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야 진짜 - 어른의 어른 후지와라 신야가 체득한 인생배짱
후지와라 신야.김윤덕 지음 / 푸른숲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엮은이 김윤덕 기자는 후지와라 신야를 기꺼이 "싸부"라 칭했다. 현재 신야는 일본내에선 무라카미 하루키나 시오노 나나미 보다 더 유명하고 사랑받는 작가라고 한다. 하지만 역시 우리에겐 좀 낮선 사람은 아닌가 싶다. 그래도 그는 그전에 <인도방랑>이나 <티베트 방랑>, <아메리카기행> 같은 책을 내놨다고 하니 매니아층이 나름 있긴 있는가 보다. 김윤덕 기자도 처음엔 그를 잘 몰랐다가 이런 일련의 책을 읽고 그를 싸부로 까지 모시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야 자신은 김윤덕 기자뿐 아니라 아니 다른 누구의 "싸부"가 되길 기꺼워 할까 싶다. 내가 이 책을 읽어본 바에 의하면 그는 딱히 누군가의 싸부가 되길 원하진 않는 것 같은 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싸부로 부를테면 불러라. 그거야 그쪽 사정이지 내 알 바 아니다. 뭐 이런 태도다. 그만큼 그는 그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김윤덕 기자도 말했지만, 니코스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를 닮아있었다. 

 

이에 대해 김윤덕 기자는, 그에겐 치명적인 마력이 있다. 삶에 대한 놀라운 통찰과 안목, 그것을 거침없이 내뿜는 용기, 그리고 오랜 여행을 한 사람의 갖춘 현자의 풍모다. 무엇보다 나는 신야가 나이 든 체하지 않아서 좋다(90쪽)고 전하고 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어느 날 본업인 기자를 접고, 잘 찍지도 못하는 카메라를 달랑 매고 인도를 여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생수와 야채를 가득 싣고 방사능 피폭 현장을 달려 갔고, 시부야 밤거리를 떠도는 10대들을 만나고, 창부과 기꺼이 어울리고 그들의 친구가 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한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말이다. 책띠 귀퉁이에 그의 사진이 조그맣게 찍혔는데 조금은 까칠한 더벅머리를 하고 있다. 그것이 영락없는 조르바 빙의다. 

 

과연 그를 김윤덕 기자가 "싸부"라 할만도 하겠다 싶다. 그러고 보니 나도 20대 말 그런 "싸부"를 만날 뻔 했던 적이 있다. 나의 글 쓰기 선생님이었다. 이 선생님을 직업으로서의 선생이 아닌 정말 마음을 다해 부를 수 있는 싸부가 아닐까 했던 것이다. 그 선생님도 더벅머리였고, 체 게바라를 좋아했으며, 정기적으로 히말라야를 오르내리는 산사나이였다. 그리고 선생님에게서 뿜어내는 탐욕스러우리만치 강한 지적 욕구와 카리스마. 이만하면 나의 싸부가 되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선생님은 나의 선생님인 건 사실이지만 "싸부"로 모시기엔 어딘가 결정적으로 어긋나 있었다.

 

그것은 이 책에서 신야도 지적한 사항이지만, 결정적으로 나의 선생님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좌중을 압도하는 끊이지 않는 입담이 선생님의 장점이자 단점이 되어 나를 '치명적 마력'으로까지는 이끌지 못했던 것이다. 그냥 선생님도 늙어가는 평범한 남자란 생각을 했다. 그렇다. 잘 듣는 사람. 나의 선생님에겐 없는 그걸 신야는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10대 아이들과도 어울리는 것이겠지.

 

이 책은 후지와라 신야와 김윤덕 기자가 나눈 대담집이다. 대담집의 매력은 아무래도 그 사람에 대해 다이제스트로 알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자서전이나 고백록처럼 혼자 떠들지 않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교감할 수 있어 좋고, 누군가 나에 대해 객관적으로 써 줄 인터뷰어가 있다는 게 고맙기도 할 것이다.

 

내게 있어 가장 부러운 건, 후지와라 신야가 (훌륭한)방랑자라는 점일 것이다. 자유인에게 있어 여행 곧 방랑은 특권이자 전부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그는 여행을 앞두고 정보를 수집하려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패키지 여행은 더 더욱 권하지 않는다. 불안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원하는 것인데 그러지 말란다. 길을 잃어버리면 좀 어떤가? 거기서 맞닥트리는 것에 온전히 나를 맡겨 보란다.

 

여행을 언제 해 봤는지 모르겠다. 내가 항상 여행을 주저하는 것도 그 이유도 그 이유가 크다. 길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세상이 험하다는 것. 그래서 늘 여럿이 하는 걸 원하고 가서도 가급적 고생을 덜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계산하고. 그래서 난 갈수록 돈 많은 사람,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다. 어디 어디를 여행해 봤다는 사람이 부러워지고 있다. 

 

그는 독특하게도 음식과 여자를 좋아하지 않으면 여행하기 어렵다고 했다. 좀 우스웠지만 공감이 간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도 호색한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여행을 할 수 있었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상대가 누구든 일생에서 많은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것이 용케도 인간으로 태어난 특권이 아니겠냐며(175쪽). 나도 그 말에 동감이다. 배우자를 불행하게 하지 않는다면 약간의 설렘을 갖게 하는 만남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것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되어지는 여러 가지 징후 중 하나가 사람을 상대한다는 게 귀찮아 진다는 것인데 사람이 혼자 있으면 그만큼 노쇠해질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담에서 눈에 들어 온 건 신야의 세상 살아는 이야기다. 특히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비슷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갈수록 늘어나는 운둔형 외톨이의 문제라든지, 고독사의 문제는 우리나라도 심각하다. 단지 일본과 우리나라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의 젊은이는 여간해서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도전하는 정신이 아직 있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긴 한다.

