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los de las Piedras, CC BY 2.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2.0>
한 젊은이가, 인도에서 일본 부토butho 춤을 추다 접신 된 후 "페미니스트 + MZ 세대 비건+ 무당"으로 전업했다고 자기 광고를 했다. 독특한 이력에 끌려서, 그가 썼다는 [신령님이 보고 계셔]를 출간 직후 읽었다. 2021년 9월 썼던 메모는 지금 다시 봐도 흥미롭다. 동시에 현대화된 샤머니즘, "성스러움과 속"의 뒤엉켜듬 등등 물음표는 점점 많아진다.
*"무당"이라는 명칭과 "무당다움"에 대하여: 가족의 전폭적 응원 아래 "전업무당"직을 수행하고 있는 홍칼리의 아버지가 조언을 하셨더랬다. "칼리야, 너는 무당말고 샤먼이라 해야 해. 서양의 엘프 같은 이미지로 나가면 좋겠다." 홍칼리는 다시 질문 던진다. 왜 무당을 무당이라 부르지 않고, "만신님, 보살님, 샤먼"이라 하지? 왜 한복 입고 작두 타고, 돼지머리 공물 올리고, 혼령에 빙의됨을 "무당다움"의 표상이라 생각하지?
* 홍칼리가 자신을 페미니스트 무당이라 칭하는 이유: 직업무당 선언 이전에 그녀를 격렬히 괴롭힌 것은 남자친구의 배신, 언어폭력, 임신중절수술 등이었다. 홍칼리는 '손님' 관계로 만나는 많은 여성에게서 고민의 비슷한 변주를 들어왔다고 한다. 특히 데이트 폭력을 당하면서도 폭력에 길들여진 여성들을 많이 만나며 홍칼리는 이 경우만은 예외적으로 타인의 인생에 깊숙하게 관여했다 했다. "점집이 아니라 경찰서에 가세요. 두려움 없이 혼자서 빛나세요."
*편견: (1) 홍칼리는 스님이 되고 싶었다. 사찰을 찾아 상담받았으나, 타투가 있어 거절당했다. "타투가 있으면 세속적으로 보인다"라는 이유였다고. 타투 있으면, 머리 염색하면, 종교수행 못하나? (2) "식신"이 여성에게 있으면 "자식 복이 많다'라고 해석한다고 한다. 반대로 같은 사주가 남성에게 있으면 "예술적 창의성을 표현하는 기운"으로 해석하고. "상관"이라는 격이 남성에게 있을 땐 "승진 운, 취업 운"으로 보는데 여성에게 같은 "상관"이 보이면 "남편 잡아먹는다. 이혼 수가 있다"라고 해석해왔다. 홍칼리는 점사 "해석"에서 가부장적인 "편견"을 지적한다.
*이중구속: 이후, 점을 보러 다니던 홍칼리는 "신내림을 받아야 풀린다"라고 종용 받았다. 단, 2500만 원 헌납금 必! 홍칼리 왈, 여성 무당 중에는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희생을 당하다가 직업 무당의 세계에 들어온 경우가 많다 한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적 약자에게 수천만 원의 신내림 비용을 요구한다면? 그렇게 신내림을 받아 '신제자'가 되었을 때, 비뚤어진 도제관계 안에서 상징적 폭력을 당한다면? 홍칼리는 관행에 문제 제기를 한다.
*결정장애는 진정 현대인의 병인가?: [신령님이 보고 계셔] 읽다가 소리 내어 웃었다. 손님 중에는 "책상을 사려하는 데 동그란 걸 살까요? 네모란 책상을 살까요?" // "네모가 안정적이에요." // "그럼, 책상은 원목이 좋을까요? 철제가 좋을까요?"라고 묻는 이가 있어 홍칼리도 상담하다가 웃었다고 한다. 어떤 손님은 연애 운 상담을 와서 "데이트할 때 카페가 맞을까요? 음식점이 나을까요?"를 "아파트 10층에 사는 게 좋을까요? 6층이 더 좋을까요?"를 물어 오기도 한단다. 여기까지만....
