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 : 독한 혀들의 전쟁
JTBC 썰전 제작팀 지음 / 사막여우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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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밤 11시면 어김없이 보던 프로가 있었으니 바로 '해피투게더'였다. 신동엽과 이효리가 쟁반노래방을 하던 시절부터 시청을 했으니 무려 10년은 되었다고 보는데 이러한 해피투게더를 보던 내가 어느날부터 다른 프로를 시청하게 되었다. 그동안 여타의 프로들이 그 시간대에 유혹을 했을지라도 묵묵하게 시청했는데 어느날 우연히 썰전을 보게 되었다.

 

프로와 프로를 하기전에 광고를 틀어줄 때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거의 시작하고 1~2회가 지나고 난 후에 알게된 것같은데 김구라와 이미지 별로인 강용석과 잘 모르는 이철희라는 사람이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잠시, 채널을 돌리지 않고 시청하고 있으려니 재미있었다.

 

정치라는 것이 그들이 떠드는 것은 좀 짜증이 날지 몰라도 막후에 벌어지는 이전투구나 권력투쟁등은 사실 삼국지나 수호지같은 소설을 읽는 것과 별차이가 없다. 현재에 벌어지고 있는 권력을 향한 -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하는 - 이면의 이야기들과 현재 갸들이 하는 행동과 말에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면보다 더 중요한 그 이면의 숨은 의미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썰전'은 그렇게 채널을 돌리지 못하고 계속 시청하게 만들었다.

 

조금만 더 보다가 해피투게더를 봐야지 하면서 이 주제만 끝나고 돌려야지 하다가 더 보게 되고 이번 이야기만 끝나면 돌려야지 하다가보면 어느순간 끝까지 다 시청하게 된 것이다. 신문이나 TV를 통해 보게 되는 정치, 사회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에 대해 쉽게 설명을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기사를 통해 심층깊은 이야기를 들을수도 있겠지만 심층깊을지는 몰라도 좀 쓰잘데기없는 내용까지 다 읽어야 하는 귀찮은 점도 있고 일방적인 논조의 내용을 읽는 것도 어쩔때는 고역일 수도 있다. 다른 면도 함께 읽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러기 위해서 다른 논조의 신문을 또 다시 일부러 찾아 읽는 것도 굳이 그러해야 할 필요성까지 느끼면서 읽을 생각까지는 없기때문에.

 

그런 점에서 썰전은 이러한 부분에 있어 시청자들의 가려운 면을 아주 잘 긁어주는 프로라고 할 수 있다. 매주마다 그 주에 가장 핫한 정치, 사회 사건에 대해서 알려준다는 점 뿐만 아니라 나름 중간적인 관점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특정 세력을 지지하는 사람이 나와 토론을 할 때 가장 짜증나는 것은 자신의 주장만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만 옳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썰전에서 가장 절묘하게 기가막힌것은 바로 캐스팅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진보를 대변하는 이철희와 굳이 보수를 대변하는 강용석이 나와 각자 자신의 논리와 진영의 이야기를 해 주고 적당히 선을 타면서 중심을 잡아주는 김구라의 캐미가 아주 좋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 각자 자신이 속해있는 곳에 따라 달리 보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여타의 토론 프로그램과 달리 매 주마다 만난다는 특성도 있겠지만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자신의 진영에 대해 옹호도 하고 지지도 하고 열심히 감싸주기도 하지만 아니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완곡히 표현을 하기는 해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점이 이 프로를 계속 보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다른 점을 보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저렇게 생각하는구나라는 점도 알려준다. 한마디로 한쪽으로 갈수록 함몰될 수 있는 편향성을 다소 덜어주는 역할을 훌륭히 한다고 보인다.

