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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얼굴의 여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5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평점 :
으스스한 괴담과 이에 버금가는 무시무시한 살인사건을 결합시켜 읽으면서 뒤가 당기는 느낌 혹은 누군가가 지켜보는 것 같아 섬찟한 느낌을 주는 표현을 미쓰다 신조만큼 제대로 표현하는 작가가 있을까 싶다.
그래서 그가 쓰는 괴담이나 공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그 신조가 또 다른 시리즈를 내놨다.
괴담과 괴이한 사건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도조 겐야시리즈와 그 괴가 닮은듯하지만 시대적 배경이 전후라는 점 그래서 괴담이 미치는 영향이 많이 옅어진 가운데서 벌어지는 괴이한 사건이라는 점 무엇보다 괴담보다 사건 추리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이 조금 달랐다.
시리즈의 다른 편에선 또 어떤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전후, 사람들의 생활은 피폐해지고 무엇보다 천황이라는 존재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신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이라는 인정으로 인해 오랫동안 믿었던 가치관이 흔들려 모든 것에서 허무해진 마음으로 정처 없이 전국을 떠돌던 하야 타는 대학을 나온 엘리트임에도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게 된다.
그런 그에게 나쁜 손길을 뻗쳤던 사람을 기지로 물리어준 아이자토를 따라 그가 일하는 넨네 갱으로 온 하야타는 조국의 재건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 하나로 힘든 탄광에서의 일을 견뎌내는 데 그런 와중에 갱도가 무너지고 자신을 이끌어준 아이자토가 그 갱도에서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사람들이 갱도에 몰려있던 그 때 탄광 주택 1호동에서 누군가가 죽은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탄광 전체에 음울한 분위기가 감도는데 신조의 장기인 음산하고 괴괴한 분위기가 눈앞에 보이듯이 그려져 더욱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죽은 사람이 하필이면 광부들이 신성시 여기는 신물 즉 여우신을 모시는 사당을 둘러친 금줄로 목을 맨 것인데 더군다나 그가 죽기 직전 그 집으로 검은 얼굴을 한 여우가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아이들의 증언으로 광부들과 그 가족은 모두가 공포와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보란 듯이 연이어 사람들이 같은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되기 시작한다.
죽음을 가깝게 하고 있는 직업에서는 유난히 금기시되는 것들이 많은 데 땅끝 즉 막장으로 내려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곳에서 작은 불빛 하나에 의존해 석탄을 캐내는 광부들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수많은 금기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신성시 여기는 금줄을 이용해 보란 듯이 살인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살인이 일어나기 직전 검은 얼굴의 여우신이 보였다는 점 그리고 죽은 사람 모두 같은 모습의 밀실 상태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이 범인의 대범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괴이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는 것도 충분히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할만 한데 그들이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던 검은 얼굴의 여우가 죽은 사람의 근처에서 발견되었고 죽은 사람 외에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밀실 상태라는 점을 넣어 사건들이 마치 사람이 아닌 그 이외의 존재에 의한 행위 즉 처벌처럼 느껴진다는 점 때문에 설득력 있는 설명이나 사건의 경위를 파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인사건 간의 공통점이나 용의자를 차분하게 찾아서 하나씩 소거해나가는 하야타의 모습은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충분히 탐정이나 형사의 모습과 닮아있다. 새로운 시리즈를 예감케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야타 본인은 전시에 대학을 나온 엘리트이기도 한데 그가 대학에서 배운 교육과 현실에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되는 현실의 부조리함에 의문을 품었다 나중에는 그들과 자신이 같은 민족이라는 부끄러움과 함께 환멸을 느낀... 마치 일제시대 때의 현실에 무기력했던 우리나라의 지식층을 보는 것 같은 인물인데 다른 점이라면 그가 충분히 부끄러움을 아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역시 가해자의 입장에서 하는 문제 제기라는 점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전쟁 당시 지독했던 탄광의 환경에서 일했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조선 사람이며 그들이 원해서 온 것이 아닌 끌려왔거나 속아서 온 사람들 즉 강제징용이었다는 자기반성을 넣고 그들에게 속죄하고 싶어 하는 아이자토를 내세웠지만 그 사람들을 괴롭힌 사람 중 가장 많이 그리고 지독하게 괴롭힌 사람은 일본 사람처럼 이름을 바꾸고 그들을 감독한 조선인이었다는 식이다.
하야토 역시 전쟁 때 자기 민족들이 조선인이나 만주인에게 행하는 모든 불합리한 폭행과 비인간적인 처사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전후 원폭으로 인해 고통받는 동포를 보며 미국에 대해 분노하면서 마치 자신들 역시 전쟁에 무고한 피해자인 것처럼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이중적인 느낌으로 다가와 개운치 않았다.
어쨌든 조금은 감상적인듯한 엘리트 하야토라는 인물을 내세워 괴담의 으스스 함에 함몰되지 않고 냉철하게 그 이면에 깔린 냉혹한 살인사건을 진실을 파헤치고 있는데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은 확실히 도조 겐야 시리즈보다 괴괴함은 줄었고 사건추리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도조 겐야시리즈의 대중화라고 할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