기와 비슷한 사람과 어울리길 좋아한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게 있으니 굳이 나를 이해시키려 애쓰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나와 다른 사람에 끌려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나에게 없는 면을 누군가 가지고 있으면 알고 싶고, 닮고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읽으면서, 저자가 말하는 역사의 내용 보단 저자 자신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했다. 저자에겐 분명 내가 갖고 있지 않는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저자가 웅변을 잘했다는 것과 상당한 리더십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강직함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나에겐 없는 것으로서, 저자는 비록 평생 수고로움과 고통속에 살았겠지만, 반면 꽤 값지고 보람있는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언젠가 얼핏 TV에 나온 저자를 본 것도 같다. 책에도 보면 그의 사진이 나와 있다. 눈썹이 진하고 눈매가 매서운 것이 한 눈에도 범상치 않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면 그가 얼마나 강직한 성격을 가졌는지를 볼 수가 있다. 

  

특히 저자는 모태신앙이 아닌, 인생 중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철저하게 신앙을 시켜온 사람으로 그것은 마치 손양원 목사님을 보는 것도 같았다. 손양원 목사도 강직하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니 말이다. 또한 손양원 목사의 시대나 저자의 시대가 같기도 할 것이다. 단지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손양원 목사님은 그가 예수님을 믿기로 한 그날부터 한 번도 자신의 신앙을 의심하거나 흔들림이 없었는데, 저자는 딱 한 번 신앙에 회의를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옥고를 치렀을 때인데, 그 고문이 너무 견디기 괴로워 '인간성이 상실되고 인간이 없는 이곳에 신은 있는가'란 진지한 질문을 하게 되었고, 나아가 민족을 위해 한 몸을 던진 선량한 사람들이 단지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옥에 가야하느냐를 고민하게 된다. 또한 그는 자살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한다.

 

 '어차피 죽게 될 바엔 이런 생지옥에서 고생을 더하다 죽을 필요가 있을까, 또 이렇게 인간 이하의 조건에서 구차하게 연명하다 고통을 견디지 못해 일본놈들에게 치욕스런 꼴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이 육체를 버리는 게 현명한 길이 아닐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에선 자살를 죄로 규정하지만 '추하게 죽느니 깨끗한 자살이 낫지' 않겠느냐는 자기 합리화를 했던 것이다.

 

그러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런 곳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 시련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ㅅ에 맡기고 만약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이후부터 죽는 날까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한다(169~171의 내용). 

 

사실 손양원 목사는 자신의 신앙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범접하지 못하는 뭔가가 있지만, 저자는 이런 실존적인 질문을 했다는 점에서 인간적인 느낌을 갖게 만든다. 사실 어찌보면 세상은 답을 달 수 있는 것 보단 답을 달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런 때는 선택하고, 다짐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실존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삶이 그를 말하고, 역사를 증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강직한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항상 옳은 것마는 아니다. 예를들면, 그는 이북 출신으로서 자신의 신앙 때문에 아버지를 북에 남겨 놓아야 했던 우를 범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앙이 없는 아버지는 명리나 사주를 따르는 전형적인 유교의 사람이었다. 당시 아버지가 사는 곳이 전쟁이 일어나면 위험한 곳이 될 것 같아 이사하려는 것을 그가 말려 결국 그 자신만 월남을 한 채 부자간의 생이별을 자초한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선택이 낳은 희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 때문에 평생 마음에 짐을 지고 살았고, 실제로 이북에 아버지를 두고 월남했기 때문에 당국의 곱지 않은 시선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    

 

또한 저자가 평생 그렇게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타고나다시피한 웅변 실력과 그 특유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그는 웅변을 통해 어떻게 사람을 감동시키는지를 알았던 것 같다. 그가 당시의 시국 상황을 역설할 때마다 사람들이 운집했고 열광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그는 탁월한 웅변가였고, 또 그것으로 그는 당대 유명한 정계인사들과 교계인사들을 만나고, 사귈 수 있었다.

          

사실 자서전을 읽는 것의 묘미는, 글쓴이가 당대 어떤 활약을 했는가와 함께 어떤 사람과 교류했는가를 아는 것일게다. 그의 리더십 또한 만만치 않았으니 당대 거물급 인사들과의 교류는 당연했을 것이다. 특히 이승만과 여운형에 관한 기술이 눈에 띄는데, 이승만은 우리가 아는 것 그 이상 새로운 것은 없어 보인다. 단지 자서전인만큼 조금 더 적나라하다고 할까? 그런데 비해 여운형에 관한 기술은 비교적 구체적이고, 긍정적 이다. 솔직히 나는 여운형에 관해서는 그 이름만 아는 정도지,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서는 잘 몰랐다.  