 

매 회 단 한회도 빼놓지 시청을 하게 되었고 지금도 전통의 해피투게더를 물리치고 보고 있다. 해피투게더는 이제 일요일 재방송을 보고 있으니 썰전이 그만큼 더 재미있다는 뜻이 된다. 재미와 웃음과 시사정보에 정치의 이면까지 알려주는 이러한 썰전이 책으로 나온 것이다. 책에서는 딱히 새로운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미, 프로에서 다룬 내용들을 글로 옮겼을 뿐이다. 그래도, 읽으면서 새롭다는 느낌이 새록새록 났다. 이미, 시청하면서 웃으면서 보기도하고 재미있게 보기도 했는데 확실히 글로 인쇄된 것을 읽는 매력이 달리 다가왔다. 활자를 읽으니 귀로 들을 때는 스쳐 지나가고 미처 유념해서 보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다시 눈으로 읽으며 머리로 들어오면서 되새김질을 하기도 하지만 반복학습(??)에 따른 효과도 있어 보였다.

 

단순하게 각 진영의 사람이 나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프로가 교양프로가 아닌 예능프로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 말인즉슨 쉽게 풀어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어렵고 난해한 것도 일반 시청자들이 시청하면서 알아듣기 편하게 번역해서 알려줘야 하는데 이 부분에 있어 썰전의 제작진들의 노고가 아닐까하는데 그런 노고가 이 책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하는 듯 하다.

 

혹시, 썰전을 다 보지 못한 사람이나, 썰전을 알고는 있지만 미처 보지 못한 사람, 썰전을 봤지만 다시 그때 기억을 되살리고 싶은 사람, 예전에 했던 이야기지만 현재와 얼마나 다른지 비교하고 싶은 사람등등이 읽을만한 책이다. 지난 일이라고 치부할수도 있지만 얼마되지도 않은 일들이고 지금도 진행형인것들도 있어 읽으면서 비교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는 책이 바로 '썰전'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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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꼴레르 : 세상을 지배할 '지식인'의 새 이름
유영만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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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꼴레르'는 대략적으로 손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생전 처음으로 이 책을 통해 접한 단어이고 용어이고 개념이라 브리꼴레르라는 단어부터 언급하자면 그렇다. 손작업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단순히 머리로만 해결한다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실천적으로 실행을 해야만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유영만의 책은 딱 한 권을 읽었지만 그 전에 블로그를 통해 그의 글을 읽었기에 어느 정도 친근감은 있었고 이번 책에 대한 자신의 소감등을 블로그에 올린 것을 읽었을 때 이 책인 '브리꼴레르'를 통해 자신은 완전히 새롭게 출발한다는 언급도 있었고 이 책을 쓰기위해 지금까지 노력했다는 식의 언급도 있어 저자 자신에게는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는 책으로써의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이 전에 읽었던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를 읽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책이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것과 왜 이리 말을 어렵게 할까라는 점이였다. 저자 자신이 책에서 언급하기를 논문은 관련 종사들도 어렵다고 느낄 정도로 어렵게 쓰지만 일반인들을 위한 책은 쉽게 쓴다고 했는데 어렵게 썼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교수들의 글은 다소 어렵게 쓰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자신들의 지식과 용어등을 일반인인 내가 읽기에는 친숙하지 못하고 익숙하지 않은 단어와 개념으로 인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할 때 그렇게 어렵게 풀어내지 않고 쉽게 풀어낼 수도 있는데 스스로 그 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브리꼴레르'는 저자 자신이 새롭게 제시하는 개념이고 주창하는 단어이다보니 다소 어려운 용어와 개념을 제시하기 위한 증거와 인용을 하다보니 저절로 글을 다소 풀어내지 못하고 어렵게 써진것이 아닐까한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겠고 개념도 들어 오기는 하는데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 것을 알려주는 걸 완전히 체득하고 물아일체까지 되지 못한 상황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싶기도 했다.

 

글쓰기 스타일은 약간은 언어유희적인 표현을 통해 기본적인 단어, 글자 하나 하나를 해체해서 다시 새롭게 정립해서 알려주는 편인 저자라 똑같은 단어와 용어를 갖고도 새롭게 해석하고 접근하는 방법이 재미있기도 하고 기존과는 다른 것을 알려주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작품은 그런 면에 있어서도 이상하게 개인적으로는 붕..붕.. 떠다닌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는 사람의 현재상황과 감정상태등이 책을 읽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데 내가 그런 상태라 그런것이 아닐까싶기도 하다.

