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냅킨에 메모하며 책 읽는 습관을 후회한다. 분명 한 2~3년 전 [농경의 배신(Against the Grain)]을 냅킨을 알뜰하게 활용해 빼곡하게 요약하였건만 온라인과 오프라인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책에 우선 순위를 두는 나로서는 당첨 번호 일치한 복권을 잃어버린 심정으로 아쉽다. 메모를 소홀히 다룬 내 자신에게 화가 난다. 그렇다고 [농경의 배신]을 다시 정리하기에는 꾀가 나는지라 기억에 남는 부분만 기록해놓기로 한다.





 "약자의 무기 Weapons of the Weak"로 널리 알려진 제임스 스캇은 국가와 국가권력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정치인류학자이다. 그는 20년 이상 대학원에서 농경사회, 특히 길들임(domestication)과 초기 국가의 농경구조를 가르쳐 왔다.  2011년, 계기가 생겨서 자신의 강의 노트를 뒤 엎을 수준으로 강의자료를 업데이트를 한다. 제임스 스캇은 세계적 대학자이면서 겸손하게도 고고학, 역학, 인구학, 환경역사학, 생물학 등 여러 분야의 최신논의를 학생의 자세로 공부하여 그 결과를 독자에게 압축해준다. 이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정착과 농경'에 관한 표준서사를 폐기,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거의 전 세계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워온 바로 서사, 이동하는 수렵채집민에 비해 정착생활을 했던 농경민이 더 진보했으며, 농경이 우월하다는 주장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 이 주장은 농업혁명이야 말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sham)라고 했던 제러드 다이아몬드를 떠올리게 한다. 



[농경의 배신]을 본격 읽기 전, 예비독자로서 아래 진술 중 어떤 생각에 동의하는지 자가체크해 보아도 재미있겠다 


1-1. 수렵채집, 목축, 화전, 농경 생계양식은 진화적 발달 순서에 따른다. 

1-2. 그렇지 않다. 인간은 중첩된 복수적 생계양식을 구사하는 억척 재주꾼이다.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언제나 활에는 시위를 두 줄 걸어두는 법이다."라는 속담을 떠올려보라! 


2-1. 이동하며(떠돌며) 사는 노마드는 정착하여 발전을 이루는 정주민에 비해 야만적이다. 정주 욕구는 인간의 보편 욕구이다. 

2-2. 뻔한 진보 서사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은 어쩔 수 없이 내몰리다 보니, 정주하고 농경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3-1. 만물의 영장, 인간은 농업혁명과 함께 동물과 곡물을 길들였다. 

3-2. 일방향의 표현이라 동의하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인간은 대상을 길들였고 길들임을 당했다. 또한 단지 동물과 곡물뿐 아니라 사람을 길들였다. 노예, 특히 재생산 능력이 있는 가임기 여성 노예를 생각해보라.


4-1. 인간은 국가체계 안에서 더 안전할 수 있다. 소속을 원한다. 

4-2. 과연 모든 인간이 그럴까? 그래왔을까? 도무스 domus에 묶이는 것을 거부하는 존재들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국가 없는 사람들'의 실례를 찾아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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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3-08-04 2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얄라님이 이렇게 아날로그 매니아(?)셨는지 몰랐네요! ㅋ 왠지 철저하게 파일작업하고 분류해서 백업도 하실 것 같은데 말이죠!! 저는 예전에 파일 다 날아가고 나서는 한동인 머리뜯다가 어느 순간 차라리 시원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ㅋㅋ 계속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 이렇게 되었습니다^^;;

얄라알라 2023-08-04 21:30   좋아요 2 | URL
^^ 네네, 초란공님 ˝아날로그 마니아‘라고 하셔도 어울릴지도 모르겠어요. 예전에 [이퀼리브리엄]이란 영화를 봤는데, 저 같은 사람들이 핍박을 받으면서도 아날로그로 살고 있더라고요 ㅎㅎ

이 책은 너무 재밌고 참신해서 엄청 열심히 메모했는데 속상했어요 ㅎㅎㅎ
초란공님처럼 ‘시원하다는 꺠달음‘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찾는 건 꺠끗하게 포기했습니다

어딘가 비슷한 류의 책, 고고학이나 고생물학 책에 끼어 있을 것도 같은데 ㅎㅎ

공통점을 느끼니 좋네요 초란공님^^
 

몇 년 만에 다시 읽는 책인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헉!' 반응. 

