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투쟁은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자기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부정과 싸운 것은 인간적이었다! 그의 투쟁은 패배와 직결하고 있었으나, 헛된 것이라 말할 수는 없었다. 만일 우리가 타협적으로 굴지 않고, <그런 짓은 소용없다, 무리다!>라고 단념하지 않고 다르게 행동했다면 우리 나라는 전혀 다르게 되었을 것이다! 심지어 미뜨로비치는 시민도 아니었다. 그는 유형수였다. 그래도 그의 안경의 빛은 지구의 권력자들을 떨게 했던 것이다.
- P156

우리 모두 지겨운 혐오감을 감추고, 다함께 바보들의 축제로나아갔다. 투표는 모든 유형수들한테도 허용되어 있었다.
그토록 선거는 가치 없는 것이었다.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에게도 선거인 명부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 빨리 투표하도록재촉했다.  - P157

선거라는 것은 받아 쥔 투표용지를 되도록 빨리 투표함까지가져가서 그 구멍 속으로 밀어 넣는 일뿐이었다. 만일 누군가발을 멈추고 입후보자의 성이라도 자세히 읽는 흉내를 내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이미 의심받는 일이 된다 - 당 기관이추천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는가? 읽을 필요가 없지 않는가?
투표가 끝나면 모두 당당히 술을 마실 수가 있었다(봉급은 제날짜건 가불이건 반드시 선거 전에 지불되었다). 모두 가장좋은 옷을 입고(유형수도 마찬가지) 거리에서 사람을 만나면깊이 고개를 숙이며, 서로 무슨 연고인지 인사를 하며, <좋은하루입니다!〉라고 했다..…….
- P157

도형 수용소에서 우리는 황당한 광경을 보면 드러내 놓고웃었지만 유형지에서는 자기의 생각을 남한테 말할 수 없게된다. 유형수들은 보기에는 자유인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우선 처음에 사회로부터 받아들인 것은 무엇이든 감춘다는 기본적인 습관이었다.  - P158

인간이란 일생을 통하여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한다! 자기 자신한테나 다른 사람한테나, 전혀 몰랐던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모습 중 하나를 향해, 우리는 명령이라든가법률이나 충동에 의해, 또는 아예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즐겁게 돌을 던지는 것이다.
- P161

그런데 어찌 된 노릇인지, 사령부에 공석이 보이기 시작했다.「그 사령관은 어찌 되었나요?」 「그는 이제 여기에 없소.」사령부의 인원이 줄었다! 응대하는 것도 친절해졌다. 신성한등록 확인도 그다지 신성하지 않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저녁 시간까지 오지 않더라도 넘어갔다. 「괜찮소, 다음에 합시다! 」여러 민족들이 차례로 권리를 되찾고, 다른 주로의 여행도 전보다는 자유로워졌다. 〈곧 우리를 고향으로 보내 준대요.
고향으로!〉라는 소문이 점차 심해졌다.  - P166

제20차 당 대회가 시작되었다. 흐루쇼프의 연설에 대해서우리는 오랫동안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꼬끄 쩨레끄에서 사람들이 그것을 읽기 시작했을 때도, 유형수들한테는 보여 주지 않았다. 우리는 BBC를 통해서 그 연설에 대해 알게 되었다).  - P171

그는 1944년에내가 스딸린에 대해 쓴 해학에 웃음까지 지었다. "참, 이것은바로 지적했군요! "조서에 딸려 있는 죄를 입증하는 증거물중에서 전선에서 쓴 나의 단편 소설을 보고 칭찬했다. "이 속에는 반소비에뜨적인 것은 하나도 없더군요! 원하신다면 가져가도 좋아요. 발표하는 게 어떨까요?" 그러나 나는 환자처럼 기어드는 목소리로 거절했다. 「아닙니다. 저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학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만일 제가 앞으로 몇 년을 더 산다면 물리학을 공부해 볼까 합니다.」 (이것이 지금의 유행이다! 앞으로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매를 아끼면 버릇이 나빠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감옥은나름대로의 지혜를 우리한테 가르쳐 주었다. 체까-GB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 P173

