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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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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 둘이서 작당을 해서 남편을 살해하고는 시체를 감추고 완전범죄를 꿈꾼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는 듯 보였지만 한 사람을 살해하는 일이 그렇게 쉬울까?

당연하게도 남편의 실종을 인정하지 않는 남편의 본가에서 사람을 사서 스스로 조사에 들어가면서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그녀들의 범행이 발각될 처지에 놓인다.

그렇다면 그녀들은 왜 이렇게 위험한 공모를 한 걸까?

우연히 나오미가 그녀의 친구인 가나코의 몸에서 폭력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모든 일은 시작된다.

가나코가 남편과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나오미는 그녀를 설득해 결혼생활을 종지부 찍고자 하나 어느새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자존감이 떨어지고 무기력에 빠진 가나코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할 뿐 아니라 친정 부모에게까지 해를 끼칠 것을 두려워하는 가나코를 보면서 나오미는 친구의 남편을 살해하기로 결정한다. 폭행의 피해 당사자가 아닌 그 친구로부터의 살해 결정이라니...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나오미가 아무리 가나코의 친한 친구라 해도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나오미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명분을 주는데 그녀 역시 어렸을 때부터 집안의 독불장군이자 폭군으로 가족들을 폭력으로 다스린 아버지를 두고 있어 어린 시절 늘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었다는 공통점을 준다.

나오미에게 가나코의 남편을 제거하는 것은 단순히 가나코를 폭력으로부터 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어린 시절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스스로에 대한 일종의 징벌 행위와도 같았고 평생을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면서도 스스로 자립할 능력이 없다는 구차한 핑계로 안주해버린 엄마를 향한 경멸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모든 계획을 짜고 직접 행동을 지시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일견 완벽하게 계획대로 되는 듯하지만 당연하게도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이들의 계획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은행원인 남편이 고객의 돈을 횡령한 후 외국으로 달아난다는 계획은 언뜻 보면 괜찮은듯하지만 고객의 돈을 횡령하려는 은행원이 가족의 계좌로 돈을 보낸다는 것부터 해서 요즘 웬만한 곳에는 다 cctv가 있다는 걸 간과한 두 사람의 행보는 허술함을 넘어 헛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들의 계획에서 가장 쓸만한 것은 남편의 대역을 찾았다는 것과 남편의 시신을 제대로 처리했다는 것 정도뿐...

하지만 이 허술한 계획도 완전범죄가 될 뻔했다는 사실.

남편의 행방불명을 단순 가출로 처리해 관심조차 안 가지는 경찰과 횡령한 돈의 액수가 적은 것만 다행이라 여기고 얼른 덮어버리려는 은행 측에만 맡겼다면 대부분의 성인의 행방불명을 단순 가출로 처리하는 것처럼 이 사건 역시 그저 그런 은행원의 일탈로 덮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은 약간의 미심쩍은 점과 수상한 점을 그냥 넘겨보지 않는다. 그들이 납득할 때까지 사건 종결이란 있을 수 없는 법!

두 사람의 행보도 이런 가족의 힘 앞에 결국 무너져 내린다.

올가미가 조여오듯 서서히 그들을 향해 오는 듯한 긴박감과 스릴을 원한다면 이 책은 기대에 못 미친다.

결정적으로 죽은 남편이 꼭 그렇게 살해당해야만 할 정도일까? 왜 이혼이라는 걸 고려하지않았을까? 하는 부분에서 가나코의 변명이 있지만 그게 그렇게 와닿지않아 설득에 실패하지않았나싶다.

당연하지만 살인의 이유가 공감받지 못해 그녀들의 일탈에 몰입하기 쉽지않았고 그래서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즉 여자라는 이유로 가장 강력한 용의자임에도 가볍게 여기는 경찰이나 공권력의 추적을 따돌리면서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한 장치에서 크게 와닿지도 속시원함도 느낄수 없었다.

그저 두 여자의 일탈을 보고 오쿠다 히데오식의 비틀린 유머를 가볍게 즐기기엔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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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앤 마더
엘리자베스 노어백 지음, 이영아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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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딸을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자가 있다.

