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여자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여자들 - 고종석의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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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history 애초부터 여성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우리 역사를 예로들면 고려시대, 조선초기까지 부분적으로 여성에 대한 관대함을 찾아볼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며 동서양을 통틀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세상의 반이 남자라면 그 나머지는 여자인 것을 어떻게 남자들의 기준으로만 역사가 만들어진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인들은 성녀로 칭송받든 아니면 악녀로 낙인찍혔든지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대단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들의 일생이 파란만장했던 만큼 후대의 여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음은 말할 것도 없다.

 

 <고종석의 여자들> 이 책은 저널리스트이자 언어학자인 고종석님이 손꼽은 34명의 여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인물이 중심이 되는 책의 경우 '역사를 움직인', '세계를 빛낸' 등의 수식어가 붙기도 하고 왜 그 인물을 선정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뒤따르기도 하는데, 이 책의 경우는 서두에서 아예 못을 박고 시작한다. 소개하고 있는 여인들이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에 따라 편파적이고 불공정하게 선정된 인물이며 실존과 허구, 삶과 죽음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클을 걸 수가 없다. ^^; 

  

 솔직히 책을 처음 봤을 때, 바람직하지 못한 두 가지 생각을 떠올렸음을 고백한다. 요즘들어 '골프의 황제'라 불리는 세계적인 스타가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과 겹쳐 제목의 느낌이 달리 와닿았던 것이 첫번째이고 또 한가지는 '고종석'이 누구인가?, 라는 생각이었다. 무엇을 하든 어떤 자리에 있든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은 자신감의 표현이다. 기업이 브랜드화 되고 있는 것처럼 개인의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 시대인 것이다. 하지만 독자로서 저자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자 순간 내 탓이 아니라고 위로하고픈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저자에 대한 정보 뿐 아니라 그가 소개하고 있는 여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서른네 사람 중에서 반 정도만 알고 있었고 나머지는 처음 들어보는 인물이었다. 오래된 영화나 문학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니콜 게랭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기억에 남는다. <러브스토리>의  에릭 시걸의 또다른 작품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에 등장하는데 상당히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로 결혼은 원치 않지만 아이는 낳아 키우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대단하다 싶었다. 시대적 배경이 1960년대임을 감안할 때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논란이 될만큼 파격적인 생각이나 가족의 형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결손가정'이라는 말이 없어져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하게 된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미디어 여왕'으로 등극한 오프라 원프리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손꼽힌다. 그녀의 토크쇼에 출연했던 사람들은 진솔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유명인이란 타이틀을 내려놓고 진심을 털어놓게 된다고 한다. 오프라 원프리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어려움에 처해있는 여성들에게는 희망을 주고 또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한 편견을 극복하는데도 힘을 쏟고 있다. 그외에 마리 앙투아네트, 윤심덕과 같은 비련의 주인공들에 대한 의견이나 최진실, 강금실 전 장관을 포함한데 대해서는 의외였지만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누구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여인 한 두명쯤은 가슴에 품고 살지 않나 싶다. 하지만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여인을 꼽으라면 주위를 둘러볼 것도 없이 바로 내 어머니를 꼽을 것이다. 어머니는 체형, 외모, 성격 등 모든 면에서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을 가지셨다. 단아하면서도 다소곳하시고 자식들에게 헌신적이며 생활력 강하시다. 무엇보다 긍정적이고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셔서 주위에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많다. 사춘기때 한참 반항하고 그럴때는 엄마처럼 가족과 타인을 위해서 사는 인생을 누가 알아주느냐고 엄마처럼은 살고 싶지 않다고 소리쳤던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엄마를 반 만이라도 닮고 싶다는 바램이 간절하다. 뒤늦게 철드나보다.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고종석이라는 작가와 그의 여인들을 알게 되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아무리 주관적인 생각으로 선정하였다고는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 깊은 인상을 심어준 인물들인 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처음에 책 제목과 표지만 보고 선입견을 가졌던 점을 반성한다. 모두가 나의 내공이 부족한 것이 이유였는데 말이다. 다행인 것은 나의 무지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젊다는 이유로 세상을 경험하고 배울 시간이 많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인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이 많고 세상을 변화시킨 이들도 많지만 그들을 낳아 기른 것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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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여우 콘라트
크리스티안 두다 지음, 율리아 프리제 그림, 지영은 옮김 / 하늘파란상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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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숲 속 호숫가에 알을 품고 있던 오리가 있었어요. 그 숲에는 배고픈 여우 콘라트도 살고 있었답니다. 어느날 엄마 오리는 여우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달아나 버렸고, 콘라트는 엄마 오리가 남겨둔 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처음엔 오리 알 볶음이라도 해 먹을 생각이었는데 알에서 아기 오리가 태어났답니다. 콘라트의 뱃속에서는 '꾸루륵!' 소리가 났고 아기 오리는 그 소리가 맘에 들었는지 "엄마, 엄마!" 라고 소리 쳤어요. 콘라트는 자신을 '아빠' 라고 가르쳐 주고는 아기 오리에게 로렌츠라는 이름도 지어 주었어요.       