 

특히 신야는 일본의 대지진이나 쓰나미 등 국가적 재난에 대해 아주 나쁘게 마는 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분명 일어나지 않으면 좋았겠지만 그로인해 운둔형외톨이들이 자신의 방을 박차고 나와 함께 봉사의 손길을 보태고 있지 않냐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건도 불행하게만 볼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물론 희생자들에겐 불행한 일이고, 그런 사고가 애초에 안 일어나면 좋았겠지만, 우린 그 때문에 함께 울었고, 힘을 보탰으며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도 어떤 운둔형 외톨이가 봉사에 힘을 보탰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중요감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건 극단적이고 불행한 방법으로만이 개인주의의 폐해가 줄어든다면 그건 확실히 비극적이고 권할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이제 그 나라나 우리나라나 개인주의와 그로인한 폐해를 어떻게 치료해 나갈 것이냐가 관건일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공동체적 삶과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며 함께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 봐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는 별로 후회를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지식인이라면 강박적으로 할 수만 있으면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그런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나도 좀 그런 것에서부터 자유로워야겠다고 생각한다. 난 왜 이렇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생에 있어 별로 후회를 하지 않는 그는 죽음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만이 죽음의 흔적을 남긴다. 야생동물은 죽을 때가 되면 어디론가 숨는다. 하다못해 그 큰 코끼리도. 하지만 모든 사람이 죽음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신야는 오래 전 그랜드 캐니언을 여행하다 자동차가 추락한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것도 비교적 최근이 아니고, 몇 년된 것처럼 보이는데 자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런데 그는 그곳을 내려오면서 경찰에 알렸는데 그것이 잘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것은 무신론자인 그가 죽으면 무로 돌아간다고 믿는 평소 그의 죽음관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도 최근 가족과 사별을 겪으면서 또한 예전만큼 젊지 않다는 것에서 어떻게 살까, 어떻게 죽게 될까를 자주 생각해 보곤 한다. 삶에 미련을 갖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는 일이 전보다 많아졌다. 그만큼 생에 미련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죽을 땐 나도 야생동물처럼 아니면 그랜드 캐니언에 쳐박혔다던 그 자동차의 주인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하지만 아마 가능하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는 나의 죽음에 염을 해 주고, 누군가는 화장(火葬)을 해 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려주겠지. 그것을 고스란히 산 사람에게 맡긴다는 게 왠지 미안하고 안쓰럽다. 하지만 아직도 구조되지 못한 바다밑의 주검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장례라도 치룬 것에 위안을 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의 장례도 누구에겐 위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신야를 그전부터 알고 잘 있었다면 좀 더 많이 공감하며 읽었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김윤덕 기자가 산야를 너무 많이 애정했던 탓일까? 끝에 가선 사족 같이 느껴져 좀 지루한 감이 느껴졌고, 의욕이 과한 것인지 약간은 산만하게도 느껴졌다. 뭐 그만큼 독자로 하여금 산야가 더 많이 알려지길 바랬던 것도 같다. 기행문을 철학서적처럼 썼다니 그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6-18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9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 - 그리움 많은 아들과 소박한 아버지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박동규.박목월 지음 / 강이북스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옛 시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처음엔 잊혀진 옛 시인의 삶의 궤적을 알아 보자고 읽기 시작했다. 나는 또 이런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더구나 박목월이다. 박목월이 누구인가?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학창시절 이 이름 한 번 듣지 않고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땐 그런 말이 없어서 그렇지 박목월이야 말로 '국민 시인'이라고 해도 그 말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는 유명한 시인이었다.

 

박동규 교수가 박목월 시인의 아드님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가 아버지 박목월의 일기와 산문 등과 함께 아버지를 기억하는 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 책을 펼쳐 들기도 전에 필경 나에겐 박목월 시인을 아는 것과 동시에 아버지에 대한 향수를 건드리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읽는 내내 속으로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뭐라 말할 수 없는 아련함과 애틋함이 느껴졌다. 

 

아, 옛 시인은 어디가고 우린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이 시인을 기억해야 한단 말인가? 그게 참 뭐라 말할 수 없이 아련하고, 가슴이 뭉클하다. 그가 살아 있을 땐 생존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존경과 애정을 보낸 시 애호가들도 많았으리라. 그러나 그는 생각 보다 그리 긴 세월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아들을 통해 이렇게 그의 얘기를 듣는 것이다.

 

 

시인의 인품

 

읽고 있으려니 새삼 박목월 시인 보다는 박동규 교수가 더 많이 보인다. 지금은 좀 뜸한 편이긴 하지만 한때 박동규 교수를 TV에서 자주 볼 기회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교수니 나름의 권위와 카리스마 느껴질 수도 있건만, 노교수는 그런 것이 전혀 없이 항상 겸손하고 인자한 인상만 풍겼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평소 의문을 품곤 했는데 이 책을 읽고서야 그 의문이 풀렸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교수의 그런 인품은 필시 아버지 박목월의 영향이었겠구나 싶었다.  

 

박목월 시인은 정말 인자한 인품을 가졌다. 아버지로서 정말 자녀를 많이 사랑했구나 느껴진다. 여느 아버지 같으면 자녀의 크고 작은 실수에도 화를 내거나 엄하게 꾸짖을 수도 있을 텐데 시인은 무슨 사랑이 그리도 많은 걸까, 모든 자녀를 가슴으로 끌어 안는다. 예를 들면, 아들 동규가 남의 자전거를 처음 타고 중심을 못 잡아 어느 가게로 돌진해 사고를 냈을 때도 아버지는 아들을 야단치지 않고 오히려 품에 끌어 안아 줬다고 기술하고 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시인다운 기품과 온유함이 묻어 있어 오히려 과연 이런 아버지가 있을 수 있을까? 의아스러울 정도다. 모르긴 해도 박목월 시인은 대대로 내려오는 양반의 가문의 자제는 아니었을까 의문을 가져 보기도 한다. 그만큼 흐트러짐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동규)은 아버지 살아생전 시를 쓰기 위해 연필을 깎는 모습을 자주 뵙곤 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아들은 이렇게 기억한다.

한밤 아버지 방 앞을 지날 때면 연필심을 깎는 삭삭 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왜 꼭 연필로 시를 쓰시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연필을 깎으며 마음을 가다듬게 되지. 어떻게 마음가짐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길이 열리는 거야." 하셨다.(66p)

이 구절을 대하고 보니 나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했으며 그것에 대해 얼마나 믿고 행하였을까를 생각해 본다. 나의 행동은 10대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뭐든 하게 되면 하는 거고, 못하게 되면 못하는 거지 그다지 욕심이 없고 의욕이 없다. 그래서 옛말이 그른 게 없는가 보다. 될성 부른 나무 떡닢부터 알아 본다고 하지 않던가. 언제부턴가 나에게 습관으로 남은 몸짓 하나, 행동 하나가 나의 인생의 길을 열수도 있고, 닫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나의 몸사위를 돌아보게 된다.

