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 - 판타스틱 픽션 WHITE 1-1 ㅣ 판타스틱 픽션 화이트 White 1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송정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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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200페이지까지 읽은 후에 결정을 했다. 리뷰를 쓰기로. 'give up'이라는 제목으로 이 책은 그만 읽겠다고. 600페이지 중에 3분의 1 밖에 읽지 않았으니 리뷰라고 할 수는 없을 듯 하고 왜 중단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나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책을 읽으면 어지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정독은 아니라도 글자 하나 하나를 읽지만 1년에 1~2권 정도는 끝까지 읽지 못하거나 후반부에 가서는 휙~~휙~~ 넘기며 읽는 경우가 있다.

 

이번 '케빈에 대하여'는 소설이다. 후반부를 휙~~ 읽는 것도 실용서적들과 같은 책이나 가능한 것이지 소설은 끝까지 읽지 않았다고 하면 과연 읽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판단하여 읽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된다. 고로, 읽다가 포기한 소설로써 이 책에 대해 언급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고 책을 읽지 않으려고 했는데 왠지 괜히 억울했다. 세상은 단순하게 보면 단순하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책이 어렵든 읽히지 않든 읽기 싫어지든 끝까지 읽는 방법은 단 하나다. 읽으면 된다. 아무리 두껍고 안 읽히는 책이라도 하루에 몇 페이지씩 읽으면 결국에는 다 읽을 수 있다. 하루에 100페이지 정도를 목표로 삼고 읽으면 된다. 그런, 마음으로 다시 읽기로 했다. 이상하게 안 읽히고 내용도 원하는 것과는 많이 달라 집중하는데 더 힘들었지만 매일 읽으면 된다.

 

처음에는 영화로 '케빈에 대하여'를 접했다.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에서 보게 되었는데 분명히 당시에 내가 그 영화 예고편을 보면서 느꼈던 점은 한 여자가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여자로써의 삶을 갈구하거나 살려고 하려는데 이 놈의 아들은 자신을 엄마로써 묶여 놓으려고 한다는 식으로 알았다. 책의 내용도 그런 구성이라 보고 택했다.

 

책의 표지에는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자)와 가족'이라는 문구가 있어 내가 생각하는 내용이 아닌가하는 의문도 들면서 잠시 주저했지만 한 번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책의 두께도 그렇고 내용도 이게 결코 만만치 않은 책이였다. 더구나, 내가 생각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책이 전개되고 있다보니 읽으면서 어딘지 모르게 내가 겉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읽으면서도 대단한 필력이라고 느끼고는 있었지만 다 읽은 후에 느낀 감정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보통 책이 안 읽히는 경우는 책 내용이 아직 나에게 어렵거나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거나 번역이 이상하거나 등등의 이유다. '케빈에 대하여'는 결코 어렵지도 번역이 이상하지도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200페이지가 될 때까지 잘 안 들어오기는 했어도 이토록 미주알 고주알 글로써 써 내려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정도는 느끼면서 읽었다.

 

플랭클린이라는 남편에게 에바라는 아내가 쓴 편지내용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에바가 플랭클린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 대해 시시콜콜 구구절절 사연을 적어 내려간 것처럼 자신이 떠오르는 기억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보다는 남김없이 지난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성이다.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까지.

이렇게 볼때 어딘지 연애이야기나 남편과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세상에 '그 놈'이 나오면서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태어나자마자 나를 반기지도 않고 밀어내려 하고 남편에게는 울음을 그치던 놈. 내 젖을 거부하던 놈. 어릴 때부터 내가 사랑으로 감싸주고 자식으로 대하려해도 나를 적대시하고 나를 언짢게 만들고 기분나쁘게 의도적으로 행동하고 늘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던 놈.