 


 

 콘라트는 아빠라고 부르며 따르는 아기 오리를 도저히 잡아 먹을 수가 없었어요. 콘라트는 허기가 느껴질 때마다 오리를 요리하는 방법을 상상하면서 배고픔을 참았고, 로렌츠는 더이상 꾸르륵 소리에 대해 묻지 않았어요. 배고픔을 참는 것은 힘이들지만 아기 오리 로렌츠와 함께 있는 시간은 너무나도 행복했답니다. 로렌츠는 엠마라는 오리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콘라트는 로렌츠가 엠마와 헤어졌을 때 엠마를 잡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잠시 품기도 했어요. 하지만 로렌츠와 엠마는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살기로 해요.  



 

 

 로렌츠와 엠마의 아기 오리들은 새로운 오리들을 만나 다시 아기 오리를 낳고 그 오리들이 다시 오리를 낳고... 숲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리들로 가득 찼어요. 콘라트는 아이 오리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언제나 함께 놀아주었어요. 콘라트의 뱃속에서는 여전히 꾸르륵 소리가 났고 아기 오리들도 꾸르륵 소리를 따라했어요. 숲 속의 다른 동물들은 그 소리가 무서워서 피해다녔지만 오리들에게는 마냥 즐거운 소리였답니다.

 

 그림을 살펴보면 숲을 표현할 때는 패브릭 느낌이 나서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이 드는 반면에 콘라트의 캐릭터에는 까칠한 속마음과 갈등하는 마음이 표현된 것 처럼 선이 굵고 색감도 강해요. 때론 스케치한 선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기도 해서 예쁜 그림이라는 생각보다는 실험적이고 독특한 느낌이 드네요. 책을 읽다보니 쑨칭펑의 <여우가 오리를 낳았어요> 라는 그림책이 생각나더군요. 울 아들이 유아기 때 엄청 좋아했었거든요. <배고픈 여우 콘라트>는 내용면에서 비슷한 듯 하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이에요. 상대적으로 글밥이 있는 편이고 내용면에서도 깊이가 있답니다.

 

 아이들에겐 아직 이해시킬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여우가 오리를 잡아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에요. 단지 여우는 강한 발톱을 가졌고 오리들은 약한 존재들이니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죠. 짐승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도 '배고픔'을 참는 것만큼 힘든 것은 없답니다. 식욕은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느끼는 감정으로 가장 강력한 욕구이기 때문이에요. 엄마 오리와 친구가 되고 싶었던 콘라트는 얼떨결에 아기 오리의 아빠가 되었고 아기 오리를 진심으로 돌봐줍니다. 어찌보면 위험에 노출된 오리 만큼이나 끊임없이 배고픔과 싸워야 했던 콘라트도 불쌍한 상황이지요.  

 

 다행인 것은 콘라트가 아기 오리와 함께 한 시간은 배고픔을 이길 수 있을 만큼 행복했다는 사실이에요. 배고픔을 잊는 다는 것이 순간적인 만족이라면 로렌츠와 로렌츠의 아기 오리들과 함께 한 시간은 그 이상의 기쁨이었지요. 숲은 오리들로 가득 찼고 콘라트의 기쁨도 커져만 갔어요. 콘라트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 아이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현재의 유혹과 고통을 견디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평생 꾸르륵 소리를 내면서 살았던 콘라트 덕분에 이렇게나 많은 생명들이 탄생했으니 정말 보람있는 일이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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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딸콤플렉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착한 딸 콤플렉스 - 착해서 고달픈 딸들을 위한 위로의 심리학
하인즈 피터 로어 지음, 장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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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릴 때 부터 착하다는 말 많이 듣고 자랐다. 내 자랑하는 거 절대 아니다. 그냥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남들은 딸 셋인 집에 막내라고 하면 어리광도 부리고 이쁨 받으면서 자란 줄 알지만 아들 바라던 집안에 태어난 죄인지 어린 시절 내내 할머니, 부모님은 물론이고 언니들 한테까지 물 떠다 바칠 정도로 심부름에 치여 살았다. 옷이며 학용품도 바로 물려받은 것은 좀 나을지 몰라도 세째인 나한테 까지 넘어올 때면 항상 헤진 표가 많이 나고 학용품도 구색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속으로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싫은 내색 한 번 못했던 것은 집안 형편이 눈에 들어왔던 이유가 가장 컸고, 다른 한 가지는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고 착하다는 칭찬을 들을수록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시간이 지나 그 말이 부담스러운 때 조차도 마치 브레이크 고장 난 자전거를 탈 때 처럼 그만두지 못하고 부담스러움을 안고서 의무적으로 행동하게 되었다. 황당한 것은 사춘기 무렵 반항 한 번 했더니 그동안의 수고로움이 모두 허사가 되더라는 것이다. 