 

무엇보다 저자는 여운형이 잘 생겼다고 했다. 심지어 세계 어디를 가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걸출한 인제라고까지 했다. 그는 민족 문제라면 우익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유럽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사회민주주의적 사고를 견지했다고 한다.

여운형은 열린 인간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두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외눈박이가 되어 사람과 세상을 보았다. 빨갱이의 눈 아니면 극우파의 눈으로밖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화합을 모색하려면 다른 점은 다르게 보면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열린 눈과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 여운형은 그런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외눈박이 소인배들이 어지럽게 설쳐대는 그 시대에서는 지도자가 될 수 없었다. 죄익 외눈박이들도 그를 껄끄러워했고, 우익 외눈박이들도 불편해했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우리나라가 남북통일을 하고 세계 속의 한국이 될 경우 과거 인물 속에서 지도자 모델을 굳이 찾으려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여운형이 그 모델감이다'라고 말할 것이다.(345p)

 

 이 대목은 확실히 우리가 되새겨 봄직하다. 지금은 그나마 여운형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이긴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다지 환영 받지 못했던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흑백이 분명한 것을 좋아하고, 회색논리에 대해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문득, 그게 어찌보면 마녀사냥에 좋아서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흑에서건 백에서건, 좌파든 우파든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은 남의 일이나 거대담론에는 통크게 나오지만, 그게 내 이익과 관련이 있고, 섬세한 부분에선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중도파에 대해서는 못 견뎌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이 흑백논리라는 것도 좌파 아니면 우파에서 이름 짓기 좋은 말인지.    

 

그렇지 않아도 요즘들어 나는 부쩍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관해 관심이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요즘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 대해 흥미를 갖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와 맞물려 있으며 개화기와도 관련이 있다. 그 관심에 저자가 소개하는 여운형이 있으니 언젠가 꼭 한 번은 그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런 시각이 없지 않지만, 책을 읽다보면 목사가 정치한다고 엄청 욕을 많이 먹었을거란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편견은 아닐까? 옛날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 중 적지 않은 숫자가 기독교인들이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현실참여를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참여했다고 비판하면 언제부터 기독교는 점잖은 종교가 되어버린 걸까? 언제부턴가 기독교안에서도 보수와 진보가 나뉘었다. 그것 역시 시각과 사고의 차이일 텐데, 기독교건 비기독교건지간에 다른 생각, 다른 의견 때문에 서로 싸우고, 비판하는 일은 가급적 안했으면 좋겠다. 그 모든 게 나라를 위한 거라면 말이다.

 

1권은 '우리 세대는 모두 죄인'이란 제목으로, 선대가 하나된 조국을 후대에게 물려주지 못한 것에 대한 통한의 글을 남기고 일단 끝을 맺는다. 과연 그에 대한 고백이 절절하다. 저자가 이런 고민을 한다면, 우리 세대의 사람의 사람들도 똑같이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낳은 아들, 딸들이 이제 성인의 나이로 서서히 진입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남겨 주려했는가를 반성할 때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통일의 시대가 곧 도래할 거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통일의 시대에 우리는 하나된 조국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북한의 세력이 약화가 되었다고 해서 통일이 될 거라는 건 너무 단세포적 생각은 아닐까? 북한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고 이제까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롭고도 더 강력한 빅브라더가 등장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하나된 조국이었던 때가 얼마나 있었는가? 단군이래 하나된 조국이었던 때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지나간 선대로부터 그들이 지나 온 한 세기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자 같이 살지 못할 것이고, 소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나라에 대한 걱정을 정치인들을 비롯한 어느 특정인에게만 맞기는 것은 시민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선대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전철을 밟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것을 따르고, 어떤 것을 따르면 안되는지를 역사라는 언덕에 기대어 서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두에도 얘기했지만, 가끔 검색을 해 보면 품절이나 절판됐다고 하는 책들이 종종 눈에 띈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의 하난데, 언젠가도 그런 글을 썼지만, 신간에 밀려 이런 책들이 묻혀지는 건 좀 안타까운 일인 것 같다. 독자가 찾건, 찾지 않건 좋은 책은 오래도록 그 명백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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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30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운형이라는 분은, 저도 책과 기록으로밖에 만날 수 없었지만, 이분을 비판하는 사람 쪽에서조차 훌륭한 됨됨이를 깎아내리지 못해요. 무엇보다도, 이분 여운형 님은 '사상'으로 사람을 따지지 않은 대목을 눈여겨보아야지 싶어요. 오직 '사람'을 보고 '사람'이 함께 어깨동무하는 길을 찾으려고 애썼구나 싶어요. 그래서, 큰 틀에서 보면,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 제국주의 앞잡이'들은 '불쌍한' 사람이지요.

