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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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속에는 암탉이 꼬끼오~~'하는 노래의 제목은 동물농장이다. 일요일마다 어김없이 친근한 동물들에 알려주는 프로그램 이름이 TV 동물농장이다. 동물들이라고 하면 무서울 수도 있고 친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물농장이라고 하면 가축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섭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는다. 

이러한 친근한 느낌이 드는 동물농장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이다. 소설을 읽을 때 알게 모르게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생각을 해 보거나 '이건 뭘 이야기 한다'라는 느낌을 갖게 될 수 있다. 작가가 명확하게 의도에 대해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읽는 사람이 알아서 유추를 해야 한다. 

'동물 농장'같은 경우에는 조지 오웰이 어떤 의도로 소설을 썼는지 알려 주기도 했지만 본인이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에게 알려줬기 때문에 굳이 숨은 그림 찾기를 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이런 건 있다. 조지 오웰이 동물 농장을 펴 낸 해에 있었던 사건이나 나라중에 떠 오르는 나라가 있었겠지만 지금 이 시대에 동물 농장을 읽고 떠 오르는 사람이나 국가나 단체등이 또 다시 있다는 것이다. 데칼코마니도 아니고 신기하게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단순하게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이래로 계속 반복해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라는 거다. 갈수록 사람들이 똑똑해지기 때문에 그에 맞게 상황을 변화시키고 교묘하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즉시 알아채는 위험이 있다. 문제는 여전히 모르고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거다. 알아채고 외치는 사람들이 이야기는 워낙 소수라 묻혀버려 진실은 저 너머가 되어 버린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에 당구장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그림 중에 하나가 있었다. 벽에 떠 하니 걸려 있는 그림에는 상당히 탐욕스럽게 보이는 돼지와 개들이 당구장에서 당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당구장에서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었는데 혹시나 민초들의 억압이 그런 곳에서 발산되었다고 하면 억측에 불과할까? 하긴, 내가 당구장이라는 보통명사로 표현을 했지만 다양한 당구장을 가 본 적이 없으니 내가 간 당구장이라는 표현으로 정정해야 할 듯 하다.

만약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라고 생각한다면 둘 중에 하나이다. 내가 이상하거나 남이 이상하거나. 나는 느끼는데 남들은 느끼지 못하니 이상한 것이다. 나만 이상한 것을 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느낀다면 그때부터 조금씩 여론이 형성될 것이고 한 두명씩 깨닫게 되면 본격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 하겠지만 몇몇에만 한정된다면 아마도 내가 이상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여전히 진실은 저 너머일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좀 거창한 쓰잘데기 없는 말을 썼는데 그렇다면 동물 농장의 내용이 어떠하기에 이런 생각과 글을 쓰게 된 것일까? 한 번 쓰자면 짧게 하면 어느 동물 농장에 인간의 지배에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켜 사람들을 쫓아냈고 동물들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고 했지만 그중에 몇 몇 동물들이 다시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어딘지 너무 짧다. 보다 길게 쓰자면 인간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제대로 대접하지도 않고 동물들에게 착취만 하고 있어 어느 날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동물농장에서 쫓아내고 동물들이 살아갈 나름대로의 법과 체계를 만들어 평등하게 일하고 먹고 살 수 있게 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몇 몇 동물이 자연스럽게 보다 앞 선 지위를 갖고 여러가지 지시를 내린다. 동물 농장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동물들은 초반에 여러가지를 배우지만 그 중에는 교육속도에 따라 받아 들이는 것이 달라졌고 차츰 차츰 노동의 강도는 예전과 달라 진 것이 없지만 그래도 스스로 원해서 한다는 믿음을 갖고 노동을 했고 점차 예전과는 조금씩 조금씩 무엇인가 달라진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지만 무엇인 변화 된 것인지 알아채기 힘들정도로 서서히 변화되어 그저 시키는 대로 하게 되면서 특별한 의심을 갖기 보다는 보다 열심히 노력하자고 생각한다. 

