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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 - 그리움 많은 아들과 소박한 아버지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박동규.박목월 지음 / 강이북스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옛 시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처음엔 잊혀진 옛 시인의 삶의 궤적을 알아 보자고 읽기 시작했다. 나는 또 이런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더구나 박목월이다. 박목월이 누구인가?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학창시절 이 이름 한 번 듣지 않고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땐 그런 말이 없어서 그렇지 박목월이야 말로 '국민 시인'이라고 해도 그 말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는 유명한 시인이었다.
박동규 교수가 박목월 시인의 아드님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가 아버지 박목월의 일기와 산문 등과 함께 아버지를 기억하는 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 책을 펼쳐 들기도 전에 필경 나에겐 박목월 시인을 아는 것과 동시에 아버지에 대한 향수를 건드리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읽는 내내 속으로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뭐라 말할 수 없는 아련함과 애틋함이 느껴졌다.
아, 옛 시인은 어디가고 우린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이 시인을 기억해야 한단 말인가? 그게 참 뭐라 말할 수 없이 아련하고, 가슴이 뭉클하다. 그가 살아 있을 땐 생존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존경과 애정을 보낸 시 애호가들도 많았으리라. 그러나 그는 생각 보다 그리 긴 세월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아들을 통해 이렇게 그의 얘기를 듣는 것이다.
시인의 인품
읽고 있으려니 새삼 박목월 시인 보다는 박동규 교수가 더 많이 보인다. 지금은 좀 뜸한 편이긴 하지만 한때 박동규 교수를 TV에서 자주 볼 기회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교수니 나름의 권위와 카리스마 느껴질 수도 있건만, 노교수는 그런 것이 전혀 없이 항상 겸손하고 인자한 인상만 풍겼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평소 의문을 품곤 했는데 이 책을 읽고서야 그 의문이 풀렸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교수의 그런 인품은 필시 아버지 박목월의 영향이었겠구나 싶었다.
박목월 시인은 정말 인자한 인품을 가졌다. 아버지로서 정말 자녀를 많이 사랑했구나 느껴진다. 여느 아버지 같으면 자녀의 크고 작은 실수에도 화를 내거나 엄하게 꾸짖을 수도 있을 텐데 시인은 무슨 사랑이 그리도 많은 걸까, 모든 자녀를 가슴으로 끌어 안는다. 예를 들면, 아들 동규가 남의 자전거를 처음 타고 중심을 못 잡아 어느 가게로 돌진해 사고를 냈을 때도 아버지는 아들을 야단치지 않고 오히려 품에 끌어 안아 줬다고 기술하고 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시인다운 기품과 온유함이 묻어 있어 오히려 과연 이런 아버지가 있을 수 있을까? 의아스러울 정도다. 모르긴 해도 박목월 시인은 대대로 내려오는 양반의 가문의 자제는 아니었을까 의문을 가져 보기도 한다. 그만큼 흐트러짐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동규)은 아버지 살아생전 시를 쓰기 위해 연필을 깎는 모습을 자주 뵙곤 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아들은 이렇게 기억한다.
한밤 아버지 방 앞을 지날 때면 연필심을 깎는 삭삭 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왜 꼭 연필로 시를 쓰시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연필을 깎으며 마음을 가다듬게 되지. 어떻게 마음가짐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길이 열리는 거야." 하셨다.(66p)
이 구절을 대하고 보니 나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했으며 그것에 대해 얼마나 믿고 행하였을까를 생각해 본다. 나의 행동은 10대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뭐든 하게 되면 하는 거고, 못하게 되면 못하는 거지 그다지 욕심이 없고 의욕이 없다. 그래서 옛말이 그른 게 없는가 보다. 될성 부른 나무 떡닢부터 알아 본다고 하지 않던가. 언제부턴가 나에게 습관으로 남은 몸짓 하나, 행동 하나가 나의 인생의 길을 열수도 있고, 닫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나의 몸사위를 돌아보게 된다.
시인의 마음
잊고 있었다. 나도 사춘기 시절 아주 잠깐 동안 시를 좋아했고 그래서 시인이 되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시를 잊고 살았다. 왜 그랬을까? 그 시를 썼던 시인의 생각을 유추하는 게 귀찮아서인지도 모른다. 내 마음도 내가 모를 때가 많은데 언제 또 남의 마음까지 유추한단 말인가?
