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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 부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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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발칙한 상상을 해봤다. 이 지구상에서  저임금을 받고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갑자기 전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고. 어쩌면 거리엔 오물과 쓰레기가 넘쳐날 것이고, 처리할 데가 없어서 창밖으로 오물을 던지고 똥을 피하기 위해 하이힐을 신었던 17세기 유럽사회로 돌아가야 할런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보다 더 할 것이다. 온갖 산업폐기물과 가정에서 나온 쓰레기들로 넘쳐나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과 맞닥뜨리며 살아갈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건 누구인가?  조용히 거리를 쓸고 오물과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고, 잡다한 쓰레기들을 분류해서 재활용하는데 일조하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돌보는 등의 묵묵히 일하는 저임금의 노동자들일 것이다. 그들 덕분에 세상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하지만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어떠한가, 어둡고 암울한 이야기로 가득한, 한마디로 밑바닥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소리는 허울 좋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뺀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미 몸으로 감정적으로 터득한 사실이다. 그 바닥에서 그 일을 직접 체험하고 거기서 나온 수입으로 생활을 해보지 않은 이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고단한 삶에 그러한 문구가 위안이 될리도 만무하고, 달콤한 당의정으로 씌운다고 해도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을테니 말이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고, 저임금으로 하루살이 인생처럼 그날 그날 먹고 살아야 하므로 다른 곳에 눈 돌릴 겨를 조차 없다. 노동자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를 에런라이크는 몸소 체험하고서 쓴 <노동의 배신>에서 기술하지 않았던가,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최악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과도, 문화적인 삶에서도 소외되어 빈곤과 질병으로 인해 만신창이 삶을 사는 저임금의 노동자들! 경제적 불평등은 모든 것에 여파를 미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듣기 좋은 말로 인간 모두는 평등하다고는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계급사회에 살고 있다. 한정된 자유 안에서 기만적이게도 자유 경쟁 운운하면서 자신이 올라선 사다리를 거침없이 걷어차 버리는 비정한 사회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은 사다리를 쳐다볼 엄두조차 내지도 못한 채 계속 밑바닥 삶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은 대물림으로 나타나고 있고, 가진 자는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 과연 이게 옳은가 하는 문제와 부딪칠 수밖에 없는 <노동의 배신>은 인간의 배신으로까지 여겨진다. 정의를 외치는 사회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 분배의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노동의 대가 없이도 수억을 벌어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탈세와 편법으로 부당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버젓이 고개를 들고 있는 세상에서 하루하루 정직하게 일해서 사는 저임금의 노동자들은 빈정거림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노동이 생존에 필요한 수단이라고는 하지만 노동은 삶의 연속성 안에서 이상하리만치 삶의 모습을 비틀고,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들은 쉴 새 없이 일을 해야지만 생활이 그나마 유지되고보니 끊임없이 일을 찾아 헤매야 하고 그 비슷비슷한 일들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고용주들은 당근과 채찍으로 노동자들을 길들이고, 복종과 침묵을 강요 하는 구조를 마지막 장인 왜 악순환이 계속되는가에서 다루고 있다. 동료라는 이름으로 족쇄를 채우고 노예처럼 일해야만 하는 그 구조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였지만 책이 나온 지 10년이 지난 후에도 역시 달라진 건 없다. 저자는 상황은 더 나빠졌다고 진단한다.

 

 

 무수한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악한 환경과 근무조건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노동의 배신은 순전히 육체적 노동에 비례해서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노동과 노동자 사이에는 항상 고용주라는 사람이 끼어 있기 마련이고, 고용주는 최대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을 당근과 채찍으로 길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장자유주의가 모든 것을 자율성에 맡기고 뒷짐지고 있는 사이에 출발점이 다른 사람들은 죽어라 일해도 그 자리에서 맴도는 삶을 떨쳐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분배를 재정립해야 하지 않는가? 가진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소리가 아니다. 고용주와 기업이 이윤의 극대화만 추구하는 파렴치한 짓을 그만둔다면, 나몰라라 뒷짐지고 있는 정부가 뒷짐을 풀고 나서준다면 해결의 실마리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를 '생명에는 귀천이 없다' 는 것으로의 전환이 절실하게 요구될 뿐만 아니라 공생이라는 구호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노동의 배신이 아닌 노동의 정당한 대가가 돌아오는 그런 사회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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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뱀파이어, 끝나지 않는 이야기
요아힘 나겔 지음, 정지인 옮김 / 예경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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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뭐랄까, 편집부터 마음에 든다. 여름의 더위를 조금은 식혀줄 요량으로 만든 것 같다.