 

유영만이라는 저자가 지식인이고 교수로써 학생들을 가르치고 여러 곳에 기고도 하고 강의와 강연도 하는 사람으로써 지식인에 대한 고민의 흔적의 결과로 새롭게 도출된 개념이 '브리꼴레르'이다. 예전 지식인들은 자신의 분야만 잘 파고 들어가고 깊게 파고 들어가 업적을 세우는 것만으로 칭송을 받고 지식인으로 대접을 받았다.

 

이제 그런 지식인은 필요없고 별로 쓸모가 없다. 박사라는 학위를 딴 사람은 그 분야에서 전문가일지 몰라도 다른 분야는 젬병이라는 농담처럼 우리가 지식인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이 광고에도 나오는 융합이라는 점에서는 완전히 백치나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분야를 더 세분화하고 세분화해서 파고 들어가다보니 전체를 볼지 모르고 특정한 분야에서만 전문가로 인정을 받아 정작 넓게 보는 시야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발달하고 고도로 복잡해져 한가지 분야만 파고들어가서는 전문가라는 호칭을 받기도 힘들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도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는 전문가로써의 인정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외의 분야에서도 넓게 지식을 갖춰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맞는 것이 산업혁명이 나오면서 분업화가 이뤄지고 자신의 역할만 잘 하면 되는 시대는 이제 지났고 많은 부분을 조합하고 융합하고 자신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것을 참고하여 차용할 때 창의력이라고 칭송을 받는 시대가 된 것을 보면 말이다. 인문학이라는 트렌드아닌 트렌드가 사람들에게 유행하고 배워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자신의 것만 알아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필연적인 변화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한 책이라기보다는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 할 수도 있다. 이미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이 자신의 특정하고 특수한 분야에서만 전문가로 지식인으로 인정받는 것에 안주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지식전문가들에게 보내는 경고장 말이다. 책이 잘 안 읽혔다고 했지만 사실 그만큼 내 지식수준이 딸리고 책에서 언급되는 개념과 용어가 익숙하지 못한 내 자신의 무능을 탓해야 한다. 

 

그런데, 지식이라는 것이 원래 한 분야를 파고들어가다보면 저절로 다른 분야까지 궁금해지고 자연스럽게 알아보면서 좁은 자신만의 분야 지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넓어지는 것이 아닐까한다. 비록, 특정분야의 전문가도 지식인도 아니지만 나같은 경우에 저절로 그렇게 관심분야가 넓어지고 연결되어 읽어보게 되었는데 말이다. 어떤 분야도 지식전문가로의 인정도 인증도 받지 못한 일개 개인일뿐이지만.

 

'브리꼴레르'는 실천하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분야만 집요하게 파고들어 공부해서 일가를 이루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점점 사람들이나 사회는 그런 지식인을 원하지 않고 자신의 전문분야를 기초로 다양한 접목을 통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지식인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분야는 아니지만 타 분야는 처음부터 밑바닥에서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는 지식전문가를 요청하는 듯 하다. 

 

그러기 위해 단순히 가르치는 전문가가 아니라 함께 하는 전문가가 대접을 받고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갈급하는 가 보다. 그런 지식전문가들이 없으니 말이다. 자신이 아는 것을 가르치려고만 하고 모르는 것을 함께 공부해서 이끌어 갈 생각이 없고 대접만 받으려고 하니 말이다. 그렇게 해도 본인이 전문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텐데 말이다. 음~~ 그런 전문가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모범적으로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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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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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폰 괴테를 우리는 괴테라는 부르기 편한 이름으로 호칭하고 있는데 괴테의 대표작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등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베르테르 효과를 알고 있는 것처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어 볼만큼 분량이 짧지만 '파우스트'는 워낙 유명한만큼 실제로 책을 읽은 사람들은 많지 않고 그저 '파우스트'라는 제목만 알고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았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머리속이 약간 뒤죽박죽이라 순간 '유리알 유희'가 떠오르면서 분명히 다른 작가의 작품이라 기억되는데 떠오르지 않아 찾아보니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였다. 둘 다 독일작가라 혼동을 했던 듯 하다. 괴테는 가장 유명한 두 작품 이외에도 꽤 유명한 명언들을 많이 남겼고 살았던 당시의 평균수명에 비하면 긴 82세까지 생존을 했다.

