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평가단에서 보내 준 책 저만치 밀어두고 오늘부터 이 책을 펼쳤다. 솔직히 평가단 이번 책은 나로선 머리에서 쥐가 난다.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라서 대략난감 중이다. 이럴 땐 안 읽히는 책 억지로 읽으려고 하지말고 마음 가는 책 읽어주는 것이 효율적인 것 같다. 안 읽히는 책은 그후 더 읽을 건지 말건지를 생각하면 되고.
이책의 저자는 책을 가장 쉬우면서도 흥미롭게 쓰는 작가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책 처음 부분 읽다 괜찮은 글이 있어 통째로 옮겨 본다.
제목은 '하이데거의 닦달하기, 그리고 양계장'
하이데거의 기술문명 비판의 핵심은 '게슈텔Gestell'이라는 개념이다. 역자는 이 단어를 '닦달하기'라고 번역했다. 아주 그럴듯한 번역이다. 현대 기술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쥐어짜고 윽밖지른다.
양계산업이나 목축산업은 닦달하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소들이 있는 외양간에 톱밥을 깔아주면 푹신푹신한 바닥을 마치 풀밭처럼 생각해 열심히 돌아다닌다. 그 결과 운동량이 많아져서 몸에는 지방이 줄어들고 맛은 떨어진다. 목축업자는 소의 복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 소 좋아하는 꼴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그들은 외양간 바닥을 콘크리트로 깐다. 안 그래도 뼈는 부실하고 살은 피둥피둥하게 찐 소들은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서는 운동을 하지 않는다. 딱딱한 바닥에서 걷자니 관절이 아프고 삭신이 아리기 때문이다. 당연히 운동량이 줄어든 소의 몸에는 지방이 붙고 고기의 맛이 좋아진다. 소가 산보하는 재미를 앗은 대가로 인간은 쫀득쫀득한 고기를 얻는다.
닭은 일 년에 60개 낳던 계란을 300~360개나 낳는다. 젖소는 야생에서 하루 2~3킬로그램 생산하던 우유를 30~50킬로그램 생산한다. 닭은 최대 15년까지 살 수 있지만 육계(식용으로 기르는 닭) 는 6주만에 2킬로그램 정도 쌀을 찌워 출하한다. 삼계탕에 쓰이는 닭은 1.2~1.6 킬로그램 정도가 되면 출하한다. 6주도 지나지 않아 죽임을 당하는 꼴이다. 수명이 10~15년 정도인 돼지도 6개월 정도를 살다가 110킬로그램 되면 도축장으로 간다.
가진 것을 다 내놓으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것까지 만들어서 내놓으라는 협박이고, 어린아이의 자궁에 아이의 씨를 넣는 격이다. 산 것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불살계(不殺戒)는 산업 논리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계율이 되어 버렸다.
(034~035p)
인간이 지은 죄가 참 많다. 고기를 아예 먹지 말라는 말은 차미 못하겠다. 그래도 우리는 필히 육류 소비량을 줄일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이 자기 먹는 양의 단 1그램만 줄여도 우리의 돼지와 소와 닭은 그렇게까지 비참한 삶을 살다가 죽지 않을 것이다.
저자도 그 말을 인용했지만,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 선생은 인간은 자연의 이자로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벌써 또 주말이다. 오늘 저녁 좋은 사람과 약속이 있다면 그 사람과 꼭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좀 자제해 주시라. 고기 먹지 않고도 좋은 만남은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