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과 소철과 관음죽
송사리와 금붕어 올챙이와 개미와 방아깨비와 잠자리
장미와 안개꽃과 튤립과 국화
우리집에 와서 다 죽었다
죽음에 대한 관찰일기를 쓰며
죽음을 신기해하는 아이는 꼬박꼬박 키가 자랐고
죽음의 처참함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아내는 화장술이 늘어가는 삼십대가 되었다
바람도 태양도 푸른박테리아도
희망도 절망도 욕망도 끈질긴 유혹도
우리집에 와서 다 죽었다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별일없나
별일 없어요
행복이란 이런 것
죽음 곁에서
능청스러운 것
죽음을 집안으로 잔뜩 끌어들이는 것
어머니도 예수님도
귀머거리 시인도
우리집에 와서 다 죽었다
............................................................
이 시에는 역설이 숨겨져 있다. 특히 2.4연이 참좋다. 행복이란 죽음 곁에서 능청스러운 것이라 하지 않는가,
참으로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전에는 몰랐다. 우리집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죽어 나갔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단지 일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시인은 그것과 마주쳤다. 능청스러운 삶에서 건져올린 행복에의 이면을 바라보며 삶을 관조한다.
산자와 죽은 자들이 함께 엉키어 나고지고 반복되는 생사의 순환을 집에서도 발견한 것이다.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맛나게 마시고 이튿날 깨달음을 얻은 원효가 아니고서야
집을 무덤으로 깨닫다니!
해마다 나는 봄이 되면 고추 모종을 사서 화분에 심어둔다. 간간히 풋고추를 따먹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올해도 4포기를 사서 햇빛 잘 드는 베란다 한쪽 구석에 놓아두었다. 그동안 무럭무럭 잘 자랐다.
제법 콩알만한 고추들이 주렁주렁 열려 볼 때마다 흐뭇했다. 그런데 며칠전 물주러 갔다가 이파리에 잔뜩 달라붙은
진드기 무리를 발견한 것이다. 눈을 찔끔 감고 무자비하게 살충제를 뿌려댔다.
두 세번 그 짓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끈질기에 고추를 괴롭혔다. 거의 폭발적으로 자손을 번식시켜 고춧잎마다 빽빽히 들어차 있었다.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극단의 조치가 필요함을 느껴 나는 주저없이 고추를 뿌리 채 뽑아버렸다.
삶의 터전이 없어지면 저들도 집단폐사 되는 건 시간문제니까... 아, 잠시 번개처럼 스쳐가는 감정의 노란선!
이적지 잘 키운 고추가 아깝다는 생각, 오직 그 생각 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를 다시 읽게 되었다. 나는 통감했다. 대학살! 그 현장에 내가 있었던 것이다.
이 손으로~ 오오, 전능하신 이 손으로...
그들의 무덤이 된 우리집, 하지만 그들의 존재와 내가 한 짓은 까마득히 잊은 채 하하호호거렸고,
맛나게 커피를 끓여 마셨고, 고추 줄기를 사정없이 꺾어 쓰레기 봉투안에 쑤셔넣었으니...
조금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말이다.
그동안 그렇게 죽어나간 건 수도 없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달리 그들을 살려 어찌 해보겠다는 건 아니다.
시인의 시선처럼, 시인의 통찰처럼, 나 아닌 것, 오만한 인간 위주의 사고를 뒤틀어 옆을 볼 수 있다는 거,
삶과 죽음을 두루 살펴 생명에 대한 애정과 찬탄을 드러내는 일은 우리 삶을 다시 반추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거,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거, 그 모오든 능청스러움에 대해....
잘 키워보겠다는 순전한 생각에 집으로 얼마나 많이 데려왔는지에 대해.... 그리고 버려지는 가에 대해..
저 있을 자리에 있어야만 했던 그 모오든 것에, 우리 집에 와서 죽은 모오든 것에 대해서 말이다.
자, 이제 묵념을.....
그리고?..... 그만 죽이고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