옅은 핏물이 배인 것 같은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음산하면서도 섬뜩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욕조에 처녀들의 피를 받아 목욕했다는 '피의 백작부인' 에르제베트 바토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장면에서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책의 낱장 가장 자리에 고여 있는 피를 본 순간, 우아한 알몸을 욕조 안의 붉디 붉은 핏물 속에다 밀어 넣고는 손가락 끝으로 한방울 떨어뜨린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게 한다. 혹은 반항하는 처녀의 심장을 찌르는 순간 튕겨진 핏물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아무튼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책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다.

 

 

                  썸네일

 

 

뱀파이어 이야기는 어째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서부터 비롯되어 21세기 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 질긴 생명력의 원동력은 무엇일까를 탐구한 저자는 역사적 문헌이나 텍스트, 종교 영화 등을 살펴봄으로써 뱀파이어의 원류와 패러디, 외피를 바꿔입고 나타난 진화의 과정을 짚어 나가고 있다.   

'뱀파이어에게 물린 사람은 뱀파이어가 된다.' 햇빛은 뱀파이어에게 치명적이다' 그러다 드디어 " 이 모든 악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이런대도 신은 존재한단 말인가?" 자기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뱀파이어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또한 뱀파이어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고 거울에 모습이 비치치 않는다는 설정은 낭만주의의 오싹한 도플갱어 이야기에서 차용한 것이다.(p.170) 라는 흥미로운 사실도 일러준다.

 

 

그렇다면?

뱀파이어를 있게 한 요인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바로 에로스와 죽음에 대한 공포다.(불가사의한 일을 설명할 길이 없는! 그리고 악령들!) 어쩌면 '뱀파이어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병든 자의 혼란스러운 상상력의 산물이자 살아남은 자의 미신일 뿐이다.' (p.57)라고  한 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하렌베르크의 지적과 함께, 여러 학자들은 뱀파이어에 관한 히스테리를 심리적 근원에서 찾고 있다. 하여간 인간의 상상력이란!

우리나라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구미호가 있다. 남자들을 홀려 간을 빼먹으며 천년을 산다고 하는 구미호와 뱀파이어가 공통점이 있다면 주로 이성을 선택한다는 점에 있다. 매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자태에 넋을 놓고 있는 순간, 구미호는 간을 빼내기 위해 날카롭게 갈아둔 손톱을 치켜세우고는 남자의 가슴을 움켜뜯었을 것이다. 하룻밤의 황홍경이 죽음으로 대체되는 순간이다.

 

 

오늘의 주인공, 뱀파이어는 어떻게 할까? 치명적일 만큼 매혹적이고 에로틱하게 부드럽고 깊숙한 목덜미에 입술을 갖다댄다. 나른한 에로티시즘에 빠져버린 그녀(혹은 그)는 자신의 피가 빨리는 줄도 모른 채 몸을 맡겨두고 있다. 왜 하필 목덜미인가? 뜨거운 입술로 목을 덮치는 성질 급한 뱀파이어든, 긴 머리카락을 헤치며 부드럽고 향기나는 목덜미를 찾는 뱀파이어든, 에로스와 죽음, 이 모두 깊은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죽어야 사는 영원한 삶에 대한 갈망, 자기 파괴적이면서도 영원한 삶을 갈망하는 이 둘은 길항적인 관계 속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가 자신의 목덜미를 덥썩 물었을 때. 순간 생명의 위협과 함께 에로티시즘을 경험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눈치 챈 영리한 뱀파이어들은 동일한 방법으로 피를 빨기로 합의하였고 그 전통을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건 이 글을 쓰는 사람의 상상력의 소산이다. 뱀파이어와 관련해 무엇인들 상상하지 못하겠는가?....

