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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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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근대를 사유하고 성찰하는 사회학자인 바우만은 근대의 특이성을 '유동하는 근대'라는 이름으로 호명하였다. 유동하는 곳에서는 자신의 힘으로 혼자 서있기 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것은 빠르게 변화하고 관계 맺기를 한다.(혹은 강요받는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트위터 등에서 즉각적으로 가십이나 일상사나 소식 등을 주고 받으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하고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혹은 세계적으로 서로 조밀하게 연결된 통신망 만큼 인간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바우만은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빛좋은 개살구마냥 우리의 삶은 정작 알맹이가 없는 허허롭기 짝이 없는 모양이 되었음에도 그것에 대해 성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을 포장해서 드러내고 인정받는 것에 존재감을 가지는 아주 얄팍한 삶의 표층은 가볍게 부는 바람에도 꺼져버릴 만큼 빈약해보인다.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44편의 편지를 읽는 동안 정작 우리가 삶에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이적지 한번도 그러한 삶을 살아보지 못한 지금의 10대들과 바우만이 살아냈던 10대 혹은 20.30대 시절하고는 비교불가인 것은 당연하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성찰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앞에서는 당혹감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욕망한다.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욕망하는 것은 사실 내 욕망이 아닐 수 있다. 보여주기 위한 것, 사회적 관계 속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항상 가벼운 외투를 쓰고 있다가 언제든지 벗고 다른 것을 바꿔 입을 수 있는 민첩성과 유연성을 가지고 있음을 자랑스러워 한다. 바우만은 44편의 편지를 통해 얄팍하고 빈약한 삶의 표층을 걷어내 보여준다. 혼자 있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하면서 무수히 맺는 온라인의 관계 속에서 위로와 안도감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고독을 잃어 버린 조건들을 열거해 들려준다.

 

고독이란 무엇인가?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다(p.31)라고 밝혀놓고 있다. 고독할 시간이 없는 인간들의 삶에 경고등이 켜짐을 본 바우만은 아날로그 시대의 사람임에 틀림없다. 지식기반의 사회와 디지털로 명명되는 시대로의 자리이동으로 인해 아날로그 세대가 겪는 부적응과 불협화음을 차치하더라도 바우만은 꾸준하게 오랜 시간동안 근대에서 발명되거나 드러난 특이성을 연구한 학자이다. 유동하는 근대 서 인간의 삶의 위치와 조건들을 성찰한다. '지금여기'의 즉각적이고 표면적인 이유들로 넘쳐나는 삶인데도 우리는 그게 실질적인 현실로 착각하며 살고 있음을 바우만은 지적한다.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 고독이 극도로 매우 불편하고 위협적이며 무서운 조건이라고(26) 여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존재함을 편지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44편의 편지들은 고독을 잃어버린 인간의 삶을 추적하고 보여주는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혼자있는 시간을 잘 견뎌내며 심지어 즐기기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혼자 있기가 배제와 축출, 쫓겨남 등의 악몽으로 둔갑되어서는 곤란한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44편의 편지를 읽으면서 인간에게 고독이 왜 필요한지를 역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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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2-11-0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숭고한 조건이라,표현이 좋네요^^
무리짓고 구별짓고 뭐 그런 것들로부터 좀 자유로웠으면 좋겠는데 그게 참 쉽지 않죠.
여튼 혼자서도 잘 놀고 무리지어서도 잘 노는 그런 호모뭐시기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날이 찹니다. 건강관리 잘 하세요~!

꽃도둑 2012-11-01 20:30   좋아요 0 | URL
정말 춥네요... 굿바이님, 잘 지내시죠?..
ㅎㅎㅎ호모뭐시기로 사는 거 저도 원해요^^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하비 리벤스테인 지음, 김지향 옮김 / 지식트리(조선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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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음식은 생명의 연장을 위한 필수다. 또한 허기를 해소해주거나 영양소를 공급받기 위한 일차적 목적 외에 맛난 음식을 통해 오감을 충족시키며 삶의 질감을 더욱 섬세하고 풍성하게 하는 요소중 하나인 셈이다. 처음 인류는 음식을 자연에서 구했다. 산열매와 구근, 동물의 살코기를 통해 영양분을 섭취했고 점차 저장기술과 더불어 대량 생산과 먼거리로의 유통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식품산업은 의학과 과학을 만나면서 유행처럼 붐을 일으키다가 사그라들고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는 식품은 또다시 온갖 루머와 혹은 맹목적 신임을 얻게된다. 지금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어느 유명인사가 나와 어디에 좋다라고 하면 그 상품의 소비 그래프는 껑충 뛰어오르다 정점을 찍고는 내려오기 마련이다. 도대체 누가 우리의 먹거리를 지배하는가? 무슨 근거로 우리는 식품을 선택하고 신임하는가? 영양학자의 말 한마디에, TV에 나오는 의사의 말 한마디에 우리는 너무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에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식품과 관련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음식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해서 이익을 보는 기업과 그 기업과 결탁한 이해 관계자들의 은밀한 배후와 실체를 밝히고 있다. 먹는 것 가지고 장난 치는 인간들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돈이 된다면 그 음식이 독이 되든말든 개의치 않는 파렴치범들은 여전히 이익이 될만한 곳에 더러운 손을 담그고 있다. 또한 식품에 대한 맹목적이고 전폭적인 지지가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요구르트를 마시면 대장속의 유해균들을 죽여 140세까지 장수 할 수 있다고 주장한 메치니코프는 정작 자신은 71 세에 생을 마감하면서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말았다.

