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속 남자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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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굣길에 깜짝같이 사라져버린 소녀가 나타났다.

그것도 15년이 지나서 다리 한쪽이 골절되고 벌거벗은 채 도로에서 발견된 사만타

사람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가 시간이 지나면 그녀를 납치해 감금한 범인을 기억해낼 거라 기대하지만 그녀의 기억은 좀체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아 범죄 심리 전문가를 투입한다.

게다가 그녀의 가족 중 엄마는 딸을 잃어버린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병으로 사망했고 아버지 역시 살던 곳을 훌쩍 떠난 후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가족도 없고 기억도 잃어버린 그녀를 대신해 오래전 그녀의 사건을 맡았다가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고 돈만 받고 덮어버린 전력이 있는 사립탐정 브루노가 사건 수사에 뛰어들었다.

그가 사건에 적극적인 이유는 아이의 행방을 몰라 두려움에 떨던 부모의 부탁으로 사건을 어쩔 수 없이 맡았지만 애당초 사만타의 납치를 믿지 않았기에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부채감 때문이기도 하고 시한부 선고를 받은 몸이라 내일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조사를 다시 시작한 그에게 큰 단서가 들어왔다.

사만타를 보고 신고한 사람으로부터 누군가가 그녀를 쫓아왔다는 것과 그게 눈이 하트로 된 토끼 가면을 쓰고 있었다는 다소 황당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브루노는 그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토끼와 관련된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사흘간 사라졌다 구조된 소년의 입에서 토끼라는 단서가 나왔지만 아무도 이를 주시한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충격으로 인한 이상으로 여겨 무시했었다는 걸 밝혀낸 브루노는 그 소년 로빈을 찾아 나선다.

속삭이는 자에서도 그렇고 작가는 인간 내면의 악의를 무시무시할 정도로 끄집어내고 그 밑바닥을 들여다본다.

그래서 잔혹한 살인 장면이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끔찍한 악몽처럼 느껴지게 하는 작가의 ~자 시리즈는 기존의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와는 조금 다르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살의를 단지 속살거리는 말로 끄집어 내게 한 속삭이는 자에서도, 피해자였던 사람이 사건의 가해자가 되도록 드러나지 않고 숨어서 조종하게 만든 이름 없는 자에서도 잔혹한 범죄보다 그 뒤에 숨어 이 모든 걸 조종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 끔찍하고 악몽처럼 느껴졌는데 이번 미로 속 남자 역시 납치해 감금한 소녀에게 어떤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고서도 서서히 정신을 무너뜨려 그 지옥 속에서 영원히 길을 잃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녀 사만타에게는 갇혀 있을 때도 구출되었어도 여전히 미로 속에 혼자 갇혀 있는 거나 마찬가지고 아무도 그녀를 끄집어 낼 수 없는... 아마도 영원히 그 미로 속에서 빠져나올 수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 그래도 영원히...

사람이 같은 사람을 어떻게 그 지경까지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면 무서운 걸 넘어 슬프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가해자 역시 단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이기도 했으며 이런 악의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대물림된다는 게 너무 무섭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가 어린아이들의 호기심과 순수함을 이용해 단박에 낚아채서 망가뜨리고는 그 과정을 즐기는 사람은 도대체 마음속에 어떤 괴물이 살고 있는 걸까

귀여운 토끼로 어린아이들을 유인하는 방법도 그렇지만 하트 눈 모양을 한 토끼 가면을 뒤집어쓴 채 범행을 저지르는 범인의 심리상태 등 부조화 속에서 모든 게 절묘하게 어우러져 더욱 섬뜩함을 자아낸다.

여기에 생각지 못한 의외의 반전까지... 책을 읽는 순간 단숨에 몰입해서 읽게 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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