 

아내이자 엄마이자 한 명의 존재로써 에바라는 인물이 철저하게 자신의 관점에서 글은 써져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은 그들이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철저하게 내 관점에서 유추하고 멋대로 상상하고 임의대로 판단내릴 수 밖에 없다. 아들이 나에게 한 행동의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어도 내가 판단한 것은 평범한 놈이 아니고 무엇인가 남다르다. 평균을 많이 벗어난 놈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내 아들이지만 나도 쉽게 가까이 접근하기 힘들고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나이답지 않은 조숙함과 똑똑함이다. 나는 그의 본질을 깨다고 지식하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은 어렴풋이 인식을 할 뿐 깨닫지 못한다. 본능적으로 피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들은 연기를 잘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 특히, 자기 편이 되어야 하는 남편에게는 그가 원하는 것을 보여주고 알려주고 행동한다. 더없이 좋은 아빠의 아들연기를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통제하기도 한다. 쉽게 범접하지 못할 인물로 포지션을 설정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자신이 알게 모르게 조정도 한다. 상대방은 그런 점을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생각없이 사는 아이들이기도 하고.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는지를 파악하고 치료할 이유가 없다. 놈은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그를 상대하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남편은 나와는 다른 면을 본다. 내가 보는 아들은 끔찍하고 무서운 놈이라 피해야 할 인물이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 질식할 것 같은 긴장감이 흐르지만 남편에게 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주는 착한 아들이다. 동생인 딸은 워낙 착해서 오빠가 어딘지 모르게 무섭지만 오빠가 시키는 것은 믿고 한다. 그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여전히 오빠는 오빠로서 본다. 좀 무서워하기는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이지만 철저하게 엄마의 관점이 아닌 책을 읽은 타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과연 처음부터 아이가 엄마를 밀어내고 거부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모유를 거부한다는 것이 자신을 거부한 것이 아니고 갓난 아이가 무엇을 안다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을까? 어느 정도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눈에 보였어도 엄마도 워낙 시니컬한 아이에게 더더욱 시니컬하게 세상을 바라보도록 하는 시선을 선사한 점도 분명히 있다.

 

사랑으로 감싸려 하기보다는 나와는 다른 놈이고 나를 미워하는 놈이고 나에게 하는 행동과 남편에게 하는 행동이 다른 놈이고 자신의 본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나와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가 아닌 여자로써 한 개인으로써 상대하려 했다. 절대적 자기 희생을 해야 하는 것이 꼭 엄마의 역할은 아니지만 자녀로써 보다듬고 포용하기보다는 본인 스스로도 타인으로써 밀어내려고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와 다른 아들이라 스스로 더욱 아들을 아들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아닐까하는 점이 있었다.

 

끝까지 이 책을 읽자고 마음 먹은 후에는 오히려 더 집중하고 몰입해서 읽으려고 했다. 글자 하나까지. 500페이지를 넘기니 그때부터는 확실하게 서서히 재미있게 읽게 되었다. 또는 글 스타일에 완벽하게 적응해서 익숙해졌거나. 시작하자마자 결론은 나온다. 아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죽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할 수 없다. 현재, 감옥에 있다. 면회를 간다.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편지를 보내는 시간이 흐른다. 그러면서, 하나씩 하나씩 자신이 스스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된 것인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야기하고 현재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도 편지에 쓴다.

 

자신만이 아들은 괴물이고 얼마든지 타인에게 해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힐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지만 피하면 된다고 본다. 재미삼아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내면을 건드려 힘들게 만들어도 진짜로 누구를 죽일 것이라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또는 예측은 했지만 설마했거나 차마 멈출 수 있는 것을 포기했다.

 

또한, 아들은 결코 의미없이 단순히 재미삼아 무엇인가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한 방편으로 한 것도 많다. 엄마와 게임을 한 것이다. 더이상 게임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에 게임의 종지부를 찍으려 살인을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결말에 가서는 전혀 예측하지도 못한 결과를 보여준다. 읽은 후에 '어~~???? 뭐야??'하면서 전 페이지로 넘어가서 다시 한 번 읽었다. 그 후에 최종 날짜의 편지를 읽으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늪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서 어느 순간 빠져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늪에 빠져 버리는 것처럼 일정 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책이 재미있게 읽혔다. 늪에 빠지기 전까지는 상당히 힘겹게 읽었다. 전후사정과 부연설명과 꼭 관련이 없는 내용의 연속적인 묘사등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걸 견뎌내야 내 책의 재미를 알 수 있게 한다라고 알려주는 듯 하다. 책을 펼치자마자 읽게 만드는 흡인력은 초반 몇 페이지에서는 궁금증을 유발할지 몰라도 그 후에는 사막 한 복판에 떨어져서 작가가 알려주는 방향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방황한다는 느낌은 분명히 있는데 쫓아갈 수 밖에 없게 만들어 주는 듯 하다.

