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찾기 경제학 - 가장 이상적인 짝을 찾는 경제학적 해법
폴 오이어 지음, 홍지수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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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우리 실 생활과 전혀 상관없이 동 떨어진 학문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경제학은 철학에서 출발을 했다. 철학이 우리 실 생활에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고 몰라도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느낄지라도 철학은 우리 삶 구석 구석에 분명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부정하고 싶어도 우리는 철학자들의 내세운 철학을 통해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철학적인 용어나 현학적인 단어를 몰라 우리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생각할지라도.

 

경제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경제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전부 경제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 이 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고 금전적으로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눈으로 보이는 돈이 아닐지라도 전부 환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데 실제 삶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바로 철학과 비슷하다.

 

철학이라고 꼭 모든 행위에 정확하고도 확실한 이론을 들이밀 수는 없다. 어렴풋하게 맞아 떨어질 뿐이다. 오히려,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들어내는 신기한 재주가 있는 것이 철학자들이고 철학 이론이다. 이처럼 경제도 단순하다고 하면 단순할 수 있는 것들을 무척이나 거창하고 대단한냥 치장해서 일반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게 만드는 신기한 재주들일 갖고 있다. 그런 이유로 경제과 우리 실생활과 연관이 없다고 느낄지 몰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 경제학이다.

 

경제학이라고 하면 예전에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실 생활과는 무관한 상거래와 같은 것을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학문으로 알았지만 날이가면 갈수록 경제학은 인간의 모든 행위에 초점을 맞춰 철학의 자리를 대신하는 현실철학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심리학을 비롯한 여러가지 관련분야의 연구를 전부 집어삼키는 괴물과도 같은 연구를 해야만 인간의 경제적인 행위를 밝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참으로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연구를 경제학자들이 하고 있다. 인간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일단, 데이터를 만들 수 있으면 무조건 경제학자들은 연구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는 것이니 말이다. 아쉬운 것은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의 연구 책은 거의 읽지 못한 것이다. 아니면, 내가 몰라서 보지 못한 것이든.

 

별의별 분야를 경제학자들이 연구해서 경제적으로 풀어내는 책을 읽게되었는데 그 중에서 남녀의 만남에 대한 것들도 언급한 책들도 있는데 이번 '짝찾기 경제학'은 바로 그 남녀의 만남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경제학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단순히 남녀의 만남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관련되어 있는 경제적인 질문까지 알려주며 자연스럽게 경제에 대해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더구나, 저자는 책에서 자주 언급된 데이트 연결 사이트에서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났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두고 두고 남을 책에 부인도 아닌 현재의 애인에 대해 언급했다는 사실이 다소 신기했다. 다시 헤어질 가능성이 농후한데 말이다. 이런 사고가 지극히 동양적인 한국인의 체면의 발로인지 몰라도 말이다. 또한, 책에서는 한국의 데이트 사이트에서 대해서도 언급을 한다. 한 번 언급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자주 언급하며 경제와 접목시키는 이야기를 해 준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데이트 연결 문화가 발달되어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온라인으로 만남을 연결하려면 자신에 대한 프로필을 올려야 한다. 어느 누구도 솔직하게 올리지 않는다. 감춰야 할 것은 감추고 알려야 할 것은 약간 과장한다. 직접 만나기 전에는 상대방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스펙과 미모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럼에도 다들 눈에 보이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심지어, 남의 사진을 내 것인양 올려 현혹시킬 수도 있다. 공개시장이면서 공개시장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물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곳들은 대부분 남성이 아닌 여성이 많은 곳이다. 이런 소문이 나면 남성들이 몰려든다. 여성들은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이 고를 수 있는 최대의 조건으로 최선의 선택을 한다. 남성들은 자신이 돋보이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을 해야 한다. 일단, 만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만난 후에는 내 능력의 테스트가 될 지라도 말이다. 아예 다른 선택도 대안이 된다. 어차피,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기 힘들고 변별성이 떨어진다면 자신이 돋보일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이를테면, 독서모임같은 경우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으니 그런 곳에 가면 훨씬 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독서모임은 대체로 남성보다 여성이 많고 순수하게 독서모임을 참여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성간의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기 싫어도 불행하게 진실은 바로 끼리 끼리 만난다는 것이다. 동화에서 나오는 신데렐라는 없고 영화의 귀여인 여인도 없고 드라마의 재벌은 만나는 고아도 없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신과 완전히 동 떨어진 이성을 만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만나지만 감정이 생기기 전에 여러 조건이 이미 결부되어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이다. 능력이 떨어지는 불쌍한 남자와 미모가 떨어지는 불쌍한 여자란 존재하는 것이다.