 

건강에 좋으면 무조건 맹신하고 먹어대는 '푸드패디즘'의 시대가 저물고 의사들이 의약품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자 1906년에 '식품의약품법'이 통과되면서 생명연장의 꿈은 좀더 과학적이고 시스템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식품에 대한 안정성 확보와 세균과 바이러스에대한 공포에서 어느정도 헤어날 수가 있었고 식품에 대한 맹목성에서 어느정도 가려볼 줄 아는 눈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15년에 미국의 화학자 엘머 맥컬럼에 의해 비타민 A의 발견, 그보다 4년 앞서 풍크가 발견한 비타민 B의 발견, 그후 괴혈병을 예방하는 비타민 C와 구루병을 예방하는 비타민 D의 발견은 다른 식품들을 모두 밀어내고 비타마니아에 열광하는 모습을 낳기도 했다. 비타민 열풍은 아직까지 식지 않고 있으니 마케팅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비타민 시장 확대의 새 지평을 열어젖힌 플라이시만 이스트 덕으로 지금 기업들은 톡톡히 이익을 남기고 있고 사람들은 비타민 과잉을 초래할 만큼 비타민 섭취가 생활화 되었다.

 

지금도 가공식품에서, 농약이 과다하게 살포된 과일이나 채소에서, 유전자조작 식물(GMO)에서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라면스프에서 1등급의 발암물질이 검출되고 고춧가루에서 공업용 색소나 쇳가루가 나오고, 원산지를 속여 폭리를 취하는 인간들 틈에서 살고 있다. 먹거리를 안전하게 보장 받기 위해서는 유기농 농가와 소비자가 직접 체결하는 시스템을 선호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식품에 대한 안정성을 보장받기 위함일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음식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 인물들, 에피소드들, 흥미롭기는 하나 우리가 음식을 대하는 태도 또한 점검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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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코뮤니스트 -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
로버트 서비스 지음, 김남섭 옮김 / 교양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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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보들아~ 공산주의의 반대말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란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 언제인지는 밝히기 어려워도 그 바보들 안에 한때, 아주 잠시, 속해 있지 않았는지....

나는 그랬다...공산주의에 대해 반공정신으로 세뇌당하고 있을 때, 공산주의와 반대되는 말이 민주주의 인줄 알았다. 또한 그 민주주의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문구와 동의어 인줄 알았다.

그나마 어릴 때 그랬으니 망정이지 성인이 되고서도 그리 알고 있었다면 속된 말로 정말 쪽 팔리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알고 있었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재정립하기까지는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공산주의야 말로 천인공노할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애로부터 출발했음을 말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뜻은 옳았으나 가는 길이 잘못되었다는 것,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음을 말이다.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지 160년이 지났다. 사실 공산주의에 대한 논의는 마르크스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와 함께 해왔고, 끊임없이 우리와 호흡하고 있다. 모두 함께 잘 살고자 하는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인류의 유전자 속에 내재된, 자연스러운 프로그래밍화 된것이리라. 동양의 대동사회가 그러하였고, 재세례파의 공동체 생활도 그러한 맥락 위에 있다. 다만 그것이 혁명으로 가시화된 건 소련의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고 부터일 것이다,

로버트 서비스의 <코뮤니스트>는 공산주의 세계사라 부를만 하다. 공산주의가 태동하던 마르크스 이전의 시대부터  그 꿈을 실현시킨 소련과 확장되었던 유럽,,그리고 몰락을 다루고 있다. 공산주의에 대한 꿈을 꾸었던 자,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뛰어들었던 모든 공산주의자들을 불러낸다. 공산주의가 어떻게 후진국 러시아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것이 유럽으로 어떻게 확산되고 변형되어 갔는지를 추적한다. 공산주의는 가장 인간다운 세상을 추구하지 않았던가? 인간적 가치의 필수불가결한 자유와 안전은 여지없이 배반당한 채 악몽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요소들을 저자는 명료하게 밝혀내고 있다.