 

억울해서 일부러 리뷰도 길게 쓰고 있다. 오래도록 붙잡고 읽었던 시간을 보답받기 위해서. 이렇게 오래도록 읽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하던 배반에 대한 응답으로. 도대체, 이 내용인데 왜 영화 예고를 봤을 때 전혀 감도 잡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에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결심이 든다. 

 

향후에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작품을 또 읽겠냐고 물어본다면 음~~~ 솔직히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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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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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파우스트로 불멸의 작품을 남겼을 지 몰라도 세상 사람들에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더 각인되어 있다. 슬프게도 좋은 의미가 아니라 '베르테르 효과'라고 불리는 자살효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유명인이 자살을 선택할 때 - 특히, 연예인 - 이를 보고 자살을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이 함께 자살을 선택할 우려가 있을 때 '베르테르 효과'라고 하니 괴테가 이런 효과를 원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살이라는 행위 자체는 지금도 물론이지만 과거에도 분명히 인정할 수 있는 삶의 선택은 아니였을 것이다. 더구나, 기독교 문명이 퍼져있던 유럽에서 자살은 더더욱 금지되는 행동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괴테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작품속에 넣었다. 주인공이 자살을 선택한 작품중에 이처럼 인기를 끈 작품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최초였을 것이다.

 

괴테는 이 작품으로 단숨에 인기 작가로 떠 오르게 되었는데 당시의 시대상을 볼 때면 다소 의아하다. 오히려, 이런 결말을 보여준다면 지탄받고 외면받을 것이라고 보이는데 괴테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로써의 명성을 얻게 되고 결국에는 '파우스트'라는 불멸의 작품까지 완성하는 것을 볼 때 당시 시대가 미처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하고 싶은 바를 건드린 것이 아닐까 싶다.

 

과거 서양이나 동양이나 똑같이 지금과 같이 평균 수명이 길지 않을 때는 10대에 이미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집에서 정해진 짝이 있었다. 원하지 않는 짝은 사실 복불복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어떤 인간이 내 짝이 되어 여생을 살아가게 될련지 어떤 사전 정보도 없는 뽑기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짝은 평생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두번의 기회가 오는 경우는 극히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아직 결혼을 하지도 않았는데 단지 약혼을 하거나 결혼을 하기로 정해진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이성에 대해 무감각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부러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만 머물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성에 대해 가장 왕성한 호르몬이 생기는 10대에서 20대 시절에 이런 경험을 겪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한 반려자가 아니라는 것은 운명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체념하는 것이지 결코 담담히 받아들인 감정은 아닐 것이다. 지금보다 감정표현을 자제했던 시대라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청춘 남녀이든 나이가 든 남녀이든 사랑이라는 것이 재미있는 것은 본인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혼을 한 후에는 사회적 합의와 도덕교육에 의해 스스로 억제하려 노력하고 엄청난 불만이 있지 않다면 지금의 반려자가 있다는 감정은 다른 이성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 또한 신기한 체험일 수 있고 놀라운 경험이다.

현재, 자신의 반려자가 없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선사한다. 자신이 바라보는 이성이 자신의 반쪽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드는 상대방을 만났을 때 저절로 모든 감각이 집중하게 된다. 보자마자 그런 경우도 있고 만나다보니 어느 순간 그럴 수 도 있다. 어느 순간이든지 사랑이라는 감정은 오늘부터 시작한다고 이야기하는 성질이 아니다.

현재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과거와 달리 행동반경이 워낙 넓어져서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었지만 과거에는 선택의 폭이라는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제한적이였다. 결국, 자기 눈에 콩깍지가 씌워여 한다는 의미라 사람이 많고 적고의 의미는 퇴색될지 몰라도 적은 인원이 있을 때는 그만큼 괜찮다 생각되는 이성이 나타나면 더욱 모든 감각이 곤두서지 않았을까 한다.

베르테르는 자신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사랑에 빠질 것이라 예상하지도 않았지만 늘 그렇듯이 사랑은 자신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순간에 불현듯 찾아온다. 호감을 느낀다는 감정은 여전히 미스테리하다. 호감이라는 것이 개인적으로 차별성은 존재하겠지만 딱히 정해져 있는 획일화된 감정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감정이 아니라 호감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미지로 나에게 찾아온다.

샤로테는 이미 약혼자가 있어 늘 경계막을 마음속에 치고 남자들을 만났을 것이다. 당시 시대상황을 볼 때 당연하다. 정분이라는 것은 볼 때 생기는 것이다. 보지 않고 생기지 않는다. 자꾸 마주치고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어느순간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현재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인물이다. 바로 그 사람이 베르테르가 된 것이다.

