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는다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책을 읽는 이유도 사람마다 다르다.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 택하는 경우도 있고 재미를 위해 택하는 경우도 있고 심심해서 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과 지혜와 경험이 책에는 다 있다. 책에 없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것까지 굳이 알지 못해도 큰 지장은 없다.

 

책 읽기의 행동은 누군가에게 치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삶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유일하게 책은 위안이 되고 아무 말없이 나를 지켜봐주고 나에게 힘이 되어 준 친구였다. 그 존재에 대해 일상에서 책을 읽고 있다 어느 날 여전히 상처받아 힘들어하고 극복하지 못한 시기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된다.

 

상처와 감정의 기복은 도망가면 갈수록 더욱 더 기를 쓰고 쫓아오게 되어 있다.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극복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만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끝까지 도망가려 할 뿐. '혼자 책 읽는 시간'의 저자는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1년 동안 1일 1독을 하기로 결심한다. 특별히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결정은 아니였다.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결정한 행동이였다.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고 친구처럼 지내고 많은 것을 함께 공유한 언니가 암으로 먼저 떠난 후 자신을 놓아버리는 힘든 나날중에 내린 이 결정으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극복을 하게 된다. 책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만나고 치유를 받고 세상을 더 보게 된다.

 

실제로 1년을 작정하고 1일 1독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모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행동이 칭찬받아 마땅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였다. 무엇인가에 얽매여 한다는 의무감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은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쉬운 책만 읽을 수 밖에 없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도, 그 과정을 끝까지 해 낸 사람들이 나오고 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든다.

 

일본에서도 1년 동안 1일 1독에 서평을 매일같이 올려 유명해 진 사람이 있다.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아도 이미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던 사람들인데 그 일로 인해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는 이 책의 저자 니나 상코비치가 있다. 1일 1독은 굳이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그들은 1일 1독하겠다는 다짐과 의무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1일 1독에 거의 근접해서 한다. 하지만, 1일 1독 1서평을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그렇게 한 사람은 보지 못한 듯 하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본인이 마케팅을 할 필요도 없이 저절로 유명해진다. 그러고보니 약간 탐이 난다. 그런 식으로 유명해지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하다. 하지만, 결코 쉽게 판단하고 시작할 만한 이벤트가 아니다.

 

저자에 의하면 하루에 책 한 권을 읽기 위해서는 먼저 300페이지 내외의 책을 선택하고 - 그 이상의 책도 읽기도 하지만 - 한 시간에 본인이 70페이지 정도는 읽으니 4시간정도 책을 읽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추가로 서평까지 써야 하니 이에 대한 시간도 2시간정도는 걸린다고 하니 결코 쉽지 않다. 막상 시작하면 휴일도 있고 명절도 있고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 생겨날 때는 불가항력이 될 수도 있고 감기등에 걸리면 계속 이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결국에 저자는 해 냈다. 일본에서 한 사람도 결국에는 해 냈다. 다른 점은 이 책의 저자는 주로 오전시간을 활용했고 일본 저자는 새벽시간을 활용했다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둘 다 1일 1독 1서평이라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서 성공했다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 해도 막상 주변을 잘 찾아보면 책을 읽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책을 읽는다고 읽은 책 모두를 전부 서평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읽은 책에 대해 서평을 쓰지만 일정 분량이상의 서평을 쓰는 사람은 또 드물다. 그게 힘들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

 

내 서평이 비록 얕고 낮고 완성도 높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제대로 서평쓰는 사람들이 몇 시간에 걸쳐 쓴다면 나는 책을 읽은 후에 앉아서 30분 정도 후~~~~ㄱ하고 쓴다. 그래도 지금까지 서평을 올린 후에는 읽은 모든 책에 대해 서평을 일정 분량 이상으로 올렸다.

 

1일 1독 1서평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서평은 책을 읽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작업이다. 심지어 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다. 책 내용과는 하등 연관도 없는 서평이 나오기도 한다. 책을 모토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서평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요약본이 아닌 서평은 책 저자의 생각이 아닌 서평을 쓴 사람의 사상과 경험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혼자 책 읽는 시간'에 수록(?)된 글들은 블로그에 올린 1일 1독 1서평이 아니라 중간 중간 자신의 일기 비슷하게 쓴 글이 아닐까싶다. 물론, 매 챕터마다 책 목록과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언니를 잃은 감정과 상처에 대한 극복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책과 잘 조화시켜 글을 쓴 것에 대해 저자의 글쓰기 능력에 감탄했다. 책을 읽는 것과 자신의 일상에서 벌어진 상황과 생각등을 그 책과 연결하여 글을 풀어내는 건 쉽지 않은 과정이라 보이는데 아주 아주 매끄럽게 연결이 된다. 다만, 번역이라 제대로 저자의 감정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없다는 점이 좀 아쉬웠다.

