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일본적인 영화에서 '우리'를 만나다
오즈 야스지로 특별전 부산과 서울서
‘동경이야기’ ‘부초’ 등 17편 모아 상영
‘자연 안에 존재한 인간의 미약함’ 담아



▲ 일본 최고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오즈 야스지로. 그의 작품 17편을 한데 모은 회고전이 부산과 서울에서 연이어 열린다.
‘오즈 야스지로 특별전’이 ‘시네마테크 부산’(8일~23일)과 서울 ‘하이퍼텍나다’(28일~6월10일)에서 연이어 열린다. ‘동경 이야기’ ‘부초’ 등 모두 17편이 상영되는 이번 회고전은 일본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손꼽히는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오즈 야스지로(1903-1963)의 이름이 일본 바깥으로 본격적으로 퍼져 나간 것은 1970년대나 되어서의 일이었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1950년대 초반부터 이미 국제적 신망을 얻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일본의 3대 거장 가운데 하나인 오즈의 진가가 사후에나 국제적으로 드러난 것은 꽤 늦은 셈이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오즈의 영화가 서구인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일본적이기 때문에, 그래서 제대로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지금도 여전히 오즈라고 하면 가장 일본적인 영화감독 가운데 하나로 불린다.


▲ 동경이야기
역동적인 이야기 전개와 그에 어울리는 동적인 영화 스타일을 구사한 구로사와가 서구적인 일본 영화감독이라면, 치밀하게 균형 잡힌 형식을 빌려 작은 이야기를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준 오즈는 일본적인 일본 영화감독이라는 것이다. 사실 오즈를 두고 무턱대고 일본적이라고만 정의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여하튼 그가 영화사의 그 어떤 감독들의 것과도 구별되는 독자적이고 매혹적이며 아름다운 세계를 구축했다는 데에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 오즈의 영화들을 두고 독일의 영화감독 빔 벤더스는 영화사에 존재하는 신성한 보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 2001년에 이어 다시 한번 그 보물들과 만날 기회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 꽁치이야기
오즈의 세계와 마주하는 순간 아마도 우선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세계가 구성되는 독특한 방식일 것이다. 오즈는 통상적으로 눈높이라고 여겨지는 것보다 낮은 위치에다가 카메라를 배치했다. 그는 그 같은 ‘오즈의 시선’으로 시각적 아름다움과 표현의 효과가 돋보이는 구도를 만들어내고는 보는 이들을 손님으로 자신의 세계에 정중하게 초대했다. 오즈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카메라의 움직임을 비롯한 다른 수사적인 테크닉들은 거의 필요가 없었다. 그는 엄정한 시선만을 가지고서도 풍경과 표정과 감정을 스크린 위에 풍부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오즈는 금욕주의가 하나의 풍성한 영화미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또 하나의 위대한 영화감독이었던 것이다.


▲ 부초
오즈는 종종 자신을 ‘두부 장수’에 비유하곤 했다. 두부장수가 공장에서 똑같은 모양을 한 두부를 만들어 팔듯이, 자신은 동일한 형식과 이야기를 가진 영화로부터의 변주를 해가며 영화를 만들어갔다는 것이다. 사실 ‘늦봄’ 이후 오즈의 영화들은 거의 바뀌지 않는 형식으로 유사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줬다. 이를테면 ‘늦봄’에서 다뤄진, 딸을 시집보내고 쓸쓸히 홀로 남게 되는 부모의 이야기는 ‘가을 햇살’과 ‘꽁치의 맛’에서 되풀이되곤 했던 것이다. 오즈의 후기 영화들은 이처럼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갈등과 문제들을 다룬 ‘홈드라마’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오즈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동경이야기’처럼 그의 홈드라마는 전통적인 가족이 막 붕괴되기 시작하던 당시의 일본사회를 반영한다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런데도 그것에는 부모 자식 사이의 소원해져 가는 관계나 늙어간다는 것 같이 보편적인 울림을 가진 이야기들이 절제를 지키면서도 효과적으로 담겨 있기에 그 사회 역사적 맥락을 벗어난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가 있었다. 한편으로 오즈 영화가 갖는 보편성의 근원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동경이야기’는 겉보기로는 가족상의 변화를 다룬 영화 정도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아래로는 시간과 인생이 흘러간다는 것에 대해 성찰하는 영화라는 또 다른 면모가 숨어 있다.

그처럼 오즈의 영화가 사실 다루고자 하는 것은 단지 결혼과 늙음이란 현상이 아니라 그처럼 자연의 사이클 안에 위치한 인간이란 존재의 미약함 쪽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일본적이라고 하는 오즈의 영화가 우리 같은 후세의 ‘외국인’의 마음을 여전히 깊이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닐까.

(홍성남·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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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05-07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가 나왔을 무렵의 인터뷰에서 오스 야스지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8월의 크리스마스도 그런 분위기라고 했었는데 볼 기회가 없었어요. 한 번 보고 싶네요.

stella.K 2004-05-07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것만큼은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