초판 - 저작자표시: "Wikipedia: Foto H.-P.Haack"

보지 않으면 멀어진다는 표현처럼 베르테르는 샤로테에서 멀어지기 위해 노력했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일하러 갔으나 여러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샤로테를 보고 싶은 마음이 그를 다시 샤로테에게 끌어당겨졌다. 차라리, 애초부터 계속 봤다면 오히려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한동안 보지 못한 기간동안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확신하고 벼랑끝에 서게 된다.

 

샤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트가 있어도 집에 가고 그가 없을 때는 자신의 마음을 여러 방면으로 표현했다. 샤로테도 베르테르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한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숨길려고 해서 숨길수 없는 감정. 당시에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베르테르는 그저 옆에 있기만 원했을지도 모른다. 샤로테가 자신이 움직이는 마음에 흔들려 베르테르를 흔든 것이 베르테르를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 간 것으로 보인다.

 

샤로테, 알베르트, 베르테르 이렇게 세명은 함께 공존할 수 없다고 믿는다. 누군가 한 명이 사라져야만 한다는 믿음은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는데 어떻게 보면 강요당했다고 할 수도 있다. 분명히 베르테르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적극적 동조자가 있고 방임자가 있다. 이 둘의 관계는 과연 계속 이어지는 삶에서는 어떻게 흘러가게 되었을까?

 

죽은 자는 불멸의 명성을 얻고 지고지순한 사랑의 대표자가 되었지만 남은 자들은 그 운명과 무게를 오롯이 전부 온 몸으로 받아 견뎌야만 한다. 더구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은 지탄받을 수 있지만 그가 선택한 이유를 알게 되면 모든 사람들은 베르테르를 아름답게 여기고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칭송할 수 있어도 남은 자들에게는 비난과 힐난을 받게 될 것이다. 실제로,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단순히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에 그치는 것도 아니고 흔히 보는 삼각관계에 의한 치정 이야기도 아니다. 워낙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 유명해졌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알려주는 고전이다. 사랑이 전부가 아닌 사람들이 있다. 사랑이 전부인 사람들이 있다. 둘 다 힘든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삶만큼 행복하고 풍족한 인생을 즐기는 삶도 없겠지만 그 사랑이 자신이 열렬히 사랑하는 이성간의 사랑만으로 그친다면 이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이성간의 사랑에만 그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첫 사랑에 실패한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시의 사랑이 짝사랑이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삶은 지속되어야 한다. 지금 만나는 또는 애타게 그리워 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나이를 먹으면 알게 되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참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아저씨가 된다는 것이 문제다.

 

그런 이유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그렇고 그 이후의 많은 작품에서 여전히 사랑은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갖고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사랑을 매개로 이뤄지는 많은 것들로 인해 역사는 발전하고 퇴보를 했다. 우리들은 그런 소설을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내가 차마 선택하지 못한 행동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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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와 NPL 愛 흠뻑 빠지다 - 시대의 흐름도 융합! 투자의 흐름도 융합!
우형달.김성숙.이영준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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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날 경매 법정에 가서 지인을 만났다. 그 지인은 아파트에 입찰을 하러 들어 왔다는 것이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덕담과 함께 격려를 했다. 나보다 사건 번호도 빨라 함께 기다리면서 열심히 떠들고 있다가 드디어 개찰 순간이 되어 사건 번호를 불러 앞으로 나갔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나갔다. 기억으로는 4억 정도 하는 물건이 30% 유찰되어 2.8억 정도 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알려준 바에 의하면 시세가 3.2억 정도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제법 많이 나가서 떨어졌구나하면서 앞으로 나가기는 했지만 최고가 매수인이 무려 3.8억이나 쓴 것이였다. 봉투를 돌려 받으면서 함께 욕을 했다. 도대체, 왜 그가격으로 들어 왔느냐는 것이였다. 나도 맞장구를 치면서 그 가격으로 왜 경매를 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집에 와 그 물건을 다시 한 번 보면서 그제서야 그 사람이 쓴 가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NPL로 입찰을 한 것이다. 최선순위 저당권의 가격이 3.8억이였다. 그러니, 투자자가 쓸 수 있는 최대 가격인 3.8억을 쓴 것이였다. 나중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어 서로가 웃으면서 그 물건은 NPL로 들어 온 것이라 이야기하면서 NPL로 들어 올 것이면 처음부터 이야기했으면 들어가지 않았을텐데 괜히 들러리만 섰다고 하며 안주삼아 씹었다. 