이렇게 쓰면 여전히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 더 길게 쓰자면 분명히 모두 함께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로 동물 농장을 인간이라는 거대한 적에게서 쟁취한 것이다. 그 후에 모든 동물들이 함께 잘 살기 위해서 그전과는 다른 합의를 정해 지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 각 동물들이 알파벳과 같은 교육을 받게 된다. 농장에서 하는 일이 기존에는 억지로 시켜서 한 일이지만 이제는 다들 스스로 자신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하는 행동으로 변했고 일도 자발적으로 하다보니 더욱 생산성있는 작업을 이뤄냈다. 보다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동물이 하나씩 더 좋은 동물농장으로 가기 위한 다양한 제안을 한다. 그들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지만 점점 갈수록 그들의 제안이 모든 동물들에게 똑같은 잣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일부 동물들에게만 좋은 일이 생기고 많은 동물들에게는 여전히 피부로 느낄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 인간의 지배하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그래도 어떤 식으로 인간을 쫓아내고 이 동물농장을 획득했는지 알고 있는 동물들은 '내가 더 열심히 일 하면 된다'고 믿는다. 이 한 몸 동물 농장을 위해 아낌없이 쓴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 절대로 절대로 누군가에게 이용당한다는 생각을 추후도 해 본 적도 없고 비슷한 이야기라도 들을라치면 그 동물은 동물농장의 적으로 간주된다. 점점, 분명히 예전과 달라진 것은 없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지만 함께 동물농장을 세운 지도자들이 우리를 이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들의 모든 행동과 말은 오로지 우리를 위한 것이라 믿고 따른다. 

동물 농장에 나오는 주요 동물은 돼지, 개, 양, 말, 닭등이 있다. 우리의 불쌍한 돼지는 늘 탐욕스러운 존재로 나온다. 동물농장에서도 어김없이 탐욕스러운 존재로 나온다. 미련하게 보이는 돼지임에도 가장 똑똑한 존재로 나온다. 어떠한 동물보다도 많은 지식을 쌓고 이를 근거로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데 이용한다. 지식 쌓은 자를 조심해야 하나보다. 지식이 있다는 이유로 타인을 지배하고 우월하다는 근거는 없으나 탐욕과 결부되어 지식은 탐욕을 확장하는데 남김없이 이용된다. 인간에게 가장 친근한 개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돼지를 지키는 데 앞장선다. 일반 동물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존재다. 돼지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개들을 조심해야 한다. 돼지는 아무런 반응이 없지만 개들은 동물들이 직접 맞닿는 존재다. 동물들이 무슨 생각을 할라치면 양들은 생각할 틈을 주지않고 일방적으로 떠들어 댄다. 그냥 왁자지껄한 소리가 아니라 돼지에게 유리한 말을 일방적으로 다른 소리가 나오지 못할 정도로 떠들어 댄다. 엄청나게 힘이 좋은 말은 그저 돼지는 우리를 위해 노력하니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지만 돌아오는 것은 없다. 하지만, 이 점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동물농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고 동물농장을 위해 노력하는 돼지는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인물이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은 내 잘못이다라는 믿음으로 살아간다.

동물 농장을 읽으며 왜 이리 기시감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다양한 문학과 작품과 영화와 드라마와 만화에서 봤던 기시감이라 믿는다. 독재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얼마나 다수의 사람들이 더 잘 살고 본인이 욕심을 부리지 않는 지가 관건이다. 돼지가 처음부터 욕심을 갖고 동물농장을 인간에게서 빼앗었는지는 모른다. 갈수록 본인의 욕심을 채워가는데 이용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떤 혁명도 탐욕을 채우기 위한 행동은 없다. 혁명 이후에는 다시 새롭게 보이는 과거로 돌아갈 뿐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법을 만들어도 지키고 행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에게 욕심은 당연한 것이다. 어떤 인간도 욕심이 없는 인간은 없다. 욕심을 탐욕까지 발전시키는 것은 인간에 따라 조금 달라지겠지만.