이렇게만 보면 그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둘 중 한 사람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 엄마는 유명한 심리 치료사로 부자이며 멋지고 자상한 남편과 그 사이에서 열세 살 난 아들까지 두고 있는 완벽해 보이는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오래전 딸아이를 잃어버린 아픈 과거가 있다.

그래서 자신의 진료실로 들어온 그녀 이사벨을 보자마자 바로 오래전 자신의 잃어버린 딸아이가 틀림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증명할 방법은 물론 없는 상태다.

다른 한 사람의 엄마는 얼마 전 사랑하는 남편을 급작스럽게 떠나보내고 심신이 불안정한 상태에 있지만 누구보다 더 딸을 사랑하고 딸이 자신의 전부라 믿는 다소 극성스러운 엄마이기도 한데 딸아이가 심리치료 상담을 받은 뒤부터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이 사뭇 불안하기만 하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최근 남편을 잃고 집에 틀어박혀 청소도 안 하고 대는 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 세르스틴에 비해 커리어 우먼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스텔라 쪽이 더 인간적으로 신뢰가 가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사벨은 정말 갓난아기 때 잃어버린 스텔라의 딸일까?

여기에 작가는 스텔라에게 일종의 핸디캡을 둔다. 두 엄마의 주장에 무게 추가 비슷해지도록...

스텔라는 아주 어릴 적 출산을 하고 불과 얼마 되지 않은 후 아이를 잃은 건 맞지만 주변 사람들 모두는 그 아이 즉 알리스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무덤까지 있는 상태다.

오직 스텔라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와 비슷한 주장을 불과 몇 년 전에도 했고 그 결과로 정신병원에 잠시나마 입원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스텔라의 신경과민인 걸까?

이렇게도 볼 수 있는 게 이사벨을 만난 후부터 그녀가 보이는 반응과 행동, 즉 이사벨을 따라다니고 몰래 그녀의 집 주변을 맴도는 모습은 도저히 전문가로 보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누가 봐도 정신이 조금 이상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에 비해 세르스틴이 정상적으로 보이는가 하면 그녀 역시 딸아이의 일에 아주 작은 것이라도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할 뿐 아니라 이사벨 주위에 남자가 있는 걸 절대로 용납하지도 두고 보지도 못한다.

그런 엄마의 극성 때문에 아름다운 외모의 이사벨은 스물두 살이 된 지금까지 변변한 이성교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지내왔다.

세르스틴의 무의식 속에는 남자들은 잠재적으로 성폭행범이자 오로지 그것만이 목적인 짐승보다 못한 존재라는 생각이 깊게 박혀있달까?

아무래도 그녀가 말하기 싫어하는 이사벨의 친부와의 관계가 서로 사랑해서가 아닌 강압적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렇게 두 엄마 모두 조금씩 나사가 틀어져 있는 ...정상 범위에서 벗어난 엄마라는 게 진짜 엄마를 찾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 문제는 두 엄마 모두 모성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것이다.

서로에게서 자신의 딸을 뺏길 수 없다 생각하는 여자들의 강한 집착과 극한 대립은 주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안정적이었던 가정마저 흔들리게 하는 위태로움을 보여준다.

중간까지 서로의 마음속에 깃든 불안과 의심을 그리고 있어 다소 느슨하다가 중간 이후부터 의외의 사실들이 밝혀지고 사건이 벌어지면서 몰아치기 시작해 단숨에 몰입감을 높여주는 게 심리 스릴러다웠다.

나름대로 짐작한 반전은 그야말로 내 짐작에 머물렀다는 게 다소 아쉽게 느껴졌을 뿐...

이 책이 데뷔작이라니...다음 작품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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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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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으로 산다는 건 때론 자신의 공을 직장 상사에게 가로채이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아님에도 어쩔 수 없이 덮어쓰는 일 같은 건 억울하지만 참아야 한다는 걸 말한다.

