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진과 한중언은 거기 뭐가 있다고 매년 기를 쓰고 가느냐는 입장이었다. 해마다 사람 키만큼 자란 풀들을 낫으로 끊어내며 가야 하는 마른 도랑과 뱀이 늘어져 있곤 하는 덤불,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해 휘어진 나무와이끼들, 볼품없이 이지러진 봉분과 멧돼지가 다녀간 흔적들, 묘를 둘러싼 밤나무, 소나무의 침묵을 그들은 몰랐다. 이순일이 매년 낫으로 길을 내며 거기로 올라가는이유를 한세진은 이해했다. 엄마에게는 거기가 친정일것이다. 그 묘가.
- P17

효?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답했다.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 P44

겉감을 비벼 속감을 알아보는 동안 한발짝 떨어져 서 있다가 낮은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좋죠?
좋네.
이거 엄마가 써요.
아유, 난 됐어.
좋잖아요.
좋지.
좋은 거 엄마가 써요. 
왜 애들만 좋은 거 써. 엄마들이 좋은 거 써야 해.
- P48

손써볼 수 없는 먼 과거에 동생을 두고 온 것 같았다. - P63

이순일은 매일 밤늦게 퇴근하는 한영진을 집 앞 가로등밑에서 기다렸다. 컴컴한 골목 모퉁이를 돌아 저만큼 떨어진 가로등 아래 선 엄마를 발견하면 한영진은 늘 얼마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걸 감추려고 툴툴대며 집 안으로 들어가면 거실에 놓인 상에 한영진의 저녁밥이 준비되어 있었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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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1-01-15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빠들도 아이의 부모이기 전에 고유한 개인이니까 당연히 좋은 거 써야 하죠. ^^

미미 2021-01-15 12:19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예요. ^^* 그런데 대부분 반대로 하시니 참 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