 

한 때는 그들만의 리그라고 불리웠던 NPL물건은 이제 유료 경매 사이트에서 NPL물건이라고 설명하면서 담당자의 회사와 전화번호까지 공고하고 있다. 그 물건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직접 전화해서 협상을 하던지 알아서 직접 저당권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실제로, 가끔 터무니 없는 금액으로 낙찰받는 물건을 볼 때면 NPL을 이용해서 고가낙찰을 받는 경우가 많다.

 

NPL로 들어 오는 사람들과 일반 경매투자자가 같은 물건에 입찰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역으로 보자면 그만큼 NPL물건이 알려져 있어 쉽게 접근할 수는 있어도 예전처럼 싸게 저당권을 구입할 수 없다는 단점이 존재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NPL은 이제 서서히 대중화의 길을 걷는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지금까지 NPL을 단 한번도 투자 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론적으로만 열심히 머리속에 있을 뿐 아직까지 실전에서 활용하거나 투자해 본 적은 없다. 또한, 내가 알고 있는 NPL의 모든 것은 고백하자면 우형달씨를 통해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우형달씨가 출판한 책을 통해서 말이다.

 

NPL을 익히 알고는 있었고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도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자세한 부분까지는 미처 캐치하지 못했는데 우형달씨가 처음으로 출판한 NPL책을 통해 감을 잡기는 했지만 사실 그다지 새롭게 얻은 정보는 많지 않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실전부분보다는 이론적인 부분이 많이 들어간 책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NPL책들이 점점 우후죽순으로 많이 나왔지만 여전히 가장 독보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책은 역시나 우형달씨였다. 운이 좋게도 우형달씨가 출판한 NPL에 관한 모든 책을 읽게 되었는데 갈수록 내용이 풍성해지고 이론과 실전이 잘 접목되어 전달되고 있다. 기존에는 너무 이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부동산 경매라는 부분과 금융이라는 부분의 이론적인 내용이 있어 다소 지겹고 실전투자하는데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들이 있었는데 - 거의 대부분의 책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 - 우형달씨는 갈수록 그 점을 확실히 극복했다.

 

이론과 실전이라는 부분이 잘 배치되어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NPL에서 필요한 이론적인 내용을 취득하면서 그 부분을 실전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까지 알려주고 있어 경매투자를 하고 있으나 NPL은 감이 잘 잡히지 않는 사람들에게 실전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이번 NPL책은 상당히 두껍게 공저자가 3명이나 되어 이론적인 부분이 다소 많이 포함되어 있으리라고 예상을 했다. 

 

예상과 달리 이론적인 부분은 극히 최소화하고 실전적인 부분에서 궁금해 할 내용을 알려주고 있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아예, 이론적인 용어설명과 같은 부분은 별책부록식으로 끝에 알려준다. 또한, 기존 책들이 기본적인 설명에 치중하고 있는데 반해 이번 책은 기본적인 설명뿐만 아니라 보다 고급 정보까지 알려준다.

 

이제 막 NPL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내용을 알려주는데 큰 역할을 했던 책들이 전작들이였다면 이번 책은 기본내용은 기본 내용대로 다루고 그 보다 한 단계 윗 단계인 특수물건과 NPL의 결합을 통한 투자사례를 소개한다. 단순히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식의 나열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풀어낼 것인지 여부와 배당을 통해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줘서 부동산 경매를 이미 해 봤고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동산 경매와 NPL의 접목을 어떻게 할 것인지 부분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준다.

 

특히, 배당과 관련되어 직접 하나씩 설명하고 배당금까지 알려주고 그 이유에 대해 친절하게 책에 숫자로 알려주고 있어 단순히 NPL을 공부하기 위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배당공부를 하기 위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부분이 있다. 조만간, NPL과 관련된 배당 책도 펴낸다고 하니 보다 깊숙히 NPL을 공부하기 위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부동산 경매 공부의 진수를 알기 위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듯 하다.