만일 체포가 물을 단숨에 얼려 버리는 혹한이었다면, 석방은 두 혹한 사이 약간의 해빙에 지나지 않는다.
두 체포 사이의.
왜냐하면 이 나라에서는 석방이 있으면, 그 뒤에는 언제나반드시 체포가 잇따르게 마련이다.
흐루쇼프 시대가 오기까지 40년간, 석방이란 2개의 체포사이의 상태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2개의 섬 사이에 던져진 구명보트였다. 
하나의 수용소에서 다른 수용소로 가는 동안에, 이것을 이용하여 물에서 버둥거려 보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의 사이가 형기이며, 한 수용소 구내를 나가서 다른 수용소 구내에 들어가기까지의 사이가 <석방>인 것이다.
- P175

나딸리야 이바노브나 스똘랴로바는 1945년 4월 27일에 까르 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국내 신분증을 교부받아야 했기때문에 곧 그 지방을 떠날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는 빵 배급권도 없었고 머무를 곳도 없었고 일이라고는 장작을 패는 일밖에 없었다. 수용소의 친구들이 모아 준 몇 루블을 쓰고 나서, 스똘랴로바는 수용소로 돌아가 경비병들에게 짐을 가지러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서는(그 지역의 오랜 관습이었다)자기의 막사로 뛰어들었다! 재회의 기쁨은 대단했다! 친구들은 그녀를 둘러싸고 취사장에서 수프를 날라다 주었고(참 맛있구나!), 웃으면서 사회의 불편한 생활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가 훨씬 편하다는 결론이었다. 점호 시간이 되었다. 한 사람이 남았다! 당직자가 나무랐으나, 다음 날 아침까지 (다음날은 5월 1일이었다) 수용소 구내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에는나가라고 했다!
- P176

내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 로스또프 대학에는 조금 이상한N. A. 뜨리포노프라는 교수가 있었다. 그는 언제나 움츠리고,
늘 긴장하여 안절부절 못했다. 복도에서도 그를 부를 수가 없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이미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복도에서 누가 부르는 것은 보안 장교가 부르는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 P178

<너무 일찍 >석방된 사람들은 불행했다! 아베니르 보리소프는 1946년에 석방되었다. 그는 어떤 큰 도시가 아니라, 자기의 고향 마을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오래된 친구들이나동급생들은 그와 길에서 만나지 않도록, 또 멈춰서 이야기하지 않도록 애썼다. (그의 친구들은 최근까지 전선에서 용감히싸운 젊은이들뿐이었는데!) 만일 도저히 말을 피할 수 없을경우에는 되도록 무난한 말을 골라서 슬금슬금 도망치듯 했다. 이 몇 해 동안 그가 어떻게 지냈는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없었다). (아니, 우리는 중앙아프리카에 대해서보다 수용소군도에 대해서 더 모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P178

스딸린 시대의 가장 좋은 석방은 수용소 문을 나와, 그곳에 남는 것이었다. 그러한 사람들은 이미 작업 현장에서도 알려져 있어서, 이내 채용되었다. 이미 조사가 끝난 사람들이기때문에, 내무부의 직원들도 그들을 길에서 만나면 의심하지않고 사람으로 대우했다.
- P180

그럼 명예 회복의 형태란 어떤 것인가? 노파 C. 에게 불친절한 호출장이 왔다. 내일 아침 오전 10시까지 경찰에 출두할것. 이것뿐이었다! 호출 전날 밤에, 그녀의 딸이 호출장을 들고 경찰에게 달려갔다.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궁금해서 왔어요. 이게 무슨 일이죠? 어머니한테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요?」 「아니, 걱정할 것 없어요. 이것은 좋은 소식입니다. 돌아가신 남편의 명예 회복에 관한 일 때문에 그래요.」(그것이 그녀에게 슬픈 소식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자선을베푸는 사람은 그런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우리 나라에서 <자비>의 형태가 이 정도라면, 잔학의 형태는 대체 어떨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P183

제7부

스딸린 사후

.....그들은 또한 자기들이 행한 살인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요한의 묵시록 9 장 21절>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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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어려운 시절 먼 타국에서도 교육열!