그러기에 제대로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지금 대다수의 민주주에서 행하는 삼권분리이다. 서로 상대방의 힘보다 내 힘을 더 가지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행해야한다. 독재가 안 좋은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힘만 더 키우려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갈수록 교묘해진다는 것이다. 이제 동물농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모든 사람들이 자각할 수 있는 것은 전 세계에서도 몇 몇 나라에서만 행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나라들은 왜 동물농장처럼 하지 않을까? 동물농장에서 그 힌트가 있다. 교육을 하지 않는다. 아니, 교육을 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교육을 시키고 진실을 덮어버린다. 인간에게 교육은 중요하다. 한번 받은 교육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올바른 가에 대해 의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어릴 때 받은 교육은 뇌리에서 없애기 힘들다. 또한, 누군가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이를 방행하는 나라는 동물농장에서 나오는 나라와 다를 바가 없다. 거짓말이든 아니든 뭐든 이야기는 하게 만들어야 한다. 누구는 알아야만 하고 누구는 몰라도 되는 대단한 정보라는 것이 많아질수록 권력은 다수에게서 소수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돼지는 틀림없이 끝까지 동물농장을 지배했을 것이다. 본인의 의지로 변화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부가 되었든 외부의 세력에 의해서든 스스로는 할 수 없다. 외부의 세력에게 당하는 것은 오히려 내부의 결속만 공고하게 해준다. 돼지가 탐욕스러운 돼지가 되기전에 권력을 분산하는 제도를 만들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나저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은 진정 동물농장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물론, 바로 옆에 있는 나라를 보면 단연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동물농장이 아니라 동물 농장 소설에 나오는 옆 농장에 보다 가깝지 않을까 하기도 한다. 동물농장은 가공의 소설속에 나오는 풍자다. 풍자라는 것은 어딘가 일어나고 있는 일을 묘사했다고 볼 수 있다. 전혀 없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모든 동물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건 정말 힘든 일일까?

동물농장말고도 자유와 행복,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글도 책 '동물 농장'에는 실려 있다. 자신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쓴다고 한다.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알리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한다. 모든 작가는 이기적이라고 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알리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한다. 조지 오웰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동물농장과 1984를 위해 그는 자신이 알리고자 하는 바를 알렸다. 여전히 그가 전한 내용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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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왕 이철호 이야기 -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마" 완전개정증보판
이리나 리 지음, 손화수 옮김 / 지니넷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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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노르웨이에서 라면으로 유명한 이철호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일본처럼 라면 전문 식당을 창업해서 노르웨이 전국으로 프랜차이즈식으로 만들어 유명해 진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도 찾아와 강연을 한 것도 알고는 있었기에 관심을 갖고 책을 잡아 읽게 되었다. 막상 읽어보니 라면을 직접 조리한 것은 아니였다. 우리나라처럼 1회용 라면으로 유명한 것이고 그 라면을 우리나라 업체와 계약을 통해 수입할 때 노르웨이에 맞춰서 크게 성공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노르웨이에서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고 하고 받으실 분이라 본다. 그것도 노르웨이로 식구들이 이민을 간 것도 아니고 어린 나이에 홀로이 낮선 땅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피부색도 다른 곳에서 책에서는 차별을 느껴보지는 못했다고 해도 분명히 자신있게 행동하는 것에 자기검열과도 같은 위축이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혼자 온갖 일을 다하면서도 이겨냈다는 것이 인간승리다.

 


 

'라면왕 이철호 이야기'는 완전개정증보판이라고 하는데 그 전 책 제목이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마'라고 하는 것처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상황에 순응하거나 체념하고 포기하지 않고 늘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했다는 점에서 일반 사람과는 다른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아도 딱히 무엇이라 할 수 있지 않을 듯 하다.


6.25를 어린 나이에 겪고 미군 막사에서 우연히 생활을 하게 되고 거기서 전투 중에 부상당해 생사의 갈림길에서 은인을 만나 - 은인도 평소에 이철호씨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인한 인연덕분에 - 그 당시에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노르웨이로 갔다 거기서 화장실 청소부터 돈을 벌어 생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고 돈이 없어 빵을 먹는다. 