 

기혼의 남성과 여성이 확률적으로 미혼보다 능력과 미모에서 훨씬 좋을 가능성이 크다. 충분한 조건을 갖고 있어 이성이 냅두지 않고 먼저 채가는 것이고 갈수록 유부남과 유부녀가 미혼남녀들보다 매력적인 이유다. 입맛을 다시는 미혼남녀의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결코 틀린 생각이 아니다. 한편으로 배우자를 탓하면 안 된다. 자신의 선택이다. 그토록 사랑해서 결혼하다고 하는 많은 연예인 여성들의 남편을 보면 저절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다. 모든 조건에 부합된 다음에.

 

'짝찾기 경제학'은 경제에 대해 친근하게 접근해서 읽기에도 좋지만 그보다는 현재 자신이 애인이 없고 그 이유를 모르겠다면 읽으면서 정확하고도 냉정하게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더구나, 노력을 하는데도 생기지 않으면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면 될 것이다. 어쩌겠는가? 경제적으로 볼 때 인간이 그렇게 움직이는걸. 인정하고 직시하는 수 밖에. 돌싱이였지만 지금은 애인이 있는 저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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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 - 위대한 작가들은 어떻게 삶의 혼돈을 정리하고 빛나는 순간들을 붙잡았을까?
바바라 애버크롬비 지음, 박아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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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어려운 것인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라면 분명히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일기 같은 경우에는 어렵지 않다. 자신의 글솜씨를 자랑하기 위한 글이 아닌 내 일상생활이나 내면에 대한 독백이라 쓰고 싶은대로 쓰면된다. 그럼에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일기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것이라 - 보여주는 일기도 있지만 - 유치해도 맞춤법이 어긋나도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일기는 글쓰기로 여기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일기를 쓰고 있지 않지만 중학교때부터 매일같이 쓰지 않았어도 꾸준히 30대 후반까지 썼던 것이 내 글쓰기의 원동력이 된 듯 하다. 딱히, 누구에게 보여줄 것이 아니라 쓴 일기덕분에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이 없다. 처음부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이것저것 신경쓰지 않고 글을 쓴 덕분에 여전히 글솜씨는 엉망이고 맛있는 글을 쓰지 못한다는 한계는 있지만.

 

글을 맛있게 쓰는 사람들처럼 글을 잘 쓰고 싶다고 생각을 하지만 아직까지 글을 맛있게 쓴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겠다. 자신의 수준만큼 보인다고 볼 때 내 수준이 워낙 미천해서 그런지 아직까지 글을 읽으면서 '정말로 글을 잘 쓴다. 어떻게 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그건, 글이라는 것은 나에게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미사여구로 치장하거나 세밀한 표현으로 감성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내가 느끼고 본 것을 글로써 표현하는데 좀 더 의미를 두고 있어 그렇다.

 

가장 좋은 글은 의도하는 바를 정확하고도 명료하게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라 여긴다. 그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은 읽고나서 울림이 생기는 글이다. 울림이 전달되는 글은 글을 잘 써서 그런 것이 아니라 글의 내용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글을 잘 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좋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다만, 이왕이면 좀 더 글을 잘 쓰기 위해 스스로 약간의 노력은 해야 한다. 그럼에도 글의 형식은 중요하지 않고 내용이 중요하다고 본다.