 

 

시인의 마음

 

잊고 있었다. 나도 사춘기 시절 아주 잠깐 동안 시를 좋아했고 그래서 시인이 되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시를 잊고 살았다. 왜 그랬을까? 그 시를 썼던 시인의 생각을 유추하는 게 귀찮아서인지도 모른다. 내 마음도 내가 모를 때가 많은데 언제 또 남의 마음까지 유추한단 말인가? 

 

또한 시인은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돈 안 되는 시를 백 날 써서 뭐하겠는가,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느샌가 모르게 시가 멀어졌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서야 시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목월 시인의 중학 시절 이야기'를 읽고 나서야다.

 

목월 시인이 돈이 없어 그때까지 지내고 있던 자취방을 나와야 했을 때 담임 선생님 배려로 학교 온실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가마니떼기를 깔고 누워보니 유리창 위로 별들이 보였다고 한다. 그때를 아버지 목월 시인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놈아, 내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별을 보며 내 신세가 가련하구나, 했으면 지붕이 있는 집에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했겠지. 그러나 나는 별들이 속삭이고 가는 이야기를 글로 쓰려고 했으니 시인이 되었지.(91p)" 한다. 또한 아들은 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고백한다.

 

그렇다. 시인은 무한 상상력의 소유자다. 아버지 대나 아들의 대나 못 먹고, 못 살았던 시대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절을 기꺼이 온몸으로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시인의 정신이 있었기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시인의 마음, 시인의 정신이 없다면 이런 척박한 세상을 어찌 헤쳐 나갈까? 사람이 빵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다 잘 사는 게 아닌데 말이다. 시인의 마음 속에 상상력이 없다면, 생명을 잉태하는 씨앗(시어) 하나 제대로 품고 있지 못하고서야 어찌 시인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생활인으로써의 박목월

 

읽다보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얼마나 피곤하고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 왔을까가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박봉에 한 아내의 남편이요, 슬하의 다섯 남매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었다. 거기엔 남자 박목월은 없다. 그래서 그것은 요즘 흔히 회자되는 남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아 탐색은 같은 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게 나에겐 박목월 시인이 하나도 쓸쓸하다거나 측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자아 탐색이란 것도 요즘 같이 어느 정도 살기 좋아졌을 때 묻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시인에게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과 시인으로서 시를 쓰는 삶을 계속 영위해 나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그런 질문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자신 보다 대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더 가치있고 존경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세상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서 내가 더 중시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자꾸만 자신이 중요하다고,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라고 말한다. 물론 그 말이 틀리지 않다. 이 사막 같은 세상에서 내가 나를 사랑해 주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주겠는가? 하지만 그러므로 해서 남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어떻게 역할을 할 것인가가 약화된 건 아닐까? 그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오히려 그런 현대의 자아 사랑이 더불어 사는 책임을 회피하고 약화시키는 밀미를 제공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오늘 날 짐승남이니 품절남이니 하는 것도 남자의 상품화에서 나온 신조어라고 생각하는데, 가끔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묻고 싶다. 그런 것들은 보기에만 좋은 것일뿐 사람의 본질을 못 보고거나 왜곡시킬 수가 있다.

 

그래서 평생 시와 가정만 생각했던 박목월 시인이 요즘의 짐승남이나 품절남이란 용어를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 감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우리가 박목월 시인을 존경하는 건 이런 건조하고 척박한 세상에 별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시인이고, 돈 때문에 병 걸린 아내를 선뜻 입원시킬 수 없는 남편 때문이고, 어쩔 수 없이 학업과 힘든 세상으로 내몰아야 하는 자식을 지켜 볼 수 밖에 없는 아버지기 때문에 존경하는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흐르면 남성의 남성다움도, 여성의 여성다움도 없어지거나 약화된다. 그런 사람에게 늙어도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잃지 말라고 일깨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 보다 존경 받는 노인이 되는 것을 아는 것이 더 값지고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이렇게 이 책은 한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거기서 잊혀졌던 옛 가치를 음미해 보는 것이다. 

 

 자신이 먼저 죽을지도 모르고 아내 건강을 걱정한 박 시인을 보며 23년 전 돌아가신 내 아버지도 생각이 났다. 아무리 자식 키우는 게 힘든다고 해도 역설적으로 그때만큼 보람있고, 근면하게 살았던 때가 또 있을까?   

    

읽는 내내 가슴이 따뜻했다. 그동안 몰랐던 박 시인 대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메마른 세상에 정말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귀한 책을 엮어 낸 박동규 교수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14-06-12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실 박동규 교수님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많은 긍정적 면이 있겠지만, 아버지의 후광과 학벌에 의한 권력, 사회에 대한 인식의 편협함 등.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이 너무 부정적이었습니다.

박동규 교수님이 이야기하신 아버지 박목월은 Stella.K 님의 윗글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훌륭한 아버지 밑에 반드시 훌륭한 아들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되었죠.

stella.K 2014-06-12 14:20   좋아요 0 | URL
헉, 박 교수에게 그런 이면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인상만 보면 정말 선한 인상인데 말입니다.
저야 박 교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그저 인상만 가지고 쓴 것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면 박 교수도 문제는 문젭니다만,
너무 엘리트만을 좋아하는 언론이나 사회가 더 문제란 생각도 듭니다.
가끔 방송을 생각할 때 똑똑한 사람 선별할 생각 말고 진정성에 촛점을
맞혀줬으면 좋겠는데.. 뭐 그런 생각도 많이 했거든요.
마립간님 댓글 보니 아무래도 어제 썼던 저 리뷰는 뭔가 잘못 쓴 건 아닌가
괜히 민망해지는군요. 제가 워낙 팔랑귀라...ㅠㅋ

마립간 2014-06-12 14:08   좋아요 0 | URL
아니지요. 제가 단 한번의 만남(강연)으로 속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분은 그 강연을 그렇게 안 들었을 수도 있고. 일단 제가 그렇게 느꼈고, 함께 강연을 들었던 저의 지인들은 저의 생각에 동조를 했다는 정도입니다.

