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야 진짜 - 어른의 어른 후지와라 신야가 체득한 인생배짱
후지와라 신야.김윤덕 지음 / 푸른숲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엮은이 김윤덕 기자는 후지와라 신야를 기꺼이 "싸부"라 칭했다. 현재 신야는 일본내에선 무라카미 하루키나 시오노 나나미 보다 더 유명하고 사랑받는 작가라고 한다. 하지만 역시 우리에겐 좀 낮선 사람은 아닌가 싶다. 그래도 그는 그전에 <인도방랑>이나 <티베트 방랑>, <아메리카기행> 같은 책을 내놨다고 하니 매니아층이 나름 있긴 있는가 보다. 김윤덕 기자도 처음엔 그를 잘 몰랐다가 이런 일련의 책을 읽고 그를 싸부로 까지 모시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야 자신은 김윤덕 기자뿐 아니라 아니 다른 누구의 "싸부"가 되길 기꺼워 할까 싶다. 내가 이 책을 읽어본 바에 의하면 그는 딱히 누군가의 싸부가 되길 원하진 않는 것 같은 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싸부로 부를테면 불러라. 그거야 그쪽 사정이지 내 알 바 아니다. 뭐 이런 태도다. 그만큼 그는 그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김윤덕 기자도 말했지만, 니코스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를 닮아있었다. 

 

이에 대해 김윤덕 기자는, 그에겐 치명적인 마력이 있다. 삶에 대한 놀라운 통찰과 안목, 그것을 거침없이 내뿜는 용기, 그리고 오랜 여행을 한 사람의 갖춘 현자의 풍모다. 무엇보다 나는 신야가 나이 든 체하지 않아서 좋다(90쪽)고 전하고 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어느 날 본업인 기자를 접고, 잘 찍지도 못하는 카메라를 달랑 매고 인도를 여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생수와 야채를 가득 싣고 방사능 피폭 현장을 달려 갔고, 시부야 밤거리를 떠도는 10대들을 만나고, 창부과 기꺼이 어울리고 그들의 친구가 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한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말이다. 책띠 귀퉁이에 그의 사진이 조그맣게 찍혔는데 조금은 까칠한 더벅머리를 하고 있다. 그것이 영락없는 조르바 빙의다. 

 

과연 그를 김윤덕 기자가 "싸부"라 할만도 하겠다 싶다. 그러고 보니 나도 20대 말 그런 "싸부"를 만날 뻔 했던 적이 있다. 나의 글 쓰기 선생님이었다. 이 선생님을 직업으로서의 선생이 아닌 정말 마음을 다해 부를 수 있는 싸부가 아닐까 했던 것이다. 그 선생님도 더벅머리였고, 체 게바라를 좋아했으며, 정기적으로 히말라야를 오르내리는 산사나이였다. 그리고 선생님에게서 뿜어내는 탐욕스러우리만치 강한 지적 욕구와 카리스마. 이만하면 나의 싸부가 되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선생님은 나의 선생님인 건 사실이지만 "싸부"로 모시기엔 어딘가 결정적으로 어긋나 있었다.

 

그것은 이 책에서 신야도 지적한 사항이지만, 결정적으로 나의 선생님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좌중을 압도하는 끊이지 않는 입담이 선생님의 장점이자 단점이 되어 나를 '치명적 마력'으로까지는 이끌지 못했던 것이다. 그냥 선생님도 늙어가는 평범한 남자란 생각을 했다. 그렇다. 잘 듣는 사람. 나의 선생님에겐 없는 그걸 신야는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10대 아이들과도 어울리는 것이겠지.

 

이 책은 후지와라 신야와 김윤덕 기자가 나눈 대담집이다. 대담집의 매력은 아무래도 그 사람에 대해 다이제스트로 알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자서전이나 고백록처럼 혼자 떠들지 않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교감할 수 있어 좋고, 누군가 나에 대해 객관적으로 써 줄 인터뷰어가 있다는 게 고맙기도 할 것이다.

 

내게 있어 가장 부러운 건, 후지와라 신야가 (훌륭한)방랑자라는 점일 것이다. 자유인에게 있어 여행 곧 방랑은 특권이자 전부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그는 여행을 앞두고 정보를 수집하려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패키지 여행은 더 더욱 권하지 않는다. 불안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원하는 것인데 그러지 말란다. 길을 잃어버리면 좀 어떤가? 거기서 맞닥트리는 것에 온전히 나를 맡겨 보란다.