 

배당부분에 대해 특수물건과 함께 연결해서 알려주는 것은 참으로 좋았는데 친절하게 설명한 후에 똑같은 형식으로 문제를 낸 부분은 아쉬웠다. 앞 형식과 똑같이 문제를 풀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래도 공부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답이 없으니 답답한 심정이 들 것이라 보인다. 자신이 쓴 답이 맞는지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책 말미에 따로 알려주던가 저자 자신의 카페에 이에 대한 답을 공개하던가 했으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자신이 제대로 풀었다는 안도와 확신내지 더 공부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을텐데 그 부분이 빠져 버리니 답을 푸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다소 곤란할 듯 하다.

 

비슷한 내용으로 책이 계속 나와 어느 정도는 반복된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갈수록 책의 내용이 좋아지고 NPL에 대한 기본뿐만 아니라 심화학습까지 할 수 있게 내용전달을 해 주다 보니 저자의 표현대로 대한민국에서 NPL은 우형달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을 듯 하다. 실제로, 우형달씨만큼 NPL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사람은 없을 듯 하다. 현재 현업에서 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여타의 NPL책과 달리 이번 NPL책은 기본부터 고급까지 책에 다 다루고 있어 책의 부피도 두껍고 내용도 훨씬 알차게 느껴진다. 다시 또 기본만 반복했다면 매번 NPL책을 본 사람들에게는 지겹다는 느낌도 줄 수 있을텐데 그런 부분을 해소해주는 책이다. 기존의 NPL책들이 쉽게 느껴지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아쉬운 부분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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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 - 지속성장을 위한 강력한 경쟁력
박희준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다보니 관련된 분야에 관심이 많다. 그저, 책을 읽어 지식을 넓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견물생심이 되어 직접 책을 출판하기도 했고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 멈추지 않고 책을 읽어 내 개인이 많은 부분에서 변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고 몸소 체험도 했기에 이 점을 함께 공유 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이를 직접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다.

 

단순히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투자자로 시작한 사람으로 - 투자자로 시작했다는 표현은 엄청난 모순이 있지만 나라는 사람이 투자자로 알려져 있으니 - 독서를 매개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하거나 함께 공유하면서 무엇인가 도움을 주면서 돈도 버는 것을 생각을 하고 있다. 이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하고 아직은 내 능력이 그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에 열심히 책만 읽을 뿐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대부분 경제, 경영서적으로 몇 회차 내지 몇 개월에 걸쳐 강의 내지 토론을 하는 과정이 있는 것은 봤는데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대략적으로 알겠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읽었던 책들중에서 가장 많은 포지션을 차지하는 것이 그 분야라 해 볼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단순히 책을 읽는데 그친 것만이 아니라 투자를 하고 있고 실전에 적용도 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책만 읽고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에 비해서는 훨씬 더 경쟁력도 있다는 개인적인 생각만 갖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내 스스로 되었다고 생각을 여물었을 때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순간까지는 지금처럼 열심히 책을 읽고 내 생각을 적다보면 쌓이고 쌓여 나중에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런 목적으로 독서모임을 스스로 주최해서 하는 이유도 있다. 딱히, 어떤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같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에 초점을 맞춰 하는데 대체로 내가 진행을 하고 질문을 던지고 원활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각자 자신의 생각을 끄집어 내는데 노력을 하는 편인데 솔직히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있다.

 

내가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이 읽은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내가 미처 읽으면서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나 나와는 다른 생각 - 아예, 반대 방면 - 을 갖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반합이 되어 가는 과정을 도와주는 것이 본인들에게 훨씬 더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싶다.

 

이렇게 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고 본다. 무엇보다 단순히 진행을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정된 책 뿐만 아니라 다른 비슷한 분야나 반대 논조를 갖고 있는 책들도 읽어 사람들에게 동의도 하지만 반대도 던져주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가지려면 쉽게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돈받고 하기는 아직 스스로 무리라 판단되어 책과 관련된 책들도 읽어 가면서 조금씩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개인들을 모아서 하는 방법도 좋지만 기업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점도 괜찮아 보여 관련책을 가끔 눈여겨 보는데 '독서 경영'은 그런 관점에서 읽게 되었다. 기업들이 독서를 통해 경영을 효율적으로 하고 사원들을 한 마음으로 만들어주거나 교육하는 방편으로 선택해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읽었다.

