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 제한된 시간 내에잠을 깨고 가족이 옷을 입고, 영구히 강제 이주되는 것을 납득하고 모든 재산권을 포기한다는 서류에 서명하고, 노파나어린이의 채비를 하고, 수하물을 꾸려서 명령대로 집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남긴 재산은 정말 잘 처분되었다. 호송대가나가면 재무 감독부의 사람들이 와서 몰수 목록을 작성하고그 목록에 따라 재산은 위탁 판매점을 통하여 팔리고 그 판매금은 국고로 들어갔다. 이 목록을 작성할 때, 그들이 이것저것자기 호주머니에 넣거나, 혹은 부정하게 자전거로 실어 냈다고 비난할 수 없었다.  - P98

이 호송병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마리야 숨베르고가 강제 이주될 때 출림강 유역 출신의 시베리아 병사가 그 일을 맡았다. 얼마 후 그는 제대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녀를 만났을 때, 그는진심으로 기뻐하며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이렇게 말했다. 「아주머니! 나를 기억하겠어요?」 - P98

그런데 전혀 복종의 정신을 받아들이지 못한 민족이 하나있었다. 몇 명의 반란자가 아니라, 민족 전체가 그러했다. 바로 체첸인들이었다.
- P110

그들은 현지 주민이나 쉽사리 당국이 시키는 대로 하는 유형수들을 자기들과 같은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존경하는 것은 반란자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누구나 그들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누구도 그들의 이러한 생활을 방해하지 않았다. 이미 30년간에 걸쳐서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권력도 강제로 그들을 굴복시킬 수 없었다.
- P111

나도 남들과 비슷했지만, 유형에 대한 나의 꿈은 한층 강렬했다. 나는 예루살렘의 점토 채굴장에서 이웃 마을에서 들려오는 수탉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유형을 꿈꿨다. 또 깔루가대문의 지붕에서 나와는 상관이 없는 거대한 수도의 풍경을내려다보면서 이런 도시에서는 되도록 멀리 있는 유형지에가고 싶다! 하고 주문을 외우듯 말했다. 심지어 나는 최고 회의 앞으로 소박한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그곳이 제아무리 멀더라도, 아무리 오지에 있는 유형지라도 좋으니, 수용소 8년형을 종신 유형으로 바꿔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코끼리는 그대답으로 재채기도 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정말로 종신 유형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것은 수용소<대신>이 아니라 다만 <그 뒤에>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 P118

우리는 호송하에 수용소에서 나올 때도 마지막 감옥에서의미신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마지막 감옥을 되돌아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거기로 돌아가게 된다고 했다). 또 감옥에서 사용했던 자기 숟가락의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그런데 어느 것이 맞을까? 어떤사람은 그것을 도로 가지러 가지 않기 위해서는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감옥이 뒤따라오지 못하게 그것을감옥에 팽개치고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숟가락을 직접주조 공장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가지고 나왔다).
- P119

교단에 서야 한다! 다시 한번 인간으로서 자각을찾자! 빨리 교실로 가서 불타오르는 눈으로 학생들의 얼굴을바라보자! 내가 칠판의 그림을 손으로 가리키면 모두 숨을 죽일 것이다! 그 그림에 선을 더하면 문제가 풀려서 모두 긴장이 풀리고 편하게 될 것이다.
도저히 잠들 수가 없다! 달빛 아래에서 나는 걷고 또 걸었다. 노새가 노래를 부른다! 낙타가 노래를 부른다! 나도 마음속으로 줄곧 노래를 부른다 — 자유다! 자유다!
- P138

그것은 내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 친구들과 함께 고대하던순간이었다. 그것은 수용소군도의 죄수들 모두가 바라던 순간이었다(물론, 정통파 공산당원들은 제외하고)! 그가 죽었다! 아시아적 독재자가 죽은 것이다! 악당이 쓰러진 것이다!
지금쯤 우리의 수용소군도에서는 모두가 얼마나 좋아하고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학교 교사인 러시아의 젊은 딸들은 통곡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들은 친아버지를 잃은 것이다.……. 지금 당장 광장 너머에 있는 그 딸들에게외치고 싶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이제 너희들의 아버지는 총살되지 않고, 너희들의 연인도 형무소에 가지 않아! 너희들 자신도 투옥되지 않고!」나는 확성기 앞에서 환성을 지르며, 춤을 추고 싶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역사의 강물은 너무나 느렸다. 어떤 상황에도 훈련이 잘된 나의 얼굴은 슬픈 표정이 되었다. 지금은위장해야 한다. 예전처럼 위장해야 한다.
어쨌든 내 유형의 시작부터 이런 기쁜 일이 일어나다니!
이날 나는 다시 시를 쓰며 하루 종일을 보냈다. 「3월 5일」이라는 시였다.
- P140

열흘쯤 지나자, 초상화 뒤에서의 싸움과 그 무정부 상태 속에서 MGB가 폐지되었다!
과연 MGB는 <영원할 것인가?>라
는 의문을 가졌던 내가 옳았다.

불공평, 불평등, 노예 제도를 제외하면 이 지상에서 무엇이영원할 것인가?
- P141

의장은 나를 부르지 않고 나도 가지 않았다. 나는 졸면서틀리기만 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힘껏 하루를 일하고, 또 저녁5시가 되면 용기를 내서 돌아가 버렸다. 어떤 결말이 되더라도 나는 그 결말이 빨리 오기를 바랐다.

나는 인생에서 여러 번, 많은 것을 희생시켜도 좋으나 가장중요한 것만은 단호히 지켜야 한다고 배웠다. 이미 특수 수용소 건설 현장에서 구상했던 그 희곡만은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가 이겼다. 일주일 동안 모두가 밤에도 일했으나, 나의 자리는 언제나 비어 있는 데 익숙해졌다. 아니, 의장까지도 복도에서 나를 만나면 그 시선을 피했다.
- P148

교감은 나를 두고 모험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다지 정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내가 수용소에 있던 사이에 수학을 아주 잊어버리지나 않았나 걱정했다. 기하학과 삼각법의 필기 시험지가 왔을 때, 그는 학생들 앞에서 문제가 들어 있는 봉투를 뜯지 않고 교장실로 전 직원을 모아 놓고 내가 그 문제를 풀고 있는 동안에 나의 어깨 너머에 서 있었다. 나의 해답이 모범 답안과 일치하자 그는 다른 수학 선생과 똑같이 축제 기분이었다. 여기서는아주 간단히 데카르트로 통하는 것이다! 매해 7학년의 시험때가 되면 지방 학교에서 지구 중심지로 자주 전화가 걸려 와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조건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물어왔던 것을 그때까지는 나는 알지 못했다. 그 교사들도 7년제를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 P149

교실에 들어가 손에 분필을 잡은 것은 나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행복이었다. 이것이 나의 진짜 석방의 날이며, 시민권을 되찾은 날이었다. 유형수의 삶 중에서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나의 관심을 끌지 않았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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