그 빵이라는 것이 제과점에서 돈 주고 산 빵이 아니라 버리기 직전의 빵이나 공원에 줄 비둘기에게 갈 빵을 가서 준다고 하여 집에서 물에 빵을 불려 먹고 버티면서도 늘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했다. 이런 점에서 솔직히 책을 읽으며 책을 읽고 있는 나와 비교하게 되는데 과연 내가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했을 것인가에 대한 자문자답에는 물음표를 달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노력은 했겠지만 그처럼 치열하게 노력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노력을 성인이 된 후에 한 것이 아니라 노르웨이에 갔을 때 청소년시기였으니 얼마나 힘들게 고생했을 지는 저절로 느껴진다. 본격적인 직업을 요리사로 정한 것도 최소한 요리쪽 일을 하면 먹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이야기에는 인간이 노력을 하면 도움이 어디선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리를 택했기 때문에 지금의 라면왕 이철호가 탄생한 것이니 말이다.

 

 

그 후에는 실질적으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직업에서 노력을 했다는 이야기라고 볼 수 도 있는데 우리가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에서도 똑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잘 하고 누구는 더 잘하고의 차이가 똑같은 일을 해도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를 고민하고 고민한 결과로 나온 결과인 것처럼 이철호씨도 똑같은 일을 해도 어떻게 하면 더 잘 하고 잘 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고 연구하고 게으림피지 않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본인 스스로 의지로 이겨낸다.


한국에서 라면을 수입한 후에도 라면의 생김새부터 먹는 것까지 그 어느 하나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친숙하지 않았지만 직접 발로 뛰며 어떠한 상황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으면서 인내하고 세일을 한 결과로 노르웨이에서 라면의 점유율을 90%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 아닐까 한다. 게다다 이철호라는 콘텐츠가 워낙 탄탄하고 브랜드가 유명하니 노르웨이 모든 사람들이 단순히 라면이 아닌 노르웨이라는 국가까지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이철호 개인의 노력과 그에 따른 성공도 인상적이지만 그것이상으로 - 자세한 저간의 사정을 속속들히 모른다는 한계는 있지만 - 노르웨이라는 나라에도 상당한 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그나마 어느정도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나라에서 볼 수 있다고 하지만 40~50년 전부터 피부색도 다른 인간에 대해 특별한 차별을 하지 않고 - 신기해서 아이들이 와서 머리카락을 뽑기도 했다고 하지만 - 똑같은 인간으로 대했다는 사실에서 노르웨이라는 나라의 시스템과 국민성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노르웨이 뿐만 아니라 독일, 스위스등도 책에 언급되니 포함된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본인이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 공허한 말이 되기 일쑤인데 이철호씨는 늘 자신이 실천하며 이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자기 계발서를 몇 권 읽는 것보다 이런 책 한 권을 읽는게 더 도움이 되고 각오를 다지게 만들어 준다. 무엇보다 직접 실천한 인물의 이야기니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이철호씨라면 난 그렇게 못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더더욱 대단한 듯 싶고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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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시골의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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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는 독일 사람이다. 카프카의 글을 읽은 사람이 많은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으나 카프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카프카의 글을 읽은 사람에 비해 몇 배는 최소한 더 많을 것이고 수천배가 될 수도 있다. 카프카는 그렇다면 왜 유명한 것일까? 그 이유를 알려면 그의 글을 읽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도 분명한 방법이다. 카프카의 글을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카프카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카프카에 대해 아는 척 하는 것은 거짓일테니 말이다.