페크pek0501 2014-06-13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좋아해서(호감 가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다음에 태어나면 교수 직업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야지, 했을 정도입니다만(내가 교수가 되는 건 싫고요ㅋ), 뒤에 알게 되었죠.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성격이 좋기 힘들고 인격이 훌륭하기 힘든 사람들이구나, 하고요. 아마 자기가 한 분야에서 최고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인 것도 같고 사회에서 높게 대우해 주는 경향 때문인 것도 같고 또 학생들로부터 대접 받는 게 익숙하기 때문인 것도 같아요. (대접 받을 줄만 알고 남을 대접할 줄 몰라요.)
자존심 세고 속 좁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몰라요. 제가 알기론 교수들의 80퍼센트 가량이 그럴 것 같아요. (마~아무개 교수님은 뺄게요.ㅋ)

겉으로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건 쉽지요. 하지만 어떤 일로 자존심 상하면 그 본성이 드러나고 말아요.
그래서 저는 이런 결론을 내렸죠. 사윗감으론 대학교수가 노우.... 라는 것.

글 잘 읽고 엉뚱한 소리만 하고 갑니다요...


stella.K 2014-06-14 17:52   좋아요 0 | URL
ㅎㅎ 언니! 넘 웃겨요.
예전엔 엘리트가 인격적으로도 완벽하고 좋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꼭 그렇지 만도 않더군요. 특히 열등감이 좀 심한 것 같더라구요.
정말 나이들면서 중요한 건 인간성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이 책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예요.
요즘엔 나름 열심히 리뷰를 쓰는데도 공감 받기가 쉽지 않네요.
또 땅 파야하나 했는데 언니가 구해줬어요. 고마워요.
아무래도 요즘 유행하는 남성상을 박목월 시인과 대비시킨 게
좀 그랬나 봐요.
아직도 꽃미남이나 짐승남이 더 좋은가 싶기도 하구요.ㅋㅋ

 
당신의 책을 가져라 - 지식경영시대의 책쓰기 특강
송숙희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팽개쳐 둔 책

 

글 쓰기에 관심있는 사람치고 그 분야의 책 한 권쯤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분명 나도 대여섯 권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손 재주 없는 사람이 연장 탓하고, 공부 못하는 사람이 참고서 탓한다고, 글 못 쓰는 사람이 쓰라는 글은 안 쓰도 글 쓰기에 관한 책만 열심히 본다는 말이 있다.   

 

그래도 나에게 있어서 글 쓰기에 관한 책을 얼마만에 한 번씩 읽어주면 묘하게도 활력을 얻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글 쓰기에 관한 책은 글 쓰는 사람들에겐 비타민 같은 거란 생각이 든다. 모름지기 어떤 분야든 그 분야에 관한 책은 희비가 엇갈리고, 성패가 확실히 좌우 되지만 그 분야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즉 노하우에 관한 책은 못해도 기본은 한다. 그러니까 요즘 글 좀 써 봤다는 사람들이 글 쓰기 노하우에 관한 책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책은 몇년 전 아는 지인의 사무실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가져 온 책이다. 나도 글 잘 쓰길 몸살나게 바라는 위인이니 이런 책을 발견하면 그냥을 못 넘어가는 건 당연했다. 마침 그 지인도 흔쾌히 내 준 터라 가져 왔지만 나는 몇 장 읽다가 방 한구석에 방치해 두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글 쓰기에 관한 책이라고 하지만 나는 주로 소설 쓰기에 관해 관심이 많은데 뭔가 자기계발류의 책처럼 다루고 있는 것 같아 막상 읽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안 읽었으면 큰일 날뻔한 책 

 

그런데 최근 책정리를 하다 문득 이 책을 발견하고 한 번 마음 잡고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 책 안 읽었으면 큰 일 날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자가 이토록이나 독자로 하여금 자기 책을 가지라고 열정적으로 설득하고 있는 것인지, 그 설득에 감동하고 나도 정말 내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드는 것이다. 

 

솔직히 그동안 읽으려다 포기했던 건 자기계발류인 이유도 있었지만, 사실 나에 관해 쓸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에 대해 뭘 써야할지 정말 막연했다.

 

하지만 정말로 없느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머리가 터져나가리만큼 쓰고 싶은 글은 많은데 이것을 도무지 글로 풀어낼 수 없어 끙끙거렸던 날이 어디 한 두 해인가? 그런 사람을 '그라포마니아'라고 한단다. 즉, 뭔가를 책으로 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나 욕구. 

 

그렇게 나는 오래도록 이 욕구를 풀어내지 못했다. 게으르기도 하거니와 과연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이 과연 책으로 나올 것이며, 읽어 줄 사람이 있기나 할 것인가? 거기에 대해 책에서 저자는 롱펠로의의 시를 인용한다.

"허공을 향해 화살을 쏘았네.

화살이 떨어진 곳이 어딘지 몰랐네(중략)

먼 훗날 뒷동산 참나무에서

나는 아직도 부러지지 않고 박혀있는 그 화살을 찾았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내 얘기가 뭐가 도움이 되겠어란 생각은 미리부터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안톤 체호프도 한마디 거든다.

"짚신도 짝이 있듯이 아무리 형편없는 작품도 읽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라"

 이 말은 확실히 나에겐 용기가 되는 말이다. 솔직히 글 쓰기에 관한 책을 꽤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몰라도 이렇게 말해주는 저자는 아직까지 못 만난 것 같다.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하게 돼 있다는 말도 있는데, 내 글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하는 이 오래되고 케케묵은 생각은 저 말 앞게 어찌보면 글을 쓰지 않기 위한 구실처럼도 느껴진다.

 

 

또한 이런 모든 생각을 뒤로하고 일단 써 보자고 독하게 마음 먹고 달려들지만, 왜 그리도 본론을 말하기 위해 서론이 끝나지 않고 있는 것인지, 클라이막스는 저만치 있는데 전개는 왜 그리도 장황한 것인지 결국 쓰다가 지레 지쳐 손을 놓은 적도 여러 번이다.  