뭐... 우리 회사는 안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 직장이라는 걸 대부분의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억울해도 밥줄이 달려있어서... 대출금을 갚아야 하니까 더러워도 참아야 하고 그러다 보니 늘어나는 건 흰머리와 홧김에 마신 술 때문에 찐 두둑한 뱃살뿐

그래서일까 직장에서 한낱 평범한 월급쟁이가 자신의 상사를 상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걸로 모자라 자신에게 덮어씌운 부당한 일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며 나쁜 놈들에게 크게 한 방 먹인다는 설정을 가진 한자와 나오키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아마도 그런 점들이 이 책과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친 요인이 아닐까 싶다.

거품이 한창일 때 남들이 부러워하는 은행 그것도 산업 중앙은행으로 입사해 앞길이 창창할 것 같았던 한자와와 입사 동기들의 앞날은 예상과 달랐다.

거품의 붕괴는 누구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은행의 파산이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남은 은행끼리 통폐합이라는 구조조정을 거쳐 거창하고 원대했던 꿈은 저 멀리 사라지고 그저 다른 회사원들과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은행원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던 이때 새롭게 부임한 은행장이 자신의 실적을 위해 한 중소기업의 대출을 밀어붙이면서 사달이 난다.

한자와는 처음부터 이 대출 건이 영 찜찜했다.

오래되고 유망한 중소기업이라는 서부 오사카 철강은 공장 내 분위기도 어딘지 어수선하고 사장 히가시다의 태도 역시 은행에서 온 사람들에게 대출 따윈 필요 없다는 시그널을 보내면서도 지점장의 면담 요청에는 쉽게 응하는 등 어딘지 미심쩍게 느껴졌지만 실적에 애타는 지점장은 융자과장인 한자와가 제대로 서류를 살펴볼 틈도 안 주고 급행으로 일을 진행해 덜컥 5억 엔이라는 거금을 내주고 만다.

하지만 불과 6개월도 지나기 전 서부 오사카 철강은 부도를 내고 사장은 어디론가 잠적해버렸는데 아사노 지점장은 마치 이 모든 잘못이 분식회계를 알아보지 못한 한자와의 탓인 것 마냥 몰아붙이는 걸로 모자라 본사 인사부에도 실사를 요청하는 등 한자와에게 책임을 묻기 바쁘다.

입사 동기인 도마리는 본사의 분위기를 파악해 한자와에게 얼른 대출금을 회수할 방법을 찾지 않으면 모든 책임을 한자와가 뒤집어쓰도록 아사노를 비롯해 본사의 몇몇 인사가 몰아가고 있다는 소식에 분노하지만 뚜렷한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중 서부 오사카 철강의 사장 히가시다가 해외에 부동산을 취득했다는 정보를 입수... 조사를 해나가다 그가 은행에서 거금을 대출받고 계획적으로 고의 부도를 낸 것이라는 단서를 잡는다.

이때부터 그와 그를 도와주는 동료들의 치밀한 작전이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마치 평범한 소시민이 첩보원이 된듯한편의 첩보 드라마를 보는듯하다.

미행을 하고 잠복을 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히가시다의 지출 내역을 꼼꼼히 뒤져 결국엔 그가 숨어 있는 곳까지 찾아내는 집념의 한자와

여기서부터 그와 평범한 소시민들의 통쾌한 역습이 시작된다.

한마디로 전세역건!!

무엇보다 통쾌한 건 앞으로도 자신이 여전히 몸담아 있을 곳이라는 걸 감안해서 적당한 선에서 봐주고 넘어가는 것 없이 통렬한 한방을 먹인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점이 특히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요소가 아니었을지...

우리의 직장 내 모습, 이를테면 사내의 정치에 따라 실력과 상관없이 승진과 좌천이 좌우되기도 하고 마치 군대처럼 상명하복 같은 딱딱하고 유연하지 못한 상하관계, 아닌걸 알면서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직장의 분위기 등 많은 점이 닮아있어 특히 공감이 갔다.

한번 물면 놓지 않을 것 같고 때리면 반드시 대갚음해줄 것 같은 한자와 나오키... 어딘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직장생활도 좀 더 활기 넘치고 흥미로울 것 같은데 현실에서도 만나기 힘든 캐릭터라는 점이 아쉽다.