한국인들도 까자흐스딴에서 크게 성공했다. 그들의강제 이주는 훨씬 일찍부터 실시되었고, 1950년대 초에는 상당히 자유롭게 되었다. 그들은 이미 사령부에서 등록 확인을받지 않아도 좋았고〉, 자유롭게 다른 주로 이동할 수 있었으나, 공화국 밖으로는 나갈 수 없었다. 그들은 좋은 집이나 넓은 마당을 소유하지는 않았다(젊은 세대의 생활 양식이 유럽화 될때까지,그들의 주거 환경은불편하고 원시적인 것이었다.)하지만, 그들은 교육열이 높아서 재빨리 까자흐스딴 지방의 교육시설을 점령하고 (이미 전쟁 때부터는 그들을 막을 장애물이 없었다)공화국의 지식인층을 지탱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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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 제한된 시간 내에잠을 깨고 가족이 옷을 입고, 영구히 강제 이주되는 것을 납득하고 모든 재산권을 포기한다는 서류에 서명하고, 노파나어린이의 채비를 하고, 수하물을 꾸려서 명령대로 집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남긴 재산은 정말 잘 처분되었다. 호송대가나가면 재무 감독부의 사람들이 와서 몰수 목록을 작성하고그 목록에 따라 재산은 위탁 판매점을 통하여 팔리고 그 판매금은 국고로 들어갔다. 이 목록을 작성할 때, 그들이 이것저것자기 호주머니에 넣거나, 혹은 부정하게 자전거로 실어 냈다고 비난할 수 없었다.  - P98

이 호송병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마리야 숨베르고가 강제 이주될 때 출림강 유역 출신의 시베리아 병사가 그 일을 맡았다. 얼마 후 그는 제대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녀를 만났을 때, 그는진심으로 기뻐하며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이렇게 말했다. 「아주머니! 나를 기억하겠어요?」 - P98

그런데 전혀 복종의 정신을 받아들이지 못한 민족이 하나있었다. 몇 명의 반란자가 아니라, 민족 전체가 그러했다. 바로 체첸인들이었다.
- P110

그들은 현지 주민이나 쉽사리 당국이 시키는 대로 하는 유형수들을 자기들과 같은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존경하는 것은 반란자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누구나 그들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누구도 그들의 이러한 생활을 방해하지 않았다. 이미 30년간에 걸쳐서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권력도 강제로 그들을 굴복시킬 수 없었다.
- P111

나도 남들과 비슷했지만, 유형에 대한 나의 꿈은 한층 강렬했다. 나는 예루살렘의 점토 채굴장에서 이웃 마을에서 들려오는 수탉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유형을 꿈꿨다. 또 깔루가대문의 지붕에서 나와는 상관이 없는 거대한 수도의 풍경을내려다보면서 이런 도시에서는 되도록 멀리 있는 유형지에가고 싶다! 하고 주문을 외우듯 말했다. 심지어 나는 최고 회의 앞으로 소박한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그곳이 제아무리 멀더라도, 아무리 오지에 있는 유형지라도 좋으니, 수용소 8년형을 종신 유형으로 바꿔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코끼리는 그대답으로 재채기도 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정말로 종신 유형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것은 수용소<대신>이 아니라 다만 <그 뒤에>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 P118

우리는 호송하에 수용소에서 나올 때도 마지막 감옥에서의미신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마지막 감옥을 되돌아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거기로 돌아가게 된다고 했다). 또 감옥에서 사용했던 자기 숟가락의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그런데 어느 것이 맞을까? 어떤사람은 그것을 도로 가지러 가지 않기 위해서는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감옥이 뒤따라오지 못하게 그것을감옥에 팽개치고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숟가락을 직접주조 공장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가지고 나왔다).
- P119