카프카의 변신 같은 것은 여러 문화나 영화에서 차용하거나 변용되어 나오기는 했다. 이제는 워낙 흔한 일이 되어버려 비슷한 상황에서 꼭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표현을 하지는 않더라도 카프카의 변신에서 모태가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있다. 여하튼 그러한 카프카의 글을 읽었다고 카프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또 별개의 문제이다. 이 문제에 있어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카프카의 글을 읽었다고 하여 카프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카프카의 책을 읽었다. 변신을 비롯한 다수의 글을 읽었다. 그렇다면 나는 카프카에 대해 사람들에게 읽었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에 대해 손을 가슴에 얹고 이야기하자면 차마 읽었다는 대답이외에는 할 것이 없다. 누군가 나에게 카프카를 읽어냐고 물어 본 후에 읽었다고 하면 기쁜 마음에 나도 읽었어요하면서 카프카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려 든다면 그 자리에서 나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다. 읽었다고요. 읽기만 했단 말이예요라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또 읽었다. 열심히 읽었다. 읽는다는 점에서는 읽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다. 국어를 알고 한글을 알고 있으니 읽었다. 읽는다는 행위 자체에는 문제 될 것이 없다. 책을 펴고 손으로는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도록 잡으면서 눈으로는 글자를 읽는다. 글자가 내 눈을 통해 들어온다. 눈으로 들어온 글자는 눈과 연결되어 있는 머리로 향한다. 머리에 간 글자는 뇌를 통해 인지가 된다. 글자들이 모여 단어가 되고 단어들이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 의미를 갖게 된다. 여기까지다. 

눈을 통해 들어온 글자는 더이상 뭉쳐지지 않고 글자로 눈으로 들어 오고 머리로 이동하고 뇌로 가서 소멸된다. 뇌를 통해 의미를 갖고 이해가 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그만 소진된다. 어쩌면, 글자가 눈을 통해 들어오고 머리로 돌진하자마자 귀나 코나 입으로 빠져 나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로 뇌에 들어 올 틈도 없었고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 보니 잔상이 남지 않아 잘근 잘근 소화할 틈도 없이 내 몸 속 피에 녹아들어 몸 전체로 퍼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면 다시 돌아 올만도 하건만 피를 타고 몸 속으로 퍼진 글자들은 다시 돌아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몸 곳곳에 퍼진 지방에 껴서 흐르지 못하고 덕지덕지 붙어 있나 보다.

초판이라고 함

그나마 기쁜 점은 어떤 글은 한 페이지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글은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역시 읽었다. 이미 글자 자체로만 돌아다니는 작품은 더이상 나에게 작품이 되어 오지 못하고 그 짧은 문장도 문장이 아닌 글자로만 들어온다. 글자를 이어 붙혀 문장으로 만들고 의미를 소유하려 했으나 이미 막힌 구멍은 더이상 문장을 허락하지 않고 글자만 단편적으로 들어오게 한다. 글자도 들어와서 불행하게도 해체되어 자음과 모음으로 나눠지며 더이상의 의미마저 사라지고 만다.

변신의 주인공처럼 아주 아주 작은 단어에도 상처받고 아무것도 아닌 사물에도 움찔하면서 나에게 들어온 글자는 그대로 결국에는 죽고 말았다. 견고하게 쌓아놓은 내 이성체계는 새로운 카프카의 글자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의 단어는 낯설고 그가 나에게 이야기하는 몸짓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주인공은 이미 말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을 가족들은 알아 들을 수 없었던 것처럼 카프카가 나에게 전달하려고 한 내용은 난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고 이해하고자 했다면 나름대로의 의미와 이해를 구축해서 그 틀에 집어 넣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의미에 대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더구나, 고전이 되고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카프카에 대해 그 어떤 이야기를 하든 이미 누군가는 이야기를 했을 내용일테니 내 이야기는 오독을 했거나 충분한 이해를 하지 못했거나 그 어떤 것으로든 규정해 버릴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의식 흐름에 따라 글이 제멋대로 써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작품이 가장 난해하고 읽어도 완전히 소 귀에 경읽기와 같은 의미로 다가오는데 카프카의 글은 읽을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명확하게 줄거리가 있다. 의미와 의도를 알지 못해도 최소한 줄거리는 남는다. 이걸 근거로 읽었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절대로 카프카를 읽었다는 이야기 이외에는 내가 카프카에 대해 더이상 할 말이 없다. 그저 읽었다.

