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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선 여인들 - 역사의 급류에 휩쓸린 동아시아 여성들의 수난사
야마자키 도모코 지음, 김경원 옮김 / 다사헌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나니 왜 이리 마음이 복잡한지 모르겠다.
읽을 땐 이런 역사가 있었나? 놀랍다가도, 끝에가선 뭔가 불온한 생각이 들었다. 지식을 넓히기 위해 독서를 해야하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어떤 책이든 자신이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대해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과연 무엇인가? 이 책은 나에게 좋은 책인가에 대한 물음은 한 번쯤 묻고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이 책 <경계에 선 여인들>이 일본 사람이 아닌 제3국의 작가가 썼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다. 이 책이 아무리 잘 쓴 책이라 하더라도, 일본이란 나라가 우리나라에 행한 원죄 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작가도 자국이 지은 원죄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자국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기술하지마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어느 부분에선 너무 솔직해 혹시라도 저자가 자국의 극우파들로부터 위협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우려가 될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일본의 극우파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는가?
그럼에도 작가가 이 책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각 장마다 일일이 문헌들을 수집하고 꼼꼼히 읽은 흔적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사례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어 역사서라도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아 흥미로웠고, 평이하게 쓴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이 책은 다소 한계는 있어 보인다. 제목이 그렇다고는 하나 이 책은 '아시아 여성 교류사'라고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역사적 배경을 일본의 태평양 전쟁이라고 한정했을 때 그 범위가 너무 좁은 것은 아닌가 한다. 어찌 여성 교류사가 태평양 전쟁 전후에만 국한될 수 있겠는가. 그 이전에도 있었을 것이고, 그 이후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태평양 전쟁을 배경으로 했다는 것은, 저자 역시 일본 편향적 시각에서 어떤 이유로든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일 게다.
그런데 읽다보면 처음엔 일본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옹호하지 않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이는 저자가 일본을 옹호하고, 안하고를 떠나 그 시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가감없이 보여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이를통해 일본이 아무리 군사독재를 대내외적으로 펼쳐 나갔더라도 그 나라 국민이 모두 다 행복했던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일본이 아무리 조선을 신민화 했을지라도 그 나라 국민 모두가 행복했던 건 아니라는 것이다. 행복했다면 권력을 가진 정치가를 포함한 상류층었겠지.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일본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는 피해의식을 다소간 완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전쟁은 피해국이나 가해국이나 여성과 아동, 노인에겐 너무 가혹하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제 7장의 내용을 보면서, 조선이 해방됐을 때 우리나라는 과연 일본인들에게 중립적인 태도로 일관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조선이 해방되자 기다렸다는 듯 일본인에 대한 보복을 감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매스컴에 너무 길이 들여진 나머지 우리가 일본에 대해 어떤 식으로 보복했는지에 대해서 알아 본 적이 없다. 그저 피해입은 사실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쇄뇌 당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매스컴이란 가치 중립적인 것이라고는 하나, 또한 그만큼 자국을 위한 도구도 없지 않은가?
물론 내가 이렇게 썼다고 해서 누가 좌파적 성향에, 일본을 옹호하는 성향까지 보인다라고하면 그건 확실히 지나친 편집증일 것이다. 그렇게 까지는 오버하지는 말자.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처음엔 저자의 솔직한 태도에 경의감마저 들다가도, 나중엔 이거야 말로 오버 센스는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저자에겐 좀 미안한 얘기지만, 일본이 한때는 강대국이라고 할지 모르나 우리도 강대국의 국민으로 살았다고 해서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고, 우리도 힘들었다고 징징대는 인상을 지울 수 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난 7장이 그런데, 논의의 시작은 좋았다. 조선 기독교 남성과 기독교 일본 여성이 서로의 반려가 되어 조선의 고아들을 돌본다는 건 확실히 이념을 넘어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나온 이야기를 읽어보면 왠지 결국엔 고진감래 끝에 일본 여성이 승리한다는 뭐 다소 신파스러운 이야기로 끝을 맺는 분위기라, 다 읽고 나면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뭐란 말인가? 어쨌든 끝까지 (교묘하게)일본이 잘 났다는 건가? 역사서를 역사서로 바라보지 못하고, 이런 치졸한 생각이 고개를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이 글 처음에, 이 책을 일본인이 아닌 제3국의 사람이 썼다면 차라리 낫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라고, 한편 또 드는 생각은 이 책을 달리 바라볼 수는 없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국가의 개인에 대한 폭력'이다. 그것에 관해서 '제 3 장, '일본의 성노예'의 비극'을 중심으로 그 얘기를 해 볼까 한다.
작금의 사안이 사인인만큼, 내가 저자에게 감사했던 건, (다른 장도 그렇긴 하지만 특히) 3장을 통해 종군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 줬다는 것이다. 이미 보도를 통해 접했지만, 일본의 극우파들은 미국에 있는 자유의 소녀상을 철거해 달라고 요구했다 철퇴를 맞았다. 언제까지 그들은 역사를 망각한 척 할 건지 모르겠다.
