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속 남자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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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굣길에 깜짝같이 사라져버린 소녀가 나타났다.

그것도 15년이 지나서 다리 한쪽이 골절되고 벌거벗은 채 도로에서 발견된 사만타

사람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가 시간이 지나면 그녀를 납치해 감금한 범인을 기억해낼 거라 기대하지만 그녀의 기억은 좀체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아 범죄 심리 전문가를 투입한다.

게다가 그녀의 가족 중 엄마는 딸을 잃어버린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병으로 사망했고 아버지 역시 살던 곳을 훌쩍 떠난 후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가족도 없고 기억도 잃어버린 그녀를 대신해 오래전 그녀의 사건을 맡았다가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고 돈만 받고 덮어버린 전력이 있는 사립탐정 브루노가 사건 수사에 뛰어들었다.

그가 사건에 적극적인 이유는 아이의 행방을 몰라 두려움에 떨던 부모의 부탁으로 사건을 어쩔 수 없이 맡았지만 애당초 사만타의 납치를 믿지 않았기에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부채감 때문이기도 하고 시한부 선고를 받은 몸이라 내일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조사를 다시 시작한 그에게 큰 단서가 들어왔다.

사만타를 보고 신고한 사람으로부터 누군가가 그녀를 쫓아왔다는 것과 그게 눈이 하트로 된 토끼 가면을 쓰고 있었다는 다소 황당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브루노는 그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토끼와 관련된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사흘간 사라졌다 구조된 소년의 입에서 토끼라는 단서가 나왔지만 아무도 이를 주시한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충격으로 인한 이상으로 여겨 무시했었다는 걸 밝혀낸 브루노는 그 소년 로빈을 찾아 나선다.

속삭이는 자에서도 그렇고 작가는 인간 내면의 악의를 무시무시할 정도로 끄집어내고 그 밑바닥을 들여다본다.

그래서 잔혹한 살인 장면이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끔찍한 악몽처럼 느껴지게 하는 작가의 ~자 시리즈는 기존의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와는 조금 다르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살의를 단지 속살거리는 말로 끄집어 내게 한 속삭이는 자에서도, 피해자였던 사람이 사건의 가해자가 되도록 드러나지 않고 숨어서 조종하게 만든 이름 없는 자에서도 잔혹한 범죄보다 그 뒤에 숨어 이 모든 걸 조종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 끔찍하고 악몽처럼 느껴졌는데 이번 미로 속 남자 역시 납치해 감금한 소녀에게 어떤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고서도 서서히 정신을 무너뜨려 그 지옥 속에서 영원히 길을 잃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녀 사만타에게는 갇혀 있을 때도 구출되었어도 여전히 미로 속에 혼자 갇혀 있는 거나 마찬가지고 아무도 그녀를 끄집어 낼 수 없는... 아마도 영원히 그 미로 속에서 빠져나올 수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 그래도 영원히...

사람이 같은 사람을 어떻게 그 지경까지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면 무서운 걸 넘어 슬프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가해자 역시 단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이기도 했으며 이런 악의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대물림된다는 게 너무 무섭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가 어린아이들의 호기심과 순수함을 이용해 단박에 낚아채서 망가뜨리고는 그 과정을 즐기는 사람은 도대체 마음속에 어떤 괴물이 살고 있는 걸까

귀여운 토끼로 어린아이들을 유인하는 방법도 그렇지만 하트 눈 모양을 한 토끼 가면을 뒤집어쓴 채 범행을 저지르는 범인의 심리상태 등 부조화 속에서 모든 게 절묘하게 어우러져 더욱 섬뜩함을 자아낸다.

여기에 생각지 못한 의외의 반전까지... 책을 읽는 순간 단숨에 몰입해서 읽게 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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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는 없다
테일러 애덤스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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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로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5명의 남녀

임시 대피소에선 간신히 숨을 돌리고 있지만 바깥세상과는 통화도 구조요청도 할 수 없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들 중 누군가는 아이를 납치한 납치범이라는 사실

엄마가 암에 걸려 수술을 한다는 걸 알고 귀향길에 오른 다비는 하필이면 눈 폭풍으로 발이 묶여버리고 대피소에서 우연히 들여다본 누군가의 차에서 마치 갇혀있는 개처럼 손발이 묶이고 창살에 갇혀있는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그 아이의 이름인 제이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실종된 소녀 이야기를 뉴스로 들은 기억이 있는데 눈앞의 소녀가 바로 그 아이란다.

