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효과'라는 원제 그대로였다면, 양육이나 인구 문제 도서로 오해했을 뻔하다. 더퀘스트 출판사 편집진은 "다정함"이 부상하는 코로나 블루 시대에 어울리는 제목을 달았다. [다정함의 과학]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와 나란히 입소문이 뜨거운 책이다. 저자 켈리 하딩은 정신의학 교수이다. 건강의 의미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 모두 더 건강해질 가능성을 진료실 밖에서도 찾아 왔다. 오랜 고민과 연구 끝에 그녀가 도달한 결론을 집약한 표현이 바로 '토끼 효과'이다. 

*   *


'표준 토끼 모델'의 실험 대상 토끼들은 수 개월 간 동일한 고지방 사료를 먹었다. 예측한 대로 콜레스테롤 수치는 모든 토끼에게서 상승했다. 그러나, 토끼 한 무리의 동맥 혈관 내부에는 지방 성분이 다른 토끼들의 60%였을 뿐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이 결과를 설명할 수 없었다. 유사한 사례를 하나 더하자. 

27주만에 태어난 조산아 제이미는 의료진과 부모의 노력에도 불구, 사망 판정을 받았다. 엄마는 숨을 멈춘 아가와 살갗을 맞대고 말을 걸었고, 아가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위 미스테리한 사례의 토끼들에게도 역시, 토끼를 안아주고 애정을 듬뿍 준 헌신적인 연구원이 있었다.



저자가 토끼 연구 사례를 내세워 이 책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은 명료하다. '건강은 사회적, 정치적, 환경적 조건의 영향을 받는다. 1) 따스함, 웃음, 존경, 신뢰, 배려, 환대, 지지 등을 통한 사회적 연결은 개인을 그리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한다. 2) 건강을 위한 노력은 진료실 밖에서도, 즉 공동체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1)번에 격렬히 공감한다. 2)번도 마찬가지. 그러나  2)번 '공동체 차원' 부분에서 한숨이 나왔다. 실현이 쉽지 않을 터이니 무력하고 막막하게 느껴진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다정함은 개인 차원의 각성과 노력으로 발현될 수 있다. 하지만 '다정한 개인'의 합집합이 '다정한 공동체'로 이어지진 않는다. 설사 다정함이나 친절이 취약점(약자의 무기)로 평가절하되지 않는 사회분위기를 형성할지라도, 건강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 사회적 환경적 요인들, 인간의 본래적 편향성과 혐오 등의 요소는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이 책의 5장 '교육'을 예로 들어보자. 캘리 하딩은 100세를 넘겨서도 건강한 삶을 사는 아이젠버그 박사의 열렬한 지식욕구를 칭송하며 건강과 교육 간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통계를 제시한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환자가 당뇨 걸릴 확률이, 대학교 졸업하지 않은 여성이 비만일 확률이,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부모가 수명이 더 짧을 확률이' 높다는 식이다. 물론, "배움"을 통한 자기성장 노력이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돈이 상대적으로 덜 드는 교육의 창구들을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최종학력은 삶의 목적의식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복합적인 변수들의 영향을 받는다. 개인이 제 아무리 다정하거나, 배움의지가 뚜렷할지라도 그것이 교육의 총량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배우려고 노력해야(더 교육받아야) 더 건강하다'는 진술에 쉽게 동의할 수 없다.



토끼들을 제 아무리 쓰다듬고 아껴준 들, 실험실 안에서 사료 받아먹으며 몇 달 더 생존할 운명의 토끼라면,  다정함은 무슨 소용일까? 삶의 조건들이 너무나 가혹한 데, 결코 사회적 시선이 우호적이지 않은데, 다정함의 가치를 실천하며 산들, 그는 얼마나 더 건강할까? 켈리 하딩의 고무적인 제안이 왜 내게는 버겁게 느껴지는가?  분자화도 모자라 원자화 시키는, 사람들 간 결합력을 약화시키는 사회에서 '사회적 연결'이라는 끈을 붙들어 매야 너와 공동체가 산다는 제안은 왜 슬프게 들릴까?