 

저자가 1일 1독 1서평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사람들이 책을 보내 줬다고 한다. 이 책을 읽어보라면서. 그러면 감사하기도 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한다는 점에 많이 공감을 한다. 내가 별로 읽고 싶지 않은 책을 선물받을 때의 느낌이나 그 책과 관련되어 서평을 올려야만 읽었다는 증거가 되니 더욱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영어로 올리다보니 보다 많은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책을 다 읽고 저자의 블로그에 가 봤다. 책에서 보면 항상 보라색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바로 그 의자에 저자가 고양이를 안고 아주 두꺼운 책을 펼쳐놓고 정면을 활짝 웃으면서 바라보는 사진을 보니 비록 그 사진이 최대한 설정된 장면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치유된 것으로 보였다. 책을 읽어 치유가 되었다는 점이 더 대단해 보인다.

 

너무나 기쁘고 희열에 찬 1년이라고 하면서도 1일 1독 1서평은 이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마지막에 이야기하는 걸 보면 기쁘면서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보인다. 더구나, 주목을 받으면서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의 응원이 더욱 더 부담이 되었을 것이고.

 

지난 내 1년을 비교하면 나도 유일하게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작업중에 유일한 것이 책을 읽고 올린 서평이다. 그거 이외에는 누군가에게 내가 한 작업을 보여 줄 것이 없다. 아예, 미션으로 1년에 200권에 도전했으면 좀 더 의미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나도 언제가는 도전해 볼까라는 고민아닌 고민을 한다. 쉽게 시작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막상 한다면 시간조절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여러가지 제반사항도 고려해야한다. 이 책의 저자도 휴직을 한 상태라고 한다.

 

하루키가 글을 쓰고자 마음 먹었을 때 사교와 늦잠 자는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달리기까지 포기할 수 없어 선택한 결정이라고 이 책에서 하루키의 달리기책을 읽었다고 나오는데 그처럼 무엇인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포기해야만 한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그만큼 쉽지 않은 1년의 과정을 통해 치유받았던 저자가 사실은 갑자기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워낙 평소에도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았고 여러 책들을 섬렵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일본도 그렇고 이 책의 저자도 그렇고 1일 1독 1서평을 하면서 한 번 읽은 저자의 책은 읽지 않는다는 법칙을 정했다. 그리고보니 나도 하게되면 그래야겠구나.. 역시, 생각할수록 쉽지 않은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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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인문학 - 머니 게임의 시대, 부富의 근원을 되묻는다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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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관련된 책이 의외로 상당히 많다. 그것도 전 지구적으로. 지폐에 대해서도 알아보는 책이 있고 돈의 변천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도 있고 돈에 대해 알아보는 책은 하나같이 돈을 버는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꽤 이상하다. 돈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 정작 돈 버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돈에 대한 책을 출판하거나 읽는 사람들은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까? 돈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고 무엇을 알고 싶은 것일까? 그걸 알게되면 어떤 변화를 얻게 되는 것일까? 돈 벌려고 돈에 대한 책을 읽지 않는 것이라면 무엇때문에 돈에 대한 책을 읽으려고 하는 걸까? 돈을 더 많이 버는데 혹시나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에서 일까?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 그런지 인문학과 관련되어 있는 책이 많다. 이 책처럼 '돈의 인문학'이라는 제목을 갖지 않더라도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결국엔 철학적인 질문으로 넘어가고 돈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우리는 돈으로 인해 어떤 변화를 겪었고 우리를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근본적인 질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나란 누군인가라는 질문처럼 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결국에 나는 누군인가를 묻는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닐까한다. 나는 누구인지를 알기에 현대 사회는 자본에 거의 완전히 굴복하고 말았다. 내가 나를 지키고 싶어도 돈 앞에서는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돈에 대한 질문은 나에 대한 질문이 될 수 있다.