또한 시인은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돈 안 되는 시를 백 날 써서 뭐하겠는가,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느샌가 모르게 시가 멀어졌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서야 시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목월 시인의 중학 시절 이야기'를 읽고 나서야다.
목월 시인이 돈이 없어 그때까지 지내고 있던 자취방을 나와야 했을 때 담임 선생님 배려로 학교 온실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가마니떼기를 깔고 누워보니 유리창 위로 별들이 보였다고 한다. 그때를 아버지 목월 시인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놈아, 내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별을 보며 내 신세가 가련하구나, 했으면 지붕이 있는 집에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했겠지. 그러나 나는 별들이 속삭이고 가는 이야기를 글로 쓰려고 했으니 시인이 되었지.(91p)" 한다. 또한 아들은 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고백한다.
그렇다. 시인은 무한 상상력의 소유자다. 아버지 대나 아들의 대나 못 먹고, 못 살았던 시대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절을 기꺼이 온몸으로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시인의 정신이 있었기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시인의 마음, 시인의 정신이 없다면 이런 척박한 세상을 어찌 헤쳐 나갈까? 사람이 빵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다 잘 사는 게 아닌데 말이다. 시인의 마음 속에 상상력이 없다면, 생명을 잉태하는 씨앗(시어) 하나 제대로 품고 있지 못하고서야 어찌 시인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생활인으로써의 박목월
읽다보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얼마나 피곤하고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 왔을까가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박봉에 한 아내의 남편이요, 슬하의 다섯 남매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었다. 거기엔 남자 박목월은 없다. 그래서 그것은 요즘 흔히 회자되는 남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아 탐색은 같은 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게 나에겐 박목월 시인이 하나도 쓸쓸하다거나 측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자아 탐색이란 것도 요즘 같이 어느 정도 살기 좋아졌을 때 묻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시인에게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과 시인으로서 시를 쓰는 삶을 계속 영위해 나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그런 질문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자신 보다 대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더 가치있고 존경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세상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서 내가 더 중시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자꾸만 자신이 중요하다고,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라고 말한다. 물론 그 말이 틀리지 않다. 이 사막 같은 세상에서 내가 나를 사랑해 주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주겠는가? 하지만 그러므로 해서 남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어떻게 역할을 할 것인가가 약화된 건 아닐까? 그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오히려 그런 현대의 자아 사랑이 더불어 사는 책임을 회피하고 약화시키는 밀미를 제공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오늘 날 짐승남이니 품절남이니 하는 것도 남자의 상품화에서 나온 신조어라고 생각하는데, 가끔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묻고 싶다. 그런 것들은 보기에만 좋은 것일뿐 사람의 본질을 못 보고거나 왜곡시킬 수가 있다.
그래서 평생 시와 가정만 생각했던 박목월 시인이 요즘의 짐승남이나 품절남이란 용어를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 감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우리가 박목월 시인을 존경하는 건 이런 건조하고 척박한 세상에 별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시인이고, 돈 때문에 병 걸린 아내를 선뜻 입원시킬 수 없는 남편 때문이고, 어쩔 수 없이 학업과 힘든 세상으로 내몰아야 하는 자식을 지켜 볼 수 밖에 없는 아버지기 때문에 존경하는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흐르면 남성의 남성다움도, 여성의 여성다움도 없어지거나 약화된다. 그런 사람에게 늙어도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잃지 말라고 일깨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 보다 존경 받는 노인이 되는 것을 아는 것이 더 값지고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이렇게 이 책은 한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거기서 잊혀졌던 옛 가치를 음미해 보는 것이다.
자신이 먼저 죽을지도 모르고 아내 건강을 걱정한 박 시인을 보며 23년 전 돌아가신 내 아버지도 생각이 났다. 아무리 자식 키우는 게 힘든다고 해도 역설적으로 그때만큼 보람있고, 근면하게 살았던 때가 또 있을까?
읽는 내내 가슴이 따뜻했다. 그동안 몰랐던 박 시인 대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메마른 세상에 정말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귀한 책을 엮어 낸 박동규 교수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