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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콜렛

줄리엣 비노쉬가 나오는 프랑스 영화. 어느 날 프랑스의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마을에 어느 한 여인이 초콜렛 가게를 열면서 마을이 일대 파란(?)을 격게된다. 그 마을은 알고보면 종교적 분위기를 가장한 억압과 위선 속에 사는 마을이다.

바로 초콜렛이 이 위선과 억압을 까발리며 동시에 치유한다. 어찌보면 페미니즘적 요소도 가지고 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영상미학이 뛰어나다.

 

2. 고스포드 파크

좀 오래 전에 본 영화라 제목이 확실히 맞는지 모르겠다.

탐정 영화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어느 부자가 사냥을 즐기기 위해 자기가 아는 친척, 친지들을 다 모은다. 그들에게 딸린 하인까지. 그곳이 일명 고스포드 파크. 그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인간군상들을 보여준다.

바람난 여주인. 겉으론 고상한 채 하지만 뒤에서 자기가 데리고 온 하녀에게 사람들의 온갖 흉을 다 보는 여주인의 고모인지 숙모인지 하는 할머니. 그 안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하녀. 하인을 가장한 작가. 나중에 그 정체를 알고 하인들의 세계에서 수모를 당한다. 그러고 보면 그 세계도 꽤 자존심 강한 세계다. 어련할까? 배경이 고풍스런 영국인데. 하인끼리 눈이 맞아 욕정을 나누기도하고, 창녀를 자처한 하인도 있다.        

어쨌든 영화가 참 인상적이다. 영화의 결말은 그 성의 주인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살해를 당한다. 그리고 사복 경찰관이 오고 뭔가 사건의 해결을 보여주려나 했는데 등장인물들을 다 해산시킨다. 집으로 돌아가 있으라고. 뭐 이런 게 다 있담.

그러나 감독은 여느 탐정영화처럼 누가 죽였는가? 왜 죽였느냐를 추적하지 않는다. 단지 그 성에 모인 사람들의 인간군상을 그럴 듯하게 그러나 아무런 흥미나 자극없이 빼어난 연출력으로 보여준다. 등장인물의 대사도 특별히 튀거나 인상에 남을만한 대사는 한마디도 없는 듯하다. 참 그렇게 쓰고 그렇게 연출하기도 쉽지 않은데, 보고난 느낌은 잔잔한 여운만 남는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피한방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감독의 연출이 얼마나 절묘한지 말 다했지 뭐.

 

3. 남자태어나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이 거의 극찬해 마지않아 지난 어린이 날 tv를 통해 본 영화다. 나는 영화평론가의 말은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는 편인데,  이 영화는 좀 믿어주자 해서 본 영화다. 근데 정말 좋은 영화다. 제목만 들으면 찐짜 남자가 되는 게 뭔지를 보여주겠다고 허세 부리다 결국 또라이짓이나 하고마는 걸 보여주 그렇고 그런 영화일 것도 같지만 전혀 아니다. 영화는 정말 순수하고 진지하고 동시에 재미있다.  왜 이런 영화가 개봉 당시 흥행에 실패했는지 모르겠다. 인물도 탄탄하고 조연들 또한 tv에서 한 조연한다는 사람들이 대거(?) 출연한 영화라 너무 괜찮았다. 

그 영화는 확실히 주인공 세명의 남자아이들이 권투로 승리를 쟁취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아서 좋다. 오히려 그랬으면 영웅담이 되었을 것이다. 감독은 그런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삶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사회는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규정된 이미지가 있다. 그것을 배재하고 그 나이 또래가 격을 수 있는 아픔과 희망, 좌절과 절망, 열등감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난 이런 영화를 만들 줄 아는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위의 세 작품을 안 본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 말 밖에는 해 줄 말이 없다. "그냥 일단 한번 보시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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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09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전 셋다 안봤는데요...^^;; 초콜렛은 제목을 많이 들어본 거 같아요. 다음에 한번 보도록 하겠숨다~ ^^

겨울 2004-05-09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콜렛, 줄리엣 비노쉬란 여배우의 나이듦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구요, 안토니아스 라인이라는 페미니즘 영화가 더불어 생각나네요. 조니 뎁은 여전히 근사했지만 줄리엣의 그늘에 그 카리스마가 묻혀 아쉬웠다는... 고스포드 파크는 두 번이나 시도했다가 결국 감상에 실패한 영화인데 몹시 피곤한 저녁에 관람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영화였어요.^^

stella.K 2004-05-10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몽상님 말씀이 맞아요. 조니 뎁이 비노쉬의 연기에 좀 묻혔죠.