교단에 서야 한다! 다시 한번 인간으로서 자각을찾자! 빨리 교실로 가서 불타오르는 눈으로 학생들의 얼굴을바라보자! 내가 칠판의 그림을 손으로 가리키면 모두 숨을 죽일 것이다! 그 그림에 선을 더하면 문제가 풀려서 모두 긴장이 풀리고 편하게 될 것이다.
도저히 잠들 수가 없다! 달빛 아래에서 나는 걷고 또 걸었다. 노새가 노래를 부른다! 낙타가 노래를 부른다! 나도 마음속으로 줄곧 노래를 부른다 — 자유다! 자유다!
- P138

그것은 내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 친구들과 함께 고대하던순간이었다. 그것은 수용소군도의 죄수들 모두가 바라던 순간이었다(물론, 정통파 공산당원들은 제외하고)! 그가 죽었다! 아시아적 독재자가 죽은 것이다! 악당이 쓰러진 것이다!
지금쯤 우리의 수용소군도에서는 모두가 얼마나 좋아하고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학교 교사인 러시아의 젊은 딸들은 통곡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들은 친아버지를 잃은 것이다.……. 지금 당장 광장 너머에 있는 그 딸들에게외치고 싶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이제 너희들의 아버지는 총살되지 않고, 너희들의 연인도 형무소에 가지 않아! 너희들 자신도 투옥되지 않고!」나는 확성기 앞에서 환성을 지르며, 춤을 추고 싶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역사의 강물은 너무나 느렸다. 어떤 상황에도 훈련이 잘된 나의 얼굴은 슬픈 표정이 되었다. 지금은위장해야 한다. 예전처럼 위장해야 한다.
어쨌든 내 유형의 시작부터 이런 기쁜 일이 일어나다니!
이날 나는 다시 시를 쓰며 하루 종일을 보냈다. 「3월 5일」이라는 시였다.
- P140

열흘쯤 지나자, 초상화 뒤에서의 싸움과 그 무정부 상태 속에서 MGB가 폐지되었다!
과연 MGB는 <영원할 것인가?>라
는 의문을 가졌던 내가 옳았다.

불공평, 불평등, 노예 제도를 제외하면 이 지상에서 무엇이영원할 것인가?
- P141

의장은 나를 부르지 않고 나도 가지 않았다. 나는 졸면서틀리기만 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힘껏 하루를 일하고, 또 저녁5시가 되면 용기를 내서 돌아가 버렸다. 어떤 결말이 되더라도 나는 그 결말이 빨리 오기를 바랐다.

나는 인생에서 여러 번, 많은 것을 희생시켜도 좋으나 가장중요한 것만은 단호히 지켜야 한다고 배웠다. 이미 특수 수용소 건설 현장에서 구상했던 그 희곡만은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가 이겼다. 일주일 동안 모두가 밤에도 일했으나, 나의 자리는 언제나 비어 있는 데 익숙해졌다. 아니, 의장까지도 복도에서 나를 만나면 그 시선을 피했다.
- P148

교감은 나를 두고 모험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다지 정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내가 수용소에 있던 사이에 수학을 아주 잊어버리지나 않았나 걱정했다. 기하학과 삼각법의 필기 시험지가 왔을 때, 그는 학생들 앞에서 문제가 들어 있는 봉투를 뜯지 않고 교장실로 전 직원을 모아 놓고 내가 그 문제를 풀고 있는 동안에 나의 어깨 너머에 서 있었다. 나의 해답이 모범 답안과 일치하자 그는 다른 수학 선생과 똑같이 축제 기분이었다. 여기서는아주 간단히 데카르트로 통하는 것이다! 매해 7학년의 시험때가 되면 지방 학교에서 지구 중심지로 자주 전화가 걸려 와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조건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물어왔던 것을 그때까지는 나는 알지 못했다. 그 교사들도 7년제를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 P149

교실에 들어가 손에 분필을 잡은 것은 나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행복이었다. 이것이 나의 진짜 석방의 날이며, 시민권을 되찾은 날이었다. 유형수의 삶 중에서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나의 관심을 끌지 않았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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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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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에 내가 부모님과 셋이서 살때, 안방보다 내 방이 화장실과 가까웠다.
(바로 옆이었다)
늦은 사춘기였을까?
아무래도 아빠가 화장실을 쓴 뒤 바로 이어 쓰는게 조금 찜찜하던 때였다.
어느 날 ‘화장실을 가야겠다. ‘생각하던 찰나에 아빠가 화장실을 가려는 인기척을 느꼈다. 순간 나는 먼저 가기위해 문을 열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갔고 화장실로 천천히 걸어오던 아빠는 ˝에이참!˝ 하며 아쉬워했다. 화장실을 선점한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안에서 얼마나 웃었던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폐가 들썩이는 기분이다.