 

복잡한 세상에서 자신을 찾고 중심을 잡아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사람들은 템플스테이를 한다거나 명상 수련을 하거나 자연을 벗삼거나 올레길같은 곳을 통해 내면의 자아를 만난다고 본다. 단순히 시끄러운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편안함과 차분함을 느끼기 위한 행동은 아니라고 본다. 결국에 그 모든 것은 세상을 살아가며 자신의 중심을 유지하고 흔들리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머나먼 곳을 찾아가거나 조금은 있어 보이는 장소에 굳이 가 - 자연을 벗삼는 것처럼 좋은 것도 없지만 - 생각을 정리하고 자아탐구를 하는 것도 좋지만 멀리 갈 필요없이 집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바로 글쓰기이다. 아니, 굳이 집이 아니라도 어느 곳에서도 글을 쓰기만 하면 자신이 있는 공간이 정지되고 혼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결국 나를 만나는 하나의 과정중에 하나이다.

 

지금이야 일기처럼 나 혼자 볼 목적으로 쓰기에 무지렁이와 같은 찌질한 내면을 전부 다 드러내고 쓰지 않고 적당히 남을 의식하고 쓰지만 여전히 글쓰기는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는 행위이다. 하지만,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어쩌다 글을 쓰면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어렵고 매일같이 쓰게 되면 어떨 때는 머리가 진공상태가 되어 쓰지 못해 어렵다. 그렇지 않다면 거의 대부분 글쓰기는 얼마든지 자기 혼자 도전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행동이다.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글쓰기는 치유의 행위이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억눌려있던 감정이나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모든 것을 털어놓는 효과를 스스로 맛보게 된다. 아쉽게도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은 이러한 내용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글을 쓰려는 사람이나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온갖 자질구레한 것까지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는 책이다. 글쓰기와 관련된어 있는 다양한 상황에 맞부딪혔을 때 분명히 책에 언급되어 있는 내용을 참고삼아 위로 받거나 공감할 수 있다.

 

글을 쓰면서 사는 삶은 편안해 보이기도 한다. 글을 쓰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막상, 이게 사람 죽이는 일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 아무리 천재적인 필력으로 감탄사를 내는 사람이라도 무의 상태에서는 아무런 글이 나올 수 없다. 머리 안에 무엇인가 있어야 글로써 풀어낼 수 있다. 아무리 필력이 좋아 작은 내용이라도 그럴싸하게 글로 꾸며내는 사람도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나올 수 있는데 글을 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글로 먹고 살려고 할 때는 글로 나오는 것 이상의 인풋이 머리속에 들어가야만 한다. 머리에 들어간 내용 중에 20~30%정도만 나올 때 정말로 좋은 글이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한다. 100% 전부가 글로 나온다면 그 글은 깊이도 없고 재미도 없고 무료할 것이다.

 

하다보니, 글로써 먹고 살 정도는 아니여도 글로 먹고 살려고 노력중이다. 지금까지 누군가의 코칭을 받은 적은 없고 앞으로도 딱히 받을 생각은 없었는데 유명한 프로선수들도 끊임없이 코칭을 받는다는 사실을 볼 때 생각해 볼 만하다고 보인다. 나는 그저 내가 글을 꾸준히 쓰고 쓸때마다 어제보다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지만 그걸 내 스스로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저, 의식하면서 잘 쓰려고 노력할 뿐이다. 정말로, 좋은 글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는 상태이니 말 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책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글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노력하고 글을 쓸 때에 분명히 속으로 읽으면서 쓴다. 나도 모르게 그러고 있는 데 나만 그런 것인지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말을 글로 쓴다는 생각으로 쓴다. 잘 읽히는 글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글을 읽어보면 안다고 한다. 그런 걸보면 더럽게 읽히지 않는 글은 말로써 읽을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자기 자신도 그 글을 말로 하라고 하면 때려치울 것이다.