호밀밭 2004-05-1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콜렛과 고스포드 파크는 보았는데 남자 태어나다는 보지 못했네요.
고스포드 파크는 배우들도 화려하고, 결말도 신선해서 좋았어요. 하룻밤동안,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추리 소설,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초콜렛은 항상 우울할 때 보곤 하는 영화예요. 조니뎁의 영화들은 현실적이지 않아서 좋아요.
 

가장 일본적인 영화에서 '우리'를 만나다
오즈 야스지로 특별전 부산과 서울서
‘동경이야기’ ‘부초’ 등 17편 모아 상영
‘자연 안에 존재한 인간의 미약함’ 담아



▲ 일본 최고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오즈 야스지로. 그의 작품 17편을 한데 모은 회고전이 부산과 서울에서 연이어 열린다.
‘오즈 야스지로 특별전’이 ‘시네마테크 부산’(8일~23일)과 서울 ‘하이퍼텍나다’(28일~6월10일)에서 연이어 열린다. ‘동경 이야기’ ‘부초’ 등 모두 17편이 상영되는 이번 회고전은 일본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손꼽히는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오즈 야스지로(1903-1963)의 이름이 일본 바깥으로 본격적으로 퍼져 나간 것은 1970년대나 되어서의 일이었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1950년대 초반부터 이미 국제적 신망을 얻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일본의 3대 거장 가운데 하나인 오즈의 진가가 사후에나 국제적으로 드러난 것은 꽤 늦은 셈이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오즈의 영화가 서구인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일본적이기 때문에, 그래서 제대로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지금도 여전히 오즈라고 하면 가장 일본적인 영화감독 가운데 하나로 불린다.


▲ 동경이야기
역동적인 이야기 전개와 그에 어울리는 동적인 영화 스타일을 구사한 구로사와가 서구적인 일본 영화감독이라면, 치밀하게 균형 잡힌 형식을 빌려 작은 이야기를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준 오즈는 일본적인 일본 영화감독이라는 것이다. 사실 오즈를 두고 무턱대고 일본적이라고만 정의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여하튼 그가 영화사의 그 어떤 감독들의 것과도 구별되는 독자적이고 매혹적이며 아름다운 세계를 구축했다는 데에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 오즈의 영화들을 두고 독일의 영화감독 빔 벤더스는 영화사에 존재하는 신성한 보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 2001년에 이어 다시 한번 그 보물들과 만날 기회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 꽁치이야기
오즈의 세계와 마주하는 순간 아마도 우선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세계가 구성되는 독특한 방식일 것이다. 오즈는 통상적으로 눈높이라고 여겨지는 것보다 낮은 위치에다가 카메라를 배치했다. 그는 그 같은 ‘오즈의 시선’으로 시각적 아름다움과 표현의 효과가 돋보이는 구도를 만들어내고는 보는 이들을 손님으로 자신의 세계에 정중하게 초대했다. 오즈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카메라의 움직임을 비롯한 다른 수사적인 테크닉들은 거의 필요가 없었다. 그는 엄정한 시선만을 가지고서도 풍경과 표정과 감정을 스크린 위에 풍부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오즈는 금욕주의가 하나의 풍성한 영화미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또 하나의 위대한 영화감독이었던 것이다.


▲ 부초
오즈는 종종 자신을 ‘두부 장수’에 비유하곤 했다. 두부장수가 공장에서 똑같은 모양을 한 두부를 만들어 팔듯이, 자신은 동일한 형식과 이야기를 가진 영화로부터의 변주를 해가며 영화를 만들어갔다는 것이다. 사실 ‘늦봄’ 이후 오즈의 영화들은 거의 바뀌지 않는 형식으로 유사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줬다. 이를테면 ‘늦봄’에서 다뤄진, 딸을 시집보내고 쓸쓸히 홀로 남게 되는 부모의 이야기는 ‘가을 햇살’과 ‘꽁치의 맛’에서 되풀이되곤 했던 것이다. 오즈의 후기 영화들은 이처럼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갈등과 문제들을 다룬 ‘홈드라마’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오즈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동경이야기’처럼 그의 홈드라마는 전통적인 가족이 막 붕괴되기 시작하던 당시의 일본사회를 반영한다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런데도 그것에는 부모 자식 사이의 소원해져 가는 관계나 늙어간다는 것 같이 보편적인 울림을 가진 이야기들이 절제를 지키면서도 효과적으로 담겨 있기에 그 사회 역사적 맥락을 벗어난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가 있었다. 한편으로 오즈 영화가 갖는 보편성의 근원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동경이야기’는 겉보기로는 가족상의 변화를 다룬 영화 정도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아래로는 시간과 인생이 흘러간다는 것에 대해 성찰하는 영화라는 또 다른 면모가 숨어 있다.