그렇다면 대피소에서 커피를 마시고 웃고 있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아이를 납치하고 잔인하게 폭력을 휘두른 납치범이라는 말인데 용의자를 특정 짓기 전에는 그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다는 걸 들키면 안 된다.

초반부터 상당히 스피디하게 몰아붙이는 출구는 없다는 영화화가 결정되었다는 데 확실히 영화 소재로 매력이 있다.

바깥은 폭설로 고립된 외딴곳에 모인 남녀 ... 공포영화나 호러물의 기본 베이스인 어디로 피할 곳이 없는 상황

주인공이 그들 중에서 범인을 찾아 제압하고 어린 소녀를 구해야만 하는데 이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할 사람은 덩치가 큰 젊은 남자거나 아니면 무기를 손에 쥐고 있거나 하는 유리한 점은 하나도 없는 그저 맨몸에 체구마저 작은 여자다.

하지만 이런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다비가 남들보다 나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정의감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치 개처럼 잡혀있는 어린 소녀 제이를 본 순간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그 아이를 구해야만 한다는 걸 납득하고 이를 실행하는 데 있어 망설임이 없었다.

그런 제이와 외딴곳에서 맞닥트린 것은 어찌 보면 범인에게도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의지의 아가씨 다비는 아이를 구출하기 위해 범인을 색출하고 자신의 불리함을 커버하기 위해 연합작전을 감행하는 용기를 보인다.

문제는 모든 일이 그렇듯 다비의 생각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은 법이고 이곳 대피소에서의 상황 역시 그렇다.

알고 보니 범인 역시 다비를 눈여겨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그 행동 역시 예측해 곳곳에 지뢰를 깔아 놓고 덫을 파 놓고 그녀가 그 덫에 걸려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체력도 열세이고 가지고 있는 무기마저도 변변한 게 없는 다비가 과연 아이를 무사히 구출하고 범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의 전형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출구는 없다는 꼭 덩치가 큰 남자가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하드보일드하고 잔인한 액션을 소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작은 체구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를 것 같은 뜨거운 정의감과 불굴의 의지는 과연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될지도 궁금해질 정도로 이 책은 다비가 모든 것을 끌고 간다.

여자가 액션물의 주인공인 책이나 영화의 대부분처럼 그렇고 그렇게 약간의 액션을 취하고 그다지 놀라울 것 없는 반전을 통한 해피엔딩이라는 평범한 공식을 벗어나 엄청 구르는 모습이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 다이하드 속 브루스 윌리스가 생각날 정도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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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얼굴의 여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5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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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스스한 괴담과 이에 버금가는 무시무시한 살인사건을 결합시켜 읽으면서 뒤가 당기는 느낌 혹은 누군가가 지켜보는 것 같아 섬찟한 느낌을 주는 표현을 미쓰다 신조만큼 제대로 표현하는 작가가 있을까 싶다.

그래서 그가 쓰는 괴담이나 공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그 신조가 또 다른 시리즈를 내놨다.

괴담과 괴이한 사건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도조 겐야시리즈와 그 괴가 닮은듯하지만 시대적 배경이 전후라는 점 그래서 괴담이 미치는 영향이 많이 옅어진 가운데서 벌어지는 괴이한 사건이라는 점 무엇보다 괴담보다 사건 추리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이 조금 달랐다.

시리즈의 다른 편에선 또 어떤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전후, 사람들의 생활은 피폐해지고 무엇보다 천황이라는 존재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신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이라는 인정으로 인해 오랫동안 믿었던 가치관이 흔들려 모든 것에서 허무해진 마음으로 정처 없이 전국을 떠돌던 하야 타는 대학을 나온 엘리트임에도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게 된다.