 

단순히 괴테의 작품으로만 알고 있던 '파우스트'는 사실 순수한 창작품이 아니다. 당시 독일지역에서 전설과 민담처럼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를 괴테가 새롭게 구성하고 창작한 작품이다. 이런면에서는 세익스피어와 비슷하다. 세익스피어의 많은 작품들이 현재 불멸의 작품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모든 창작품의 영감을 주고 있지만 세익스피어도 내려오던 이야기를 했던 것과 같다.

 

위대한 작가들이 위대한 작품을 세상에 내 놓게 되었는데 둘 다 그런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볼 때면 창작하는 사람들이 역시나 꼭 새로운 것을 하려 하기보다는 기존에 있던것을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범위에서 잘 버무리고 다듬고 새롭게 선 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듯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자의 역량이 무척 중요한 요소이기는 해도 말이다.

더구나 파우스트를 읽다보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너무 친숙하고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세익스피어의 작품과 같이 소설형식이 아니라 희곡대본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많이 사라졌다고 느끼는데 특유의 번역체라는 것이 있다. 아무래도 외국어를 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특유의 미묘한 맛을 살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한데 예전에는 그런 점이 더욱 도드라져서 분명히 국어임에도 불구하고 국어처럼 읽히지 않는 번역이 많았다.

 

그나마, 소설은 읽어 나가면 되기 때문에 직독직해식의 번역이라도 큰 무리가 없는데 '파우스트'와 같은 희곡 작품들은 우리나라 말로 제대로 번역되지 않다보니 작품이 공연될 때보면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으로 대사가 나온다는 느낌을 갖게 될 때가 많은데 워낙 거장의 작품인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이 그런데 파우스트에서도 그런 점을 느끼게 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17~18세기 작품을 읽는다거나 하면 지금 쓰는 말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도 여전히 판소리를 듣게 되면 우리가 현재 쓰는 말과는 달라 분명히 한국말이면서도 이질적으로 들리는 것과 같다. 그만큼 예전 작품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올 수 밖에 없는 요소이기는 해도 너무 우리 실생활과 동 떨어진 번역체의 대사가 갖는 이질적인 느낌은 '파우스트'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파우스트가 소설형식이 아니라 희곡형식으로 되어 있어 세부적인 묘사가 생략되다보니 읽는 사람입장에서 다소 여유를 갖고 읽게 되지만 그만큼 생략되는 세부적인 묘사는 읽는 사람이 알아서 채워넣어야 한다. 공연으로 올려졌다면 연출자의 몫이고 보이는 것을 쫓아가며 이해해야하겠지만 글로 읽는 사람들로써는 오롯이 순수한 본인의 몫일 뿐이다.

파우스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드라마틱하게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어떤 사건들이 일어 날 것이라 지레짐작을 했던 듯 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읽고 느낀 감정이나 평론가들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설명과 평론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파우스트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순수하게 내가 읽으면서 든 생각을 적으려고 하는데 먼저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이 맞는가 하는 점에서 약간 의아한 측면이 있는데 그건 최근의 작품들이 워낙 드라마틱하게 악마와 계약을 통해 무엇인가 얻으려고 하는 점을 묘사하는데 반해 파우스트는 너무 밋밋하다. '이게 끝??'이라는 심정이 들만큼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리스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이뤄진다.

거창한 점은 전혀 없고 '해 볼래?'라고 물어보니 '한번 해 볼까?'하는 식으로 이야기되는데 파우스트가 딱히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악마로 대변되는 메피스토펠리스와 계약을 했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악마와 계약을 할때면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얻기 위해 하지만 무엇인가 잃는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한다는 파우스트 이후의 작품들에 비하면 말이다.

인생에 있어 반드시 무엇인가를 강렬히 원해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려야하는 상황도 아니였지만 파우스트의 서두를 보고 파우스트의 이야기를 볼 때면 파우스트는 엄청난 지식인으로 스스로 뛰어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 악마가 유혹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인간인 네가 그렇게 잘 났다는 말인가?하면서 말이다.

