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맛], 이 책 너무나 좋다. 읽으며, 특히 초반 부에서 몇 번이나, '아!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 하고 싶었던 공부의 결이 이거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왜? 좋았는지를 설명해보는 건, 내가 발 내디딜 방향을 아는데 중요하다.
첫째, 나는 사회과학적 질문의 시발은 개인적 화두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자기 자신, 자신을 둘러싼 관계와 처한 상황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에서 물음표가 생겨났다면, 치환 가능한 주어를 찾아 물음표를 확장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레이스 M. 조의 경우, 한국전쟁 이후 격동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디아스포라 가족의 형성과 형태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으며, 그로 인한 고통을 개개인이 감내하지만 여전히 문제의 근원이 사회적인데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잠식한 조현병을 어머니가 인종주의가 만연한 이민 사회와 맺는 관계 속에서 해석한다.
둘째, "음식과 먹기"를 키워드로 방사형 이야기 풀기를 선호하는 나로서 [전쟁 같은 맛]은 [파친코]에 이어, '김치'의 상징성을 재발견시켜준 멋진 텍스트이다. 저자가 육신을 잃은 어머니의 존재를 추모하는 방식은 주로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배치함으로써 이뤄지는 데, 머나먼 타지인 미국에서 고사리나 콩국수가 어머니께 불러일으킨 향수, '쑥갓'을 '쑥'으로 '고등어 세 손(마리)'를 '세 개'로 말하는 이민 2세대 딸의 실수, 조현병을 앓으며 방 안으로 칩거해 들어간 어머니를 식탁으로 불러낸 환갑 축하 한국 요리 등등. 그레이스 M. 조는 요리와 음식을 통해서 국가, 민족, 가족,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추억이 물질화되고 정서가 강력하게 환기되는 모습을 그려냈다.
셋째, 나는 그레이스 M. 조처럼 수위를 높인 솔직함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설령 솔직해진다 할지라도, 그 경험이 그레이스 M. 조의 것처럼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 배치했을 때 다른 이에게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내 경험을 해석할 때 필요한 명확한 한 줄짜리 질문을 나는 품고 있는가?
넷째. 실험적 글쓰기.
[전쟁 같은 맛]은 그레이스 M. 조가 조현병으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를 추모하며, 한국전쟁의 생존자들, 한인 디아스포라와 한인 2세대의 정체성 등을 사회학적 이슈를 회고록 형식으로 풀어낸 실험적인 글이다. 학문적 글쓰기와 고백을 느슨하고도 아름답게 결합시켰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
[전쟁 같은 맛]은 저자의 어린시절, 학창시절, 그리고 석사와 박사 프로그램을 거쳐 논문을 완성하는 지난한 과정을 개인사와 연결해 조각조각 보여준다. 포기해도 수치가 되지 않을 법한 상황에서도, 포기를 모르고 내달렸고 집중했던 그녀의 뒤에는 못 배운 한인 이민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한을 딸에게 투영하여 딸만큼은 떳떳하고 당당한 삶을 살기를 원했던 어머니가 계셨다.
[전쟁 같은 맛] 덕분에 2023년 7월의 마지막 날, 내가 선 자리와 내디딜 발의 방향을 재점검해 봤다. 좋은 책, 고마운 작가님이자 선생님 그레이스 M.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