그처럼 오즈의 영화가 사실 다루고자 하는 것은 단지 결혼과 늙음이란 현상이 아니라 그처럼 자연의 사이클 안에 위치한 인간이란 존재의 미약함 쪽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일본적이라고 하는 오즈의 영화가 우리 같은 후세의 ‘외국인’의 마음을 여전히 깊이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닐까.

(홍성남·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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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05-07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가 나왔을 무렵의 인터뷰에서 오스 야스지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8월의 크리스마스도 그런 분위기라고 했었는데 볼 기회가 없었어요. 한 번 보고 싶네요.

stella.K 2004-05-07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것만큼은 볼까 합니다.
 
 전출처 : waho > [영화] 여인의 향기




맹인 퇴역장교 프랭크 슬레드는 철학과 시를 아는 지적인 사람이지만 약간 괴팍한 면모를 갖고 있다. 함께 사는 조카들은 프랭크를 무서워하고, 평소 프랭크는 항상 혼자다.
어김없이 추수감사절이 돌아오고 프랭크의 가족은 그를 빼고는 모두 여행을 떠난다. 프랭크는 가족들에게 말도 하지 않고 훌쩍 뉴욕으로 떠나는데, 추수감사절동안 프랭크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맡았던 가난한 모범생 찰리는 그 엉뚱한 여행의 동반자가 된다.
그러나 프랭크의 여행의 목적은 자살. 그는 인생의 무의미함을 이기지 못하여 죽으러 떠난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려는 그의 여행길에는 호화로운 만찬과 고급스러운 술, 여자가 있다. 찰리는 프랭크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영화로 알파치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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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머리 깎으며 겪어낸 현대사의 상처
권력자의 곁에서 권력의 파편에 맞을까
전전긍긍 소시민 다뤄


숫자와 관련된 문제는 그저 ‘사사오입’(四捨五入)으로 처리하는 게 개운하다 믿는다면, 우는 아이에게는 “파출소 가자” 라는 말이 약이라고 생각한다면,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는 말이 ‘나라 망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들렸던 당신이라면. 그리고 당신이 바로 ‘그 당신’의 아들이나 딸이라면. ‘효자동 이발사’(5월5일 개봉)의 에피소드를 그냥 영화 속 설정이라고 믿기는 힘들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이 실제와 동일하지 않다’며 역사왜곡 논란을 피하려는 영화 프롤로그의 자막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권력은 어떻게 우리의 아버지들과 우리 인생에 개입했는가.‘효자동 이발사’는 때론 슬슬 웃으며, 때론 눈물을 흘리며 그 질문을 던진다.


경무대 근처 효자동에서 ‘성한모 리발관’을 운영하고 있는 이발사 성씨(송강호). 임신한 이발사 김양(문소리)를 “임신 5개월부터는 사람으로 봐야한다”(1954년 사사오입)고 설득해 아이를 낳아 살림을 차렸고, “이박사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전수받아 개표소에서 ‘2번’을 찍은 투표용지를 먹어버렸다(1960년 3·15 부정선거). 아들이 태어나는 날엔 최루탄을 맞은 학생들에게 의사선생님으로 오인받았고(1960년 4·19 혁명), “청와대가 어디냐”고 묻는 탱크를 몰고 온 새파란 군인에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1961년 5·16 쿠데타). 그리고 그는 어느날 대통령 경호실장이 안기부장을 물먹이기 위해 만든 사건에 주연으로 발탁되며 ‘투철한 반공정신’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고 이어 대통령의 이발사가 된다.

성한모의 삶은 권력을 지향(志向)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지양(止揚)하는 편에 가깝다. 이발사가 되어 돌아온 첫날 그는 몸져 누웠고, 대통령의 ‘용안’에 상처를 낼까 두렵기만 하다. 권력자의 곁에서 권력의 파편에 맞을까 걱정하는 것이 ‘없는 자, 못난 자’의 생리다. ‘돈은 보장 못해도 편하게 살 이름’이라는 말에 아이 이름을 ‘낙안’이라고 지은 것은 그가 굵고 짧은 삶 대신 ‘가늘고 긴’ 삶을 지향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가늘면 끊어지기도 쉬운 법.

유신 직전, 정권은 ‘마루흑병에 걸린 자를 북한잔당과 접촉했을 것으로 본다’-한마디로 설사하면 빨갱이란 뜻-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를 만들어낸다. 대통령 이발사로서 충성도를 증명하기 위해 설사하는 아들을 자진해서 파출소에 보낸 그는 속이 다 탄 후 걷지 못하는 상태로 돌아온 아들을 만난다. 그가 권력에 눈초리에 고개 숙이는 동안, 아들은 스스로 설 수 있는 다리를 잃었다. 아이가 울부짖고 피를 흘리는 대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빨간전구를 문 채 전기 고문을 받는 장면은 그로테스크함의 극치다. 코믹함을 양념으로 얹어 사실적으로 전개되던 영화는 이 끔찍하고도 기괴한 이미지를 통해 판타지로 탈바꿈한다. 끔찍한 역사를 우화로 만드는 매력적 가벼움이며, 동시에 심각한 고민을 가볍게 갈무리하려는 회피로도 읽힐, 가장 논쟁적인 장면이다.