 

이 책은 작가들을 위한 최고의 도서로 뽑혔다고 하는데 그럴만하다. 글쓰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 워낙 다양한 이야기들로 꾸며져 있어 비록 내가 책에 나와 있는 것과는 다르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내용이 제법 많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히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분야든 각자 자신의 재능이 있다. 재능이 없다고 포기하는 것은 그렇다고 아니다. 재능은 얼마든지 노력을 만들 수 있다. 또한, 해 보지 않으면 재능이 있는지 여부를 평생 모른다.

 

글 쓰는 것만큼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없다. 쓰고 싶으면 쓰고 싫으면 안 쓰고 쓰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쓰고 쓰기 싫은 내용이면 안 쓰고. 전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 글쓰는 작업이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가끔, 나도 내가 쓴 글을 보고 깜짝놀라기도 한다. 내가 이런 내용을 썼다는 것에 깜짝놀라서. 이런 경험은 가끔이지만 늘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구와 욕망이 팽배하다.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나라는 사람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한 부터 - 구체적으로는 쓴 글을 공개하고부터 - 글은 나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읽는 것이 먼저인지 쓰는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읽고 쓰는 삶을 통해 어제와는 다른 내가 매일같이 탄생하고 있따는 사실은 분명하다. 내 인생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글을 쓰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글로써 나라는 자아를 만났고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끊임없는 읽기로 보강하며 저절로 리뷰라는 매개체를 통해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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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
게르트 기거렌처 지음, 황승식.전현우 옮김 / 살림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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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된 책을 볼 때는 항상 출판된 년도를 보는 습관이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 온 시기가 아니라 이 책이 외국에서 출판 된 년도를 보면서 이 책에 대한 내용이 언제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선택을 받았는지를 보게 되는 것이다. 출판된 해가 오래되었으면 충분히 다른 책을 통해 비슷한 내용이 이미 우리나라에 전파되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왜 이제서야 이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생기게 된다. 좋은 책이라면 지금까지 번역되어 출판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도 들고.

 

책이 출판되고 10년이 넘어 우리나라에 선을 보였다. 그 기간동안 충분히 다른 책을 통해 비슷한 사례가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뒤 늦게라도 번역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중에 하나가 저자가 독일인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책들이 많이 번역되지 않았던 시기였고 최근에는 제법 많이 번역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내용을 읽다보니 비록 독일 사람이 지은 책이지만 미국 사례 중심으로 되어있고 저자도 주로 활동한 것이 미국이였다. 약간의 아이러니한 배신감을 느낀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숫자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숫자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거짓말이 될 수 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진실은 분명히 하나인데 진실을 표현하는 방법과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사람마다 천차만별이 나온다. 책에서도 언급한 죽음과 세금외에 확실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벤자민 플랭클린이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세금도 확실하지는 않다. 세금을 믿고 내면 안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경험으로 아는 것처럼 말이다. 피 할 수 없다는 것은 진실이지만.

 

세금마저도 확실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어떤 방법으로 숫자를 제시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숫자를 보고 거짓말을 믿고 진실이라 여긴다. 숫자를 어떤 식으로 가공해서 전달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같은 현상과 숫자를 보고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숫자 자체는 변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통계는 모르는 것을 알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어렴풋이 아는 것에 대해 명확한 상징을 보여주지만 통계가 바로 사람들을 속이는데 이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통계는 결코 사실은 아니다. 누가 어떤 의도로 숫자를 대입해서 통계를 가공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믿고 싶은 바를 믿게 만들어 주거나 믿음을 깨는 역할을 한다. 어느 누구도 그 통계가 사실인지 여부까지 따지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당연히 맞을 것이라 단순하게 믿는다.