남을 해코지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은 가해자이면서 스스로 불쌍한 삶으로 치닫는 바보라고 할까요.

앞으로도 틈틈이 헌책방 다니시면서 재미난 책 만나 보셔요~

stella.K 2014-01-01 18:25   좋아요 0 | URL
새해 첫날이어요. 좋은 독서 계획 있으신가요?
늘 열심히 사시는 님 뵈면 참 존경스러워요.
저는 점점 책이 좋아지는데 많이는 못 읽겠고 고민이네요.ㅎㅎ
그래도 올해도 열심히 달려 볼게요.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4-01-01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들어 나는 부쩍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관해 관심이 많아졌다."
- 관심 있는 한 분야를 깊게 파 보라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좋은 공부가 되니까요.
저도 이번 해엔 그렇게 해 보려고 하거든요.
한 작가의 책 모두를 보는 것도 좋을 듯해요.

"좋은 책은 오래도록 그 명맥을 유지..."
-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신간만 중시하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새해엔 좋은 책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책에 관심을 가져야겠어요.

여운형 등,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지죠. 여러 각도에서 봐야 할 것 같아요. 억울하게 평가되는 사람이 없어야 하죠.

새해가 시작되는 첫 날이네요. 좋은 글 많이 쓰시길 응원하겠습니다. ^^


stella.K 2014-01-01 18:31   좋아요 0 | URL
전작주의 좋죠!

저도 알려지지 않는 좋은 책 있으면 대대적으로 알려 볼려구요.
그런데 요즘 저의 서재 조회수가 한 자리 수를 유지할 때가 많아서
되려나 모르겠어요. 한창 잘 나갈 때 세 자리 유지도 했었는데...
열심히 안 되네요.

고맙습니다. 언니도 좋은 글 많이 쓰세요.^^
 
릴케의 침묵 - 불가능한 고백, 불면의 글쓰기
김운하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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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 나는 공교롭게도 부제가 더 마음을 끌었다. 내가 릴케를 알면 얼마나 알고, 그에게 매료당했다면 얼마나 당했을까?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건 고작 장미를 좋아해 장미가시에 찔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었다는 것 밖에 더 있겠는가? 장미를 좋아해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 확실히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는 건 덫이란 생각이 들기는 한다. 

 

침묵의 의미를 깨닫는 건 또 얼마나 덧없고, 무모한 도전이란 말인가? 이 세대가 과연 침묵을 허용하는 시대란 말인가? 저자는 책 가운데 외로움과 침묵의 정의에 관해 쓰긴 했지만, 이것을 깨닫는 건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닌 성싶다. 

 

오히려 내가 꽂혔던 건 '불가능한 고백, 불면의 글쓰기'였다. 더 정확히는 '불면의 글쓰기'였다. 저자는 그것에 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불면하는 밤의 매혹은 그것이 가져다주는 고통만큼이나 치명적이다. 나는 그런 매혹의 순간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어쩌면 불가능한 기다림인지도 모른다. 침묵하는 밤이 털어놓는 고백 자체가 불가능한 고백인 탓이다. 그러므로 불가능한 고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그것이 바로 불면의 글쓰기다.(101p)      

 

저자가 말하는 불면의 글쓰기는, 확실히 열어보지 못할 판도라의 상자를 독자에게 불쑥 들이미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책은 뭔가 내밀한 고백을 담고 있는 것도 같고, 저자가 읽은 책, 더 정확히는 인문학에 경의를 표하는 것도 같다. 그리고 아직도 일천하기 짝이 없는 나의 지식은 그것을 따라가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그래도 그것과는 별개로 어느 순간 나의 글쓰기에 대한 고백을 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유혹일까? 