 

이것에 대해 저자는 꼭 처음부터 단계를 밟으며 쓰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도 그의 인터뷰에서 했던 얘기다. 어디든 자기가 쓰고 싶은 부분부터 원고지를 채워 나가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부터 해라. 결국 중요한 것까지 다 하게 된다."(182p)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글 쓰기 작업을 최대한 편하고 자유롭게 하라는 말일 것이다. 

 

나에겐 위로가 되어 준 책  

 

이 책은 많은 부분에서 실제적인 조언과 지침을 주는 책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나에겐 위로가 되어준 책이기도 한다. 특히 저자의 <미루기를 조장하는 절대미신 5가지>는 정말 음미해 볼만 하다. 그중 "쓰다가 안 쓰면 아니 쓴 만 못하다."란 생각 때문에 아예 시작 조차도 못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설혹 어떻게든 쓰기 시작은 했지만 중간에 길을 잃어버리고 헤메다 결국 손을 놓아버린 글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고나면, 난 역시 안 돼하며 자괴감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완강하게 말한다. 

천만에! (쓰면)쓴 만큼 이익이다. 한계효용이라는 경제학이론도 있다. 쓰다 말다 하더라도 일단 써라. (182p)      

그런데도 쓰다가 안 쓰면 아니 쓴만 못하다는 말은 남들도 흔히 하는 말이다. 안 그래도 스스로도 자괴감에 빠져 있는데 남들 조차 그런 말을 해서 2차로 상처를 더 조장한다. 그럴 땐 저자의 저 말을 기억하면 좋겠다. 그것도 못하겠으면 경제학 이론 "한계효용"만이라도 기억하자.    

  

그런데 이 분야에 관한 책이 하나 같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 하나가 있다. 그것은 그냥 써라!다. 이 책도 그것을 그냥 비껴가지 않는다. 이제 이 말은 하도 많이 들은 말이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다. 하지만 이 말이 정말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라고 정말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정말 책을 써 낼 사람은 아닐까? 아닌 사람은 귀에 딱지도 안 앉을 테니까. 그리고 이 말처럼 사람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말이 또 있을까?

 

글은 왜 쓰냐고 묻는다면 쓰는 것 자체가 나에겐 위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쓰는 것을 통해서만이 진실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더불어 누군가 내게 작가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최근 이 타이틀을 달고 나온 책도 있지만), 나는 그야말로 아주 단순하게 말할 것이다. (책이 될)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많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그 일을 하는 것과 하고 싶어하는 것엔 많은 차이가 있다. 이제 하고 싶어 하지만 말고 그냥 해라! 이 세상 어딘가 누군가는 당신의 얘기를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어라.

 

출판 관계자 여러분께...    

 

요즘엔 출판 환경이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지긴 했다. 예전엔 정말 저명한 작가, 학자, 번역가들처럼 검증된 사람만 글을 쓸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인들도 책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책을 내 본 경험이 전혀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이렇게 된 것엔 인터넷, 특별히 카페나 블로그 활동이 주효했다고 보는데 그렇더라도 역시 한 개인이 책을 내는 건 녹녹치는 않다. 꼭 이 책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책도 알고보면 처음엔 얼마나 많이 퇴짜를 맞았는지는 심심치 않게 듣는 바다.

 

그런 걸 보면 책을 출판한다는 건 정말 복불복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한쪽에선 책을 쓰라고 하면서 정작 이 의지를 꺾는 건 출판사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누구보다도 좋은 책 내길 바라는 출판사가 이렇게나 안목이 없다니? 하며 혀를 끌끌차고 싶을 정도다. 그래서 출판 에이전시가 없는 우리나라로선 작가지망생들이 죽어라고 신춘문예나 무슨무슨 문학상에 목숨을 거는 거 아니겠는가? 난 정말 예전엔 작가가 되려면 꼭 이 관문을 거쳐야 작가가 되는 줄 알았다. 

 

자비 출판이란 것도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것에 관한 편견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우선 돈 있는 사람의 허영처럼도 느껴지고, 출판사의 정식 절차가 오죽 자신이 없으면 자비 출판을 하는가 하는 생각도 작용할 수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책을 쓰고자 원하는 평범한 사람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는 위험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꺼진 불도 다시 보랬다고, 아무리 퇴짜 맞은 원고라도 다시 한 번 더 봐 주었으면 한다. 또한 아무리 자본주의 세상이라고 하지만 꼭 승률이 있는 원고만 목 빼고 있지말고 여러 다양한 시도를 해 줬으면 한다. 출판 관계자들도 자신들의 안목을 100%로 신뢰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물론 전문가의 눈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글을 쓸 환경을 만들 것인가?         

 

사실 책은 세 가지가 충족이 되어야 한다. 우선 작가가 좋은 책을 쓰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출판사가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져줘야 하고, 독자 역시 좋아하는 분야, 좋아하는 작가의 책만 읽지 말고 여러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특별히 이제 막 책을 낸 사람들의 책을 읽고 여기저기 소문을 내줘야 한다. 그렇게 해야하는 이유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언제 책을 내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나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다니! 책을 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생각 보다 크다. 그러니 아무리 블로그나 SNS가 편하게 자신의 신변잡기를 자유롭게 쓰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만 운영하지 말고 자신이 잘 알고 있거나 관심있는 한 가지 주제에 깊이 있는 글을 정기적으로 올려 보라. 그 어떤 것이어도 좋다. 누구는 코 파기 가지고도 글을 썼다니 않는가?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책을 내자고 연락을 받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걸 혼자하고 있으려니 진척도 느리고 힘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글을 쓸 수 있는 여러 가지 환경 조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고, 또 이미 검증된 방법을 소개하고 있어 도움이 많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나는 나름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다. 혼자하지 말고 그룹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물론 글쓰기가 혼자하는 작업인 것은 사실이지만 글 쓸 주제가 있고 습작이 아닌 출판을 목적으로 글을 쓰는데 초보 작가들은 혼자 하기가 어렵고 진척이 더딜 것이다. 그럴 땐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끼리 그룹으로 작업을 해 보면 어떨까? 모임을 인도하는 출판 전문인 하나 있으면 좋고, 없을 경우엔 이런 책 하나 메뉴얼로 삼고 같이 하면 좋지 않을까?