특별히 원하는 것이 없는 파우스트가 처음으로 생긴 감정은 사랑이다. (특별히 원하는 것은 없었는지 몰라도 불만은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랑!사랑!사랑! 인류의 가장 큰 골치꺼리이자 행복이자 인생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감정이 생긴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이제 원하는 것이 생겼다는 의미가 된다.

그다지 원하는 것이 없던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갑자기 원하고 바라고 욕심이 생긴다. 내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 해주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어버린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런 이유로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사랑은 영원히 인간에게 불멸로 남는 주제이고 소재이다. 닳아도 닳지 않는 무궁무진한 무엇인가이다.

사랑이 영원하고 무엇인가 의미로 존재하려면 대부분 작품에서 사랑은 짧아야 한다. 짧은 사랑의 경험과 추억은 인간을 변화시킨다. 그런 인간은 어떤 쪽으로 튀어버릴지 모른다. 본인도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스스로도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인간 스스로 다스릴 수 없는 감정은 인간을 파멸시키기도 하지만 인간을 성장 또는 발전시키고 넓게 나가서 인류를 퇴보시키기도 하고 발전시키기도 하는 위대한 비물질(??)이다.

파우스트 1부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리스와 계약을 하고 파우스트가 사랑을 하게 되고 불행에 빠지게 되는 여정이다. 파우스트는 무척이나 이성적이고 똑똑한 인물이지만 감정에 빠지게 된다. 감정은 이성을 지배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이게 악마의 유혹인가? 단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사랑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상황은 악마의 괴략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작품에서.

이제 겨우 도입부를 읽었다고 할 수 있어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2부까지 읽어야 정확하게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아직까지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영혼을 팔았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나 느낌은 들지 않는 것은 그만큼 현대가 워낙 당시보다 독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어지간한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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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브레스트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3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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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스릴러 장르를 이야기할만큼 관련분야의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아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미국쪽보다는 일본이 일본보다는 북유럽쪽 장르소설이 더 우리에게 맞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것도 아니면, 나한테 말이다. 물론, 내가 이쪽 장르를 셜록홈즈부터 아주 어렸을 때 읽기는 했지만 최근들어 본격적으로 보게 된 것은 미국 작가의 책이였다.

 

'시인'이라는 소설 덕분에 관심만 갖고 - 아가사크리스트 전집을 읽을 계획을 갖고 있는것처럼 - 보지 않고 있다가 보게 된 후에 가장 재미있는 책은 역시나 밀레니엄이였고 그 후로도 뜨문 뜨문 미국, 유럽, 일본의 추리 스릴러 장르를 읽어 보았는데 밀레니엄의 성공이후로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북유럽의 소설들이 소개되었고 그 작품들이 거의 대부분 일정 수준 이상의 인기를 끌게 되어 지금은 어느정도 인지도있는 작가들은 거의 대부분 소개된 듯 하다.

 

요 네스뵈같은 경우는 우연치도 않게 '헤드헌트'를 읽게 되고 그 참신함에 푹 빠졌다. 하지만, 요 네스뵈의 인기작들은 '헤드헌트'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유일하게 그 작품만이 재기발랄한 작품이였던 것이다. 요네스뵈의 대표작은 해리 홀레 시리즈였다. 헤드헌트를 생각하고 읽은 책은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어 처음에는 다소 실망했다.

 

전해 재기발랄하지도 않고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내용이 전개되어 내가 원했던 뉘앙스와 전개와 분위기가 아니다보니 내용 자체가 재미없는 것은 아닌데 좀 실망한 상태로 읽었다. 그와는 별개로 요 네스뵈의 인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생겨 그의 작품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작품이 소개될 때면 아집이라고 하면 아집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왕이면 시리즈물의 처음부터 읽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꼭 그렇게 읽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하고 쫓아가는데 하등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나로써는 시간의 흐름에 쫓아가면서 읽을 수 있는 장점과 시리즈에 나오는 캐릭터와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도 들어 선호하는 편이지만 번역은 그와 상관없이 출판된다.

 

그렇게 이번에는 요 네스뵈의 '레드브레스트'를 읽게 되었다. 참으로 대단한 점은 거의 1년에 한 권을 출판하는 듯 한데 매 작품마다 엄청나게 두꺼운 두께를 자랑하는 내용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번역에 따른 글 길이가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페이지로 매번 600페이는 가볍게 넘게 800페이지도 가는 것을 보면 필력이 장난이 아닐까싶다.