3장은 바로 왜 일본이 전쟁을 치르는데 위안부가 동원 됐어야 했는지, 이를 위해 조선과 중국 또한 제 3 국의 여성들이 어떻게 동원이 되었는지, 이들이 나중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여기엔 의외로 네덜란드 여성이 끼어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선 누가, 왜 종군위안부를 설치했느냐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저자는, 아마도 '군대'라는 조직은 으레 필연적으로 '창부'를 필요로 한다는 초자연적인 테제가 근저에 있는데, 이를 실현하려는 방책을 취하려 한 것은 아닌가 추측한다(150p)고 했다. 이것은 또한 공창 제도에 근거를 두고 있기도 한데, 전쟁에 동원된 인력은 주로 건강한 젊은 남성이라고 했을 때, 이들이 전쟁이 없을 땐 문제가 안 되겠지만 전쟁에선 자신의 성적 욕구를 풀어버릴 곳이 없으니 전쟁터에서 같이 이동할 수 있는 종군위안소가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종군위안소가 없으면 전쟁 현지에서 부녀자를 강간하는 사례가 빈번한데 이것은 엄연히 군법에 위반되는 것으로써, 적지 않은 군인이 군법을 위반하고 처벌을 받는다면 군사력이 현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로 종군위안소가 필요했다는 것이다(~151p).
과연 그럴듯한 논리이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드는 건, 정말로 종군위안소가 필요했느냐는 것이다. 물론 전쟁의 극도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긴장감 못지 않게 피로감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위안소에 갈 시간에 잠을 더 자는 게 낫지 않았을까? 게다가 평화시 일본의 성도덕의 체계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문란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오히려 전쟁을 빌미로 도덕을 해이시켜 버렸던 것은 아닐까? 전쟁이 애초에 말이 안 되는데 거기에 무슨 도덕과 윤리를 찾겠는가? 그런 건 평화시에 찾는 것들 아니겠는가?
또 하나의 의문은, 이렇게 종군위안이 일본 군인에게만 국한 된 것인지, 세계 다른 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세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없을지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유독 전세계에 일본 위안부 문제가 알려지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지금도 골머리를 썪히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일본의 종군위안의 문제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적인 결합'은 인류를 영속시키는 중요한 동기라는 점에서 그 관계의 근저에는 '자연'이나 '신'이 부여한 '행복'이 일본군의 강제적인 '성노예 정책'에 의해 철저하게 부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근대국가의 법률'을 위반한 행위임은 말할 것도 없고, '지상의 모든 생명에 대한 자연법'까지도 교란시키고 모독하는 행위였다(149p)
그러니 이것에 대해 일본이 뭐라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저렇게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종군위안의 문제를 시인하는 꼴이나 다름이 아니겠는가? 중요한 건 이 문제에 대해 성숙한 태도를 보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인데, 그런 점에서 일본은 아직도 미성숙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또 따져봐야 하는 건, 그 시대 일본의 모든 군인들이 다 성적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종군위안소를 좋아했느냐는 것이다. 물론 군국주의에 소수가 존중 받아을리 만무했겠지만, 분명한 건 모든 사람들이 전쟁을 찬성하지 않았던 것처럼, 종군위안 역시 찬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종군위안부들 대부분은 영문도 모르고 착취를 당해 대부분은 불행한 길을 갔지만, 또 몇몇은 그 지옥해서 필사의 탈출을 하는데 성공했다. 거기엔 또 종군위안부를 반대했던 군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위안부와 함께 군대를 탈출해 삶을 꾸리다가 종전을 맞이하기도 했다고 한다(물론 이건 0.1%도 안 되는 아주 운 좋은 케이스일 것이다).
나는 여기서 바로 '국가의 개인에 대한 폭력'을 말하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해국이라고 해서 폭력이 없는 것이 아니고, 피해국이라고 해서 없거나 작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의 개인에 대한 폭력은 어느 나라나 다 있을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의 경우를 다루긴 했지만, 일본이 가해국으로서 피해국인 한국 역시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로인해 국민의 삶을 불행으로 내몰리게 했다는 점에서 일본이 한국에게 저지른 과오에 비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지도자를 잘못 세웠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역사가 끝임없이 가르쳐 주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국가라도 개인에겐 국가가 있어야 한다. 나라 없는 개인이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 역사가 또한 가르쳐 주고 있지 않는가? 이건 정말 모순이고, 부조리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자. 나는 이 책을 읽었을 때야 비로소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무엇을 했을까?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울 줄만 알았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과거의 정부를 대신해서 사죄하려 했는가? 조금이나마 보상하려고 노력했는가? 묻고 싶다. 어쩌면 일본이 이 문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 보다 그들을 적극 대변해 주고, 보호해 주지 못한 우리나라 정부가 더 문제는 아닐까? 그래서 일본이 너희들도 책임지기 싫어하는 것을 우리가 왜 책임지려 하느냐며 맞받아치는 건 아닐까? 이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책을 읽은 나의 이 글의 결론은 이것이다. 여인, 아동, 노인 등이 보호받지 못한 나라는 결코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없으며, 그 나라에 사는 남성 역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주권을 올바로 행사하지 못한 나라는 강대국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일본과 우리나라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좋은 나라는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책을 읽으면 일본 여성의 의식구조가 어떤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점만 유의한다면 이 책은 나름 읽어 볼만한 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