 

나는 요즘 글 쓰는 작업에 있어서는 무궁화란 생각이 든다. 무궁화는 낮에는 활짝 피지만 밤이되면 봉오리를 오무리고 있는 꽃이 아닌가? 그렇게 내일이 있기에 오늘 희망으로 잠을 자지만 다음 날이 되면 여전히 꽃처럼 살지만 그 자리를 맴돌고 있거나 믿을 수 없을만큼 조금 글을 쓰고 하루를 마감한다. 그걸 반복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을 위해 하는 말이다.  

 

언니처럼, 누나처럼...             

 

책이 어느 장 하나 허투로 쓰여진 부분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정말 프로답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인용 부분이 인상에 남는데, 이걸 어떻게 다 정리해서 이렇게 적재적시에 써먹는 걸까? 부럽기도 하고, 셈이 나기도 한다. 

 

읽으면서 책을 내려면 정말 적극적이고 용이주도한 사람이 되야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비근한 예로, 나는 쓰고자 원하는 내용만 충실히 쓰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것은 출판사에서 해 주는 것 아닌가 하는 부분까지도 사실은 저자가 해야하는 것임을 세심하고 명료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것이 마치 깐깐하면서도 인정많은 언니 같고, 누나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저자는 친절하게도 자신이 현재 운영중인 카페 주소를 알려주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하라고 권한다. 

 

이 책은 현재 인터넷 서점에선 품절로 나오고 있다. 이런 좋은 책이 품절이란 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 책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리처드 J 라이더와 데이비드 A 샤패로는 <새로운 선택을 위한 선택>에서 다음과 같은 일이라면 당신 꿈의 본질, 평생 과업인 게 분명하다고 속개한다.
배운 기억은 없지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일
별로 노력하지 않고도 탁월하게 잘 하는 일
당신이 남들의 솜씨를 지켜보기보다 다른 사람이 주로 당신의 솜씨를 지켜보는 일
빨리 배우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지는 일 31P

'제대로 사는 인간'이란 정말 중요한 것에 힘을 몰아주고 나머지는 대충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한다. 에디슨은 평균 스무 시간씩 일했는데 그는 그것을 일이라 여기지 않고 공부라 불렀다.(44P)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4-05-25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글쓰기에 관한 책을 수십 권 읽지 않았을까 싶어요. 세어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제 독서목록을 보면 그럴 것 같아요. 처음 글을 쓰려고 했던 초창기엔 이런 책을 많이 봤거든요.
제가 독서를 늦게 시작한 편이라 남보다 못한 어떤 열등감 때문에 그런 것도 같아요.

요즘은 이런 책을 사 볼 땐 그저 복습한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으려 해요. 님의 말씀처럼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아 주기도 하고요. 어쨌든 여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제대로 사는 인간'이란 정말 중요한 것에 힘을 몰아주고 나머지는 대충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한다." - 이 문장에 꽂혔어요. 제게 필요한 말 같아서요. 일상이 복잡하여 한 방향으로만 갈 수 없는 현실이에요. 그래서 이 문장에 위안을 받습니다.

stella.K 2014-05-25 13:56   좋아요 0 | URL
요즘엔 글쓰기도 글쓰기지만 작가들의 삶을 다룬 책에 관심이 더 많이
가더군요.
그런데 이 책 정말 열심히 썼는데 공감이 많이 없네요.
글 속에서 저자의 열정이 느껴졌는데 말예요.ㅠ
정말 프로더라구요.

밑줄긋기 통합하니까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요.
한 페이퍼에 다 넣으면 너무 길어 지잖아요.
페이지 넣기도 없어졌어요. 투덜투덜~ㅠ
 
굿캐스팅 - 오디션과 촬영장에서 주목받는 카메라연기 레슨
안지은 지음, 양의진 그림 / 한권의책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대본을 쓴지가 올해로 꼭 20년이 됐다. 그렇다고 한결 같이 썼던 건 아니고, 중간에 잠시 쉰 적도 있으니 빼면 이럭저럭 14,5년을 써 오지 않았을까? 원래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아주 우연찮게 현재 다니고 있는 교회 주일학교에서 짧은 연극 대본을 쓰기 시작한 것이 개기가 되어 지금까지 이르렀다. 

나는 글을 쓴다면 소설을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격상 누구와 함께 뭘 한다는 게 나를 더 힘들고 지치게 하는 것이 있어 대본을 쓸 거라곤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도 해 봤더니 의외로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고, 계속 붙들고 있으니 작년엔 내가 쓴 '뮤지컬 손양원'을 우리나라 공연의 메카라고 하는 대학로에 올리는 기쁨도 누렸다. 

그 작품은 내가 마지막 대본을 쓴지 5,6년만의 일이기도 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예전엔 그렇게 대본을 쓰니 일에 대한 욕심이 났다. 그래서 괜히 연출까지 과욕을 부리다 낭패를 보기도 했다. 그래도 그땐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는데 연출이 별 것 아닌 것 같았고, 연극판을 봐도 글을 쓰는 작가가 연출을 하는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작가가 연출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연출이 작가의 의도를 전부 다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내가 썼으니 내가 (연출로)마무리하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옳은 지는 모르겠는데 틀리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즉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단지 능력의 문제일 것이다. 글을 쓰는 능력에 연출을 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전엔 무조건 작가가 글을 썼으니 작가가 마무리하겠다는 호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연극이라고 하는 전체 작업에서 나는 글을 쓰는 것 외에 무엇을 더 해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그랬더니 훨씬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전에는 왜 사람들이 내 말을 안 들어 주는가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고, 연출가에 대한 묘한 질투심과 경계심이 있었는데 생각을 고쳐 먹으니 그도 함께하는 동반자란 생각이 들어 연출가와 훨씬 잘 지낼 수가 있었다.

사실 내가 그런 잘못된 생각을 가진 배경엔, 내가 대본을 썼던 초기 시절만 해도 연극 환경은 작가와 연출가는 견원지간이라는 둥, 역할이 구분되어 있어 작가는 글만 써야 하고, 연극은 연출가가 책임지는 지존이란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또 이런 불순하고, 불온한 생각을 결코 용납 못 했으니 나에 대한 과신과 함께 그런 잘못된 생각에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바뀐 건지, 연극 환경이 바뀐 건지는 모르겠는데 연극에 대한 이런 사고는 많이 유연해졌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말이 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내가 생각이 바뀐 것엔 이 말이 주효했다. 물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주인의식을 갖는 건 중요하겠지만 그렇다고 쓸데없는 권위 의식은 갖지 말자. 하긴, 아무리 잘 쓴 대사도 어느 배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연극의 성패를 가르기도 하는데 작가가 아무리 좋은들 뭐하겠는가? 그것을 해석해내는 배우가 좋아야지.

