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캐스팅 - 오디션과 촬영장에서 주목받는 카메라연기 레슨
안지은 지음, 양의진 그림 / 한권의책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대본을 쓴지가 올해로 꼭 20년이 됐다. 그렇다고 한결 같이 썼던 건 아니고, 중간에 잠시 쉰 적도 있으니 빼면 이럭저럭 14,5년을 써 오지 않았을까? 원래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아주 우연찮게 현재 다니고 있는 교회 주일학교에서 짧은 연극 대본을 쓰기 시작한 것이 개기가 되어 지금까지 이르렀다. 

나는 글을 쓴다면 소설을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격상 누구와 함께 뭘 한다는 게 나를 더 힘들고 지치게 하는 것이 있어 대본을 쓸 거라곤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도 해 봤더니 의외로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고, 계속 붙들고 있으니 작년엔 내가 쓴 '뮤지컬 손양원'을 우리나라 공연의 메카라고 하는 대학로에 올리는 기쁨도 누렸다. 

그 작품은 내가 마지막 대본을 쓴지 5,6년만의 일이기도 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예전엔 그렇게 대본을 쓰니 일에 대한 욕심이 났다. 그래서 괜히 연출까지 과욕을 부리다 낭패를 보기도 했다. 그래도 그땐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는데 연출이 별 것 아닌 것 같았고, 연극판을 봐도 글을 쓰는 작가가 연출을 하는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작가가 연출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연출이 작가의 의도를 전부 다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내가 썼으니 내가 (연출로)마무리하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옳은 지는 모르겠는데 틀리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즉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단지 능력의 문제일 것이다. 글을 쓰는 능력에 연출을 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전엔 무조건 작가가 글을 썼으니 작가가 마무리하겠다는 호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연극이라고 하는 전체 작업에서 나는 글을 쓰는 것 외에 무엇을 더 해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그랬더니 훨씬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전에는 왜 사람들이 내 말을 안 들어 주는가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고, 연출가에 대한 묘한 질투심과 경계심이 있었는데 생각을 고쳐 먹으니 그도 함께하는 동반자란 생각이 들어 연출가와 훨씬 잘 지낼 수가 있었다.

사실 내가 그런 잘못된 생각을 가진 배경엔, 내가 대본을 썼던 초기 시절만 해도 연극 환경은 작가와 연출가는 견원지간이라는 둥, 역할이 구분되어 있어 작가는 글만 써야 하고, 연극은 연출가가 책임지는 지존이란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또 이런 불순하고, 불온한 생각을 결코 용납 못 했으니 나에 대한 과신과 함께 그런 잘못된 생각에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바뀐 건지, 연극 환경이 바뀐 건지는 모르겠는데 연극에 대한 이런 사고는 많이 유연해졌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말이 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내가 생각이 바뀐 것엔 이 말이 주효했다. 물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주인의식을 갖는 건 중요하겠지만 그렇다고 쓸데없는 권위 의식은 갖지 말자. 하긴, 아무리 잘 쓴 대사도 어느 배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연극의 성패를 가르기도 하는데 작가가 아무리 좋은들 뭐하겠는가? 그것을 해석해내는 배우가 좋아야지.

사실 내가 한때 연출에 목을 매었던 것도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배우에 대한 애착이 있기 때문이란 걸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배우와 나 사이에 연출가가 있다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 연출가만 없다면 나와 배우는 만나질 수 있는데 (능력없는, 사실은 나 보다 능력이 출중 하지만)연출가가 그야말로 꼽살에 끼어 걸적거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작가가 어찌 배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분신들 아닌가? 그러므로 배우에게 작품속의 등장인물을 가장 잘 이해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연출가 보다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면 그 상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일 것이다. 더구나 배우들이 내 작품을 그토록이나 열심히 연습하고 고민하는데 어떻게 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그래서 지난 번 나의 작품 '뮤지컬 손양원'을 했을 땐 시간만 나면 배우들이 연습하는 곳에 가서 그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어떤 배우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인물을 잘 분석하고 그것을 뛰어넘어 새롭게 창조까지 해 내지만, 어떤 배우는 맡은 배역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배우도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찾아가 어떤 캐릭터인지를 인지시키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필요한 도움을 줬으니 나도 뿌듯했다.

이렇게 작가도 드라마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작가를 골방지기라고 했던가? 요즘엔 작가가 리딩 현장뿐 아니라 연기 현장에도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표적인 작가가 김수현 작가가 아닌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녀는 연출, 연기 지도뿐 아니라 소품에 이르기까지 시어머니처럼 깐깐하게 간섭하는 것으로 유명하단다. 자존심과 영역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찾아내 작품을 책임진다는 마음과 작품의 퀄리티를 높인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대본을 쓰는 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던 책이다. 사실 그때(공연 연습 때) 나는 작가로서 배우들에게  배역을 이해시키는데만 급급했지 배우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은 실제적인 예를 들면서 배우들이 어떤 것을 고민을 하는지, 저자는 그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지가 비교적 친절하게 잘 서술되어 있다. 

사실 대본을 많이 쓰다보면 약간은 짖궂은 마음이 생겨 조금은 어려울 듯한 지문을 넣곤 한다. 그리고 이것을 맡은 배우는 어떻게 연기를 할까 상상하면서 몰래 묘한 미소를 짓곤 했다. 또한 이 배우는 침묵이나 시선 또는 감정처리는 어떻게 하는가에만 관심이 있었지 그것을 어려워 할 거라고는 이 책을 보기 전엔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내 작품 공연 연습 때 한 배우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 배우는 맡은 배역에 대해 생각만 할 뿐 그걸 적절히 표현하지 못해 지적당하고, 본인도 힘들어 하는 것을 보았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뒷풀이 자리에서도 그는 연출자에게 연기 하는데 봐야할 책에 대해 소개를 받고 있을 뿐 자신의 연기에 대해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언뜻 '얘는 아직도 연기를 머리로 생각하고 있구나' 안타까웠다. 연기는 그야말로 머리가 아니라 액션이다. 왜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그런 그에게 이 책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배우는 참 어려우면서도 매력적이고, 신비스러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난 이런 일에 기꺼이 자기 자신을 던져 작품을 빛내주는 배우를 격려하고 사랑한다. 내가 다시 글을 썼을 때 한 가지 기준을 세웠었다. 배우와 배우 너머 내 작품을 보러 온 관객들만 생각하겠다는 것. 그러므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사람은 작가가 아니라 배우라는 걸 새삼 재인식 했다. 그러므로 배우를 더 사랑하고 신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작가로서 이 원칙에 얼마나 충실할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배우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는 이 책을 읽었다. 다음 차기작은 더 잘 써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4-04-26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우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앞으로 아름다운
새 작품을 쓰는
멋진 밑힘이 되리라 생각해요 ^^

stella.K 2014-04-27 15:45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2014-04-27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28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