이번에도 똑 같은 반응을 했던지라, 수 년 전 독서 경험이 생생하게 떠오른다....드라마로 치면, 순항 전개하다가, 막 내리지 않고 캐릭터들 저녁 식사 중 대화나누는 장면으로 작품 끝. 7장 "야만인들의 황금시대" 뒤에 제임스 스캇이 좀 더 정리한 마무리 글을 써줄 거라 생각했는데, 이 태도는 떡을 만들어주었더니 입에 넣어달라는 학생의 태도와 다르지 않기에, 내가 직접 정리하며 복습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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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생산자가 돼라‘.
 고등교육 이상의 단계에서는 억지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배우고 질문하는 학문이 필요하다. 정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라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을 만들어 스스로 그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질문을 추구하는 연구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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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대출을 선호하는 미니멀리스트 성향 때문에, [전쟁 같은 맛 Taste Like War]을 떠나보냈다. 다 읽은 책을 반납하면서 이렇게나 아쉽고 서운하기도 처음이었다. 사실 저자 그레이스 M. 조는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을 찾아 책 홍보차 찍은 인터뷰 영상을 통해 이미 보았다. 지성미와 우아미가 조화를 이룬 중년 여성이었다. 하지만 [전쟁 같은 맛]의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 내가 느꼈던 '그레이스'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애처로워서 위로해 주고 싶은 어린 딸이었다. 저자에게는 죄송하지만, 심지어 [전쟁 같은 맛]을 읽고 가장 강력하게 뇌리에 남은 문장 중 하나가 그녀가 박사논문 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에게서 들었다는, "논문을 진행하기에는 정신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은 학생(?)"이라는 혹평이다. [전쟁 같은 맛]에서는 그 교수의 발언을 기득권 백인 남성 교수의 오만인 양 그렸지만, 그레이스 M. 조의 가족사와 학문적 이력의 연결고리를 살펴보면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

우선 저자가 여성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 박사학위라는 학력자본 위에 교수 지위까지 취득하게 된 경위에는 학문적 열망보다는 가족사라는 실존적 문제를 성찰하려는 욕구가 크게 작동했다. 그레이스 M. 조는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올케에게서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된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양공주'라는 이름으로 기지촌에서 일하다가 미국인 남성을 만나 결혼했는데 그가 바로 그레이스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뻘 되는 미국인 남편을 따라 워싱턴에 정착한 어머니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매력(형형한 눈빛, 보조개, 늘씬한 몸매, 숱 많고 탐스러운 머리칼 등등), 부지런함과 강인함으로 딸 아들을 위해 열심히 산다. 남편의 폭력으로 코 뼈가 부러지기도 하고, 백인 주류 사회에서 '전쟁 신부'라는 멸칭을 들어가면서도 꼿꼿하게 허리 펴고 두 발로 서기 위해 고전분투한다. 산에서 고사리와 버섯을 채집하고 야생 블루베리를 따서 팔면서 지역 내 자신의 존재감을 드높였다. 저자의 어머니는 20세기 만연했던 미국 내 아시안 혐오에 굴하지 않고 백인들의 요리를 배워 만찬을 베풀며 백인 사회에 녹아들려 애쓰면서도, 마을의 한국 입양아들에게 김치를 먹이며 거두었다. 정작 어머니 당신은 요리에 정성과 시간을 쏟았으나, 딸만큼은 요리가 아닌 공부로 미국 사회에서 우뚝 서기를 바라면서 딸을 응원했다. 그레이스의 어머니는 학력, 계급, 인종, 국적, 어느 패에서도 우위에 서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선택지는 적었지만, 이처럼 당당하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40대에 그녀에게 조현병이 발병하면서 세상과 단절된 채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였다. 저자는 어머니의 조현병 원인을 단순히 생물학적인 데서 찾는 것이 아니라, 아시안 이민자, '전쟁신부'와 '양공주'라는 낙인이 찍혀 한국과 미국 두 나라 모두에서 어머니가 감내해야야만 했던 차별과 멸시와 연관해서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찾아보려 한다.




