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쉬즈 곤
카밀라 그레베 지음, 김지선 옮김 / 크로스로드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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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모든 것은 그녀가 사라지고 난 뒤 발생했다.

그녀의 이름은 한네, 그리고 프로 파일러로 명성이 높다.

하지만 그런 한네가 눈 폭풍이 치던 밤 외진 곳에서 신발도 잃어버린 채 추위에 떠는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깊이 들어갈수록 마치 늪에 빠진듯한 양상을 보인다.

무엇보다 한네의 기억이 사라져버린 것이 가장 큰 문제고 두 번째 문제는 그녀의 곁에서 늘 같이 다니며 수사하던 파트너이자 연인인 페테르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왜 그 추위에 낯설고 외진 곳에서 발견되었는지 그 발견 이전에 자신과 파트너는 도대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한네

사라진 페테르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라도 한네의 기억이 절실한데 알고 보니 한네는 알츠하이머 증상을 겪고 있었을 뿐 아니라 본인 역시 그 사실을 인지하고 모든 것을 그녀가 가지고 다니던 갈색 노트에 기록하고 있었음이 밝혀지지만 그 노트 역시 찾을 길이 없다.

그런 그녀를 도와 사건을 수사하는 사람은 말린인데 사실 말린은 이곳 오름 베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지만 마을의 모든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남은 사람은 몇 안 되는 이곳이 싫어 다른 곳에서 경찰 생활을 하다 이번에 맡은 미제 사건 수사 때문에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상황이다.

그녀와 한네가 맡은 미제 사건은 공교롭게도 19년 전 그녀가 그녀의 남자친구와 있다 우연히 발견한 백골화가 진행된 어린아이의 사건으로 당시에는 그 아이를 찾는 사람도 실종 신고도 없는 상태라 미제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었다.

그런 미제 사건을 수사하던 중 사고를 당한 한네와 실종 상태인 미테르

그들이 무슨 수사를 했는지 어디를 갔었는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막연히 한네의 기억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와중에 어린아이 시신이 발견된 똑같은 장소 즉 돌무덤에서 총에 의해 피살된 여인의 시신이 발견되고 분위기는 급반전된다.

마을에 남은 사람이 백여 명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그들 중 누군가 살인자가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하는 마을 사람들은 모든 의혹의 시선을 평소처럼 마을 한복판에 차지한 난민 수용소로 향한다.

여기에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분노와 원망이 깔려 있는데 마을이 쇠락해가고 사람들이 떠나는 동안 도움의 손길조차 한 번 없었던 정부가 폐쇄된 건물에 자신들의 동의없이 난민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그들을 교육 시키고 먹이고 재우며 많은 복지혜택을 준다는 사실에 억울함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분노와 모든 원망이 쌓여가는 이때 벌어진 살인사건은 일측 즉발의 상황을 불러오지만 이를 해결할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한네를 발견했으며 일기를 주은 제이크

제이크는 엄마를 암으로 잃고 직업도 없이 매일 술을 마시는 아버지를 둔 10대 소년이며 그가 진즉에 일기를 주은 사실을 경찰에게 알릴 수 없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네의 일기를 읽고 그들이 무슨 수사를 해왔는지 용의자는 누구인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앞으로 나설 수 없는 제이크로 인해 쉽게 풀릴 수도 있었던 페테르의 행방과 범인을 알지 못한 채 실마리 없이 하나하나 사건을 되짚어가는 모습은 답답할 만큼 느슨한 와중에 이 마을을 둘러싼 문제와 갈등 문제가 표면에 드러나면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입장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이 마을 출신인 말린과 다른 곳 출신인 안드레아스

경제주체로서의 힘을 잃고 갈수록 낙후되어가는 고향 그리고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티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는 말린의 시선에는 애증이 있다.

열심히 살았지만 더 이상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이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은 채 그대로 침몰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왜 난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복지 혜택을 그것도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누리는지에 대해 부당하다 생각하는 말린과 이와 반대로 안드레아스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그들을 돕는 건 당연할 뿐 아니라 그들이 아닌 누구라도 이런 처지에 처할 수 있었음을 기억하라는 말로 그들의 입장을 변호한다.

세계 각국에서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요즘 가상의 작은 마을 오름 베리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 난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들에게 가는 온갖 혜택에 대해 부당하다 생각하는 사람들 특히 난민 수용소가 있는 곳을 바라보는 차가운 의혹의 시선들은 님비현상과 닮아있다.

자신이 사는 곳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너그러울 수도 인류애를 발휘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사는 곳이라면 입장이 달라지는 사람들

십수 년에 걸친 살인사건의 진실이 하나둘씩 드러나는 과정을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는 애프터 쉬즈 곤은 스피디한 스릴의 맛은 적지만 퍼즐 조각을 짜 맞추는 재미는 있었다.

화려한 살인도 제멋에 겨운 미치광이 살인마가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나오는 인물들의 감정과 갈등 상황에 대한 묘사가 빛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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