 

게다가 그룹에서 보컬과 작곡까지 하고 있다고 하니 신의 한명에게 너무 많은 재능을 준 것이 아닐까하는 시기와 질투마저 괜히 난다. 더구나, 요 네스뵈의 작품은 항상 베스트셀러 10위내에 오를 뿐만 아니라 1~10중에 7권이나 그의 작품이 있었던 적도 있다고 하니 별 고민없이 어떤 책을 선택해서 읽어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레드 브레스트'도 역시나 재미있다. 특히, 초반에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 편집되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인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무엇인가 일어 날 것이라는 예측을 하게 만들지만 후반갈때까지 그 정체를 확실하게 알 수 없게 만드는 것도 작가의 엄청난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문학작품에서 가장 궁금하고 궁금한 점은 - 특히나 추리 스릴러 장르에서 - 자연스럽게 내용 전개가 되는 과정에서 처음에 벌어진 일들로 인해 중후반에 가면서 연결되는 것을 읽을 때면 분명히 전체적인 얼개를 만들어 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무릎을 치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을 읽을때면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을 통한 역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많은 작품에서 소재가 되고 무궁무진한 미스터리까지 보여준다. 그나마 최근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줄었다는 정도인데 이 책역시 그 부분에서 출발을 하는데 전혀 몰랐던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2차 세계대전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식으로 지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역할까지 한다. 기껏해야 영국, 프랑스, 독일정도만 알았는데 말이다.

 

특이하게도 대부분의 작품은 한 권으로 모든 내용을 완전히 끝맺음을 하는데 '레드브레스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1,2권으로 나눠진 책도 아닌데 미제 사건 하나를 남기면서 끝난다. 마지막에 가서는 사건을 해결하면서 복수도 이뤄질 것이라 봤는데 아무런 단서나 연결고리도 알려주지 않고 내용이 끝나서 약간 어리벙벙했다. 이렇게 끝내는 작품도 있구나하는 생각으로.

 

분명히 시리즈중에서 그 사건이 노출될 것 같지만 계속해서 시리즈와 함께 연결될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은 헤리 홀레시리즈의 거의 초기작이라 말이다. 이런 점이 바로 초기작부터 하나씩 시간순서에 따라 읽으려고 하는 이유다. '레드브레스트'는 선택의 순간이라 할 수 있는 새 이름이다. 위험을 감수하면 이익을 먼저 얻을 수 있지만 죽을 수 있고 안전을 택하면 이익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최소한 살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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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인문학독서법 - 삶의 기적을 일으키는 인문학 독서법의 비결
김병완 지음 / 북씽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워낙 최근 몇 년동안 다작을 한 작가라 도서관에 가면 어김없이 꼭 최소한 한 권정도는 김병완이라는 사람의 책을 발견할 수 있다. 분야도 꽤 다양해서 이렇게 저렇게 다른 섹션에서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도서관에서 3년동안 9,000권을 읽고 인생이 변했다는 것이 저자 자신의 핵심이라 많은 책에서 그 내용이 꼭 언급된다.

 

대부분의 책들이 자신이 읽은 책들을 근거로 주장을 펼치거나 내용을 알려주는 경우가 많아 상당히 많은 분야의 책이 있지만 공허한 분야의 책도 있다. 하지만, 책과 관련되어 있는 내용으로 넘어가면 확실히 저자 자신의 전공분야(??)라 그런지 책의 내용이 괜찮다. 흔히 말하는 내공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워낙 많은 책과 책의 내용과 책중에서 일부를 발췌한 글을 읽어보면 책을 많이 읽었다는 티가 저절로 난다. 간혹, 이렇게 많은 책에서 발췌를 한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고 그토록 많은 책을 펴 내면서 - 아마도 한 달에 최소한 한 권은 펴 낸듯 하다 - 일일히 전부 책의 내용에서 발췌를 하려면 그것도 장난이 아니겠다라는 느낌이 든다.