 

언제부터 였을까? 내가 글쓰기에 미쳤던 건. 발자크처럼 커피에 중독돼 가며 어느 순간 미치도록 쓴 건 아니었다. 누군가는 미쳐야 미친다고 했다.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또 얼마나 두렵고 주저하게 만드는 일이었을까? 그러던 중 교회에서 대본 쓰는 일에 대한 제의를 받았다. 그것도 하필 주일학교 교사하는 일이 너무 안 맞아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하던 순간에 말이다. 그래서 주일학교 교사를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대본 쓰는 일이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지만(난 늘 소설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나에겐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락을 했던 것이다. 한 1년 동안은 신나게 그 일을 했던 것 같다. 나에게 이런 능력이 숨어 있었나? 나 자신에게 놀라면서 말이다.

 

물론 그 일이 마냥 신났던 것만은 아니다. 맨땅에 헤딩하듯, 한 주에 한 편의 연극 대본을 쓴다는 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어떤 땐 너무 글이 안 써져 컴퓨터 모니터를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때도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것도 살아 있음이라 생각하고 나는 매번 주어진 숙제를 성실하게 해 나갔다. 이렇게 말하면 모르는 사람은 내가 꽤 성실하고, 모범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착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못된다. 단지 곰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사람이 뭔가 한 가지 정도는 잘하는 것이 있다는데 나는 비교적 늦게 그걸 발견해낸 셈일 뿐이다. 

 

하지만 난 그때 잊고 있었던 것이 있다. 나는 대본 쓰는 사람이기 이전에 교사라는 것이다. 그 일을 성실히 했다고해서 나의 교사의 직무를 잘 수행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건 일종의 나를 새롭게 발견해 주는 일이었을 뿐, 교사는 지금 생각해도 확실히 어려운 일 같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내가 했던 일은 교사의 직무를 바꿔치기 할만큼 대단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즉 이 일을 하느라 교사의 직무를 유기했던 것이 고스란히 내 책임으로 돌아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당시 내가 알았던 제자 녀석이 하나가 있었다. 난 그 녀석을 거의 2년 동안 지켜와 봤지만 이 녀석에 대한 뭔가의 믿음이 보이지 않았다. 이를테면, 제자와 선생이란 신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어느 때 보면 나에게 친근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한데 선생에 대한 예의나 존경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이 녀석과 멀어지길 바랐지만, 녀석에겐 뭔가 거부할 수 없는 특유의 페로몬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녀석의 페로몬은 선생인 나 사이에 하극상을 낳았고, 또한 그것은 녀석으로 하여금 어떻게 세력을 규합하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알게해 준 개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녀석이 그 어린 나이에 그것을 알게 됐다면 그의 영혼에 미칠 영향이 어떨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덕분에 나와 녀석은 조직내에 적지않은 파장을 일으켰고, 결국 조직에서 파직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나로선 조직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고, 따라야겠지만 이후 오래도록 과연 그렇게까지 했어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는 남았다. 

 

뭐 좀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뭐가 잡힐 것만 같았는데 하필 그때 거미줄에 걸려 넘어지는 형국이라니?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훗날을 위해 더 공부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무엇보다 글 쓰는 내가 좋았던 것이다. 

 

공부하러 들어간 곳은 어느 창작학원이었는데 거긴 정말 별천지였다. 80년 대 어느 민주화 투사가 경영하는 곳이기도 했고, 역시 민주화 투사 중 한 분이 나의 선생이 되었다. 그때 새삼 깨달았던 건 나는 한때 글 쓰는 사람이길 원치 않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누구든 문학 소년이 아니고, 문학 소녀가 아닌 때가 없다고 하지만 나는 언제부터지 이 꿈을 나의 의식의 수면 저 밑으로 밀어넣어버렸다. 