 

통계를 함축해서 표현할 때 사람들은 더더욱 구체적인 것까지 보려 하지 않는다. 통계 자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지만 그 안에 너무 많은 것들이 생략되거나 배제되고 이야기하기 나름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지적을 받아도 얼마든지 빠져나갈 방법이 이미 그 통계안에 포함되어 있어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믿고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광고가 있다. '한국인 3명 중에 2명은 암으로 사망한다.' 신뢰할 수 있는 공인된 협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갖고 광고한다. 여기에는 생략된 것이 있다는 사실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는다. 한국인을 65세 정도로 나눈 후에 65세 전에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3명중에 2명이 될까? 65세 이후에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2명이 넘을까? 또한, 65세 전에 사망하는 사람이 3명중에 2명이 될까? 

 

의료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65세 전에 사망하는 사람이 3명 중에 2명이 되었을 것이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그런 경우는 갈수록 희박하다. 65세 이후에 암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의료기술의 발달로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일 것이다. 이처럼 '한국인 3명 중에 2명은 암으로 사망한다'는 진실이지만 너무 많은 것을 생략한 상태이다. 흔히 말하는 공포마케팅을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숫자로 속이는 행위인 것이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지라도 숫자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 백분율 자체는 결코 사람들을 속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백분율로 무엇인가를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인지부조화와 더불어 사고가 경직되면서 생각을 멈추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어버린다. 백분율을 계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믿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고 숫자로 나타낸다는 것은 믿음을 주는 행동이다.

 

문제는 백분율을 다루는 사람들조차도 백분율을 제대로 이해한 후에 이용하지 않고 자신에게 온 백분율의 숫자를 믿고 더이상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백분율이 아닌 숫자로 표기하면 된다. 100명 중에 10% 사람이라는 표현보다는 100명 중에 10명의 사람이라는 표현을 할 때 듣는 사람이나 표현하는 사람들이나 명확하게 머리속에 인식되고 계산할 수 있다. 이 책이 나온 것이 2002년도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명확한 숫자로 표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숫자를 보여줘서 사람들에게 신뢰도를 쌓고 믿음을 심어준다. 어느 누구도 직접 계산하려 하지 않는다. 골치 아픈 숫자로 다가온 통계는 숫자 자체가 거짓을 말하지 않았지만 이용하려고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사람들을 이용하기 편하면서도 설득하기 좋은 방법이 되어 버린다. 단순한 것을 단순하게 보여주기 위해 통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을 복잡하고 어렵게 보여주기 위해 통계를 이용하는 것이다.

 

개념에 대한 정의와 방법과 주장에는 큰 공감과 동의를 하면서 책을 읽게 되지만 이를 서술하는 방법은 다소 지겹고 장황하다. 약간은 번역의 문제도 있을 수 있겠지만 - 이것도 책에서 언급한 바로 그 이야기일수도 있다 - 핵심만 이야기하면서 넘어가도 될 부분을 너무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반복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좀 지겹다. 이미 알려줄 것은 다 알려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반복해서 언급하고 주장하고 검증하다보니 읽는 것에 대해 인내심을 느끼게 만들어준다.

 

유방암과 에이즈라는 두개의 큰 카테고리로 책의 3분의 2를 채워 넣으면서 서술되다보니 이미 답은 나와있고 그 이유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되돌이처럼 이야기되지만 그나마 남은 3분의 1은 간단하게 핵심적인 내용만 알려주고 있어 머리에 더 쏙쏙 들어온다. 극단적으로 본다면 1부와 3부만 읽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무엇인가를 권하는 사람도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숫자로 권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숫자를 믿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알기 쉬운 표현 방법을 통해 숫자를 이야기하면 서로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확실하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상태에서 결정을 할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표현한다면 일단 의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무엇인가 감추기 위해 어렵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그게 바로 숫자의 비밀이고 진실이며 확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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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이틀 ㅣ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 들녘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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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64'를 읽을 때 책의 저자인 요코야마 히데오가 예전에 평단은 무시했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 의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도 오르고 수 많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에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저토록 일본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을까에 대한 호기심에 주저없이 선택을 했다. 또한, 일본에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의 순위에 오른 작품은 대체적으로 재미있다는 경험치에 의해 읽기도 했다.