 

'돈의 인문학'은 돈에 대한 다양한 사고를 한다. 다만, 좀 더 돈에 대해서만 집중해서 이야기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돈과 관련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너무 많은 부분을 다룬다. 그야 저자의 마음이지만 사실 그와 같은 책들이 제법 있다. 돈에 대해서 인문학적으로 풀어보자면 좀 더 깊게 인문학적으로 들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책들도 돈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대부분 우리나라보다는 외국 책이 좀 많다. 그렇다고 하면 아무리 지식이 비슷하다고 해도 태어난 나라의 문화와 경험들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고 볼 때 한국적인 돈의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깊게 듣고 싶은 욕심이 이 책을 통해 읽지 않았나 한다.

 

그런 작은 욕심을 제거 한다면 충분히 돈에 대한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돈에 대해 인문학으로 푸는 책들이 거의 한결같이 부정적으로 흐르는 점은 아쉽다. 긍정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오히려 쉽지 않은 분야로 보이지만 그래도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양 쪽의 면을 보여주었으면 했다.

 

돈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풀게 되면 꼭 돈을 넘어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이 우리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와 우리들이 돈을 바라보는 면이 어떠한 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저절로 부정적으로 흘러 가는 듯 보이기도 하다. 내가 써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돈의 인문학이라고 하지만 다른 여타의 책에서도 많인 논의되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그래도, 인문학으로 풀어낸다고 잘난척하지 않고 아는 척 하지 않으면서 설명하는 것은 좋았다. 미사여구와 어려운 용어들로 풀어냈다면 읽으면서 질릴 수 있지만 쉽게 알아 들을 수 있게 하나씩 설명하며 돈에 대한 이야기와 우리들에게 미친 영향들에 알려준다.

 

'돈의 인문학'은 돈에 대해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고 돈없으면 살지 못하고 한 푼의 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노력하고 돈신주의가 만연하고 있지만 정작 돈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고 알아 본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딱히 어렵지 않게 이야기하는 '돈의 인문학'을 통해 돈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이 책과 함께 갖는 것도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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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책방 ㅣ 어느 지하생활자의 행복한 책일기 2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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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먼저 읽게 되었고 순서상으로는 당연하지만 사실 내가 먼저 집어 든 책은 바로 '심야책방'이였다. 한 달에 한 번씩 평일 오전에 열린 도서모임에서는 내가 주최를 했지만 특별히 책을 선정하여 이야기하는 것도 별로고 딱히 형식을 갖기 보다는 서로가 편하게 만나 책이라는 주제만 갖고서는 다양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자리에서 한 명이 바로 '심야책방'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자리에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이 읽었던 책 중에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으면 소개하고 아니면 넘어가는 식으로 모임 거의 막바지에 다다라 이야기하는 시간에 '심야책방'을 소개 받아 기억에 갖고 있었다. 책을 소개하는 것 자체가 거창하지도 않고 거의 2시간동안 열심히 책과는 딱히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다 도서모임이라는 사명감으로 책을 소개하는 것이라 소개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별 부담없이 책에 대해 알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소개한 '심야책방'은 꽤 인상에 남아있었다. 아니면, 책을 소개한 사람이 워낙 재미있게 소개를 했거나.

 

그렇게 소개 받은 것이 지난 겨울이였는데 책에 대한 책을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여러 책을 집어 들 때 이 책을 보고서는 단박에 집어 들었고 바로 옆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이 책의 전작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별 망설임없이 두 권을 거의 연속적으로 읽게 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가 책방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고 있는데 그 중에서 하나가 심야책방이라는 이벤트이다. 밤이 되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책을 읽고 싶은 사람등 여하튼 심야에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야라는 특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가벼운 이벤트를 하면서 밤새 책을 읽는 '심야책방'이라는 걸 하는데 바로 그 '심야책방'을 이 책의 제목으로 정한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잠이 사라진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갈수록 나는 잠이 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많이 자는 듯 하여 나같은 사람은 도저히 참여할 수 없어 보인다. 가끔 여러 이유로 밤을 새기는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밤을 샐 수 있을까하고 스스로 물어볼 때 좀 힘들지 않을까 한다. 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면 잔다는 것을 알고 일어나서 왔다 갔다 하면서 책을 읽는 내 스타일상 힘들어 보인다.