 

 

어쨌든,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이든.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음침하게 자리잡고 있는 불가사의한 실화이든, 뱀파이어 이야기는 각색되고 윤색되어져 무궁무진한 이야기로 거듭나고 있다. 한 마디로 네버 앤딩 스토리다. 여기에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할만한 문구를 하나 발견했다.  

 

"그녀는 시간의 뿌리에 자신의 피로 거름을 준다"- 찰스 스윈번 <비너스 찬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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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2-08-10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왜 목덜미였을까요?
음. 강한 뼈는 없고 적당한 근육과 얇은 외피로 덮여있어 뚫고 빨기에 좋았을까요?
아님 죽었는지 살았는지 숨소리를 듣기에 좋은 위치였을까요?

그나저나 마지막 문구 좋은데요^^

꽃도둑 2012-08-11 11:14   좋아요 0 | URL
제가 그랬잖아요 담합했다구요,,,^^
그게 그들의 노하운데..굿바이님도 참~~

마녀고양이 2012-08-10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꽃도둑님,
여름 특집 페이퍼시군요? ^^

뱀파이어가 목덜미를 좋아하는 이유는, 피가 펑펑 솟는 곳을 가장 잘 찾을 수 있기 때문 아닐까요?
그리고 에로티시즘이 가미되기도 하고. 키스할 때도 목에다 키스 마크 내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런데요, 세월이 흐를수록 뱀파이어가 꽃중년 - 꽃미남 - 꽃소년으로 변화하는거 같아요. 아하하.

꽃도둑 2012-08-11 11:23   좋아요 0 | URL
아우 귀여워요,,달사막여우님, 반가워요..^^
뱀파이어가 점점 어려진다는 말에 저도 동감합니다.
트와일라잇 남자주인공 ...크....

더불어숲 2012-08-16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 휴가, 되도록 빨리 리뷰 올리고, 다른 책들도 섭렵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글은..역시나... 생각할 시간을 줘야해요. ㅎㅎㅎ
세상이 젖었습니다. 오후 같은 휴가 끝의 아침,
늦여름은 더욱 성장하였을 우리를 기대하며...

꽃도둑 2012-08-18 12:39   좋아요 0 | URL
숲님은 정말 홀가분하시겠어요.저는 이제서야 <노동의 배신> 잡았거든요.
맞아요, 글은 생각할 시간을 줘야하죠...
그리고 퇴고를 거듭했을 때만이 조금 온전한 모습이 되는거구요.
어찌하여 리뷰들이 전부 미숙아들인지....ㅋㅋ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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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책을 손에서 놓았다. 그저 먹고 마시고, 깔깔대고 원초적(?) 본능에만 충실했다. 행복했다. 여름휴가에서 돌아와서 마감을 넘겨버린 리뷰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상하다... 조금 낯선 이 느낌은 뭘까?

어김없이 돌아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는 않았다. 읽는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 행복하고 조금의 고통이 동반된 즐거운 일이지만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것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물음과 함께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책 읽기와 쓰기의 맨 몸과 마주한 느낌이다. 아직도 시작인가?.... 이적지 무수한 책들을 읽었지만 잊기 위해 읽었다는 것(나는 정말 그랬다), 읽을 수 없는 책들을 읽어 냈다는 것,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하루 종일 책만 끼고 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은, 책을 사랑해서 일까?...단지 사랑말이다. 읽기 위한 광기가 아닌 그저 단순한 사랑, 타인을 꿈꾸며, 사유의 바다에서 헤엄치기를 꿈꾸며, 책의 깨알같이 박힌 글자들을 어루만지며, 표지의 관능미에 끌려 끊임없이 탐닉하는 일 말이다. 저자도 지적했듯이 자신을 하나의 '우뚝 솟은 전체'의 모습으로 제시하려는 필루스적 향락에 젖어 있었던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집안에 쌓아 올려진 책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지럽다. 소중하게 어루만지고 더듬었던 것들이다. 어쩌면 팔루스적 향락에 젖어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에 잘라라 향락에 젖어 있는 그 손으로 대체해본다. 책이 혁명이 되지 못하는 아니 책이 혁명이 될 수 없는 시대에 기도만 하는 손을 자를 수도 없겠거니와 대다수의 사람들은 읽기의 혁명보다는 그냥 편하디 편한 손을 걷어 올리고 기도하고 말리라.  