3년 차 무당으로서, 다른 무당들의 삶이 궁금했던 홍칼리는 동종 계열의 6인을 인터뷰하여 얇은 책을 냈다. 주로 홍칼리 본인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친분관계의 무당인듯했다. 평소 내가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다. 키워드 위주로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를 정리해 본다.
※ 정치와 종교, 그 얽힘에 대하여: 홍칼리는,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거나 사회운동을 하는 무당에게 쏟아지는 싸늘한 시선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다는 오해에 기반한다고 본다. 책에 수록될 6인 인터뷰이 역시, 굿판을 매개로 사회로 신호를 보내는 무당들을 선택한 듯하다. 예를 들어, 만신 김금화의 조카인 김혜경 무당은 많은 나라굿-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천안함 사건 등등 굵직한 비극에 올리는 굿-을 수행해 왔다고 한다. 광장에서 열리는 대동굿판의 사회적 치유 기능에 대해서는 이미 한국의 종교학자와 인류학자들이 연구해온 바 있다. 홍칼리가 소개하는 사례들의 독특성은, '변방의 변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굿판 확성기로 틀었다는 점이다. 그녀가, 무당인 자신과 비슷한 고민과 지향을 보이는 고객들이 주로 의뢰해 오는 경향이 있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어쩌면 자신이 '변방의 변방'에 서 있다는 동류의식이 그런 활동성을 낳는지도 모르겠다.
※ 하필 맥아더 장군!: 나는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2023)에서 "맥아더 장군"이 가장 인상 깊었다. 6인의 인터뷰이 중 한 명이었던 무당 솔무니는 한국의 근대, 맥아더 장군을 모시는 강신무가 많았다고 한다. "힘없는 민중을 달래주려고 가장 힘 있어 보이는 맥아더 장군"(123)을 소환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덧붙인다. 그렇다면, 무당은 마치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원하는 하늘의 캐릭터를 땅으로 소환해낼 수 있는 것일까? 왜 대한민국 민중의 애환을 달래주려는 데 미국인 장군이 필요했으며, 맥아더 장군의 인기는 현대에 와서 시들한가? 마치 시대마다 선호되는 이름이 있듯, 무당들이 소환하는 신들도 유행을 타는 걸까?
※ 100세 시대, N잡러, 무당에게도 해당한다!: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2023)에는 "전직무당"도 등장하는데, 실명 대신 '가피'로 소개된다. 나는 6인 인터뷰이 중에 '가피'의 생각이 가장 파격적이라고 느꼈다. '가피'는 '바리스타 하다가 어부로 업종 바꾸듯,' 일상에 변화를 주고자 무당직을 택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무당일을 그만두었을 때도, 막상 공무원 시험 붙고 일해보니 회의를 느끼듯 무당일 해보니 더 이상 흥미가 없어져져 그만두었다고 한다. 여태 나는 무당이 '되고/안 되고'의 문제는 개인의 의지를 뛰어넘는 힘의 작용으로 소개하는 프레임에 익숙했나 보다. '가피'의 N잡러 유형 결단력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 무당도 치유, 자활이 필요해!: 홍칼리는 '가피'를 '무당의 자활을 돕는 현대무당'으로 소개한다. 무당에게도 고민이 많은 데 특히, 무당들은 신이 없다고 느낀 순간 분노가 올라오면서 자신의 '신발(빨)'이 떨어졌다고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 한다. 그 고민에 대한 '가피'의 조언은 '신은 외부에 없다. 그냥 신은 곧 나.'라고 충고해 준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간을 신보다 하위에 두는 "신병/신기/신가물/신줄" 등을 다 낡은 개념인가 보다.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가피'가 쓴 글과 말에 더 노출되고 싶다.
부지런한 홍칼리 덕분에, 일반인은 접근하기 어려운 무당의 세계, 전현직 무당의 속내를 들어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