사실 내가 한때 연출에 목을 매었던 것도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배우에 대한 애착이 있기 때문이란 걸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배우와 나 사이에 연출가가 있다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 연출가만 없다면 나와 배우는 만나질 수 있는데 (능력없는, 사실은 나 보다 능력이 출중 하지만)연출가가 그야말로 꼽살에 끼어 걸적거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작가가 어찌 배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분신들 아닌가? 그러므로 배우에게 작품속의 등장인물을 가장 잘 이해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연출가 보다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면 그 상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일 것이다. 더구나 배우들이 내 작품을 그토록이나 열심히 연습하고 고민하는데 어떻게 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그래서 지난 번 나의 작품 '뮤지컬 손양원'을 했을 땐 시간만 나면 배우들이 연습하는 곳에 가서 그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어떤 배우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인물을 잘 분석하고 그것을 뛰어넘어 새롭게 창조까지 해 내지만, 어떤 배우는 맡은 배역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배우도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찾아가 어떤 캐릭터인지를 인지시키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필요한 도움을 줬으니 나도 뿌듯했다.

이렇게 작가도 드라마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작가를 골방지기라고 했던가? 요즘엔 작가가 리딩 현장뿐 아니라 연기 현장에도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표적인 작가가 김수현 작가가 아닌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녀는 연출, 연기 지도뿐 아니라 소품에 이르기까지 시어머니처럼 깐깐하게 간섭하는 것으로 유명하단다. 자존심과 영역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찾아내 작품을 책임진다는 마음과 작품의 퀄리티를 높인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대본을 쓰는 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던 책이다. 사실 그때(공연 연습 때) 나는 작가로서 배우들에게  배역을 이해시키는데만 급급했지 배우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은 실제적인 예를 들면서 배우들이 어떤 것을 고민을 하는지, 저자는 그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지가 비교적 친절하게 잘 서술되어 있다. 

사실 대본을 많이 쓰다보면 약간은 짖궂은 마음이 생겨 조금은 어려울 듯한 지문을 넣곤 한다. 그리고 이것을 맡은 배우는 어떻게 연기를 할까 상상하면서 몰래 묘한 미소를 짓곤 했다. 또한 이 배우는 침묵이나 시선 또는 감정처리는 어떻게 하는가에만 관심이 있었지 그것을 어려워 할 거라고는 이 책을 보기 전엔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내 작품 공연 연습 때 한 배우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 배우는 맡은 배역에 대해 생각만 할 뿐 그걸 적절히 표현하지 못해 지적당하고, 본인도 힘들어 하는 것을 보았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뒷풀이 자리에서도 그는 연출자에게 연기 하는데 봐야할 책에 대해 소개를 받고 있을 뿐 자신의 연기에 대해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언뜻 '얘는 아직도 연기를 머리로 생각하고 있구나' 안타까웠다. 연기는 그야말로 머리가 아니라 액션이다. 왜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그런 그에게 이 책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배우는 참 어려우면서도 매력적이고, 신비스러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난 이런 일에 기꺼이 자기 자신을 던져 작품을 빛내주는 배우를 격려하고 사랑한다. 내가 다시 글을 썼을 때 한 가지 기준을 세웠었다. 배우와 배우 너머 내 작품을 보러 온 관객들만 생각하겠다는 것. 그러므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사람은 작가가 아니라 배우라는 걸 새삼 재인식 했다. 그러므로 배우를 더 사랑하고 신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작가로서 이 원칙에 얼마나 충실할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배우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는 이 책을 읽었다. 다음 차기작은 더 잘 써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4-04-26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우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앞으로 아름다운
새 작품을 쓰는
멋진 밑힘이 되리라 생각해요 ^^

stella.K 2014-04-27 15:45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2014-04-27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28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케스트라처럼 경영하라 - 서희태 지휘자가 말하는 하모니를 이루는 조직경영
서희태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리더십을 다룰 때 빠지지 않고 말하게 되는 것이 '소통과 화합'이 아닐까? 이건 또 박근혜 정부가 처음 출범시키면서 캐치프레이즈처럼 내걸고 시작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민주주의 나라에서 이것만큼 이상적인 캐치프레이즈가 또 있을까? 멋진 것 같긴 하지만 또 한꺼풀 뒤집어보면 그만큼 잘 안 되기에 그러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앞으로 더 지켜보면 알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처음 발견했을 때 오케스트라와 경영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곧 경영을 오케스트라에 빗대어 설명한다는 발상은 그도 나름 좋은 시도란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이 소통과 화합이 가장 조화롭게 발현되는 분야가 오케스트라가 아닐까? 

하지만 그건 또 오케스트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기업은 물론이고,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공연 분야에서도 필요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난 모처에서 뮤지컬 대본을 쓰는 작가로 활동 했었다. 지금은 그 모임에 발을 끊은 상태이긴 한데 그곳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나고 안타깝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에 리더라는 사람이 리더다운 모습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팀을 억압하고 자신의 뜻대로만 하려고 하는 독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비난과 원성을 샀던 건 물론이고, 그 리더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 오히려 자신도 상처 받았다며 속상해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니 나름 충격적이기도 하고, 좋은 뜻에서 모임 팀이 리더 하나 잘못 세운 바람에 어찌될지 몰라 지금도 생각만 하면 걱정이 된다. 물론 어느 기관 안에 있는 팀이고, 비영리 모임이니 오늘 있다 내일 없어진다고 해도 크게 손해 날 것은 없다지만, 전에 한 번 그런 쓴 경험을 해 본지라 또 똑같은 일을 겪을까봐 안타까운 것이다. 솔직히 그때는 내가 책임감 같은 것이 그다지 있지도 않아 없어지면 없어지는가 보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미련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때 내가 얼마나 미숙하고, 안일한 생각을 했는가 그 후회는 지금도 두고두고 있던 참이니 그 안타까움은 더한 것이다.

