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천둥의 시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피와 천둥의 시대 - 미국의 서부 정복과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
햄프턴 시드 지음, 홍한별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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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대할 때, 어떤 시각으로 서술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어떤 이는 성군이 되었다가 나약한 군주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당찬 국모가 되었다가 요부로 전락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충신과 탐관오리 사이를 오가기도 한다. 제국주의 시대의 침략전쟁에 대해서도 한 쪽은 영토 확장및 문명의 전수라고 주장하는데 비해 다른 쪽은 일방적인 약탈일 뿐이라는 주장이 맞서는 것이다. 이처럼 타협할 수 없을 정도로 양측의 주장이 대립된다면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역사가 진실을 말해준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납득할 만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괜시리 머리속만 복잡해 지는 것 같다.  

 

 <피와 천둥의 시대> 제목에서부터 묵직함이 전해지는 책이다. '미국의 서부 정복과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라는 카피 문구를 보면서 처음엔 인디언들의 역사에 중점을 둔 책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가지 놓치고 있었던 것은 '미국의 서부 정복'과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는 같은 말이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한 쪽에서는 오지에 대한 개척이자 정복이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종족의 멸망인 것이다. 내용면에서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되는데 서부 정복의 한 축에는 키트 카슨이라는 인물이, 그 반대편에는 나바호 부족이 또 다른 축을 이룬다. 서술에 있어서 최대한 중립을 유지하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기대와는 달리 정복자의 관점에 2%정도 무게가 기운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키트 카슨은 서부개척사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는 일평생 글을 읽지 못한 문맹이었으나 인디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이 가능했다. 또한 그가 맞이한 두 아내도 인디언 여인이었다. 하지만 서부의 황야를 탐험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키트 카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결과적으로 인디언 멸망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 되고 말았다. 키트 카슨이 서부개척사에서 전설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누구보다도 탁월한 길잡이 였으며 인디언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 외에도 냉철한 판단력과 타고난 생존 본능, 강철같은 체력 등을 바탕으로 숱한 일화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나바호 부족은 조상 대대로 삶의 터전을 지켜온, 어찌보면 서부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서부 개척시대의 미국인들에게 인디언들은 야만적이고 잔인한 종족으로 묘사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인디언들 만큼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았던 이들도 없다. 그들은 미국인들이 짐승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가죽을 취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와 함께 생존의 위협을 느꼈고 이 때문에 폭력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타인의 시선으로는 모든 인디언들이 똑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부족으로 나뉜다. 그들 중에는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자신들의 삶을 경건시하는 부족이 있는가 하면 바람처럼 떠돌면서 사냥을 하는 부족도 있다. 낯선 이방인들은 그들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후에 보호구역으로의 이주 과정에서도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미국인들의 일부는 인디언들이 거주하고 있는 땅에 황금이나 그에 버금가는 자원이 묻혀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보호 구역을 명목으로 그들을 내몰았다. 계속되는 흉작, 턱 없이 부족한 물자, 멕시코인들이나 다른 인디언 부족의 공격 등 이주자들이 겪은 처참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초기 개척자들이 더 많은 땅과 황금을 원할수록 토착민이던 인디언들의 희생도 커질 수 밖에 없었다. 키트 카슨은 인디언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과 함께 조국에 충성해야 한다는 상반된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서 탐험대의 길잡이에서 장교의 자리에까지 올라 원치 않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콤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디딘 이후 영국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 수많은 인종이 미국으로 몰려들었고 오늘날 미국의 화려한 이면에는 인디언들의 슬픈 역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왕조의 몰락을 지켜보는 것 만큼이나 심란했다. 현재의 상황으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을 때 흔히들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라는 말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우리는 개척자와 인디언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작가도 지어내지 못할 이야기가 실제 역사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며,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모순과 아이러니로 가득찬 것 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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