 

 <착한 딸 콤플렉스>라는 제목과 "엄마, 왜 항상 나만 양보해야 돼?" 라는 멘트를 보는 순간 이건 나를 위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녀들을 곁에 두려하고 심리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독립은 멀고도 험하구나 싶었다. 특이한 것은 심리학적인 용어와 설명을 하기에 앞서 <거위 치는 소녀>라는 동화의 내용을 들려주고 동화 속 내용을 문장 하나하나 예를 들어가면서 분석하고 그 내용을 심리학적인 설명과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오래전에 남편은 잃은 왕비'는 딸을 통해 파트너의 빈 자리를 채우려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고 '공주가 결혼한다는 것'은 독립을 의미하며 왕비의 곁을 떠날 때 공주에게 건네준 '세 방울의 피가 묻은 손수건'은 자식에 대한 과보호와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의존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동화 속의 공주는 시녀에게 자기 자리를 빼앗기고도 매사에 수동적이며 "어머님이 아시면..." 이라는 체념어린 푸념만 늘어놓는다.

 

 그렇다면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은 자신의 품위보다 자신의 열등감을 더 많이, 더 확실하게 믿는다. 치유의 길은 그 사실을 이해하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p.135)"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것이다. 남을 의식하고 강요된 희생을 감수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되찾는 것이다. 공주는 왕의 도움으로 쇠난로에 들어가 진실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되찾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용기와 결단, 치유의 눈물 등이다. 

 

 경제가 어려워 지면서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자녀들이 늘어가고 있다. 오죽하면 '헬리콥터 부모'라는 말까지 나올정도이니 자녀에 대한 극진함은 국경을 초월해서 다 같은 마음인가 보다. 다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과할수록 부모니까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자녀들이 생긴다든지, 옛날과 달라서 자식에게 노후를 의지하지 않겠다 하면서도 장성한 자식을 품안에 두려하고 자식의 인생에 지나치게 관여하려 하는 부모들이 있다면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에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따라다녔던 '착한 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자 일찌기 사회 생활을 통해 독립을 시도했었다. 그런데 결혼 후 맞벌이를 하면서 다시 부모님께 의지하게 된 경우라서 면목이 없다. 책에 소개된 사례들을 읽으면서 지금이라도 정체성을 회복하고 독립해야 겠다는 의지보다는 나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부모님의 극진한 사랑 속에 자랐고 얼마나 행복한 유년을 보냈는지 확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딸의 입장에서 벗어나 이젠 부모의 입장으로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자식에 대한 소유욕을 자제하고 자녀를 하나의 성숙된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다. 또한 자식의 입장에서도 부모에 대한 의존성을 극복하기위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글로쓰니 쉽긴 한데 늙은 노모의 눈에는 중년의 자식도 걱정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자식의 독립을 인정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말, 그 말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부모의 사랑'에도 해당된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무조건적인 사랑' 보다는 '현명한 사랑'이 진정 자식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가슴 속에 깊이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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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천둥의 시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피와 천둥의 시대 - 미국의 서부 정복과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
햄프턴 시드 지음, 홍한별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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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대할 때, 어떤 시각으로 서술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어떤 이는 성군이 되었다가 나약한 군주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당찬 국모가 되었다가 요부로 전락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충신과 탐관오리 사이를 오가기도 한다. 제국주의 시대의 침략전쟁에 대해서도 한 쪽은 영토 확장및 문명의 전수라고 주장하는데 비해 다른 쪽은 일방적인 약탈일 뿐이라는 주장이 맞서는 것이다. 이처럼 타협할 수 없을 정도로 양측의 주장이 대립된다면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역사가 진실을 말해준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납득할 만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괜시리 머리속만 복잡해 지는 것 같다.  