전반부엔 코믹하고, 후반부엔 슬픔으로 내파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여준 송강호를 비롯해 문소리, 아역 이재응 등 배우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고, 데뷔 감독인 임찬상은 드라마 자체인 현대사의 에피소드 조각을 조화롭게 엮었다. 하지만 비밀스럽고, 웅장한 이야기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실망감도 안겨줄 여지가 많다. 특히 성씨네 가족을 위로하는 듯한 결말은 영화의 맥을 빠지게 한다. 10·26 후 대머리 대통령에게 불려가 “각하, 머리가 자라면 다시 오겠습니다”는 말로 자리를 사양하는, 권력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모습으로 끝나는 방법도 괜찮지 않았을까. 에피소드로 엮은 이야기는 꼼꼼하지만 웅장하지 않고, 역사와 정면승부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은 영화적 매력이자, 상업적 약점으로 보인다.

(박은주기자 zeeny@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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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4-30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넘 재밌을 것 같아요. 빨리 보고 싶어요. 강릉엔 개봉하는 극장이 쫌 안 좋긴하지만 개봉하는게 어디냐 싶어서 기다리고 있죠.

stella.K 2004-04-30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만 해결되면 강릉도 정말 좋은 곳일텐데요.ㅎㅎ! 오래전에 갔던 정동진 생각나네요.^^

비로그인 2004-04-30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는 왠지 한번 봐줘야할 거 같은 생각이...^^

*^^*에너 2004-04-30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영화 잼있을꺼 같아요. ^^
 

죽음 앞에서 욕망에 눈 뜬 그녀
로맨틱 코미디 배우 멕 라이언 충격적 변신

에로스와 타나토스(죽음의 욕망)의 결합은 모든 섹스 스릴러가 신봉하는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나 ‘인 더 컷’(In the cut·30일 개봉)에서만큼 죽음과 섹스가 화학적으로 한 몸을 이룬 경우도 드물 것이다. 아마도 현역에서 활동하는 가장 중요한 여성 감독일 제인 캠피언은 이 신작을 거칠고 강렬한 욕망의 오디세이로 만들었다.



 

 

 

 

 

 

 

영문학 강사 프래니(멕 라이언)는 어느 날 술집에 들렀다가 오럴 섹스에 몰두하는 남녀를 발견하고 야릇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후 그때 본 여자가 처참하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으면서도 그는 탐문수사를 하던 형사 말로이(마크 러팔로)에게 강렬하게 이끌린다. 말로이와의 관계에 탐닉하기 시작한 프래니는 어느 순간 그가 연쇄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인 더 컷’은 낭만적 사랑을 토막살해하는 대신 불가해한 욕망의 가공할 만한 힘 자체에 주목하는 영화다. 여기서 스릴러라는 장르 형식은 분위기 형성을 위한 일종의 병풍 같은 역할만 담당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 가는 전통적 독법으로 덤벼들면 이 영화만큼 시시한 연쇄살인극도 없을 것이다. 대신 감독은 공포와 욕망이 뒤범벅된 감정 속에서 허우적대는 심리를 시종 흔들리는 카메라에 담아내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여성의 시선으로 잡아낸 여성의 욕망’이란 핵심 슬로건은 캐릭터에서 구체적 섹스신까지 철저히 관철됐다.

캠피언은 ‘내 책상 위의 천사’ ‘피아노’ ‘여인의 초상’ ‘홀리 스모크’에 이어 또다시 (그 대상이 욕망이든 삶이든) 여성의 자각에 방점을 찍은 여성 영화 한 편을 내놓았다.

오랜 세월 로맨틱 코미디의 대명사였던 멕 라이언은 배우로서 일생에 한두 번밖에 써먹지 못하는 충격적 변신의 카드를 제대로 활용했다.

수많은 사랑 영화에서 내내 양손에 쥐고 연기했던 초콜릿과 솜사탕을 속옷과 함께 집어던진 그는 이전의 경력 자체를 이 영화에서의 파괴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이동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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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4-30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인 켐피온 영화를 너무나 좋아하는 저로서는 서울 원정 불사해서라도 보려고 벼르고 있답니다. 강릉은 개봉을 안 한답니다

김여흔 2004-04-30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