읽고 읽고 또 읽고 다신 한 번 읽으면 점점 글자에서 조금씩 더 들어오는 것은 있을 것이다. 더 고마운 것은 카프카의 변신같은 경우에 10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이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 일인가? 분량에 질리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줄거리도 머리에는 들어오니 말이다. 그 외에 판결이나 시골의사, 굴등 거의 대부분의 글들이 읽는데는 지장이 없다. 읽으면 된다. 까막눈이 아닌 다음에 읽는데 지장은 없다.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읽었을 때는 전혀 모르고 남는 것도 없는 것 같아도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는 그 힘이 있어서 일수도 있고 거대 담론내지 사람들의 끊임없이 반복적인 되새김질에 동화되어서 일 수도 있다.

그렇게 카프카의 글은 이번에 다가왔다. 읽었고 읽었고 또 읽었고 열심히 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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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빛 - 검은 그림자의 전설 ㅣ 안개 3부작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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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에 시원한 그늘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아주 작은 그림자에도 숨어들어 더위를 피하려 할 정도이다. 아주 추운 겨울에는 반대로 무조건 그늘과 그림자를 피해 밝은 해가 있는 것으로 대피(??)하기 마련이다. 그림자는 우리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올 지 모르지만 그림자 자체는 똑같을 뿐이다. 빛이 물체를 통과하지 못해 생긴 현상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신기하다는 생각도 든다. 빛이라는 것이 통과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림자가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어떠한 빛도 모든 것을 밝혀 줄 수는 없다. 빛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아침, 저녁에는 더 많이 생기고 한 낮에는 덜 생기는 차이가 있을 뿐 빛이 있는 것에는 빛이 통과하지 못해 생긴 그림자가 있다.


이러한 현상때문에 많은 문학작품에서는 그림자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다는 표현처럼 빛과 그림자야 말로 창작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현상이자 사실이다. 또한, 그림자는 또 다른 나를 표현하기도 한다. 내가 가는 그 어느 곳에도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바로 그림자이다. 나라는 인물에 모든것을 탈의하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도 유일하게 끝까지 나를 쫓아오는 게 바로 그림자이다. 내가 죽어도 그림자는 나를 떠나지 않는다.


문학작품에서는 그림자를 나를 떠나기도 하고 나를 잡아 먹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그림자를 잡아먹어 힘을 키우기도 한다. '9월의 빛'은 실제로 빛이 아니라 그림자가 주인공이다. 그림자가 주인공이라는 말은 희극이 아닌 다음에 비극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림자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뜻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사폰의 소설을 지금까지 총 3권을 읽었는데 전부 10대가 주인공이다. 또한, 판타지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 이러한 점이 유럽 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아닐까싶다. 유럽은 신이 인간이고 신이 인간세계에 내려와 다양한 행적을 펼쳐 신과 인간을 동일시한다고 할 수 있는데 사폰의 책은 전부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장난감이다. 이러한 동심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어른들이지만 이 역시 작가의 상상력에서는 엄청난 소재를 제공한다. 장난감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들이고 이들은 악마가 영생을 위해 가장 좋아하는 대상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작품들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9월의 빛'은 그림자와 장남감이 결부되고 비밀에 쌓여 있는 한 인물의 장소에 새롭게 등장한 가족들이 벌이는 이야기다. 거의 대부분 작품들이 그렇듯이 평온한 마을에 다른 가족들이나 사람이 들어와 새로운 사건이 생기고 사실은 평안한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 결국 빛의 반대편인 그림자에는 - 온갖 생각할 수 없는 어두움이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추가로 사랑이야기가 곁들이면 거의 완벽한 작품이 탄생한다.


그렇다고 9월의 빛이 완벽한 작품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략적으로 그런 구성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 읽는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추리 소설로 가느냐, 판타지 요소가 들어 가느냐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9월의 빛'은 제대로 판타지적인 요소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끈다.


