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에 내가 부모님과 셋이서 살때, 안방보다 내 방이 화장실과 가까웠다. (바로 옆이었다)늦은 사춘기였을까?아무래도 아빠가 화장실을 쓴 뒤 바로 이어 쓰는게 조금 찜찜하던 때였다. 어느 날 ‘화장실을 가야겠다. ‘생각하던 찰나에 아빠가 화장실을 가려는 인기척을 느꼈다. 순간 나는 먼저 가기위해 문을 열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갔고 화장실로 천천히 걸어오던 아빠는 ˝에이참!˝ 하며 아쉬워했다. 화장실을 선점한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안에서 얼마나 웃었던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폐가 들썩이는 기분이다. 그리고 한참 뒤 돌아가시기 얼마전 아빠와 함께 골목길을 걷던 따뜻한 늦가을 이었다. 쨍쨍한 햇살 아래 거동이 힘들던 아빠는 어느 한옥집 대문앞 계단에 잠시 앉았다. 아빠는 당시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는데 덩달아 마음도약해진 탓에 전에는 안하던 말도 더러 하곤했다. 그날은 계단에 같이 앉아 내 손을 잡으면서 ˝미안하다 미안해˝를 반복하며 아빠는 어린아이처럼울었다.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자세한 설명도 없이 그렇게 말하면서 허탈해 하는데 나도 묻지 않았고 그런 상황이 더 슬펐던것 같다. 어느순간 나도 덩달아, 늙고 지친아빠가 가여워 울음을 겨우겨우 먹고 있는데, 길을 지나가던 아주머니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우릴 빤히 쳐다봤다.나이든 할아버지와 웬 여자가 길에서 그러고 있으니 정말 기이했으리라. 아빠와의 기억중 가장 좋았던건 이 두가지다. 어쩌면 아빠의 가장 약한 모습이었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내 곁에 없는 나의 아빠. 권위적이고 언성이 높은 편이어서 가까이하기 힘들었고 그로인해 가족들에게 오해를 많이 받으신 분. 가족이란 뭘까?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질문들이 떠올랐다. 많은 것을 나누면 나눈대로 그렇지 못하고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살아왔음 또 그런대로 우리에게 복잡한 의미를 던져주는 존재. 누구나 자기 부모의 어떤 이미지로 바보도되고 울보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