사실 [전쟁 같은 맛]은 초반에 기대치를 한껏 부풀렸다가 결말 즈음 관객을 허망하게 만드는 블록버스터 트레일러적 속성도 가졌다.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자극적인 소재들이 연달이 터진다. 교수 직종의 사람들에게 엄숙한 권위를 기대하는 한국 독자를 놀래며 사회학자 그레이스 M. 조는 10대 시절 마약을 하고 성폭행 당했다는 고백, 성별 상관없이 애정을 느끼고 끌렸다는 커밍아웃, 아버지와 어머니가 성매매 시장에서 단골관계로 맺어진 사이라는 점, 변비로 고생하던 아버지가 관장약을 잘못 써서 크리스마스 날 온 집안에 똥을 뿌려 놓았다는 에피소드 등을 배치한다. 나는 저자가 훈련받은 사회학자인만큼, 후반부로 가면서 질곡 큰 개인사가 학문적 외피를 입고 해석되는 결말을 기대했다. 하지만, 책 결말 부분에서 저자는 4~5살에 만났다는 이마 한가운데에 (총)구멍이 뚫린 여자아이 귀신을 소환하고, 어머니께 요리해 드렸던 고등어 찌꺼기의 비린내를 묘사함으로써 여전히 '특정 감각, 혼란스러운 감정 상태'에 사로잡혀 있다는 인상을 (적어도 나에게) 남겼다. 비록 온화한 우아미로 미소 짓고 학자로서도 왕성히 활동 중이지만, 그녀 안에는 여전히 가족사로 인한 중독이 해독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그녀가 내놓을 다음 작품에 벌써부터 기대가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한숨 깊게 뱉고 나면, 그 뒤에 이어질 '거리 두기 distancing'은 그녀의 글을 한 층위 위로 올려다 놓을 테니까.














[전쟁 같은 맛], 이 책 너무나 좋다. 읽으며, 특히 초반 부에서 몇 번이나, '아!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 하고 싶었던 공부의 결이 이거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왜? 좋았는지를 설명해보는 건, 내가 발 내디딜 방향을 아는데 중요하다.


첫째, 나는 사회과학적 질문의 시발은 개인적 화두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자기 자신, 자신을 둘러싼 관계와 처한 상황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에서 물음표가 생겨났다면, 치환 가능한 주어를 찾아 물음표를 확장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레이스 M. 조의 경우, 한국전쟁 이후 격동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디아스포라 가족의 형성과 형태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으며, 그로 인한 고통을 개개인이 감내하지만 여전히 문제의 근원이 사회적인데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잠식한 조현병을 어머니가 인종주의가 만연한 이민 사회와 맺는 관계 속에서 해석한다.


둘째, "음식과 먹기"를 키워드로 방사형 이야기 풀기를 선호하는 나로서 [전쟁 같은 맛]은 [파친코]에 이어, '김치'의 상징성을 재발견시켜준 멋진 텍스트이다. 저자가 육신을 잃은 어머니의 존재를 추모하는 방식은 주로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배치함으로써 이뤄지는 데, 머나먼 타지인 미국에서 고사리나 콩국수가 어머니께 불러일으킨 향수, '쑥갓'을 '쑥'으로 '고등어 세 손(마리)'를 '세 개'로 말하는 이민 2세대 딸의 실수, 조현병을 앓으며 방 안으로 칩거해 들어간 어머니를 식탁으로 불러낸 환갑 축하 한국 요리 등등. 그레이스 M. 조는 요리와 음식을 통해서 국가, 민족, 가족,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추억이 물질화되고 정서가 강력하게 환기되는 모습을 그려냈다.


셋째, 나는 그레이스 M. 조처럼 수위를 높인 솔직함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설령 솔직해진다 할지라도, 그 경험이 그레이스 M. 조의 것처럼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 배치했을 때 다른 이에게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내 경험을 해석할 때 필요한 명확한 한 줄짜리 질문을 나는 품고 있는가?


넷째. 실험적 글쓰기.