 

 <피와 천둥의 시대> 제목에서부터 묵직함이 전해지는 책이다. '미국의 서부 정복과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라는 카피 문구를 보면서 처음엔 인디언들의 역사에 중점을 둔 책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가지 놓치고 있었던 것은 '미국의 서부 정복'과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는 같은 말이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한 쪽에서는 오지에 대한 개척이자 정복이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종족의 멸망인 것이다. 내용면에서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되는데 서부 정복의 한 축에는 키트 카슨이라는 인물이, 그 반대편에는 나바호 부족이 또 다른 축을 이룬다. 서술에 있어서 최대한 중립을 유지하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기대와는 달리 정복자의 관점에 2%정도 무게가 기운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키트 카슨은 서부개척사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는 일평생 글을 읽지 못한 문맹이었으나 인디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이 가능했다. 또한 그가 맞이한 두 아내도 인디언 여인이었다. 하지만 서부의 황야를 탐험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키트 카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결과적으로 인디언 멸망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 되고 말았다. 키트 카슨이 서부개척사에서 전설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누구보다도 탁월한 길잡이 였으며 인디언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 외에도 냉철한 판단력과 타고난 생존 본능, 강철같은 체력 등을 바탕으로 숱한 일화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나바호 부족은 조상 대대로 삶의 터전을 지켜온, 어찌보면 서부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서부 개척시대의 미국인들에게 인디언들은 야만적이고 잔인한 종족으로 묘사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인디언들 만큼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았던 이들도 없다. 그들은 미국인들이 짐승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가죽을 취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와 함께 생존의 위협을 느꼈고 이 때문에 폭력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타인의 시선으로는 모든 인디언들이 똑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부족으로 나뉜다. 그들 중에는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자신들의 삶을 경건시하는 부족이 있는가 하면 바람처럼 떠돌면서 사냥을 하는 부족도 있다. 낯선 이방인들은 그들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후에 보호구역으로의 이주 과정에서도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미국인들의 일부는 인디언들이 거주하고 있는 땅에 황금이나 그에 버금가는 자원이 묻혀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보호 구역을 명목으로 그들을 내몰았다. 계속되는 흉작, 턱 없이 부족한 물자, 멕시코인들이나 다른 인디언 부족의 공격 등 이주자들이 겪은 처참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초기 개척자들이 더 많은 땅과 황금을 원할수록 토착민이던 인디언들의 희생도 커질 수 밖에 없었다. 키트 카슨은 인디언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과 함께 조국에 충성해야 한다는 상반된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서 탐험대의 길잡이에서 장교의 자리에까지 올라 원치 않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콤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디딘 이후 영국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 수많은 인종이 미국으로 몰려들었고 오늘날 미국의 화려한 이면에는 인디언들의 슬픈 역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왕조의 몰락을 지켜보는 것 만큼이나 심란했다. 현재의 상황으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을 때 흔히들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라는 말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우리는 개척자와 인디언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작가도 지어내지 못할 이야기가 실제 역사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며,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모순과 아이러니로 가득찬 것 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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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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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하루 종일 일어난 일들을 세세한 부분까지 글로 쓴다면 어떤 일들을 적게 될까 생각해 보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면서 집을 나서고 남편과 함께 출근하는 차안에서 화장을 마무리 하고 사무실에서 하루 업무를 점검하고 당일 스케줄에 따라 서류를 작성하고 마감을 한다. 귀가 후엔 아이의 하루를 점검하고 저녁을 먹고 최근에 헬스를 시작했으니 운동도 끼워넣어야 겠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재우고 책을 읽다고 잠들고... 주말이나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항상 비슷한 일상이다. 뭐야? 아무 생각없이 살때는 몰랐는데 막상 적어 놓고 보니 너무 재미없잖아! 한때는 나의 하루가 소설같이 흘러간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생각을 접어야 겠다. ^^;;

 

 <싱글맨> 이 책은 한 남자의 하루 일과가 소설 한 권인 책이다. 주인공 조지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50대 후반의 평범한 남자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강의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헬스 클럽에서 운동도 한다. 지인의 병문안을 가기도 하고 저녁엔 술을 마시고 만취한 상태에서 무모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도 보통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다고는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의 일상이 보통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것은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교통사고로 잃은 상처로 인해 매 순간 깊은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 바로 그 점이다.  

 

 그런데 조지가 사랑했던 사람, 조지에게 지독한 고독과 상실감을 안겨 준 사람은 짐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다. 단지 혼자 사는 남자라는 것 외에는 엄청난 사건이나 반전이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시점이 1960대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놀라운 것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라는 작가 자신이 서른 살 이상 차이나는 사람과 삼십 년 이상의 연인관계를 가졌던 동성애자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조지라는 인물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며 이웃들의 편견은 당시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이유로 이 책이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크게 기여한 책이라고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인간의 상처와 상실감, 치유에 관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사람은 나이와 지위, 환경에 상관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이를 잃는 것 보다 더한 상처는 없다. 한 남자의 생활 속에 드리워진 깊은 고독을 통해 문득 나의 일상이 주인공과 다를 것이 무언인가 싶어 화들짝 놀라게 된다. 친구들이랑 전화해서 수다를 떨다보면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라는 이야기로 마무리 짓곤 하는데 무심코 내뱉는 그 말처럼 어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큰 틀안에서 벗어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더 없이 귀하고 소중한 시간들을 덧없이 보내고 있는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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