리뷰, 다시 읽어보니 불만 많은 염세주의자의 투덜거림 같다. [다정함의 과학]을 작정, 디스하려는 뉘앙스도 느껴진다. 전혀 그렇지 않다. [다정함의 과학] 고개 끄덕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다정한 손길, 눈짓, 인사, 함께 함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건 의학박사 학위 없어도, '토끼효과'같은 전문 용어 몰라도 우리가 살면서 깨치는 기본이다. 그러나 '다정함'의 가치를 새로 발견하고 있는 이 시대가 역설적으로 이 사람간 아날로그적 결합력이 얼마나 약화된 세계에 우리가 사는지 반증한다고 생각하기에 슬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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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2-04-13 10: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죄송해요!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왠지 저는 책 내용에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잘은 몰라도 느낌으로는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있다>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얄라알라 2022-04-18 10:52   좋아요 1 | URL
감은빛님 안녕하세요?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많이 들어봤는데 작가 이름은 생소합니다. 짐작하신 대로, 물에 사랑을 쏟고 좋은 말을 해주면 물이 달라진다 뉘앙스의 예시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보건, 집단 건강의 관점에서 다정함을 치료자원화하자는 주장도 등장하고요. 다정함과 연결됨의 힘은 분명 있겠지만, 현실의 여러 복잡한 문제와 인간 감정의 광폭 요동은 어찌 처리하고 현실화할지, 혼란스러웠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2-04-18 12:4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감은빛님^^

저는 이 책을 보지 않았지만 <물은 답을 알고 있다>와 다른 결의 책이라 생각합니다. 저자 이력, 추천사를 보건데요. 그리고 다정함과 건강의 관계는 이미 과학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있는 부분이라 사이비과학인 <물은 답을 알고 있다>와는 다르다 생각합니다.

얄라님 말씀대로 다정함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사회적으로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할지는 다른 문제겠지만요.

감은빛 2022-04-19 11:23   좋아요 2 | URL
알라님. 다정함을 치료자원화 하자는 주장은 신선하네요.
저는 지역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이라 조합의 활동을 통해
말씀하신 취지의 내용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는 현실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여전히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고양이라디오 님 안녕하세요.
저는 게을러서 이 글만 읽고 저자 이력과 추천사를 보지는 못 했네요.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부분이라고 하시니, 그 부분은 제가 공부해야 할 것 같아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새파랑 2022-05-07 0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님 당선 축하축하합니다~!! 귀여운 토끼를 연구에 쓰다니 왠지 슬프네요 ㅜㅜ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

얄라알라 2022-05-08 17:26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놀러 댕기느라, 늦게 인사 답신 드립니다.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2-05-07 08: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얄라알라 2022-05-08 17:26   좋아요 1 | URL
이하라님, 요렇게 들려주셔서 또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미미 2022-05-07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님 축하드려요*^^*🌹
웃음가득한 주말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2-05-08 17:26   좋아요 1 | URL
미미님, 내내 배가 부른 주말을 보내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05-07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2-05-08 17:26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항상 따뜻하게 챙겨 축하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요!!

그레이스 2022-05-08 1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얄라알라님 토끼의 실험에서 다정함의 사회학! 흥미있는 내용이네요. 무정한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이 함께 무정함으로 무장하는 것일까, 아님 다정함으로 그 무장을 해제시키는 것일까 생각하다보니 옛날 우화가 생각나네요. 바람과 햇빛의 우화였던 것같네요.

겨울호랑이 2022-05-08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얄라님께서 말씀하신 공동체 차원의 노력이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이웃‘, ‘공동체‘라 했을 때 자신과 소득, 지리, 학력 등 여러 조건이 맞는 이들을 그 대상으로 한정하기 때문에 그 장벽이 높아진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종교인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교리, 부종교인들 역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주변을 대한다면, 지구라는 별이 ‘창백한 푸른 점‘이 아닌 ‘아름답게 새파란 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얄라얄라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