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하 진 지음, 김연수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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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다림

500여쪽에 달하는 길고 긴 소설을 다 읽고 덮은 순간... 나는 더 깊은 생각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끝맺음을 정확히 하려는 내 성격상 소설 속에 등장하는 쿵린은 너무나 우유부단하고 책임감이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긴 여운과 함께 몰려왔다.


‘기다림’ 이란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 것일까? 그리고 소설속의 각 인물들에게 기다림은 어떤 보상을 해주었나...




무지라는 시내의 육군병원에서 군의관으로 일하는 쿵린은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수위라고 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쿵린은 아내의 외모에서 감정이라고는 느낄 수 없고 오히려 경악해했는데 그러다보니 수위에게 병원에 찾아오게 하지도 않고 마치 아내가 없는 듯 별거 생활에 들어간다.

쿵린은 우연히 ‘우만나’라는 같은 병원의 간호사와 사랑을 하게 되고 우만나와 결혼하기 위해 수위와 이혼하려하지만 린의 뜻대로 이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쿵린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름 휴가 때 고향에 내려가면 아내가 해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정말 편안하게 지내며 무지 시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병원의 규정상 별거생활이 18년이 되면 상대방의 동의 없이도 자동이혼이 된다. 린은.. 만나와 결혼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이혼을 하려고도 안했고 자동이혼이 되는 그 18년을 기다리면서 의무적으로 만나와의 사랑을 유지한 것일수도 있다. 물론 린이 그 동안 사랑을 주는 것보다 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인생을 바꾸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만나와의 결혼이 간절한 것은 아니였던 듯 싶다.

그렇게 긴 기다림 끝에 결혼을 했지만 너무 긴 기다림이었을까? 아내 우만나는 큰 병을 얻고 만다. 그제서야 린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전 처 수위와 딸 화가 있는 집에 방문했다가 너무도 편안한 느낌을 받고 놀라는데..

이런 린의 성격 때문에 만나는 18년간 린을 기다렸지만 낙천적인 성격은 신경질적으로 변했으며 병까지 얻는다. 수위는 아내 대접을 받지 못하고 묵묵히 가족을 위해 일을 하다가 이혼까지 당한 후 여전히 린을 기다리고.. 린이 다시 돌아가겠다는 말에 행복을 느낀다. 또한 린 자신도 사랑했던 우만나와 젊은 시절 함께 하지 못했고 그토록 사랑하지 않았던 아내 수위에게는 18년이 지난 후 고마움과 편안함을 느꼈으니 세 사람은 기다림의 시간동안 인생의 쓴맛과 참맛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나 싶다.

하진이 누구의 기다림을 표현하려 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짚어내기가 쉽지는 않지만 만나가 마지막에 꾼 꿈에서.. 린이 동산에서 했던 생각들에서.. 명절 전날 수위의 모습에서 각각 기다림을 통한 깨달음을 제시해 준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어쩌면 책의 표지의 세 갈래머리처럼 우만나와 매점의 약속을 정할 때부터 셋의 운명은 꼬여갔는지도 모른다. 물론 다시 풀 수는 있지만 풀어나가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 흘러버린 것은 아닐까? 빨간 끈으로 묶지도 못하는 린의 마음... 조금은 이해가 간다.

‘기다림’을 문학적으로 풀어낸 하진의 손 끝을 존경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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