 

워낙 여러 책들이 있지만 이번에 읽은 '기적의 인문학 독서법'처럼 독서와 관련되어 있는 책과 관련되어서는 상당히 읽을만하다. 그 책이 그 책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솔직히 사실이지만 - 비슷한 분야의 비슷한 느낌의 책이 한 달에 한 권 나올정도이니 - 어느 책을 집어 들고 읽어도 평균은 한다는 점은 수 많은 독서의 결과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이번 '기적의 인문학 독서법'은 그런 점에서 좀 더 김병완이라는 저자의 내공을 볼 수 있는 책이라 할 것 같다. 인문학에 대해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저자와 인문책을 통해 그들의 주장과 생각과 사상을 통해 자신의 사고를 결부시켜 알려주는데 있어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은 정도로 안내서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

 

인문학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문사철'을 하나씩 설명한다. 인문학을 알아야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한 후에 문학, 역사, 철학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알려준 후 자신의 독서법인 3년 1,000권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 후 저자가 분야별로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는데 분야가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어 책을 고르는데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인문학에 대해 소개하거나 공부하라고 하는 책이나 글을 접하게 되면 이상하게 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반대급부에 대해 떠올리고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가 이야기한 점 말고 이렇게도 볼 수 있는데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과 반박을 하고 싶다는 청개구리같은 반발심이 생긴다. 그렇다고 저자의 의견이나 주장에 동의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적으로 지지하고 맞다는 입장이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인문학을 공부한 모든 사람들이 성공(??)했다는 것에 동의를 표하기는 힘들고 책에 소개되고 언급된 인물들은 전부 뽑아도 20명이 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하나같이 역사에 남는 인물들이다. 그런 인물들이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꼭 인문학책을 읽었다고 볼수만은 없다. 당시 시대를 볼 때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인문학책만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인문학을 읽지 않으면 대단한 사람이 못된다는 것에도 동의를 하기 힘든것이 꼭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하느냐는 전제부터 고민하고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재미삼아 책을 읽으면 아무 도움도 안된다고 하는데 인생을 꼭 그렇게 심각하고 살아야하느냐는 점도 그렇다. 인문학이 아닌 책은 - 대표적으로 실용서적들 -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고 인문학은 깊은 성찰을 통해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는 책이라는 이분법적인 생각 자체가 우습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을 볼 때 굳이 인문학을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문학, 역사, 철학중에 하나에는 보다 가깝게 다가가게 된다. 자연스럽게 접근하면 될 것을 억지로 한다고 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과거에는 책이 유일한 것이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얼마든지 TV 드라마, 다큐, 영화등을 통해서도 인문학에서 이야기하는 바로 그 인간에 대한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보다는 생각을 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핵심이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변화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느데 그 부분도 결국에는 생각을 하느냐가 귀결된다. 개인적으로 계속 읽다보니 저절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되었기 때문에 강요할 부분은 아닌듯하다. 1년 동안 신문을 읽어도 변화가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대단한 성찰을 보이는 사람들도 보면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개인이 혼자서는 생각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을 책을 통해 생각할 꺼리를 던져준다는 것에 있을 듯 하다. 혼자서는 미처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이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된다. 또는 혼자서 고민하는 것들을 이미 다른 누군가 그 과정을 거친 사람의 글을 통해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인데 이런 점이 꼭 인문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지 않고 책을 통해서만 가능하지도 않다고 본다.

 

책을 읽는 편에 속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내 입자에서 당연히 책이 가장 도움이 많이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장 적극적으로 알려주는 매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인문학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그만큼 시간을 이겨낸 작품들과 사상이 많아 지금 누군가 만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도 맞다. 물론,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를 아는게 기쁘고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읽는 측면도 뺄 수 없지만 그보다는 독서라는 것 자체를 즐기는 차원이라 할 수 있다.

 

추가로 독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리뷰라는 것을 통해 생각을 하면서 보다 발전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스스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낯간지럼지만.

 

'기적의 인문학 독서법'은 최근의 인문학 열풍에 사람들이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안내서역할을 하는 책이다. 문사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읽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역할 말이다. 사실 그보다는 직접 헤매고 혼란스러워하고 진도가 나가지 않아도 인문학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직접 '문사철'책을 읽는것이 훨씬 도움이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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