단숨에 읽어 내려간 한자와 나오키... 뒤편 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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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조앤
제니 루니 지음, 허진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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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분명 옳다고 믿었던 일이 지나고 나서 보면 착오였고 잘못된 판단으로 드러나는 일이 많다.

사람의 일이다 보니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가치관도 신념도 시대적 상황도 바뀔 수밖에 없는데 변화된 상황에 따라 옳고 그름 혹은 선택의 잘잘못이 가려지게 된다.

레드 조앤은 그런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든이 넘은 조앤의 집으로 MI5 요원들이 들이닥치고 그녀를 심문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죄는 국가기밀을 적국에 넘긴 것으로 그녀가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 닉조차 그녀가 왜 그렇게 엄청난 짓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조앤은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는 신념하에 저지른 일이라고 고백한다.

이야기는 현재 MI5 요원들 앞에서 심문을 받는 시점과 그녀가 과거 스파이를 했을 당시의 시점으로 번갈아 가며 보여주면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어야만 했는지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집에서 나와 당시의 여성으로선 드물게 대학 그것도 자연과학을 전공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한 조앤은 그곳에서 그녀의 운명을 바꿀 두 사람을 만난다.

바로 그녀의 첫사랑이자 잊을 수 없는 연인 레오와 그의 사촌인 소냐

러시아에서 건너온 두 사람 중 특히 레오는 공산주의 사상에 강렬하게 매료되어있을 뿐 아니라 조국 러시아를 위해서 공산주의 사상이 반드시 뿌리내려야 한다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혀있는 이상주의자였다.

그런 그를 사랑한 조앤에게 그녀가 있는 연구소에서 비밀리에 추진되었던 프로젝트 정보를 넘겨달라는 레오

당연히 그녀가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사랑 때문에 스파이의 길로 접어들었을 거란 예상을 깨고 그녀는 단호히 이를 거부하는 강단을 보인다.

그녀는 레오를 사랑하지만 그가 요구하는 것은 그녀의 신념과 정의에 반할 뿐 아니라 처음에는 그의 사상에 매료되었으나 그녀가 그의 공산주의 사상에 빠져들기에는 너무나 냉철했다는 것이 레오의 폐단이 된다.

그렇다면 연인의 요구마저 거부했던 그녀가 왜 스파이가 된 걸까?

조앤이 러시아에 넘긴 기밀문서는 핵폭탄 제조와 관련된 것으로 그녀의 이런 선택은 결국 국제정세를 뒤흔들 너무나 큰일이었지만 그녀는 단지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우는 힘은 또 다른 파국을 맞게 된다는 걸 알기에 힘의 균형을 위한 결정이라고 한다.

그녀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계기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는데 자신과 연구소가 만든 핵폭탄이 단순히 독일을 견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누군가 죄 없는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자각은 그녀로 하여금 조국을 배반하는 결심을 굳히게 한다.

물론 당시의 그녀는 자신이 조국을 배반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단지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훔친다기 보다 서로 공유한다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실행한 것일 뿐 이후 벌어지는 사태의 진전에 대해서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아들 닉과 MI5 요원들의 입장에선 나라 간 힘의 균형을 위해 실행했다는 그녀의 말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지만 그녀가 스파이를 했을 당시인 1930년대 후반과 2차 대전이 발발하던 때는 이러한 생각이 터무니없다기 보다 그럴 수도 있다는... 아니 독일의 나치즘이 한창일 때는 정치인들조차 러시아를 적국이 아닌 독일에 대항해 싸우는 우방국으로 여겨서 정보의 공유가 불법이 아니었다는 걸 감안하면 조앤에게 약간의 면죄부를 줄 수도 있을듯하다.

하나둘씩 드러나는 정보 앞에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회상에 젖는 조앤은 과연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궁금한 가운데 그녀에게 다가온 운명적 사랑의 결말과 그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제서야 드러나는 진실이 안타까움과 함께 연민을 불러온다.