 

이 책은 제목이 '심야책방'이고 그에 대한 간단한 언급과 소개를 한 이후에는 책에 대한 다양한 소개를 하는데 나오는 책들이 거의 대부분 익숙하지 않은 책들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흔히 접할 수 없는 헌책 - 이라기 보다는 고서라는 표현도 괜찮을 듯 - 에 대한 소개와 그 책에 대한 다양한 추억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소개되는 책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책이라 거의 대부분의 책들의 제목과 작가가 생소하지만 그 책과 얽혀있는 다양한 추억과 경험을 소개하고 책이 출판된 역사나 관련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저자에 대한 소개를 헌책방 주인만의 감각으로 소개하는 점이 좋았다.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소개가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책과 관련되어 다양하게 펼쳐서 소개하는 점이 읽으면서 글을 읽기에 편하고 재미있게 쓴다는 인상을 받았다.

 

'심야 책방'에서 소개하는 책에서는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소개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이라 헌책방을 돌아다녀야만 구할 수 있고 어떤 작품을 엄청나게 노력을 해야만 구할 수 있는 책들이라 책이 출판된 계기와 그 후에 책이 출판된 후 출판된 책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 더 흥미롭고 과하게 이야기하자면 어드벤쳐 이야기로도 보인다.

 

인문학이 트랜드라고 하는데 다른 학생도 아니고 국문학과 학생들이 고전문학이라고 불리우는 작품제목이나 작가의 이름도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에는 조금 놀랬다. 물론, 그 이야기에서 나온 책과 작가의 이름을 나도 직접 읽어보지 않은 것도 있고 단지 제목과 저자 이름만 알고 있는 것도 있지만 처음 들어본다고 하는 내용을 읽을 때는 정말로 그런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안다고 남들도 꼭 알고 있을 것이라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지만 그정도는 꽤 유명해서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라 더 놀랐다.

 

책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무소유를 적용하는 편이라 굳이 소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헌책을 굳이 돌아다니면서 찾으려고 노력하고 소장하려 하지 않아 '심야책방'에 소개된 책들을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근에 새롭게 출판된 책같은 것들 중에 몇 몇 작품은 읽을까 말까하고 생각을 했는데 읽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같은 경우에 책을 책 내용으로만 읽고 마는데 저자는 책의 저자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것을 따로 읽어 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단순하게 책 내용보다는 책의 저자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소개한다. 그런 점이 책에 대한 소개를 더욱 풍성하고 알차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리뷰를 쓸 때 그런 점을 굳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참고할 만한 점으로 보인다. 그럴려면 시간도 더 오래걸리고 귀찮은 면이 없지 않아 있겠지만.

 

수 천권을 읽고 그 중에 몇 몇 작품을 골라 쓰는 글이라 확실하게 글의 내용이 더 풍성하고 재미있다. 소개하는 작품은 하나이지만 그와 관련된 사람들과 작품에 대한 소개도 함께 할 수 있어 글을 읽는 재미가 있다. 나처럼 읽는 책에 대해 전부 리뷰를 하다보니 그 부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에거서크리스트의 전집은 꼭 읽어야겠다. 늘, 읽어야지 하면서 넘어간 것이 벌써 몇 년이 되었는데 말이다. 여전히 언제 시작할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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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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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호황인 시절보다는 불황의 시절에 경제학자들에게는 더 바쁜 시절로 보인다. 호황에는 어떠한 이야기든 귀담아 듣지 않는다. 모든 것이 좋으니 경고의 목속리에는 '아,, 예~~~"하고 좋은 소리는 '당연하지'하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잽싸게 뱉어 버려 그러는 것이 아닐까싶기도 하다.

 

호황이든 불황이든 끊임없이 경제학자들은 무슨 말인가를 쉬지않고 한다. 그 중에 하나만 걸려라는 심정도 있는 것이 아닐까싶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경제학자들이라고 해도 자신이 이미 체계화하고 구조적으로 설정된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는 듯 하다. 단정적으로 이 부분은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용어도 참 많다. 통화주의, 신자유주의, 신경제, 노멀경제등 용어를 만드는 것도 이들의 역할인 듯 하다. 단어는 어느 특성을 규정짓고 틀 안에 가둬버린다. 한 번 자신이 어느 단어에 속한 인물이라고 규정되어 버리면 주홍글씨처럼 어떤 이야기를 해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폴 크루그먼은 무척 유명한 경제학자이다. 이상하게도 이제서야 폴 크루그먼의 책을 읽게 되었다. 오히려 신문을 통해 접한 것이 더 많다보니 저절로 책을 보지 않은 측면도 있고 경제관련 책을 읽을 당시에 책이 도서관에 없던 이유도 있다. 여전히 도서관에 폴 크루그먼의 책이 많지 않다. 이유는 모른다. 폴 크루그먼은 딱히 어느 진영에 속한 경제학자라는 틀이라는 범주에 넣기에 애매한 듯 하다. 그렇다고 박쥐는 더더욱 아니고.