계속 사폰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 나와는 그다지 맞지 않는 것 같다. 판타지 요소가 있는 것에는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닌데 내용이 그렇게까지 흥미진지하지는 못하다. 읽다보니 끝까지 우리나라에 나온 모든 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향후에 계속 읽을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나중에 봐야 하겠다.


사폰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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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의 미래 - 환율은 경제의 체온계이다!
홍춘욱 지음 / 에이지21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홍춘욱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인구변화가 부의 지도를 바꾼다'였다. 사대주의가 있어 그런지 이 당시에 해리 덴트의 '버블붐'을 통해 이미 인구구조에 따른 자산시장에 대한 변화에 대한 관심과 책을 읽은 후에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인구구조를 통한 자산시장 변화에 대한 책이 2권이 있어 읽었다. 그러면서 솔직히 둘 다 버블붐을 한국 사례에 맞게 편집한 짜집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나마, 홍춘욱씨의 책이 좀 더 낫다라는 생각정도를 갖고 있었다.


그래도, 홍춘욱씨의 개인 사이트가 있어 즐겨찾기를 하고 가끔 올려주는 글이나 책 리뷰나 댓글등을 읽었고 그 당시에 인구구조에 대한 강의도 한 차례 들은 적이 있었다. 워낙 뒤에서 강의를 들어 홍춘옥씨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책으로 읽었던 내용을 다시 강의를 들으며 '아~~ 저 사람이 듣보잡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가졌다. 아무래도 유명한 기관에 있는 사람으로 프로필이 나오니 권위의 법칙에 의한 조건 반사였을 것이다.


그 후에 우연히 누가 먼저 였는지 모르지만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되고 올리는 글을 보고 댓글도 주고 받게 되면서 나 혼자만 좀 더 가깝게 느껴지게 되었다. 블로그에 경제에 대한 여러 좋은 글을 읽으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없이 단지 홍춘옥씨 블로그 글만 읽어도 되었던 것이 워낙 내 관점에서 볼 때 객관적으로 글을 올렸고 그 글에 달리는 댓글들도 수준이 높아 읽으면서 공짜로 현재 벌어지는 경제현상과 예측에 대해 훔쳐(??)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새롭게 책이 나온 것을 알게 되어 읽어 보았는데 새롭게 나온 '돈 좀 굴려 봅시다' 전에 이미 몇 권의 책을 더 펴 낸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인구 변화가 부의 지도를 바꾼다'에서 곧장 '돈 좀 굴려 봅시다'로 점프를 했는데 이미 그 전에도 지속적으로 책을 펴 내면서 결코 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래에 예측은 상당히 조심스럽지만 미래에 대해 예측하는 대부분의 기관이나 사람들은 자신의 예측이 많은 부분에 맞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내가 볼 때는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예측과 비슷하기만 하면 무조건 맞았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주장하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아닌 것 아닌 것 같은데 할 때가 많다.


'원화의 미래'라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한다. 마지막 단락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 책이 출판된 2009년도를 기점으로 그 전까지의 사례를 들어 설명을 하고 있고 이러한 점을 유념하라고 알려주지만 마지막 단락에 가서 2019년에 대해 설명을 하고 2011~2012년도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예상을 썼다. 연도까지 이야기하며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에 대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홍춘옥씨가 설명한 것과 거의 비슷하게 진행이 되었다. 이미 이 리뷰를 쓰는 시점이 2013년이라 2012년은 지난 시점이고 꽤 멀게 느껴졌던 2019년도 예측 시점에서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기에 어느정도 검증을 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예측을 100% 맞춘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어느 정도 근접하면 된다고 볼 때 - 그리고 보니 그래서 예측하는 사람이나 기관이 맞았다고 주장 하나 보다 - 상당한 수준까지 근접했다고 보인다.


'원화의 미래'를 읽으면서 계속해서 기시감이 든다. 그 이유는 바로 작년에 읽었던 '돈 좀 벌어 봅시다'와 홍춘욱씨 블로그를 통해 읽었던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홍춘욱씨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답답하다는 생각을 가졌겠다는 것이다. 이미 2009년부터 환율에 따른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 열심히 설파를 했는데 지금도 똑같은 이야기를 처음하는 것처럼 설명을 하려니 얼마나 답답할까하는 점이다. 아니, 내가 언제부터 이 이야기를 했는데 왜 아직까지도 모르는거야?하면서 말이다.