 

생각과는 달리 좀 달라 약간 실망은 했다. 또한, 너무 경영면에 치우쳐 있어 제대로 된 독서에 대한 방향성은 다소 떨어져 보였다. 기업에서 독서를 통해 사원들에게 교육을 하려 하거나 기업의 미래를 위해 한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책에 나와 있는 방법은 너무 편협되었다는 생각이 있었다. 독서 경영에 방점이 찍혀 있어 독서 자체가 개인의 발전과 지식의 확장보다는 한 기업의 경영을 위해 사원들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하다보니 독서는 그저 하나의 방법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를 하는 목적과 목표가 기업을 위해서만은 아닐테이고 각 개인이 어제보다 발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목적이 보다 큰 목표일텐데 내가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의 생각이 아닌 개인의 관점에서 읽다보니 다소 논점이 달라 오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개인의 발전이 모어 기업의 발전이 될 것이고 기업의 경영에서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매일 경영과 관련된 생각이나 책을 읽는다고 오는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현재 고민과 전혀 상관없는 책을 읽다 문뜩 떠올라 도움이 받을 때도 있던 것처럼 말이다.

 

각 기업들이 독서 경영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나온 것이 2006년이라 벌써 10년 정도의 기간이 지났는데 그 이후로 많은 기업에서 독서경영은 잘 모르겠고 독서를 기업이 사원들에게 교육하는 방법중에 하나로써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고 관련된 책들도 몇 권 있다. 물론, 관련책들이 현재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펴 낸 책이다.

 

책에는 많은 기업이 소개되는 것도 같지만 실제로는 5개 정도의 기업만이 구체적으로 소개되고 반복되어 알려주고 있다. 한 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기업이 업무시간에 독서모임을 갖거나 업무후에 독서모임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텐데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업무시간이 끝나자마자 한다는 것이 다들 집에 가고 싶을텐데 한다는 점에서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아닌 독서모임이면 모르겠는데 회사 사람들과 다시 만나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구청 사람들이 업무 후에 정기적으로 만나 독서모임을 한다는 이야기를 내가 주최하는 독서모임에 와서 하신 분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경영에서 독서를 접목하는 것은 경영자에게도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라 보인다. 솔직히, 좀 있어 보이기도 하고 잘만하면 이미지도 좋아지고 사원들도 이를 통해 발전한다면 이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이라 보는데 그게 또 말처럼 쉽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단순하게 독서를 통해 경영을 한다는 뜻이 애매하기도 하고 그 모임에서 서로 자유롭게 토의를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서로 지위가 있는 상태에서 각자의 지식과 책을 통한 깨달음보다는 지위에 따른 정답이 나올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초반에 독서를 통한 방법은 이러한 점이 있다는 것은 책에서도 밝히는데 외부에서 도움을 받지만 정착된 후에는 자체적으로 한다는 이야기를 하던데 여전히 그런 부분에서는 말끔하게 해결 될 수는 없다 보인다. 책에서 소개된 기업들은 하나같이 기업의 CEO가 의지를 갖고 했다는 점이 가장 핵심으로 보인다. 워낙 기업은 기업의 CEO의 의중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우리나라처럼 사장이 기업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문화에서는 더더욱.

 

독서를 통해 경영을 하는 입장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 그런 모임을 만들어 도움을 주려는 목적을 갖고 읽으려고 했던 내 입장에서는 생각과는 달리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현재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독서를 기업에 접목해서 활용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유추를 할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에는 책들도 소개가 되는데 사원들에게 추천하는 책보다 임원들에게 추천하는 책을 더 많이 읽었다. 그렇다면, 난 사장 마인드인가 보다. 책이 출판된 지 오래되어서 추천하는 책들이 이제는 추천목록에서 제외되는 불행함을 겪은 책도 보였다.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선택되는 책들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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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ㅣ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리 두껍고 글이 빼꼼하게 채워져 있는 줄 알았다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거의 700페이지나 된다는 것을 책을 선택할 때 보면서도 의식하지 못했고 그림 하나, 페이지 여백도 없다는 것을 얼핏 보면서 전혀 느끼지 못했다.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그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읽어도 여전히 두껍게 남은 페이지와 읽어도 쉴 공간을 주지 않는 글자의 압박.