 

'불황의 경제학'은 나온지 오래 되어 이 책에 나온 이야기들은 새로울 것은 없다. 더구나, 책에 나온 내용들은 이미 다른 책에서 많이 다룬 내용이다. 그것도 지난 역사를 우리에게 자세하게 하나씩 설명하는 것은 몇 권의 책만 읽어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더구나, 딱히 이 책에는 - 내가 오독하거나 잘 못 읽었는지 몰라도 - 불황을 헤쳐나가기위한 주장이나 권고등이 없다. 지난 역사를 보여주면서 틈틈히 폴 크루그먼이 가볍게 자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정도에 그친다.

 

불황을 헤쳐 나가기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신용과 수요이다. (맞나??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고 하자..) 돈이 없으면 돈을 주자는 것이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돈이 있어야 뭘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선 돈을 주자는 내용이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케인즈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우리는 공급우선의 사회에 살고 있었다. 특히 중국이 전면으로 등장한 이후에는 싼 가격에 물밑듯이 밀려오는 과다공급이 우리를 감싸안았다. 공급에 드디어 한계가 왔다. 부페에 가서 수없이 많은 음식이 있어도 어느 순간부터는 배가 불러 더이상 먹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아무리 제공을 해도 더이상 먹을 수 없는 순간이 온다. 지금 그런 상황이다.

 

공급이 넘치지만 쓸데없는 공금이 넘친다.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수요다. 공급이 먼저냐 수요가 먼저냐는 그때 그때마다 다르다. 지금은 공급이 아니라 수요이다. 수요가 없으니 공급이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수요를 공급(???)해야 한다. 책을 통해서는 딱히 모르겠다. 내가 이해 못했거나 읽지 못했거나.

 

책에서 나온 사례는 쿠폰이다. 아이를 돌 볼수 있는 쿠폰을 발급하고 초기에는 잘 돌아가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마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쿠폰이 남기도 하고 모자라기도 한다. 좋은 제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쿠폰을 잘 활용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나중을 위해 무조건 쿠폰을 모은 것도 중요하지만 일정 기간 내에 쓸 수 있도록 독려도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정의 패널티를 주는 식으로 쿠폰이 계속 돌게 만들어야 한다.

 

아마도 이 이야기가 폴 크루그먼이 하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쿠폰을 모으기만 하게 하지 말고 쓸 수 있게 만들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상당하게 많은 이익을 쟁여놓고 위험을 대비한다는 말로 쿠폰을 쓰지 않는다. 지금 겨울이라 나갈 일이 없으니 아이는 내가 돌보고 오히려 다른 아이들을 돌보면서 여름에 쓰기 위해 쿠폰을 열심히 모으기만 하고 있다. 이러면 누군가는 쿠폰을 쓸 수 없다. 쿠폰을 무한정 찍어 낼 수도 없고.

 

이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한다. 쿠폰이 사람들에게서 돌아야 한다. 쿠폰이 있는 사람에게서 쿠폰이 없는 사람에게 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나중을 위해 쿠폰이 많을 수록 좋겠지만 너무 많이 갖고 있으면 안 좋다는 걸 알리고 패널티를 부과하고 정작 써야 할 때 쓰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쿠폰이 돌지 않는다. 애타게 쿠폰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쿠폰이 필요하다.

 

기나긴 불황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불황과 실제지표의 불황이 많이 다르다. 도대체, 몇 년 째 불활인지 모르겠다. 거의 10년도 넘게 불황이라고 한다. 늘 어렵다고 한다. 예전까지 않다고 하는 이야기를 10년도 넘게 하고 있다. 분명히 금융위기전에는 엄살이 많이 들어간 어렵다였지만 지금은 지표상과 실생활과의 괴리감이 꽤 큰 것으로 보인다.