그런 그에게 나쁜 손길을 뻗쳤던 사람을 기지로 물리어준 아이자토를 따라 그가 일하는 넨네 갱으로 온 하야타는 조국의 재건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 하나로 힘든 탄광에서의 일을 견뎌내는 데 그런 와중에 갱도가 무너지고 자신을 이끌어준 아이자토가 그 갱도에서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사람들이 갱도에 몰려있던 그 때 탄광 주택 1호동에서 누군가가 죽은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탄광 전체에 음울한 분위기가 감도는데 신조의 장기인 음산하고 괴괴한 분위기가 눈앞에 보이듯이 그려져 더욱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죽은 사람이 하필이면 광부들이 신성시 여기는 신물 즉 여우신을 모시는 사당을 둘러친 금줄로 목을 맨 것인데 더군다나 그가 죽기 직전 그 집으로 검은 얼굴을 한 여우가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아이들의 증언으로 광부들과 그 가족은 모두가 공포와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보란 듯이 연이어 사람들이 같은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되기 시작한다.

죽음을 가깝게 하고 있는 직업에서는 유난히 금기시되는 것들이 많은 데 땅끝 즉 막장으로 내려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곳에서 작은 불빛 하나에 의존해 석탄을 캐내는 광부들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수많은 금기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신성시 여기는 금줄을 이용해 보란 듯이 살인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살인이 일어나기 직전 검은 얼굴의 여우신이 보였다는 점 그리고 죽은 사람 모두 같은 모습의 밀실 상태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이 범인의 대범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괴이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는 것도 충분히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할만 한데 그들이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던 검은 얼굴의 여우가 죽은 사람의 근처에서 발견되었고 죽은 사람 외에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밀실 상태라는 점을 넣어 사건들이 마치 사람이 아닌 그 이외의 존재에 의한 행위 즉 처벌처럼 느껴진다는 점 때문에 설득력 있는 설명이나 사건의 경위를 파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인사건 간의 공통점이나 용의자를 차분하게 찾아서 하나씩 소거해나가는 하야타의 모습은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충분히 탐정이나 형사의 모습과 닮아있다. 새로운 시리즈를 예감케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야타 본인은 전시에 대학을 나온 엘리트이기도 한데 그가 대학에서 배운 교육과 현실에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되는 현실의 부조리함에 의문을 품었다 나중에는 그들과 자신이 같은 민족이라는 부끄러움과 함께 환멸을 느낀... 마치 일제시대 때의 현실에 무기력했던 우리나라의 지식층을 보는 것 같은 인물인데 다른 점이라면 그가 충분히 부끄러움을 아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역시 가해자의 입장에서 하는 문제 제기라는 점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전쟁 당시 지독했던 탄광의 환경에서 일했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조선 사람이며 그들이 원해서 온 것이 아닌 끌려왔거나 속아서 온 사람들 즉 강제징용이었다는 자기반성을 넣고 그들에게 속죄하고 싶어 하는 아이자토를 내세웠지만 그 사람들을 괴롭힌 사람 중 가장 많이 그리고 지독하게 괴롭힌 사람은 일본 사람처럼 이름을 바꾸고 그들을 감독한 조선인이었다는 식이다.

하야토 역시 전쟁 때 자기 민족들이 조선인이나 만주인에게 행하는 모든 불합리한 폭행과 비인간적인 처사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전후 원폭으로 인해 고통받는 동포를 보며 미국에 대해 분노하면서 마치 자신들 역시 전쟁에 무고한 피해자인 것처럼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이중적인 느낌으로 다가와 개운치 않았다.

어쨌든 조금은 감상적인듯한 엘리트 하야토라는 인물을 내세워 괴담의 으스스 함에 함몰되지 않고 냉철하게 그 이면에 깔린 냉혹한 살인사건을 진실을 파헤치고 있는데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은 확실히 도조 겐야 시리즈보다 괴괴함은 줄었고 사건추리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도조 겐야시리즈의 대중화라고 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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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거기에 있어
알렉스 레이크 지음, 박현주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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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피는 아름답고 돈 많은 아빠를 두고 있으며 무엇보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를 둔 행복한 남편이다.

단, 그가 그런 아내인 클레어를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미워하고 증오한다는 점을 뺀다면...