그리고 한참 뒤 돌아가시기 얼마전 아빠와 함께 골목길을 걷던 따뜻한 늦가을 이었다. 쨍쨍한 햇살 아래 거동이 힘들던 아빠는 어느 한옥집 대문앞 계단에 잠시 앉았다. 아빠는 당시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는데 덩달아 마음도약해진 탓에 전에는 안하던 말도 더러 하곤했다. 그날은 계단에 같이 앉아 내 손을 잡으면서 ˝미안하다 미안해˝를 반복하며 아빠는 어린아이처럼울었다.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자세한 설명도 없이 그렇게 말하면서 허탈해 하는데 나도 묻지 않았고 그런 상황이 더 슬펐던것 같다. 어느순간 나도 덩달아, 늙고 지친아빠가 가여워 울음을 겨우겨우 먹고 있는데, 길을 지나가던 아주머니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우릴 빤히 쳐다봤다.
나이든 할아버지와 웬 여자가 길에서 그러고 있으니 정말 기이했으리라.

아빠와의 기억중 가장 좋았던건 이 두가지다. 어쩌면 아빠의 가장  약한 모습이었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내 곁에 없는 나의 아빠. 권위적이고 언성이 높은 편이어서  가까이하기 힘들었고 그로인해 가족들에게 오해를 많이 받으신 분.

가족이란 뭘까?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질문들이 떠올랐다. 많은 것을 나누면 나눈대로 그렇지 못하고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살아왔음 또 그런대로 우리에게 복잡한 의미를 던져주는 존재.


누구나 자기 부모의 어떤 이미지로 바보도되고 울보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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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1-15 15: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황정은 소설 그간 다 찾아 읽는 편이었는데 어쩐지 이 소설은 바로 읽게 되질 않더라고요. 그런데 미미님의 이 리뷰를 보는 순간 이 책을 읽어야겠다 결심하게 됩니다. 장바구니에 담겠습니다.
전 아빠에게 무서운 딸인데 조금 더 다정해지도록 해야겠어요.

미미 2021-01-15 15:37   좋아요 3 | URL
책 덮고 글올리고 나서 잠시먹먹하다 다락방님땜 저 또 웃음터짐요.ㅋㅋㅋㅋ외모는 아나스타샤, 성격은 안젤리나 졸리인거맞죠?!ㅋㅋㅋㅋ

다락방 2021-01-15 16:45   좋아요 2 | URL
네?
우리 그걸 확인하지는 않기로 해요. 서로를 위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1-15 15: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보와 울보 사이. 부모는 자식을 그런 존재로 만드나봐요. 전 첫 단편 이장만 읽고 모셔두고 있어요. ㅡㅡ

미미 2021-01-15 15:39   좋아요 2 | URL
그러게 말이예요!! 초중반에 두번쯤 울었네요. 그닥 작가도 그럴의도는없어보이는 곳에서요ㅋㅋ

scott 2021-01-15 15: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자기 부모의 어떤 이미지로 바보도되고 울보도된다] 전 울보로 모든걸 다 내것으로 만들었던 막둥이였는데,,,터울이 큰 형제들 한테 밀리지 않을려고, 미미님 말씀처럼 가족이란 무얼 까요 ? 우리모두 가족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요? 황정은 소설보다 미미님 리뷰가 더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많습니다.