 

돈은 풀리고 있고 누군가는 그 돈을 갖고 있는데 그 돈이 어느 매트릭스에서 사용되고 있는지 지금 이곳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매트릭스에서는 돈이 증발되었다. 다른 매트릭스에서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돈을 갖고 가서는 가져오지 않는다. 더 많이 가져가려고 하는 노력은 많이 하는데 말이다.

 

이제 전세계적으로 단일화된 경제구역으로 살아가고 있다. 미국에서 벌어진 일은 우리랑 무관하지 않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도 우리랑 무관하지 않다. 예전에는 유럽이 십자군 원정이 있어도 우리와는 상관없었다. 이제 유럽의 어느 은행이 파산하면 그 즉시 우리는 영향을 받는다. 동시대성이라는 화두가 있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감싸고 있다.

 

한편으로는 불황이 길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불황인지 모르겠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가 진행되고 있는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기업은 흥망성쇠를 겪게 되어있고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하필이면 내가 살아가는 나날동안 좀 큰 흥망성쇠가 일어난다는 것인데 살면서 몇 번의 흥망성쇠를 경험하게 되어 있다. 더구나 갈수록 빨라지는 걸 역사를 보면.

 

솔직히 불황이라고 해도 나만 불황이 아니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불황이 아니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만 불황이 아니면 된다는.

 

책을 읽었고 반복되는 역사를 읽으며 불황에 대해 알았다고 해도 오는 불황 막을 수 없고 가는 불황 막을 수없다. 오는 호황 당연히 환영해야 하고 가는 호황 막을 수 없다. 이런 책을 읽는다고 전체서 지극히 작은 나 하나가 특별하고도 대단한 무엇인가를 할 수는 없다.

 

이 책을 읽거나 읽지 않았거나 달라질 것은 없다. 내가 호황, 불황을 지식하건 컨트롤 할 수 있는 인물은 더더욱 아니니. 그럼, 왜 읽었을까? 말 그대로 혹시나이다. 내 삶에서 적용할 수 있나?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하기도 하고. 어디가서 폴 크루그먼의 책을 읽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번역은 매끄럽지 못하게 느껴진다.

 

불황이다. 나도 불황이다. 그렇다면 쿠폰을 모은 사람은 그나마 쿠폰을 갖고 버틴다고 하지만 쿠폰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쿠폰을 주면 다 쓰지는 않아도 쓰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10장을 받으면 1~2장은 만약을 대비할 것이다. 그정도면 훌륭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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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ㅣ 어느 지하생활자의 행복한 책일기 1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잊고 있었던 추억을 되 살려준 책이다. 종로서적에 대한 추억이 나오는 글을 읽으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종로서적에 추억이 갑자기 물 밑듯이 밀려왔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였다. 지금도 가끔 종로서적 앞으로 지나가지만 한 번도 종로서적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이 책의 저자가 어릴 때 종로서적에 가서 책을 읽었던 경험에 대한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예전에 종로서적에 가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되 살아났다.

 

지금이야 꽤 많은 대형서점들이 있었지만 종로서적이 있었을 때만해도 그렇게 큰 서점이 거의 드물었다. 책에도 나온 것처럼 바로 옆에 광화문 교보문고가 있었지만 종로역에서 나가자 마자 들어갈 수 있는 종로서적의 편의성때문에 종로서적을 주로 갔다.

 

대형 서점의 가장 큰 점은 부담없이 들어가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이 책 저 책을 집어 들어 볼 수 있다는 점이였다. 종로서적은 당시에도 드물었고 지금은 더더욱 없는 건물의 모든 층에 책이 있었다는 것이다. 대형 서점에 책이 아무리 가득하게 있어도 종로서적은 층마다 새로운 책이 펼쳐지는 신비한 책의 나라만큼은 못했다. 한 공간에 섹터별로 책을 구분했어도 바로 옆으로 가면 다른 분야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것과 한 층에 같은 분야의 책만 읽다가 바로 한 층만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새롭게 등장하는 책의 세계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더구나, 종로서적은 특이하게도 복층 구조였다. 한 층에 다시 또 복층으로 허리 높이 정도를 더 올라가면 새로운 책들이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억은 무척이나 좋은 추억으로 아직도 남았다. 층마다 새로운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 서점을 가는 재미가 있었다. 아무리 넓은 대형서점이라도 한 공간에 있다보니 대략적으로 한 눈에 공간이 보이지만 종로서적은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한 공간에 보이는 면이 있어도 계단을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다시 또 새로운 책들이 나를 반기고 있다는 경험은 종로서적이외에는 절대로 느끼지 못하는 경험이였다.