알피는 우연히 만난 클레어를 보고 계획적으로 접근해 그녀와 그녀의 돈을 단번에 손에 쥔 남자판 신데렐라였고 처음부터 그녀를 미워했던 건 아니었다.

부자들의 전형적인 타입인 클레어와의 평탄한 결혼생활에 싫증이 나면서 진즉부터 그녀를 미워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의 결혼이 주는 부와 안락함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그녀를 참고 있었던 알피

하지만 그런 알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기 시작한 건 클레어가 간절히 아이를 원하면서부터이다.

알피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정관절제술을 했었고 이를 숨겨오고 있었는데 그런 비밀이 클레어의 집요함으로 인해 드러나게 생겼을 뿐 아니라 클레어 몰래 일탈을 즐기던 상대인 피파가 집착해오면서 피파를 제거할 필요가 생겼다.

게다가 알고 보니 그 일탈 상태가 클레어와 아는 사이... 알피는 반드시 그녀 피파를 제거해야만 했었고 이제 클레어마저도 제거하기로 작정하고 전략을 짜기 시작한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부를 누리면서도 짜증 나는 아내를 제거하기 위해서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 그녀와 불륜 관계를 맺는 걸로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이를 실행해나가는 중 그가 만든 가상의 인물이었던 의사 헨리 브라이언트가 실제로 등장하는 뜻밖의 사태에 직면하면서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아내나 혹은 남편이 서로를 못 견뎌 하다 결국은 다른 곳에서 위안을 찾고 끝내는 서로에게 해를 가하려는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이야기는 스릴러의 단골 소재기에 식상함이 있다.

그 뻔한 식상함을 넘어서야 하는 건 작가의 몫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군더더기 없는 필체와 단순 명료한 문장으로 단숨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아내를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알피뿐이었을까만 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서도 아니고 아내가 술을 많이 마신다거나 아니면 어딘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자유롭게 마음껏 아내의 돈을 쓰면서 즐기고 싶고 자유롭고 싶다는 이유로 냉정하게 계획을 세우는 알피를 보면서 그가 강력하게 한 방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나뿐은 아니었을 듯

시종일관 속으로 아내를 욕하고 미워하면서 조금만 이쁜 여자가 보이면 아내를 처리한 후 그녀와의 일을 계획하는 얄미운 모습을 보이는 알피는 그 이후에 벌어진 일에서 그에게 약간의 동정의 여지도 없게 할 정도로 완벽한 철면피였고 처음부터 알피와 클레어가 서로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번갈아가면서 각자의 시점으로 그리고 있는 초반부를 보면서 그들이 서로의 생각과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를 서로만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방심하고 무시한 순간 보란 듯이 역습을 가하는 게 불행한 부부의 대부분의 모습이라 생각하면 알피와 클레어가 서로를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이해할 수 있을 듯...

뻔한 소재와 전개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몰입감도 좋고 가독성도 좋았던 책이었는데 가만 보니 작가의 다른 작품 카피캣에서도 SNS나 온라인상에서 누군가를 사칭하거나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이런 부분에서 현대인들이 얼마나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지를 보여줬었는데 알피가 아내와 불륜녀를 속이고 접근하는 방식에서 좀 더 진화된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뻔한 소재를 흥미롭게 그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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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쉬즈 곤
카밀라 그레베 지음, 김지선 옮김 / 크로스로드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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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모든 것은 그녀가 사라지고 난 뒤 발생했다.

그녀의 이름은 한네, 그리고 프로 파일러로 명성이 높다.

하지만 그런 한네가 눈 폭풍이 치던 밤 외진 곳에서 신발도 잃어버린 채 추위에 떠는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깊이 들어갈수록 마치 늪에 빠진듯한 양상을 보인다.

무엇보다 한네의 기억이 사라져버린 것이 가장 큰 문제고 두 번째 문제는 그녀의 곁에서 늘 같이 다니며 수사하던 파트너이자 연인인 페테르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왜 그 추위에 낯설고 외진 곳에서 발견되었는지 그 발견 이전에 자신과 파트너는 도대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한네

사라진 페테르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라도 한네의 기억이 절실한데 알고 보니 한네는 알츠하이머 증상을 겪고 있었을 뿐 아니라 본인 역시 그 사실을 인지하고 모든 것을 그녀가 가지고 다니던 갈색 노트에 기록하고 있었음이 밝혀지지만 그 노트 역시 찾을 길이 없다.