 

 

 

인간에게는 분명 읽고 기록할 수 있었던 문자는 혁명이었다. 혁명에는 항상 책이 있었고, 읽기의 능동적인 행위가 있었다. 루터의 종교혁명을 근대의 여명으로 보는 이유도 읽고 쓰고 사유하고 행동하는 주체적인 인간과 인쇄술, 제지 안경 등의 물질적 기반이 거기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텍스트를 읽는다는 건 광기의 행위라고, 책을 '읽을 수 없음'과 '읽기 어려움'에 맞설 용기와 힘을 필요로 한다고 하였다. 책을 읽으면 아무래도 내가 잘못된 건지 세상이 잘못된 건지, 몸과 마음을 애태우는 이 물음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게 되는 게 책 읽기라는 것인데(p.153) 저자는 한마디로 혁명은 폭력이 아니라 문학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밤에 글을 썼는지 총 다섯 밤에 걸쳐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첫째 밤, 문학의 승리, 둘째 밤, 루터, 문학자이기에 혁명가. 셋째 밤, 읽어라, 어머니인 문맹의 고아여-무함마드와 하디자의 혁명 넷째 밤 우리에게 보인다-중세 해석자 혁명을 넘어. 다섯째 밤, 그리고 380만 년의 영원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의 문학은 요즘 통용되고 있는 소설이나 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애초 문자로 쓰인 모든 텍스트에다 춤이나 음악까지도 포함한 것을 문학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문학은 죽었다고 떠들어대는 시대에 저자는 문학은 절대로 죽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다. 또한 역사의 종말을 운운한 일본인 학자를 향해 빈정댈 줄 아는 호기도 보인다.아무튼 이 책은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잡소리 집어치우고 읽기부터 해야 한다는 사실, 기도만하는 손보다 성경을 잡고 읽기부터 하라는 충고는 참으로 적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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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7-26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를 일찍 다녀오셨군요. 저도 이번에 리뷰가 좀 늦었는데, 동질감이 느껴지는군요. (뭐 이런 동질감은 안 느끼는 게 더 낫지만.) 독서는 여전히 가장 간단한 행위이면서, 가장 어려운 행위이기도 하잖아요. 그간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문학을 읽는 것, 또는 철학서나 인문서를 읽는 것은 쓸데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고 생각했고..위정자들은 여전히 국민들이 적당히 멍청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아무튼 그런 상황들에서 이 책을 읽고는 그런 생각은 덜하기로 했습니다. 저자 말대로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양반도 있는데, 우리가 그런 소리한다는 게 웃기잖아요. 위안이 좀 되는 책이었어요.

날씨는 여전히 덥고 여름밤은 유달리 짧은 것 같군요. 건강 잘 챙기세요.^^

꽃도둑 2012-07-26 13:04   좋아요 0 | URL
오늘은 진짜 숨이 턱턱 막히네요. 이런 날 일광욕 하다가는 마른 포 되기 딱 좋지요..ㅋㅋ
맥거핀 님도 이 더운 날씨에 잘 지내겠지만...훗, 그래도 주의하세요,,,^^
전 이 책 리뷰 쓰면서 조금 아쉬움이 남아요.,..좀 더 하고픈 말이 많았는데....
게으름 피다가 패스~~~
책은 이렇게 읽어야 하는 거 맞죠?..ㅎㅎ
제대로 읽지도 못했으면서 할 말은 기꺼이 다하겠다는 건 별로 좋아보이지 않아서요.
리뷰를 보면 완전한 오독과 함께 억지논리도 눈에 띄던데...신기해요. 같은 책을 읽고도 엉뚱한 소릴 하고 있으니 말에요
이건 필시 읽기의 어려움에서 비롯된 일이겠죠?...
나부터 반성해야겠어요.. ㅡ.ㅡ
 