 

종로서적이 있었을 때 서울에서 사람을 만나 약속을 하면 거의 대부분 종로서적 앞에서 만나자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당시에 핸드폰은 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무조건 서로가 알수 있는 빌딩에서 약속을 정했는데 종로역에서 올라가자 마자 나오는 종로서적만큼 약속 잡기 편하고 쉬운 곳이 없었다. 지금도 꽤 많은 사람이 그 앞으로 지나다니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가뜩이나 넓지도 않은 통로에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 종로서적 앞에서 약속때문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보니 지나가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 도로를 가득 매웠다.

 

지금처럼 MP3가 발달하지도 못하고 길거리 차트라고 하여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여 길거리에서 팔 때 종로서적 앞은 늘 최신가요 음악이 나오면서 사람들에게 팔고 있었다. 그 곳에서 나오는 음악과 팔리는 음악은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오는 노래와 가수들만 있었다. 노래는 엄청 크게 나오고 사람들은 셀 수 없이 어디선가 무한정 쏟아져 나오고 종로서적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등 도저히 여유있게 사람을 기다릴 수 없느 장소가 바로 종로서적이였다.

 

특히, 연말이 되면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도로를 점령하여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거의 밀치면서 걸어가야만 했다. 종로서적 안에도 층과 층을 올라가거나 내려 갈 때 계단 사이에 크리스마스 카드가 가득있어 한 해를 저절로 정리하는 분위기도 났었다. 특히 눈까지 내리면 종로 서적앞은 낭만으로 가득하였다.

 

이런 종로서적에 대한 추억을 다시 되살려 준 점 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충분했다. 더이상 책에 대한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나에게 준 것이 없어도 족했다. 이미 나에게 많은 것을 충분히 주었기 때문이였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저자가 운영하고 있는 헌책방 이름이다. 은평구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책 읽는 것을 어릴 때부터 좋아하여 지금의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단다. 신기한 것은 어쩜 그렇게 어린 시절에 대해 자세하고도 세밀하게 기억하고 있냐는 점이였다. 나는 어린 시절에 대해 그다지 기억나는 것이 많지 않는데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은 갖가지 어릴 때의 책과 관련되거나 기타등등의 추억을 많이 이 책에서 쏟아내고 있다.

 

리뷰 방식도 꽤 독특하다. 책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고 본인의 경험을 열심히 이야기하다 책과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 방식이 더 세련되게 보이기도 하다. 그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책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책의 분위기와 내용이 이럴 것이라는 유추를 하게 만들어 준다.

 

헌책방임에도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 판매하는 책들은 전부 자신이 직접 읽은 책이라고 한다. 대략 3,000권이라고 하는데 최소한 자신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양심상 팔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 외도 자기 계발서나 돈버는 책같은 종류도 취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자신이 직접 판매는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의 책을 대신 판매할 때는 취급한다고 한다.

 

저자가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 하나 소개한 부분이 이를테면 한 문학작품을 읽게 되면 그 문학작품이 나온 시대에 맞는 역사책을 읽게되면 저절로 그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가고 저자가 그 문학작품을 만들던 당시의 느낌도 알게된다고 설명을 한 부분에서는 참으로 좋은 방법이라 생각이 들었다. 흔히 말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이기는 한데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이 말하는 방법이 적용하기에 좋아 보인다.

 

그외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며 단순하게 책방이 아니라 - 실제로 사진으로 본 책방 분위기는 책방 분위기는 그다지 나지 않는다 - 콘서트도 하고 세미나도 하고 북 모임도 열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특히 다양한 기획을 통해 주변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행사를 열고 있는 점에서는 단순히 책방이라고 할 수 없는 독특한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꿈꾸고 한 번 정도는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점점 책을 팔아 돈을 번다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 어딘지 책을 팔아 돈을 번다는 것이 반발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 다양한 방법을 통해 헌책방을 운영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원칙을 지켜가면서 하는 점이 더더욱 좋아보였다. 아니, 부러웠다.

 

향후에도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계속해서 오래도록 지속적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 여러가지 기획하고 있는 행사들도 잘 되고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단순하게 책방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쓰고 있던데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잘 되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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