미미 2021-01-15 15:43   좋아요 3 | URL
(지금 저는 어쩔줄 몰라하고 있습니다ㅋㅋㅋㅋ)그니깐요. 어쩔땐 정말 밉다가도 또 어쩔땐 마음이 너무 아프니까요. 저는 스콧님. 외동이었어요*^^*

페넬로페 2021-01-15 16:19   좋아요 3 | URL
scott님
저도 막둥이예요~~
저는 반대로 언니, 오빠에게
밀리는 전략으로 여지껏 편안히
한없이 받으며 살고 있어요 ㅎㅎ

페넬로페 2021-01-15 16:19   좋아요 3 | URL
미미에서 풍겨지는 외동딸의 냄새^^

다락방 2021-01-15 16:46   좋아요 4 | URL
아 너무 끼어들고 싶네요.
저는 코리안 장녀 입니다!!! 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1-15 17:38   좋아요 3 | URL
코리안 장녀!
장남과는 다르게 또 무겁습니다.
뭔가 권위적이지 않아야하면서
많은걸 어깨에 짊어져야하는 언니, 누나^^

scott 2021-01-15 19:43   좋아요 3 | URL
역쉬 !
댓글들은 山으로 ㅋㅋㅋ

막둥이들 만쉐
(๑˃̵ᴗ˂̵)و ♡

붕붕툐툐 2021-01-17 19:48   좋아요 1 | URL
막둥이 하나 추가요!!:)

페넬로페 2021-01-15 16: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글읽고 제가 울컥하네요~~
전 연년세세 읽으며 책 속의 인물보다
왜그리 제 가족과 주위의 친족분들이 생각나던지 모르겠어요^^
책속의 주인공들을 그들이 덮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이 좋았어요
모국어로 쓰여진 여자가 쓴 글을
저는 좋아해요**

미미 2021-01-15 16:26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도 그러셨군요!! 가족에 관해서라면 누구나 자기들의 이야기가 있으니 그런것 같아요~제각각이지만 또 이렇게 함께 공감할 수 있는것도 놀랍구 좋네요~♡

붕붕툐툐 2021-01-17 19: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부지가 너무 무서웠는데, 너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렇게 관계가 끝났다는게 지금까지도 많이 아쉬운 부분이에요..ㅠㅠ 읽고 싶은 책장에 담아가요^^

미미 2021-01-17 20:01   좋아요 1 | URL
그랬군요! ㅠㅡㅠ
이 책에서 아버지 얘기가 특별히 많이 나온것도 없는데 이런 추억이 떠올랐어요.

2021-01-17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7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영진과 한중언은 거기 뭐가 있다고 매년 기를 쓰고 가느냐는 입장이었다. 해마다 사람 키만큼 자란 풀들을 낫으로 끊어내며 가야 하는 마른 도랑과 뱀이 늘어져 있곤 하는 덤불,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해 휘어진 나무와이끼들, 볼품없이 이지러진 봉분과 멧돼지가 다녀간 흔적들, 묘를 둘러싼 밤나무, 소나무의 침묵을 그들은 몰랐다. 이순일이 매년 낫으로 길을 내며 거기로 올라가는이유를 한세진은 이해했다. 엄마에게는 거기가 친정일것이다. 그 묘가.
- P17

효?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답했다.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 P44

겉감을 비벼 속감을 알아보는 동안 한발짝 떨어져 서 있다가 낮은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좋죠?
좋네.
이거 엄마가 써요.
아유, 난 됐어.
좋잖아요.
좋지.
좋은 거 엄마가 써요. 
왜 애들만 좋은 거 써. 엄마들이 좋은 거 써야 해.
- P48

손써볼 수 없는 먼 과거에 동생을 두고 온 것 같았다. - P63

이순일은 매일 밤늦게 퇴근하는 한영진을 집 앞 가로등밑에서 기다렸다. 컴컴한 골목 모퉁이를 돌아 저만큼 떨어진 가로등 아래 선 엄마를 발견하면 한영진은 늘 얼마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걸 감추려고 툴툴대며 집 안으로 들어가면 거실에 놓인 상에 한영진의 저녁밥이 준비되어 있었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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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1-01-15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빠들도 아이의 부모이기 전에 고유한 개인이니까 당연히 좋은 거 써야 하죠. ^^

미미 2021-01-15 12:19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예요. ^^* 그런데 대부분 반대로 하시니 참 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