 

초등학교 시절, 유난히 일찍 찾아 온 사춘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유독 부모님이 서로 싸우는 걸 못견뎌 했다. 엄마는 늘 약자처럼 보였고, 아버지는 늘 강자처럼 보였다. 그래서 언젠가 참다 못해 장문의 편지를 아버지께 드렸는데, 아버지는 뭐 때문이었는지 화를 내지 않고 나의 그런 용기를 칭찬해 주셨다. 덕분에 글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무의식으로나마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중학교를 들어가고 그해 늦가을이었던가? 교지에 실을 글을 모집한다고 해서, 나는 시인지 낙서인지도 모를 글을 당시 몰래 짝사랑하던 국어 선생님 손에 직접 쥐어 드렸다(생각해 보면 간접적으로나마 사랑의 연서를 쥐어 드린 건 아닌지?). 나는 당연히 내 글이 교지에 실릴 줄 알았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그런데 웬걸, 기대를 가지고 교지의 첫 페이지를 열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내가 쓴 글은 한 자도 볼 수가 없었다.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던지. 선생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확실히 그때부터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몰아 닥쳤던 민주화 운동은 그나마 있었던 나의 문학에 대한 관심을 사그러트리는데 영향을 줬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의 문학은 온통 참여문학 일색이었으니까. 인간의 상상력을 말살하고, 참여문학만이 문학이라면 차라리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무슨 허무주읜지, 한 번 읽고마는 소설의 일회성을 생각해 볼 때 문학은 더 이상 나에겐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문학으로 현실에 참여했던 작가를 대하고 보니 얼마나 소견이 좁았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교류는 나름 좋은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내가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나야 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존심 생각하고, 상처만 생각하면 다시 못 돌아 갈 곳이다. 이 책도 그것을 말하고 있다.

상처에 대항하는 방식은 실로 여러 가지다. 그중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가장 탁월한 방식은 자기 자신을 끌어안는 것이다. 즉 자기에 대한 자부심을 되찾는 것이다. 상처는 쉽사리 콤플렉스가 되고 우울증과 신경과민, 세상과 피해의식을 낳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상처를 적극적인 에너지로 전환시켜야 한다. 수 많은 예술가와 사상가들은 내면에 대한 각인된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 끝에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192~193p)

 

그리고 난 그 일을 겪은 후 훨씬 더 안정적으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 일을 하고 나서 나에겐 적지않은 변화도 생겼다. 유치하고, 시끄럽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드라마도 보고, 영화도 보는 것이다. 행복한 공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내가 넘어진 곳에서 다시 시작했다고 해서 당장에 영광이 찾아 오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제자 녀석의 하극상을 통해 녀석안에 꿈틀대고 있는 뭔가의 악마성을 본 것도 같았다. 하지만 훗날 나는 더 큰 것을 보기도 했다. 녀석의 악마성을 교묘히 이용하는 또 다른 더 큰 권력을 보기도 했으니까. 그렇다면 녀석은 그때를 어떻게 기억할까? 궁금하긴 하다.

 

나는 나대로 조직이 재편될 때 그 새로운 권력에 의해 축출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외형적으로 볼 때 또 한 번의 좌절을 당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전만큼은 아니었다. 그건 나만이 당한 일도 아니거니와, 원래 새로운 사람이 수장이 되면 이전에 있었던 사람은 필요에 의해 그 조직에 남아 있기도 하지만, 조직을 떠나기도 한다(자의든, 타의든). 그런 차원이었으니 속상해 할 것도 없다. 단지 그 새로운 수장이 이전과 다른 얼굴로, 없는 죄도 만들어 가며 더 이상 그 조직에 있지 못하도록 만드는 비인격적이고, 추잡한 행동에 분개할 뿐었다. 

 

이를테면, 글쟁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글쓰기가 좋아 죽겠는데 어딘가 필요로 하는 곳에 속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 있는 곳에서 내가 목격한 인간의 이면과 진실을 글로 남기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을 지칭함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어느 작가는,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아라크네의 후예들이라고도 했다.  

 

어쨌든 그 일도 몇십 년 전의 일이다. 그후 나는 그 보다 훨씬 좋은 곳에서 글을 썼지만, 나의 글 쓰기의 욕망은 어느 조직이나 장소가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을 따지는 것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과의 경험과 인연이 나로하여금 글을 쓰도록 만든다. 그것은 항상 좋은 경험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쁜 경험이 자극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불만은 나의 힘이라고, 난 항상 인간의 부조리한 면을 보면 글을 쓰고 싶었으니까. 마치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또 말한다.