'원화의 미래'는 '돈 좀 굴려 봅시다'의 전초적인 성격이 강하고 좀 투박하다는 차이가 있다. 이미 '돈 좀 굴려 봅시다'에 나온 모든 이야기가 '원화의 미래'에 다 나와 있다는 것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어떤 부분은 조금 덜 다루고 아직 용어가 정립되지 않아 개념상으로만 이야기한 부분도 있지만 둘은 데칼코마니처럼 거의 비슷했다.


책찍 효과라는 용어가 2009년에는 아직까지 정립되지 않았는지 개념만 설명하는 것이며 달러/원에 따른 우리나라 자산 시장의 변화와 세게 경제에 변화에 따른 우리나라 경제의 추종에 대해 설명하는 점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시종일관 흔들림없이 각개격파 하듯이 똑같은 논조로 설명하고 있다.


환율과 관련되어 읽은 책이 아마도 10권은 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락 가락하는 이유는 환율 관련 책을 몰아서 읽어 머리속에 넣은 것이 아니라 뜨문 뜨문 읽어 그렇지만 차분히 집중해서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고 위안을 해도 신문에서 읽자마자 다음 상황이 번뜻 떠오르지 않아 여전히 힘들다. 해서, 이번에 '원화의 미래'를 읽을 때는 아예 책에서 달러/원 상승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그 다음 상황에 대해 먼저 생각하고 생각한대로 진행되는 가에 대해 확인하며 읽었다. 그 덕분에 많이 개선되었지만 이게 언제까지 유효할 지 모르겠다. 여전히 다시 도루묵이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든다.


그래도, '원화의 미래'를 읽으며 달러/원의 상승과 하락에 따른 우리나라 경제와 자산 시장의 변화에 대해 예측까지는 아니라도 유추는 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일반적인 신문이나 언론에서 나온 고정관념이 아니라 데이터로 나오는 실제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데이터라는 것은 제공하는 사람의 편리에 따라 얼마든지 가공과 왜곡이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지만.


'원화의 미래'를 꼭 읽을 필요는 없다. '돈 좀 굴려 봅시다'를 통해 원화의 미래에서 했던 모든 이야기를 다시 했을 뿐만 아니라 더 세련되고 보기 좋게 다양한 그림과 표를 보여 줄 뿐 아니라 원화의 미래에서는 개념만 설명한 부분도 친절하게 머리속에 확 들어오게 드디어 제대로 된 용어를 통해 설명하기 때문에 말이다. 아마도, '원화의 미래'를 새로운 출판사와 함께 더 공을 들여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책이 '돈 좀 굴려 봅시다'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아쉬운 점은 홍춘욱씨가 회사를 옮기며 예전처럼 경제관련된 글을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몰래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경제현상에 대해 궁금한 점을 해소해 줬고 누구의 말이 맞는지에 대해 혼란스러울 때 읽으면서 도움이 참 많이 되었는데 말이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내가 한 사람의 관점에 함몰된 것일 수 있지만 아무리 객관적으로 상황을 본다고 해도 자신이 생각하는 중심이되는 이론과 생각에 좀 더 치중되면서 다른 이야기를 들을 때 보다 도움이 된다고 본다.


'원화의 미래'에서 답은 그렇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수출위주의 국가로 우리나라의 상황보다는 세계 경제 상황이 더 중요하고 그 중에서도 아직까지는 미국의 사례가 중요하고 향후에는 중국의 사례로 옮겨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와 자산시장을 제대로 보려면 달러/원의 추이와 재고순환을 지켜본다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아~~ 채찍효과를 또한 잊으면 안된다.


홍춘욱씨의 블로그 주소 http://blog.naver.com/hong8706




홍춘욱씨와 관련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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