 

 

 세계대공황에도 풍부한 천연자원과 다양한 천연 광물과 목재 생산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주었고, 나라가 자본주의 세계와 교역은 하지만 정치, 문화적으로 단절되었던 이유들로 인해 소련의 공산주의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하지만 소련의 공산주의는 일당국가, 이데올로기 문화, 초중앙 집권주의, 국가 통제 경제, 동원사회 같은 비효율성과 장애물을 지닌 국가로 실패가 거듭됨에 따라 대중의 분노는 점점 커졌다. 경직된 경제, 정치적 억압,사회적 소외로 인해 냉담과 환멸이 확산 되었고,

 

마르크스는 루소를 따라 이러한 사고방식을( 일체화된 국가 기관들이 좀더 책임 있는 체제를 만들 것이라는) 발전시켰고, 레닌은 마르크스의 생각을 열정적으로 자신의 사고방식에 접목했다. 이 사고방식은 이론과 실천에서 대재앙이었다.P.737

  

비공식적인 언론과 자유토론이 없는, 헌법적, 사법적 타당성의 부재가 결국 권력남용의 독재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혀두고 있다. (40장 결산 편에서 요약)

 

 

결국 일부 공산주의의 지도자들은 어긋난 예측과 실패를 민족주의라는 피난처로 도망가기 바빴고.마오쩌뚱, 호치민, 카스트로 등은 비교적 민족주의자로서 인정을 받았지만 공산주의가 안고 있었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아주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20세기에 벌어진 모든 비인도적인 행동은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일보다 더 끔찍하였음을 상기시킨다. 공산주의가 사라진 지금, 소수의 강대국에 의한 지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민족적, 종교적 사회적 박해 또한 여전하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코뮨주의는 또 다시 꿈꾸어서는 안될 일인가? 공산주의를 증오했음에도 여전히 공산주의 사후의 영향을 받으며,  여전히 우리는 꿈꾸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옳고 좋은 이론과 실천의 축복만 있다면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은 그야말로 또다시 꿈꾸어 볼만한 인류의 오랜 숙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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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숲 2012-09-26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균형감이...다소..(솔직히 많이.ㅎ) 부족한 책이더이다.
부디.. 존재를 배반하지 않는 '의식' 을 갖도록 지평을 넓혀가야겠습니다.

꽃도둑 2012-09-27 11:35   좋아요 0 | URL
그랬나요?...솔직히 저는 건성건성 읽었어요..
중간 정도 읽으면서 정말 인내를 요구하길래..그 다음부터는 그냥 막 넘기며 읽었거든요.
집중할 수도. 하기도 싫은....ㅋㅋ

맥거핀 2012-09-27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한 3분의 1쯤 읽었는데, 이 저자가 공산주의에 대해 상당히 냉소적이라(네.. 제가 보기에는 비판적이랄 것도 없다 싶네요. 그저 냉소일 뿐...) 흐음..하고 있는데, 책의 마지막까지 좀 그런가보네요. 마지막까지 읽으면 뭔가 좀 총체적인 전망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럼 열심히 계속 읽으러 휘리릭~^^

꽃도둑 2012-09-27 11:38   좋아요 0 | URL
냉소?....에혀 한 분은 균형감이 부족하다고 하시고,,,또 한 분은 냉소적이라고 하시니....
저는 지루했는데... 그나마 뒷 부분에 가서는 이 분이 공산주의에 대해 냉소적이지만은 않구나 하는 걸 느끼실거에요...^^ 또 그러면 어떻고! 맥거핀 님이 휘리릭~~ 떠나고 난 뒤 후발되는 이 냄새는 뭘까요?,,,,으으으으~~~~ㅋㅋ