[전쟁 같은 맛]은 그레이스 M. 조가 조현병으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를 추모하며, 한국전쟁의 생존자들, 한인 디아스포라와 한인 2세대의 정체성 등을 사회학적 이슈를 회고록 형식으로 풀어낸 실험적인 글이다. 학문적 글쓰기와 고백을 느슨하고도 아름답게 결합시켰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

[전쟁 같은 맛]은 저자의 어린시절, 학창시절, 그리고 석사와 박사 프로그램을 거쳐 논문을 완성하는 지난한 과정을 개인사와 연결해 조각조각 보여준다. 포기해도 수치가 되지 않을 법한 상황에서도, 포기를 모르고 내달렸고 집중했던 그녀의 뒤에는 못 배운 한인 이민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한을 딸에게 투영하여 딸만큼은 떳떳하고 당당한 삶을 살기를 원했던 어머니가 계셨다.


[전쟁 같은 맛] 덕분에 2023년 7월의 마지막 날, 내가 선 자리와 내디딜 발의 방향을 재점검해 봤다. 좋은 책, 고마운 작가님이자 선생님 그레이스 M.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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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8-01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전 기사에서 이 책 소개 봤는데 얄님 뽐뿌에 사서 방금 받았네요!!! 땡투 날려 드렸습니다 ㅋㅋㅋ먼저 읽으시고 자세히 분석까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8-01 17:52   좋아요 2 | URL
저도 땡투 날려드리고 싶은데 얄라님 글 못 찾겠어요.

얄라님 100자 평이라던가 글에 책 수록 해주세요ㅠㅋ

얄라알라 2023-08-02 07:23   좋아요 1 | URL
아웅!! 저도 열반인님처럼 고런 고런 말좀 쓰고 싶어요.
뽐뿌가 또 뭐래요^^ ㅎㅎㅎ예쁜 단어네요.저는 땡투만 아는데...감사합니다 ㅎ

기세를 몰아 영문으로도 읽고 싶은데 책 욕심 좀 자제해야겠죠?^^ ㅎ

열반인님, 어떻게 읽으실지 혹은 읽는중이실지 엄청 기대됩니다!!! 열반인님 스타일루다가 리뷰가 올라올테니, 어떤 관점에서 보실까?^^ 기다릴게요

레삭매냐 2023-08-01 17: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쌩뚱 맞지만, 전쟁 같은 맛은
어떤 맛인지 궁금하네요.

저도 미니멀리즘을 추구...
하고 싶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8-01 19:05   좋아요 0 | URL
스포일러지만 배급 00맛 어머니는 00가 싫다고 하셨어...(기사에서 스포당함 ㅋㅋㅋ)

얄라알라 2023-08-02 07:24   좋아요 0 | URL
하하하...
*
추구......

그리고 줄바꿈하셨어요 ㅋㅋㅋ
**
어쩜 좋아요 ㅎ

자목련 2023-08-02 08:40   좋아요 0 | URL
저도 궁금합니다.
전쟁 같은 맛!

고양이라디오 2023-08-01 1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래 문단도 얄라님이 쓰신 거지요?

얄라님 덕분에 좋은 책 알아갑니다. <전쟁 같은 맛> 읽어보겠습니다!

얄라알라 2023-08-02 07:27   좋아요 0 | URL
고양이라디오님께서도 함께 읽어주신다니
저~~~엉~~말 좋습니다.
[종의 기원]은 내년쯤으로 미루고 ㅎㅎ이 책부터

나중에 리뷰 올려주시면
거기서 시작해서 또 같이 비슷한 책 찾아볼 수도 있겠네요.

감사합니다요!

독서괭 2023-08-02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얄라님 책 소개 읽으니 정말 흥미로워요. 가정사가 엄청나네요...
궁금하여 담아갑니다^^

얄라알라 2023-08-03 01:07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

300번대 책 좋아하는 저는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도 300번대 책인줄 알았는데
문학으로 분류되어 있더라고요.

그 정도로, 소설적인 재미도 대단합니다. ^^

poiesis 2023-08-02 14: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논문 초록과 계획서 같은 글에 기분이 얼얼합니다.
알라알라님의 삶과도 긴밀한 독서 저널 같아 귀하게 읽었습니다.
상기와 더불어 사유의 폭을 넓혀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3-08-03 0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arlos de las Piedras, CC BY 2.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2.0>



한 젊은이가, 인도에서 일본 부토butho 춤을 추다 접신 된 후 "페미니스트 + MZ 세대 비건+ 무당"으로 전업했다고 자기 광고를 했다. 독특한 이력에 끌려서, 그가 썼다는 [신령님이 보고 계셔]를 출간 직후 읽었다. 2021년 9월 썼던 메모는 지금 다시 봐도 흥미롭다. 동시에 현대화된 샤머니즘, "성스러움과 속"의 뒤엉켜듬 등등 물음표는 점점 많아진다. 


