그런 그녀를 도와 사건을 수사하는 사람은 말린인데 사실 말린은 이곳 오름 베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지만 마을의 모든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남은 사람은 몇 안 되는 이곳이 싫어 다른 곳에서 경찰 생활을 하다 이번에 맡은 미제 사건 수사 때문에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상황이다.

그녀와 한네가 맡은 미제 사건은 공교롭게도 19년 전 그녀가 그녀의 남자친구와 있다 우연히 발견한 백골화가 진행된 어린아이의 사건으로 당시에는 그 아이를 찾는 사람도 실종 신고도 없는 상태라 미제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었다.

그런 미제 사건을 수사하던 중 사고를 당한 한네와 실종 상태인 미테르

그들이 무슨 수사를 했는지 어디를 갔었는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막연히 한네의 기억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와중에 어린아이 시신이 발견된 똑같은 장소 즉 돌무덤에서 총에 의해 피살된 여인의 시신이 발견되고 분위기는 급반전된다.

마을에 남은 사람이 백여 명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그들 중 누군가 살인자가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하는 마을 사람들은 모든 의혹의 시선을 평소처럼 마을 한복판에 차지한 난민 수용소로 향한다.

여기에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분노와 원망이 깔려 있는데 마을이 쇠락해가고 사람들이 떠나는 동안 도움의 손길조차 한 번 없었던 정부가 폐쇄된 건물에 자신들의 동의없이 난민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그들을 교육 시키고 먹이고 재우며 많은 복지혜택을 준다는 사실에 억울함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분노와 모든 원망이 쌓여가는 이때 벌어진 살인사건은 일측 즉발의 상황을 불러오지만 이를 해결할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한네를 발견했으며 일기를 주은 제이크

제이크는 엄마를 암으로 잃고 직업도 없이 매일 술을 마시는 아버지를 둔 10대 소년이며 그가 진즉에 일기를 주은 사실을 경찰에게 알릴 수 없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네의 일기를 읽고 그들이 무슨 수사를 해왔는지 용의자는 누구인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앞으로 나설 수 없는 제이크로 인해 쉽게 풀릴 수도 있었던 페테르의 행방과 범인을 알지 못한 채 실마리 없이 하나하나 사건을 되짚어가는 모습은 답답할 만큼 느슨한 와중에 이 마을을 둘러싼 문제와 갈등 문제가 표면에 드러나면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입장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이 마을 출신인 말린과 다른 곳 출신인 안드레아스

경제주체로서의 힘을 잃고 갈수록 낙후되어가는 고향 그리고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티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는 말린의 시선에는 애증이 있다.

열심히 살았지만 더 이상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이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은 채 그대로 침몰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왜 난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복지 혜택을 그것도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누리는지에 대해 부당하다 생각하는 말린과 이와 반대로 안드레아스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그들을 돕는 건 당연할 뿐 아니라 그들이 아닌 누구라도 이런 처지에 처할 수 있었음을 기억하라는 말로 그들의 입장을 변호한다.

세계 각국에서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요즘 가상의 작은 마을 오름 베리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 난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들에게 가는 온갖 혜택에 대해 부당하다 생각하는 사람들 특히 난민 수용소가 있는 곳을 바라보는 차가운 의혹의 시선들은 님비현상과 닮아있다.

자신이 사는 곳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너그러울 수도 인류애를 발휘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사는 곳이라면 입장이 달라지는 사람들

십수 년에 걸친 살인사건의 진실이 하나둘씩 드러나는 과정을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는 애프터 쉬즈 곤은 스피디한 스릴의 맛은 적지만 퍼즐 조각을 짜 맞추는 재미는 있었다.

화려한 살인도 제멋에 겨운 미치광이 살인마가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나오는 인물들의 감정과 갈등 상황에 대한 묘사가 빛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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