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대체로 흐리고, 후텁지근
요며칠 여름 못지 않게 덥다. 오늘도 마찬가지. 추석도 지났는데도 한낮엔 왜 이리 더운지 모르겠다. 나만 이러나...
1. 안 먹는 음식이 거의 없는 편이긴한데, 약간 거리를 두게되는 음식이 있다면 그것은 케이크다. 물론 가끔 한 조각 정도 먹는 거야 기분 전환도 되고 좋긴한데 몇년 전 성경공부 그룹에 들어갔더니 생일을 꼬박꼬박 챙기는 분위기다. 당시 모이는 인원 수가 나까지 5, 6명쯤 됐는데 그때마다 먹었다고 생각 보라. 정말 내장에 지방 끼는 느낌이 든다. 그때부터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게 됐다.
작년, 내 생일 때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리더님께서 케이크를 배달시켜 주셨다. 뭐 성의에 감사드리긴 했지만 그거 먹느라고 고생했다. 집엔 나외엔 케이크를 먹는 사람이 없어서. 어쨌든 그러다보니 내남없이 생일만 되면 긴장이 된다. 케이크를 안 먹을 수도 없고, 먹자니 괴롭고. 생일 날 케이크를 먹는 풍습은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2. 올해가 좀 특별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를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일은 내 생일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생일 두 달여 앞두고 천국으로 가셨다. 나는 생일이 되도록 이렇게 살고 있는데 말이다.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 보다 엄마가 아버지를 천국으로 보낸 그 나이를 내가 살았을 때가 좀 그랬다. 아직도 젊다면 젊은 나이에 아버지와 사별을 해야했던 그 마음이 어땠는지 미처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엄마와 아버지는 두 살 차이었다. 그러니까 2년전 나는 엄마가 아버지와 사별했던 그 나이를 살고 있었다. 노명우의 <인생극장> 리뷰 때 나의 아버지와 엄마에 대해 잠깐 언급하기도 했지만, 두 분은 여느 부부처럼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요즘처럼 결혼에 대해 누가 교육시켜 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30년 결혼생활중 마지막 10년 조금 안 되는 세월을 나쁘지 않게 보내셨다는 정도. 그래서 그럴까 아니면 웬수 같은 남편이어도 없는 것 보단 낫다는 보편적 정서 때문이었을까. 엄마는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많이 울었다. 난 그게 좀 의아스러웠다. 서로 미워할 땐 어쩌고 저렇게 우는 것일까. 그때 하나 깨달은 건 부부가 함께 살다가 죽는 건 저런 거구나 했던 것. 그래도 내가 아버지를 잃은 것과 엄마가 남편과 사별한 것과는 같은 건지 다른 건지 잘 모르겠다. 부부는 0촌이고, 부모와 자식지간은 1촌이라하지 않던가.
아무튼 지금 아버지가 돌아간 그 나이를 살고 있는 나는 엄마와 나는 언제 사별하게 될까. 엄마를 천국으로 보내 드리고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아버지가 돌아간 직후의 삶도 어떻게 살았나 싶다. 그래도 엄마는 천수를 누리고 가는 것이 될 테니 좀 덜 슬플까. 알 수가 없다.
내일 하루만큼은 이런 생각하지 말고 의연해야지.
3. 1864년생인 빵 피트의 현재 나이는 57세다. 미쿡 나이가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59살이겠지. 그렇다고 나의 생년이 같지 않을까 생각하면 그건 큰 오산이다. 암튼 빵 피트가 한국 사정을 알면 왓...? 할 것이다. 그리고 억울해 하겠지.
그래서 말인데, 한국 나이 말고 만나이를 쓰자는 움직임이 몇년 전부터 일어나는가 보다.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나이가 많아야 대우 받는다는 생각 때문에 한쿡 나이가 생긴 것 같은데 이게 지금은 여러모로 불편하게 만드는가 보다. 지금은 나이 많은 게 유세도 아니고.
근데 이게 당장 바뀌기는 쉽지 않은 모양인데 그래도 언젠가 바뀔 모양이니 지금 만나이를 현재 나이로 해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