2012-10-09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2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족 기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가족 기담 - 고전이 감춰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
유광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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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방학만 되면 동생과 함께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내려가곤 했다. 특히 농번기가 끝난 겨울에는 마땅히 할 일이 없던지라 할머니는 주전부리를 자꾸 만들어 주셨다. 따뜻한 방안에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정말 기나긴 겨울의 낮밤을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하루는 할머니께서 우리가 누워서 딩굴거리다 못해 주리를 트는 걸 보시고는 심심하제? 그러시면서 할머니 어렸을 적에 동네에 떠돌던 이야기며 옛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푹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우리는 눈만 뜨면 얘기를 해달라고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졸랐다. 아마도 할머니는 아침이 오는 걸 두려워하셨을 것이다. 어쩌면 그때 속으로는 괜한 짓을 했구나 하고 후회하고 계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 명도 아닌 두명의 진드기가 이리가도 붙고 저리가도 붙었으니 얼마나 성가셨을까....상대를 보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어야 했는데 할머니는 손녀들이 그렇게까지 이야기에 집착하리라곤 상상도 못하셨으니... 할머니는 올해가 지나면 99세가 되신다. 가는 귀가 먹어 사오정이 되셨지만 워낙 유머가 있는 분인지라 아직도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정감이 묻어난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그랬듯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무료한 일상에 재미와 감동과 오싹함을 제공해주는 오락적 기능을 했을 것이라고 본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옛이야기는 그렇게 할머니에 어머니 그 어머니에 어머니에서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실제의 이야기에 허구적 요소가 보태어져 다시 꾸며낸 이야기로 거듭 나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민담이나 설화나 고전소설에서 적용되는 서사관습이라고 함은 이야기들이 논리적 개연성이 아닌 마술적이거나 혹은 환상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이야기는 조금씩 모양새를 달리 해서 나타나긴 하지만 그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상징이나 메시지는 큰 틀 안에서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형제나 안데르센의 동화 역시 어른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구비문학에서 걸러내고 걸러낸 이야기로 모습을 달리하고 나타났듯이 우리의 고전 역시 누구나 알고 있던 뻔한 이야기 이면에는 엄청난 비밀과 속내가 숨겨져 있었다. <가족기담>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본질을 파헤치는 작업이 아니었나 싶다.

드러내놓고 말하기 두려운 현실을 이야기 속에다 꼭꼭 숨겨두고는 마치 그냥 단순한 이야기인냥 천연덕스러움을 가장하였지만, 은유와 풍자의 그림자는 속일 수 없는 법, 저자는 그 이면을 들추어 본다.

 

 

'장화홍련전'에서 계모와의 갈등 속에 있는 줄 알면서도 아버지인 배좌수가 과년한 딸인 장화를 왜 시집을 보내지 않았는지, 효자나 열녀라는 외피를 썼지만 실상은 잔인하고 위선적인 모습의 가족을 , 본처와 첩들의 관계에서 남자들의 이중적인 잣대와 행동들의 정당성의 뒤에는 포르노그래피의 욕망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과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첩들 사이에서도 눈물겨운 알력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춘향이의 재발견이 흥미롭다. 신분상승을 위해 이몽룡을 향한 고도의 전략적 접근과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당찬 모습을 보여주는데, 춘향은 자신을 잊지 않고 꼭 찾겠다고 약조한 불망기(不忘記)를 이몽룡으로부터 받아내는 당돌하고 발칙한 십대다.

 

 

<가족기담>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진짜 모습이라고 여겨지는 원본이나 이본을 중심으로 저자가 논리적 흐름을 좇아 추론하고 해석한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일정부분 흥미롭기도 하지만, 고전이 감춰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이라는 소제목이 주는 충격만큼 내용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는 카드를 집어들고 있는 듯한, 조금은 맥빠진 모습이다. 고전의 재해석이라는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모순적 관계에 대한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건 고전을 지금의 가치관의 잣대로만 평가한 무리수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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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5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더불어숲 2012-09-25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고 계시죠?
역시 '휴가'가 있어야 바지런하게 리뷰를 쓸 수 있어요.ㅠㅠ
다시 번다한 일상 속에서 읽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책읽기는 '쓰기'로 끝을 내야 '내 것'이 된다고 믿습니다.
같은 길을 가는 꽃님이 계셔서 행복하네요. 또 인사 올게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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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

존 도커 (지은이) | 신예경 (옮긴이) | 알마

 

 

 

 

 

 

 

 

 

 

 철학은 어떻게 정리정돈을 돕는가
이나 슈미트 지음, 장혜경 옮김 / 어크로스

 

 

 

 

 

 

 

 

 

 

 

 

 철학과 인문적 상상력
김상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중세의 가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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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9-06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추천해주신 책들 중에서 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다른 분들 추천페이퍼에서도 많이 보이네요. 이번에 <중세의 가을>이 될까요? 중세의 가을은 모르겠지만, 정말 가을이 오나봐요. 날씨가 많이 썰렁해졌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꽃도둑 2012-09-07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고독을 찾고 싶어서이겠죠?...충분히 고독한 사람도 있는데...(나? 나 아니에요,^^)
고독과 가을....잘 어울리네요, 두 권 다 되면 한 편의 시가 나올 것 같은데요...
기다려 봐야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