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시절에 내가 부모님과 셋이서 살때, 안방보다 내 방이 화장실과 가까웠다.
(바로 옆이었다)
늦은 사춘기였을까?
아무래도 아빠가 화장실을 쓴 뒤 바로 이어 쓰는게 조금 찜찜하던 때였다.
어느 날 ‘화장실을 가야겠다. ‘생각하던 찰나에 아빠가 화장실을 가려는 인기척을 느꼈다. 순간 나는 먼저 가기위해 문을 열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갔고 화장실로 천천히 걸어오던 아빠는 ˝에이참!˝ 하며 아쉬워했다. 화장실을 선점한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안에서 얼마나 웃었던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폐가 들썩이는 기분이다.

그리고 한참 뒤 돌아가시기 얼마전 아빠와 함께 골목길을 걷던 따뜻한 늦가을 이었다. 쨍쨍한 햇살 아래 거동이 힘들던 아빠는 어느 한옥집 대문앞 계단에 잠시 앉았다. 아빠는 당시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는데 덩달아 마음도약해진 탓에 전에는 안하던 말도 더러 하곤했다. 그날은 계단에 같이 앉아 내 손을 잡으면서 ˝미안하다 미안해˝를 반복하며 아빠는 어린아이처럼울었다.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자세한 설명도 없이 그렇게 말하면서 허탈해 하는데 나도 묻지 않았고 그런 상황이 더 슬펐던것 같다. 어느순간 나도 덩달아, 늙고 지친아빠가 가여워 울음을 겨우겨우 먹고 있는데, 길을 지나가던 아주머니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우릴 빤히 쳐다봤다.
나이든 할아버지와 웬 여자가 길에서 그러고 있으니 정말 기이했으리라.

아빠와의 기억중 가장 좋았던건 이 두가지다. 어쩌면 아빠의 가장  약한 모습이었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내 곁에 없는 나의 아빠. 권위적이고 언성이 높은 편이어서  가까이하기 힘들었고 그로인해 가족들에게 오해를 많이 받으신 분.

가족이란 뭘까?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질문들이 떠올랐다. 많은 것을 나누면 나눈대로 그렇지 못하고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살아왔음 또 그런대로 우리에게 복잡한 의미를 던져주는 존재.


누구나 자기 부모의 어떤 이미지로 바보도되고 울보도된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1-01-15 15: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황정은 소설 그간 다 찾아 읽는 편이었는데 어쩐지 이 소설은 바로 읽게 되질 않더라고요. 그런데 미미님의 이 리뷰를 보는 순간 이 책을 읽어야겠다 결심하게 됩니다. 장바구니에 담겠습니다.
전 아빠에게 무서운 딸인데 조금 더 다정해지도록 해야겠어요.

청아 2021-01-15 15:37   좋아요 3 | URL
책 덮고 글올리고 나서 잠시먹먹하다 다락방님땜 저 또 웃음터짐요.ㅋㅋㅋㅋ외모는 아나스타샤, 성격은 안젤리나 졸리인거맞죠?!ㅋㅋㅋㅋ

다락방 2021-01-15 16:45   좋아요 2 | URL
네?
우리 그걸 확인하지는 않기로 해요. 서로를 위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1-15 15: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보와 울보 사이. 부모는 자식을 그런 존재로 만드나봐요. 전 첫 단편 이장만 읽고 모셔두고 있어요. ㅡㅡ

청아 2021-01-15 15:39   좋아요 2 | URL
그러게 말이예요!! 초중반에 두번쯤 울었네요. 그닥 작가도 그럴의도는없어보이는 곳에서요ㅋㅋ

scott 2021-01-15 15: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자기 부모의 어떤 이미지로 바보도되고 울보도된다] 전 울보로 모든걸 다 내것으로 만들었던 막둥이였는데,,,터울이 큰 형제들 한테 밀리지 않을려고, 미미님 말씀처럼 가족이란 무얼 까요 ? 우리모두 가족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요? 황정은 소설보다 미미님 리뷰가 더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많습니다.

청아 2021-01-15 15:43   좋아요 3 | URL
(지금 저는 어쩔줄 몰라하고 있습니다ㅋㅋㅋㅋ)그니깐요. 어쩔땐 정말 밉다가도 또 어쩔땐 마음이 너무 아프니까요. 저는 스콧님. 외동이었어요*^^*

페넬로페 2021-01-15 16:19   좋아요 3 | URL
scott님
저도 막둥이예요~~
저는 반대로 언니, 오빠에게
밀리는 전략으로 여지껏 편안히
한없이 받으며 살고 있어요 ㅎㅎ

페넬로페 2021-01-15 16:19   좋아요 3 | URL
미미에서 풍겨지는 외동딸의 냄새^^

다락방 2021-01-15 16:46   좋아요 4 | URL
아 너무 끼어들고 싶네요.
저는 코리안 장녀 입니다!!! 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1-15 17:38   좋아요 3 | URL
코리안 장녀!
장남과는 다르게 또 무겁습니다.
뭔가 권위적이지 않아야하면서
많은걸 어깨에 짊어져야하는 언니, 누나^^

scott 2021-01-15 19:43   좋아요 3 | URL
역쉬 !
댓글들은 山으로 ㅋㅋㅋ

막둥이들 만쉐
(๑˃̵ᴗ˂̵)و ♡

붕붕툐툐 2021-01-17 19:48   좋아요 1 | URL
막둥이 하나 추가요!!:)

페넬로페 2021-01-15 16: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글읽고 제가 울컥하네요~~
전 연년세세 읽으며 책 속의 인물보다
왜그리 제 가족과 주위의 친족분들이 생각나던지 모르겠어요^^
책속의 주인공들을 그들이 덮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이 좋았어요
모국어로 쓰여진 여자가 쓴 글을
저는 좋아해요**

청아 2021-01-15 16:26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도 그러셨군요!! 가족에 관해서라면 누구나 자기들의 이야기가 있으니 그런것 같아요~제각각이지만 또 이렇게 함께 공감할 수 있는것도 놀랍구 좋네요~♡

붕붕툐툐 2021-01-17 19: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부지가 너무 무서웠는데, 너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렇게 관계가 끝났다는게 지금까지도 많이 아쉬운 부분이에요..ㅠㅠ 읽고 싶은 책장에 담아가요^^

청아 2021-01-17 20:01   좋아요 1 | URL
그랬군요! ㅠㅡㅠ
이 책에서 아버지 얘기가 특별히 많이 나온것도 없는데 이런 추억이 떠올랐어요.

2021-01-17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7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