글쓰기를 하건 다른 창조적인 일을 하건, 진정으로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최선을 다할 때 그리고 거기에서 성취감을 얻을 때 마음의 상처는 치유된다. 이것은 상처를 내면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외면화시킴으로써 극복하는 방법이다. .....사랑의 상처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다른 사랑을 찾아 열정을 쏟는 것이다. 새로운 대상과 사랑을 주고 받음으로써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상처를 극복하는 대신 오히려 마음 속에서 상처를 극대화하는 경우가 많다. (193p)                                   

그런데 나는 그 일을 지금까지 한 번도 글로 쓰려고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써야지 하면서 지금까지 쓰지 못했다. 게을러서일까? 거기에 이의를 달지 못한다. 하지만 뭔가 시간이라고 하는 필터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공교롭게도 저자는 위의 글에 앞서 자서전의 불가능함을 얘기했다. 그것은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의 예를 들었는데,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 당대의 유명 인사들의 행태를 고발하면서, 이 모두가 진실임을 거듭 천명했다고 한다. 나아가 자신의 말과 위배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거짓말쟁이며, 협잡꾼이라고 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목졸라 죽이기까지 해야한다고 했다. 과연 무시무시 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의 말을 믿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요는 루소도 정직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 과연 가능하냐는 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객관성을 들어 진실을 주장하려고 하지만 사실은 주관적인 사고와 감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서전의 불가능함을 말했다('불가능한 고백',177p~).

 

그런 것처럼 나의 이야기는 자서전이란 형태로 글 쓰기가 가능할 것도 같지만 나의 얘기를 믿어 줄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나 자신 조차도 정말 진실을 얘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또 그때 일을 들쑤셔서 마음이 우울에 빠질지도 모르고, 명예훼손이라고 고발당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엄밀한 의미에서 확실히 '불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상처받을 가능성 속에서 모두 하나라고. 또 상처는 어떤 의미에서는 삶을 내면적으로 더 풍요롭게 해주는 열정의 에너지이기도 하다고. 신이 인간에게 망각이란 선물을 준 까닭은 인간이 얼마나 쉽사리 상처를 받고 그로 인해 치명적인 고통을 겪을 것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동시에 신은 인간에게 그 상처를 극복할 내적인 힘도 부여해주었다. '망각하는 능력'과 '노력하는 힘'은 마음의 상처를 지닌 인간이 신에게서 받은 두 가지 선물이다.(195p)    

  이것이 불가능한 고백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은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건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자신의 말에 책임지겠다는 것이거나, 시간과 망각의 필터링을 통해, 또는 거짓으로 진실을 말하는 좀 더 고도화된 방법을 통해 좀 더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거나. 그렇다면 나도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는 글쓰기를 글 감옥이라고도 표현했지만, 그렇게 흘러온 나의 글쓰기 유전은 이제 나의 십자가요, 족쇄 같은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면 받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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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22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잖아 그 이야기 찬찬히 쓰실 날 있으리라 생각해요.
즐겁게 기다리셔요.

그나저나 한 주에 하나씩 연극 대본을 써야 했다면...
아이고야... @.@

stella.K 2013-12-23 11:08   좋아요 0 | URL
ㅎㅎ 짧은 연극이었어요. 그러니까 하지.
하긴, 그래도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그땐 무슨 기운이었는지 그렇게 안해도 되는 걸 스스로 닥달해서 했다니까요.
저는 그렇다쳐도 그당시 주일학교 아이들 선생 잘못 만나 고생 좀 했죠.
그래도 뭐 지네들 좋으니까 선생 쫓아 와 준 거지 지네들 싫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덕분에 연극영화과 간 아이들도 몇 있었어요.^^

페크pek0501 2013-12-24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실 찾기는 어려운 일 같아요. 어쩌면 죽을 때까지 진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단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나의 진실을 모를 때도 있는데 남의 진실은 어찌 알겠습니까.

망각과 노력이라는 선물... 특히 망각이란 선물이 없다면 사는 게 꽤 고통스러울 듯싶어요.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니까요. 죽은 사람을 못 잊어서 따라 죽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러고 보면 망각이 있다는 게 다행스럽죠.

책 제목을 보니 릴케의 말테의 수기, 가 생각나는군요. 열심히 읽었던 책이었죠. ^^

stella.K 2013-12-24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누구에겐 잊고 싶은 기억을 누군가는 말하고 싶어하죠.
묻어둬서 좋은 사람이 있고, 누구는 말하므로 치유가 되는 사람도 있겠죠?
말테의 수기를 읽으셨군요. 전 아직도 못 읽었는데...ㅠ
 
의사에게 기대지 않고 사는 법 - 일본 최고의 명의가 알려주는
아쓰미 가즈히코 지음, 이진원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문득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깨달았다. 