 

엄청난 압박을 주는 책이 재미마저 없었다면 읽는내내 고역이자 시험이였을 것이다. 다행히도 재미있다~! 그것도 많이. 너무 주저리 주저리 쓸데없다고 생각되는 내용까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알려주는 바람에 중반까지는 다소 힘겹게 읽을 수도 있다. 내가 읽으려고 택한 책은 추리류라고 생각하고 읽고 있는데 아무리 읽어도 추리가 아닌 정치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딱히 재미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어 읽기는 했지만 언제 내가 생각했던 분야의 책이 될련지 궁금했지만 읽다보니 어느순간부터 추리라는 것에 대해 인식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그 자체로 재미있다는 뜻이다. 경찰서 내부에서 벌어지는 경찰들의 정치와 경찰과 기자들간의 신경전과 음모(??)들이 읽으면서 서서히 긴장 아닌 긴장으로 읽게 되었다.

 

일본에는 특이하게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라는 순위가 있나본데 거기서 2013년에 1위를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64'는 재미있다보다는 대단하다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책이다. 마지막 100페이지 전까지는 재미있다는 생각을 읽게 되었다면 나머지 100페이지는 대단하다는 감정으로 읽게 만들어 준다. 

 

한마디로, 700페이지 정도는 권력 투쟁과 암투, 다른 직업끼리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불신이 팽배하며 같은 경찰끼리도 각자의 소속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상대방을 우습게 보고 그 안에서도 계열이 있고 중간에 껴 이쪽도 저쪽도 가지 못하는 주인공이 점차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어떻게 하든 잘 되게 하려는 고군분투로써 읽는 재미가 있었다.

 

나머지 100페이지부터 이 책을 읽으려고 선택한 사람들이 원하는 바로 그 추리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책을 읽는동안 추리에 대해서는 기억 저편으로 밀어내고 지금까지 다루었던 내용에 젖어 열심히 읽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급변하는 전개에 놀랄 정도로 설마, 설마하면서 읽게되다가 정말로 추리가 펼쳐지는 것에 대해 뒤통수를 맞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책의 제목만으로 책이 이야기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책이 있다. 제목이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으니 책을 읽으면서 확인하고 동감하고 심화학습을 하면 된다. 책의 제목만으로는 어떤 감도 잡히지 않고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책이 있다. '64'는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후자다. 

 

작가의 스토리를 읽어보면 사실 추리 전문 작가가 아니라 소설을 썼을 뿐이다. 우리나라에 번역되는 거의 대부분의 소설이 추리 소설이다보니 나도 모르게 추리류의 소설일 것이라 지레짐작으로 읽었던 내 실수였던 것이다. '64'는 추리 소설이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대단하다는 느낌이 드는 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 본다.

 

첫 장면이 두 부부가 딸의 죽음을 확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결국에는 딸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딸을 찾기 위한 여정의 책이라는 선입견이 생길 수 있지만 전혀 아니다. 딸은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드러내는 하나의 메타포일 뿐이다. 결국, 딸은 나타나지 않지만 계속해서 주인공의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정신으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그 후로 주인공이 경찰 홍보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단순히 그 정도면 재미삼아 읽는 정도가 될 것이고 경찰서 내부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음모의 한 복판에 자신도 모르게 뛰어들어 이리 저리 장기판의 말로 뛰어다니지만 스스로 자각하여 장기판의 말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파악하고 그들을 옭아메는 과정이 전개된다.

 

여기까지라면 이 역시나 흥미롭게 잘 읽었다고 할 수 있는데 마지막에 가서 생각지도 못하게 책 전체를 계속 짓누르고 있던 사건이 다시 발생한다. 그것도 똑같은 방법으로. 그럼에도 읽는 독자들은 계속해서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이 사건이 진짜인지 시선을 돌리기 위한 유도책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니, 확신은 없지만 주인공의 생각처럼 자작극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생각으로 읽게 되는데 최종적인 반전이 책 말미에 나온다. 자연스럽게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 책을 무려 10년 동안 집필해서 완성했다고 하니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닐까라는 심정마저 든다. 초반에 이리 저리 계속 깔아대는 밑밥을 잘 읽어야만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마지막에 가서 더욱 흥미롭게 빠져들 수 있다.

 

초반에는 좀 집중이 안 되지만 중반에 들어가면서는 재미있다는 느낌으로 보게 되고 후반에 가서는 '우와~~'라는 감정으로 읽게 만든다. 분명히 글자도 여백없이 가득하고 엄청 두꺼운 책이지만 어느순간부터 인식하지 못하고 읽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가서는 침을 묻혀가며 읽을지도 모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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