여자 스파이라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섹시하고 매력적인 팜 파탈이 아니라 사랑 앞에 흔들리고 이념보다 정의를 위해 결단을 내릴 줄 아는 과감성에 누구도 여자인 그녀가 한 짓이라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허를 찌른 평범하면서도 똑똑했던 조앤의 이야기는 실제 KGB를 위해 가장 오랫동안 스파이로 활동했던 스파이 멜리타 노우드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매력적이고 스릴도 있으며 가독성도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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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
루 버니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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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말해주듯이 어느 날 갑자기 이별을 맞이해야 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한 사람은 모두가 살해당한 가운데 혼자서만 그들의 피를 뒤집어 쓴 채 살아남은 생존자였고 또 다른 사람은 10분만 기다리라 말하곤 사라져 영영 나타나지 않는 언니를 둔 실종자의 가족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사립탐정 일을 하며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은 삶을 살며 사랑하는 연인을 둔 와이엇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거절할 수 없는 의뢰가 들어왔는데 문제는 그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고향 오클라호마시티로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간 그를 기다리는 건 사소한 문제였지만 그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그가 기억하는 모든 추억들이 떠올라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이름까지 바꿔가며 했던 결심은 무색하게도 자신도 모르게 추억이 어린 장소를 찾아 헤맨다.

그리고 1986년의 그날 밤... 모두가 강도에 의해 총에 맞아 죽었던 그날 밤의 기억은 다시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들이 자신은 왜 죽이지 않았을까? 하는 누구도 풀어줄 수 없는 문제의 해답을 다시 찾기 시작하는 와이엇은 그 날밤의 기억을 더듬다 새로운 단서를 찾게 된다. 그렇다면 그 단서는 그가 알고자 하는 해답을 알게 해줄까?

또 다른 주인공인 줄리애나 역시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오늘을 그저 견디고만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1986년 박람회가 열린 그날 밤 왜 언니는 어린 자신을 위험한 그곳에 혼자 두고 가버렸을까?

언니 제네비에브는 그날 밤 어디로 간 걸까?

언니가 사라지고 26년이 흘렀지만 줄리애나는 여전히 그날 밤의 기억에 사로잡혀 자신이 뭔가 놓친 것은 없는지 누군가 자신의 언니를 본 사람은 없는지 끝없이 자문하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이렇게 두 사람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자신들에게 충격을 주고 큰 상흔을 남긴 각자의 운명의 밤에서 하루도 더 흐리지 않은 상태로 박제된 채 비록 자신들은 살아남았지만 이미 죽거나 사라져버린 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텅 빈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자 하는 진실을 찾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자신들 스스로도 그만두자 몇 번을 결심해도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안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이 읽는 사람에게는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끊임없이 그날 밤에 사라진 언니의 흔적을 추적하느라 자신의 생활이라곤 하나도 없는 줄리애나와 자신이 사랑했고 우상처럼 여겼던 친구들과 첫사랑이 눈앞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기억한 채 혼자서만 살아남은 와이엇은 늘 사람들과 자신 사이에 벽이 존재함을 느끼며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

마치 그날 밤 자신 역시 그들과 함께 죽은 것처럼...

안타까운 건 그 두 사람도 사실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언니는 더 이상 살아돌아와서 자신에게 윙크하며 말을 걸어 줄 일이 없다는 것도 그리고 그날 밤 와이엇이자 마이클인 자신이 왜 혼자서만 살아남았는지 누구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을...

답을 알면서 답을 찾아 헤매는 두 사람의 모습은 범죄의 피해자나 그 가족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 그들이 느끼는 상실감, 상처, 트라우마 그리고 자신들은 살아있다는 데서 오는 죄책감과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읽는 내내 벗어날 수도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이 끝없이 침잠해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책이 재미없었나 하면 그들을 따라 사건 현장으로 그리고 마침내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주인공들의 비극과는 별개로 상당히 흥미로웠고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기도 하다.

미국의 4대 추리,범죄 문학상을 모두 석권한 작품다웠달까?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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