 

여행을 언제 해 봤는지 모르겠다. 내가 항상 여행을 주저하는 것도 그 이유도 그 이유가 크다. 길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세상이 험하다는 것. 그래서 늘 여럿이 하는 걸 원하고 가서도 가급적 고생을 덜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계산하고. 그래서 난 갈수록 돈 많은 사람,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다. 어디 어디를 여행해 봤다는 사람이 부러워지고 있다. 

 

그는 독특하게도 음식과 여자를 좋아하지 않으면 여행하기 어렵다고 했다. 좀 우스웠지만 공감이 간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도 호색한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여행을 할 수 있었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상대가 누구든 일생에서 많은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것이 용케도 인간으로 태어난 특권이 아니겠냐며(175쪽). 나도 그 말에 동감이다. 배우자를 불행하게 하지 않는다면 약간의 설렘을 갖게 하는 만남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것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되어지는 여러 가지 징후 중 하나가 사람을 상대한다는 게 귀찮아 진다는 것인데 사람이 혼자 있으면 그만큼 노쇠해질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담에서 눈에 들어 온 건 신야의 세상 살아는 이야기다. 특히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비슷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갈수록 늘어나는 운둔형 외톨이의 문제라든지, 고독사의 문제는 우리나라도 심각하다. 단지 일본과 우리나라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의 젊은이는 여간해서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도전하는 정신이 아직 있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긴 한다.

 

특히 신야는 일본의 대지진이나 쓰나미 등 국가적 재난에 대해 아주 나쁘게 마는 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분명 일어나지 않으면 좋았겠지만 그로인해 운둔형외톨이들이 자신의 방을 박차고 나와 함께 봉사의 손길을 보태고 있지 않냐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건도 불행하게만 볼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물론 희생자들에겐 불행한 일이고, 그런 사고가 애초에 안 일어나면 좋았겠지만, 우린 그 때문에 함께 울었고, 힘을 보탰으며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도 어떤 운둔형 외톨이가 봉사에 힘을 보탰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중요감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건 극단적이고 불행한 방법으로만이 개인주의의 폐해가 줄어든다면 그건 확실히 비극적이고 권할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이제 그 나라나 우리나라나 개인주의와 그로인한 폐해를 어떻게 치료해 나갈 것이냐가 관건일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공동체적 삶과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며 함께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 봐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는 별로 후회를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지식인이라면 강박적으로 할 수만 있으면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그런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나도 좀 그런 것에서부터 자유로워야겠다고 생각한다. 난 왜 이렇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생에 있어 별로 후회를 하지 않는 그는 죽음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만이 죽음의 흔적을 남긴다. 야생동물은 죽을 때가 되면 어디론가 숨는다. 하다못해 그 큰 코끼리도. 하지만 모든 사람이 죽음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신야는 오래 전 그랜드 캐니언을 여행하다 자동차가 추락한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것도 비교적 최근이 아니고, 몇 년된 것처럼 보이는데 자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런데 그는 그곳을 내려오면서 경찰에 알렸는데 그것이 잘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것은 무신론자인 그가 죽으면 무로 돌아간다고 믿는 평소 그의 죽음관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도 최근 가족과 사별을 겪으면서 또한 예전만큼 젊지 않다는 것에서 어떻게 살까, 어떻게 죽게 될까를 자주 생각해 보곤 한다. 삶에 미련을 갖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는 일이 전보다 많아졌다. 그만큼 생에 미련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죽을 땐 나도 야생동물처럼 아니면 그랜드 캐니언에 쳐박혔다던 그 자동차의 주인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하지만 아마 가능하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는 나의 죽음에 염을 해 주고, 누군가는 화장(火葬)을 해 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려주겠지. 그것을 고스란히 산 사람에게 맡긴다는 게 왠지 미안하고 안쓰럽다. 하지만 아직도 구조되지 못한 바다밑의 주검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장례라도 치룬 것에 위안을 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의 장례도 누구에겐 위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신야를 그전부터 알고 잘 있었다면 좀 더 많이 공감하며 읽었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김윤덕 기자가 산야를 너무 많이 애정했던 탓일까? 끝에 가선 사족 같이 느껴져 좀 지루한 감이 느껴졌고, 의욕이 과한 것인지 약간은 산만하게도 느껴졌다. 뭐 그만큼 독자로 하여금 산야가 더 많이 알려지길 바랬던 것도 같다. 기행문을 철학서적처럼 썼다니 그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6-18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9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