[어쩌다사회학자가되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 피터 버거의 지적 모험담
피터 L. 버거 지음, 노상미 옮김 / 책세상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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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귀하는 지금 제목에 낚이어 들어오셨습니다...어쨌든 환영합니다....ㅋㅋ)

 

사회자: 오늘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사회학자로 명망이 높고, 유쾌하면서도 대단히 박식하고 열정이 많으신 피터 버거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책을 내셨는데요. 부제가 피터 버거의 지적모험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책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할까 합니다. 책 곳곳에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이야기와 유머와 위트가 숨어 있던데... 자연발생적 정서인가요? 아니면 구호나 이데올로기에 편중된 사회학과 정량적 방법에 적합한 현상에만 치중하는 사회학과 거리를 둔 선생님 만의 접근방식인가요? (피터 버거 웃음) 사실 살다가 보면 뜻하지 않게 찾아드는 일들이 새로운 길이 되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셨다고 했는데, 그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피터 버거: 사실 사회학이라고 하면 다들 따분하고 어렵다고들 알고 있죠, 조금전 사회자님이 말씀하신 이유 때문이기도 하죠. 하지만 사회학은 '인문학'(혹은 정신과학)의 하나로 역사와 철학과 가까울 뿐만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이 갖는 직관적 통찰력과 밀접하다는 것입니다.(p33) 그래서 우리 삶과 멀리 떨어진 학문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두 가지를 염두해 뒀죠. 하나는 사회학이 학대와 억압을 정당화하는 신화들의 정체를 폭로함으로써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사회학은 인문학과 하나라는 염두였죠. 제가 어쩌다가 사회학자가 되었을까요?(웃음) 바로 착각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과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뉴욕에 정착했는데 갓 열여덟이 된 저는 종교적 열정에 불타고 있었어요. 루터파 목사가 되고 싶었지만 천직이 될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왔고 미국사회를 더 잘고 싶은 마음에 이 길로 뛰어들었지요. 저는 그때 미국 사회학을 배우는 줄만 알았지요. 하하하

 

 

사회자: 사회학자가 되기까지의 지적 모험에 스승이나 동지가 되어준 이는 누가 있었을까요?

 

피터 버거: 우선 세명의 스승을 꼽을 수 있어요. 발자크의 강의를 통해 사회학이란 한 사회 안에서 일어나고 일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자 또 개개인의 가진 동기(그들의 열정과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비롯한)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을 가르쳐주신 잘로몬 교수와 훗날 사회학자로서의 내 연구, 특히 사회학 이론 관련 연구에 가장  지속적인 영향을 준 쉬츠 교수, 종교학과 막스 베버를 가르친 카를 마이어 교수가 있습니다.(pp22~28) 뒤르캠, 막스베버, 오귀스트 콩트, 포이어 바흐, 미셀 푸코, 자크 데리다, 니체, 인류학자인 리처드 리벤, 바트볼 아카데이미의 창립자인 뮐러, 등 여러 분들이 있죠.

 

 

사회자: 네 그렇군요. 사회학에 대한 특정한 접근 방식의 토대를 엿볼 수 있군요. 선생님의 관점이야 말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것에 천착하잖아요. 그에 대한 동기가 있었나요?

 

피터 버거: 사회학이 하나의 학문이라기보다는 의식의 한 형태, 즉 인간 조건을 바라보는 하나의 독특한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학자라면 문서나 공식 발언이 아니라 추구하는 가치들이 일상생활의 차원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거지요. 저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정의 보다는 협소하고 실질적인 정의를 더 선호했지요. 이론적인 문제에서 경험적인 문제로 옮겨간 것도 그때문이기도 하구요. 초기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주제들인 신앙, 특히 사회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의 신앙과 그 사회적 맥락, 가톨릭과 개신교의 실증적인 차이들, 그리고 그 후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인간주의적인 것들이 있죠. 사형제도, 인종 차별, 동성애 같은 것들이죠. 가령, 아...얘기가 길어지겠군요, 그 내용은 책을 참조하세요. pp.129~ 134 까지를 읽어 보시면 됩니다. (웃음)

 

 

사회자:(웃음) 네 그러죠. 선생님은 그러한 경험에 대해 뒤에 '사회학적 관광'이라는 말을 하셨는데요. 생생한 경험이 넓혀주는 통찰을 안락한 의자에 앉아서 얻는 통찰보다 훨씬 강한 설득력을 얻는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한때 '가치중립적'이라는 틀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셨는데요. 그 가치중립이 마찰을 일으킨 적은 없었나요? 강의 도중 몇 번의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건가요?