병원 신세 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병원 신세를 지고 싶지 않다는 거지, 의사에게 기대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다. 저자도 주치의 말고도 서드 오피니언을 두라고 권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을 원하는 것도 끌림 때문이기도 하지만, 필요에 의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컴퓨터를 사용하게 된 세월이 거의 15년을 헤아리는데, 그동안 이상 없이 쓰지는 않았다. 어떤 경우 먹통이 되기도 했고, 어떤 경우는 와이파이가 안 돼서 애를 먹기도 한다. 그때마다 해결사는 나의 동생이었다. 그쪽 방면으론 좀 바싹하니까. 기계치인 나는 그때마다 이런 동생이 있음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만일 동생이 없었더라면 컴퓨터가 이상징후를 보일 때마다 어떻게 했을까? 인터넷을 거의 하루도 하지 않는 날이 없는 이 시대에 말이다. 하지만 동생을 끌려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이상한 거지. 거기에 의사가 있다면 금상첨화지 않을까? 

 

나이가 들으니 집안에 의사 한 명쯤 있는 사람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살다 어찌될지 모르니 다급할 땐 손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의사에게 기대지 않고 사는 게 좋긴 하지만, 평생 그럴 수는 없으니 기댈만한 의사가 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인간은 역시 homohospital(병원에 다니는 인간)일까? 평생 병원에 다니지 않게 되길 바랬지만 그 바람은 내 인생 10살이 채 되기 전부터 깨지고 말았다. 그나마 장기 입원이 아니라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내 인생 최장 입원기록은 그 10살 되던 해, 한 달간 입원한 기록이다. 그것도 그렇게 말해주니까 그런 줄 알지, 병원에 있으면 시간이 세로로 가는지 거꾸로 가는지 모른다. 내 느낌엔 한 석 달 입원한 것 같은데 말이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그때 난 병원에 안 갈려고 무척 발버둥을 쳤던 것 같다. 병원에 가면 무조건 주사놓고 아플 거라는 생각에 그런 거였는데, 막상 있어보니 생각 보다 그렇게 아픈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의 인식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가 보다. 어렸을 적 입원 경험도 있으니 성인이 되면 좀 다르지 않을까 싶기도한데 그러지 못했다. 십몇 년 전 병원에 심한 두통으로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분명 응급 상황이었는데도 나는 미련스러울 정도로 버티다 버티다 결국 구급차를 타고 갔던 것이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두통이 일반적이지 않고,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다면 가급적 지체하지 말고 병원에 빨리 가 보는 것이 좋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병원엘 가는 것을 지옥에 가는 것만큼이나 싫어한다. 살아오는 동안 병원 신세 한 번 안 졌다는 사람이 있다면 무슨 계급장처럼 부럽다. 자꾸 마음은 병원에서 멀어지고 싶은데, 몸은 병원과 가까워져야 할 운명이 되어가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좀 더 솔직해지자. 내가 정말 무조건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일까? 물론 싫어하는 건 사실이지만 무조건은 아니다.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는데 무조건 안 갈 수는 없지 않는가? 요즘 병원은 옛날 병원과 달라서 인테리어가 잘 돼 있고, 사람들도 친절해 딱딱하다는 인상도 없다. 문제는 적재적소란 말이 있듯이, 언제 가야하고, 언제 가지 말아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더란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는 꼭 병원에 갔어야만 했다. 두 경우 다 의사는 조금만 늦었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말했으니까. 물론 긴 세월을 두고 있긴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두 번 들으니 그것도 의사들이 자신의 위신을 좋게하기 위해 의례껏 하는 소리 같아 별로 마음에 두고 있지는 않지만, 두 번 다 응급상황이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또 그렇지 않은 것이, 작년 이맘 때 나는 갑자기 몸이 안 좋아 졌었다. 그래서 정말 또 다시 병원에 실려 가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다못해 이러다 죽는 것은 아닌지 겁 먹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두통으로 병원 신세를 졌던 그때 의사는 앞으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런 증세가 더 빨리 자주 나타날 수 있을 거라고 경고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문제의 두통을 또 다시 겪게 되는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나는 그때를 정점으로 다행히도 서서히 회복을 보이고 있었고, 지금은 생활하는데 별 지장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책은,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얘기하면서 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자연적으로 낫게되는 병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저자만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치유를 연구하고 믿는 의사들 하나 같이 하는 얘기다. 그 말이 맞다면 작년에 나는 그렇게 몸이 안 좋아졌을 때 무턱대고 병원에 갔으면 얼마나 억울할 뻔 했을까. 하다못해 지금까지 내 인생 두 번의 병원 신세도 자연치유력을 믿는다면 굳이 안 가도 되는 걸 갔던 것은 아닐까? 의문스러울 정도다. 