*"무당"이라는 명칭과 "무당다움"에 대하여: 가족의 전폭적 응원 아래 "전업무당"직을 수행하고 있는 홍칼리의 아버지가 조언을 하셨더랬다. "칼리야, 너는 무당말고 샤먼이라 해야 해. 서양의 엘프 같은 이미지로 나가면 좋겠다." 홍칼리는 다시 질문 던진다. 왜 무당을 무당이라 부르지 않고, "만신님, 보살님, 샤먼"이라 하지? 왜 한복 입고 작두 타고, 돼지머리 공물 올리고, 혼령에 빙의됨을 "무당다움"의 표상이라 생각하지?


* 홍칼리가 자신을 페미니스트 무당이라 칭하는 이유: 직업무당 선언 이전에 그녀를 격렬히 괴롭힌 것은 남자친구의 배신, 언어폭력, 임신중절수술 등이었다. 홍칼리는 '손님' 관계로 만나는 많은 여성에게서 고민의 비슷한 변주를 들어왔다고 한다. 특히 데이트 폭력을 당하면서도 폭력에 길들여진 여성들을 많이 만나며 홍칼리는 이 경우만은 예외적으로 타인의 인생에 깊숙하게 관여했다 했다. "점집이 아니라 경찰서에 가세요. 두려움 없이 혼자서 빛나세요."


*편견: (1) 홍칼리는 스님이 되고 싶었다. 사찰을 찾아 상담받았으나, 타투가 있어 거절당했다. "타투가 있으면 세속적으로 보인다"라는 이유였다고. 타투 있으면, 머리 염색하면, 종교수행 못하나? (2) "식신"이 여성에게 있으면 "자식 복이 많다'라고 해석한다고 한다. 반대로 같은 사주가 남성에게 있으면 "예술적 창의성을 표현하는 기운"으로 해석하고. "상관"이라는 격이 남성에게 있을 땐 "승진 운, 취업 운"으로 보는데 여성에게 같은 "상관"이 보이면 "남편 잡아먹는다. 이혼 수가 있다"라고 해석해왔다. 홍칼리는 점사 "해석"에서 가부장적인 "편견"을 지적한다.


*이중구속: 이후, 점을 보러 다니던 홍칼리는 "신내림을 받아야 풀린다"라고 종용 받았다. 단, 2500만 원 헌납금 必! 홍칼리 왈, 여성 무당 중에는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희생을 당하다가 직업 무당의 세계에 들어온 경우가 많다 한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적 약자에게 수천만 원의 신내림 비용을 요구한다면? 그렇게 신내림을 받아 '신제자'가 되었을 때, 비뚤어진 도제관계 안에서 상징적 폭력을 당한다면? 홍칼리는 관행에 문제 제기를 한다.


*결정장애는 진정 현대인의 병인가?: [신령님이 보고 계셔] 읽다가 소리 내어 웃었다. 손님 중에는 "책상을 사려하는 데 동그란 걸 살까요? 네모란 책상을 살까요?" // "네모가 안정적이에요." // "그럼, 책상은 원목이 좋을까요? 철제가 좋을까요?"라고 묻는 이가 있어 홍칼리도 상담하다가 웃었다고 한다. 어떤 손님은 연애 운 상담을 와서 "데이트할 때 카페가 맞을까요? 음식점이 나을까요?"를 "아파트 10층에 사는 게 좋을까요? 6층이 더 좋을까요?"를 물어 오기도 한단다. 여기까지만....


3년 차 무당으로서, 다른 무당들의 삶이 궁금했던 홍칼리는 동종 계열의 6인을 인터뷰하여 얇은 책을 냈다. 주로 홍칼리 본인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친분관계의 무당인듯했다. 평소 내가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다. 키워드 위주로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를 정리해 본다.