 

피터 버거 : 음, 글쎄요. 항의를 받은 적은 여러 번 있었죠. 저는 근본주의자들을 싫어합니다. 종교에 있어서든 그 어떤 문제든 근본주자들과의 대화는 정말 부질없으니까요.

한 번은 '성 배타적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하버드 강의때 여학생들로부터 항의를 받았었죠. 섹스(생물학적 용어) 를 젠더(문법적인 용어)로 대체하는 것 자체가 경험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즉 남자와 여자 사이에 중대한 차이 같은 건 없다고 말하는 거니까요.(p.217) 가령 아이들에게 인권 (the right of man)이라는 말을 가르칠 때 여성을 배제한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과연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잊지 못할 일은 런던 대학에서 강의할 때. "사회학은 분석해서 폭로한다는 차원에서는 급진적이지만, 현실 함축이라는 차원에서는 보수적”이라고 했다가  강의 중단을 초래할 만큼 학생들을 화나게 했었지요. 사실 도덕적으로 예민한 사회과학자라면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 본능적으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지요.

 

 

사회자: 선생님께서는 급진주의에 대해 비판을 멈추지 않으셨는데요...그러다 중도 우파 쪽으로 옮겨 가셨다가 결국 거기서도 등을 돌렸고 많은 도덕적 문제들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셨습니다. 본능적이었나요?(웃음)

 

피터 버거: 네, 거의 본능적이었지요. 하하하 사실 사회학자는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실재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발언하는 사람입니다. 정치가들처럼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안되는 거지요.

 

 

사회자: 끝으로 선생님께서는 유머 감각이 다른 현실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셨는데요. 독특한 심리학적, 사회학적 기능이 있다고 하셨는데 불안을 완화해주고 공동체를 한정해주며 이런저런 권위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정치적 무기로 쓰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명랑 사회를 만드는데 유머 감각이 필수 요건이 될 수 있다고 보면 되는 거지요?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회학이 선생님과의 대화로 인해 좀 더 친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사회학은 결국 인간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삶이 사회 전체적인 구조에서 어떻게 구성되어지는 지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목소리를 내는데 그 역할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진지함 가운데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아야 하는 유연한 마음과 통찰력. 오늘 '어쩌다' 배우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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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7-1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뷰 내용 직접 구상하신건가요? 진짜로 인터뷰한거 같아요 ㅎㅎㅎㅎ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

꽃도둑 2012-07-16 14:41   좋아요 0 | URL
맞아요,,,그냥 심심해서 인터뷰 했어요..ㅋㅋ
편지 형식도 해봤고...다음엔 소설 형식으로 하나 쓸까봐요^^

더불어숲 2012-07-31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터 버거의 유머는 사랑하지만, 그의 근본주의, 보수주의는 납득하기 어려웠답니다. 상호작용과 관계성을 중시한 점에서는...꽃님의 생각을 지지하구요.ㅎ

숲에 가고 싶다구요?
지금 휴식 차 홋카이도에 와 있습니다.ㅎ
완연한 가을 같은 숲 안에 머물며..생각 지우기..
그래도..문자중독이라서... 내내 책이 고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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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숲 2012-07-0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선택하는...ㅎ 묘한 연대감!!

꽃도둑 2012-07-09 13:19   좋아요 0 | URL
감성의 무풍지대인거죠...ㅋㅋ
아, 이번에는 어떤 책이 될까...기대가 돼요.
그저 기대만....^^

굿바이 2012-07-08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이 이지훈씨 책인가요? 음, 제목이 참 좋네요. 내가 쓴 것,이라니요. 좋은데요^^

꽃도둑 2012-07-09 13:20   좋아요 0 | URL
마흔 둘, 정말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이지훈의 유고집이라네요..
제목 좋죠?....내가 쓴 것도 점검해봐야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