 

 

어쨌거나 이 리더를 보니 새삼 리더십에 대한 지식이나 훈련 없이 리더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고 위험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사람도 나름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 그걸 뼛속 깊이 자기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팀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나 생각들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팀 위에 군림하려 하고 모든 것을 본인이 다 주관하고 통제 하겠다는 자신의 생각으로만 꽉 차 있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그 사람은 일 욕심이 많은 거라고도 볼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정말 가장 안 좋은 리더의 모습이었다.

처음엔 그 사람으로부터 본의 아니게 상처도 받았지만,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고 보면서 아무래도 리더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의 속성이 편할 때는 생각을 잘 안하게 마련이라고, 어찌보면 이전까지는 이쪽 방면에 대해 깊이 고민을 안 해 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야 워낙에 나의 맡은 일이나 잘 해 보겠다는 생각 밖엔 없었던 사람이고, 또 그러기에 누군가 리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비난하거나 나무라는 정도였을 뿐이니 세상을 참 편하게 살았다 싶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그 리더를 보니 리더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한다 싶다.

솔직히 나는 오래도록 리더라는 것에 별로 생각없이 살았다. 리더가 되면 책임질 일이 많으니 할 수만 있으면 안하고, 피하는 게 일이었는데 이게 또 생각해 보면 얼마나 안일하고 위험한 생각일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감투 쓴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보면 앞서 말한 사람처럼 리더는 뭔가를 지시하고, 통제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지배적이고 실제로 그렇게 해 왔며, 이런 21세기 최첨단의 시대에서도 그런 리더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의 리더는 이런 리더는 나오지 말아야 하는 것에 공감하지 않는가? 

지금 우리는 뜻하지 않게도 한 여객선의 침몰로 인해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 있다. 사고의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예견된 인재니 선장과 기관사의 안일한 대처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데, 이도 알고 보면 리더로서의 자질의 문제가 아닌가? 

사실 나는 여러모로 리더에 대한 도전이 없어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론 어느 때부턴가 리더십, 리더십 떠드는 게 못 마땅했다. 리더십 못지 않은 게 팔로우십인데 왜 이것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인가 그리고 너도 나도 리더가 되겠다면 팔로워는 누가 하겠는가 나름 앞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잘못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이즈음 해 보게도 된다. 팔로우는 리더를 앞서지는 않는다. 좋은 리더엔 반드시 좋은 팔로워들이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리더다. 이번 여객선 침몰 사건도 첫번째 드러난 양상은 교신이 문제였다. 교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더 많은 사상자가 났다고 전하고 있다. 교신은 말하자면 소통을 의미할 것이다. 이 책에도 보면 바이올린 협연자의 바이올린 줄이 끊어졌을 때 연주자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행동 강령에 대해 밝히고 있다. 물론 웬만해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협연자를 돕기 위해 곁에 있는 바이올린 주자가 아낌없이 자신의 바이올린을 빌려 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행동 가이드라인이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정해져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선 이런 최소한의 수칙과 교신이 이루어지지 않아 참사가 더 커졌다는 말이다. 

화합은 뭐였을까? 화합이야말로 팔로워십을 얘기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진정한 리더의 덕목은  희생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번 여객선 침몰에서 감투 쓴 리더들에게선 리더다운 면목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남을 구조하고 자신은 산화한 리더 아닌 사람에게서 오히려 진정한 리더다운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팔로워십은 뭘까? 팔로워 안에 리더십이 있는 것을 아닐까? 적어도 이들은 샴쌍둥이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솔직히 협연자의 바이올린 줄이 끊어졌을 때 누군가 자신의 바이올린을 빌려주는 희생이 없다면 그 연주회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함께 하는 일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과 수고가 있어야 한다. 물론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누구냐, 협연엔 누가 나오느냐가 주요 관건이라 나머지 연주자는 크게 빛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오케스트라의 단원이고 그 무대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갖지 않고  혹시 모르는 일에 희생 정신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오케스트라는 유명무실한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작년에 내가 그 모임을 나오면서 나는 그 리더에게 그런 얘기를 했었다. 그는 팀장의 직책을 부여받았는데, 팀장은 첫째도, 둘째도, 세째도 팀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야한다고 했다. 사실 그 팀장의 문제는 팀장과 연출이 하는 일을 구분해내지 못해 팀에 혼선을 가져왔던 것이다. 물론 팀장이 연출을 겸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그러나 그 둘 다를 하려는 지나친 과욕이 팀의 안정화를 이루지 못해 문제였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새삼 오케스트라와 뮤지컬엔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에는 작가와 연출가, 배우와 작곡가, 안무가, 스텝들이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연출가는 오케스트라에선 지휘자에 속할 것이다. 그리고 팀을 총괄하는 팀장은 오케스트라에선 악장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자휘자는 단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사람이라고 했다. 연출가도 배우에겐 그러한 존재일 것이다. 나 같은 작가는 작품의 설계를 맡은 사람이고. 

그랬을 때 리더는 팀원들이 서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소통의 다리가 되어주는 사람은 아닌가? 그래서 이 책은 앞서 말한 팀장에게 적합한 책인가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솔직히 나로선 이 책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저자가 지휘자인만큼 오케스트라나 음악적 지식은 성실히 전달해줘서 좋긴한데, 리더십에 관한 조명은 충분히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냥 좀 적당히 끼워 넣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 통섭 얘기 많이 하지 않는가? 오케스트라와 경영의 통섭. 시도는 좋았는데 그다지 균형은 이루지 못한 것 같다 아쉽다.

하긴 제대로 하려면 저자가 경영에 관해 충분히 연구를 했어야 하는데 지휘하기도 바쁜데 언제 조직경영을 공부하겠는가? 그건 또 어찌보면 굳이 따질 건 없지만, 차라리 악장의 몫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지휘자는 말 그대로 단원들에게 연주할 작품에 대해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그래도 그 팀장에겐 적당히 좋은 책 같기도 하다. 나에게 아쉬운 책이라고 해서 남에게도 그러리란 법은 없으니까. 그 사람도 음악은 아니지만 예술쪽 전공분야고 아직 조직경영에 대해선 그다지 아는 것이 없어 보이니 읽기엔 부담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읽을지도 의문이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선물해 줘도 좋을 것 같기도 하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