※ 정치와 종교, 그 얽힘에 대하여: 홍칼리는,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거나 사회운동을 하는 무당에게 쏟아지는 싸늘한 시선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다는 오해에 기반한다고 본다. 책에 수록될 6인 인터뷰이 역시, 굿판을 매개로 사회로 신호를 보내는 무당들을 선택한 듯하다. 예를 들어, 만신 김금화의 조카인 김혜경 무당은 많은 나라굿-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천안함 사건 등등 굵직한 비극에 올리는 굿-을 수행해 왔다고 한다. 광장에서 열리는 대동굿판의 사회적 치유 기능에 대해서는 이미 한국의 종교학자와 인류학자들이 연구해온 바 있다. 홍칼리가 소개하는 사례들의 독특성은, '변방의 변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굿판 확성기로 틀었다는 점이다. 그녀가, 무당인 자신과 비슷한 고민과 지향을 보이는 고객들이 주로 의뢰해 오는 경향이 있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어쩌면 자신이 '변방의 변방'에 서 있다는 동류의식이 그런 활동성을 낳는지도 모르겠다.


※ 하필 맥아더 장군!: 나는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2023)에서 "맥아더 장군"이 가장 인상 깊었다. 6인의 인터뷰이 중 한 명이었던 무당 솔무니는 한국의 근대, 맥아더 장군을 모시는 강신무가 많았다고 한다. "힘없는 민중을 달래주려고 가장 힘 있어 보이는 맥아더 장군"(123)을 소환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덧붙인다. 그렇다면, 무당은 마치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원하는 하늘의 캐릭터를 땅으로 소환해낼 수 있는 것일까? 왜 대한민국 민중의 애환을 달래주려는 데 미국인 장군이 필요했으며, 맥아더 장군의 인기는 현대에 와서 시들한가? 마치 시대마다 선호되는 이름이 있듯, 무당들이 소환하는 신들도 유행을 타는 걸까?


※ 100세 시대, N잡러, 무당에게도 해당한다!: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2023)에는 "전직무당"도 등장하는데, 실명 대신 '가피'로 소개된다. 나는 6인 인터뷰이 중에 '가피'의 생각이 가장 파격적이라고 느꼈다. '가피'는 '바리스타 하다가 어부로 업종 바꾸듯,' 일상에 변화를 주고자 무당직을 택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무당일을 그만두었을 때도, 막상 공무원 시험 붙고 일해보니 회의를 느끼듯 무당일 해보니 더 이상 흥미가 없어져져 그만두었다고 한다. 여태 나는 무당이 '되고/안 되고'의 문제는 개인의 의지를 뛰어넘는 힘의 작용으로 소개하는 프레임에 익숙했나 보다. '가피'의 N잡러 유형 결단력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 무당도 치유, 자활이 필요해!: 홍칼리는 '가피'를 '무당의 자활을 돕는 현대무당'으로 소개한다. 무당에게도 고민이 많은 데 특히, 무당들은 신이 없다고 느낀 순간 분노가 올라오면서 자신의 '신발(빨)'이 떨어졌다고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 한다. 그 고민에 대한 '가피'의 조언은 '신은 외부에 없다. 그냥 신은 곧 나.'라고 충고해 준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간을 신보다 하위에 두는 "신병/신기/신가물/신줄" 등을 다 낡은 개념인가 보다.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가피'가 쓴 글과 말에 더 노출되고 싶다.


부지런한 홍칼리 덕분에, 일반인은 접근하기 어려운 무당의 세계, 전현직 무당의 속내를 들어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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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3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3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7-23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저도 다른 삶들을 조금 엿봤습니다 ㅎㅎ

2023-07-23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3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3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3-07-23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근(?)한 무당이라는 표현보다
그쪽 업계에서도 세계화가 상당
히 진행되었는지 샤먼이라는
호칭을 선호하는가 보네요.

재밌습니다.

얄라알라 2023-07-23 18:31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니, 명칭의 변화가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세계화추세와 관련될 수 있겠네요.

아래 책 41쪽에서는 세계 샤먼들의 특징을 살짝 언급합니다. 독일에서는 ˝Neo Sharman˝이라는 사람들이 기 치료를 하고, 쑥을 피우는 무당도 외국에 있다 하네요 ㅎㅎ 이 분야 공부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들었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7-26 1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세계를 책으로 접할 수 있겠네요. 재밌다고 예전에 들었던 책인데 생각난 김에 읽어봐야겠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