 

내가 의사였거나, 집안에 누가 의사였다면 몸의 갑작스런 반응에 그렇게 많이 당황했을 것 같지 않은데,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몸의 상태와 성급한 마음이 조건반사처럼 병원을 생각하게 된다. 하다못해 나는 웬만해서 안 갈 것을 남에겐 너무나 쉽게 병원에 가 보라고 권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젠 몸에 이상이 생겼다고 무조건 겁부터 먹을 나이는 아니라고 본다.  

 

책 역시 딱히 언제 병원에 가 보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굳이 가야한다면 '액년' 그러니까 운수가 나쁜 해에 가 보라고 충고한다. 남자의 경우 25세, 42세, 61세고, 여자는 19세, 33세, 37세 전후다. 물론 이 액년에 나쁜 일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통계는 없지만, 의학적으로 봤을 때 40세 전후한 액년에는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고 권하고 있다(139p). 나의 경우도 저자가 제시한 해에 특별히 몸의 이상징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있다고 해도 그 나이를 비껴가고 있다. 하지만 40세 전후해서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말은 일리는 있어 보인다. 내 몸 40년이면, 자축하고 위로하는 의미에서라도 건강검진을 받아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올해 유난히도 이 책을 비롯해 건강 서적을 많이 읽게 되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일본 의사의 저작물을 많이 읽게 됐는데,  그들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병원을 너무 좋아하지 말라는 것이다. 약 또한 너무 좋아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TV에 출연하는 의사마다 병원에 오라고 거의 홍보 수준으로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특히 암을 다룰 때 항암제가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고, 민간요법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병원에 오라고 하는 것이다. 글쎄, 내가 그런 책만 읽어서 그런가? 아니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매스컴이 병원을 맹신하도록 조장하고 있어서일까? 아무튼 확실히 일본과 한국은 뭔가 많이 달라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이 겉표지에 실린 저자의 사진이 확실히 인생을 통달한 편안한 느낌의 할아버지다. 심장 전공의라기 보단 꼭 한의학을 전공했을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책도 거의 놀라우리만치 간결하고 깔끔하단 느낌마져 든다. 내용도 거의 특별할 것도 없어보인다. 그냥 건강 서적을 유의해서 읽어 온 사람이라면 한 번 요점 정리하는 느낌이랄까?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의사 생활을 오래 한 경험 때문일까? 매 글 말미에 의사의 사명 내지는 인간적 조언을 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이런 의사가 요즘엔 맞지 않으니 이런 말을 했겠지 싶다. 과연 이런 자본주의 세상에서 인술을 펼치는 의사가 그렇게도 없는 것일까?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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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11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일본도 '병원 광고 홍수'였을 테지만, 이제는 일본 시민 의식이 높아지고, 일본에서 의사 되는 사람도 의식이 높아지니, 이런 책이 꾸준히 나오고, 한국사람도 조금씩 의식이 높아지니 이제 이런 책도 번역이 되리라 느껴요.

다만, 한국 의사는 아직 의식이 높아지지 못했기에, 한국 의사는 이런 책 못 쓰지요.

일본에는 '티벳에 가서 티벳 의사가 된 사람'도 있답니다. 이런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기도 하고요.

stella.K 2013-12-12 16:50   좋아요 0 | URL
오, 그런 사람이 있군요.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페크pek0501 2013-12-12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치유력에 대해서 의사로부터 직접 들었어요.
제가 몸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 갔을 때인데 약을 주더라고요.
제가 물었죠. 만약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니냐고요.
그랬더니 자연치유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넘어져서 몸에 상처가 나는 경우에도 약 바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치유되듯이
그런가 봐요. 자연치유란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 가요.

나이 들면서 자신 없어지는 것, 건강인 것 같아요.^^

stella.K 2013-12-12 16:52   좋아요 0 | URL
그럼 약 안 드셨겠네요.

맞아요. 예전엔 무조건 나이드는 거 싫었는데,
지금은 나이들어도 좋다. 아프지 않게만 살았으면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