 

이 책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평론에서는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데 소설에서 왜 현실성을 근거로 평을 하는지를 모르겠고 더구나 추리 소설류의 장르에서 그런 것을 중시한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하기도 하다. 그렇게 읽은 책의 전체적인 평을 하자면 재미가 별로 없었다. 64가 초반에 다소 장황하게 펼쳐놓고 산만하게 전개되지만 뒤로 갈수록 반전의 묘미가 있었기에 이 작품도 그런 기대를 했다.

 

더구나, 읽다보니 책의 구성이 64랑 아주 유사했다. 경찰이 나오고 기자들이 나오는 방식이 작가의 패턴이라는 확신마저 들면서 읽었는데 뒤로 갈수록 반전의 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집중도가 떨어지고 대략적으로 눈치를 챌 정도였다. 추리 소설류를 읽을 때는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진행되는지가 가장 초점으로 봐야 하는 줄거리인데 초반에 얼핏 의심을 했던 것 중에 하나로 마지막에 가서 밝혀지며 맥이 풀리기도 했다.

 

책의 구성은 다소 색다르다. 보다 ,전지적인 작가적 관점에서 내용으로 전개가 되어도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 한 명이 극을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가는데 반해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여러 파트마다 작가가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켜 그들의 관점에서 극이 진행되게 만들었다. 이런 것은 여타의 책에 비해 다소 다른 이 책만의 독특한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가끔, 이런 류의 영화를 보게 될 때의 느낌가 유사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치매에 걸린 아내를 두 손으로 죽인 어느 경찰이 자수를 하면서 시작된다. 모범적으로 한치 흐트러짐없이 경찰생활을 했고 아들을 병으로 일찍 잃었지만 부인과 함께 오손도손 살다가 더이상 치매에 걸린 아내를 편안하게 보내주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러면서 다양한 인물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보고 내용을 전개하는 약간 색다르게 읽는 재미는 선사한다.

 

처음에는 현사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다루고 그 다음에는 경찰의 위신이 떨어질 것을 염려한 조작이라고 여기는 검사의 입장에서 사건은 다시 급물사을 타지만 유야무야되다가 이 사건을 변호하게 된 변호사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사건을 구성하고 재판으로 넘어가 담당 판사의 입장에서 사건의 의문을 아주 약간 추적한다. 끝으로 모든 재판이 끝나 교도소로 간 경찰을 맡게 된 교도관의 입장에서 마지막 내용이 그려진다.

 

어느 누구도 경찰이 아내를 죽이고 이틀동안 무엇을 한 후에 자수를 했는지를 밝히지 못하지만 굳이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 것은 확실하지만 경찰이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보거나 그의 행동을 볼 때 그가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 이외에는 꼭 밝혀서 재판에 보태야 할 이유가 없어 자연스럽게 종결이 된다. 스스로 이유를 결코 밝히지 않는다.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

 

끝내 그 이유를 밝히지 않는 경찰 행동에 대해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찾아간다. 그가 죽으려고 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어렴풋이 장기기증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의심을 했는데 그 이유랑 분명히 연결이 되어있었다. 물론, 그가 이틀 동안 했던 행동과 연관성은 있어도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지만 그는 마지막에 울면서 작품은 끝이 난다. 

 

작품은 딱히 긴장감도 없고 각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다루며 자신의 삶과 연관되어 바라보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묘사에서 경찰에 대한 측은지심이 발동해서 모두들 그를 보살피려 한다. 그가 1년 후에 죽겠다는 결심을 해서. 그런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인데 현실적이지 않은 것과는 상관없이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았다. 페이지가 짧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64는 비록 두껍기는 해도 재미있었는데 반해 이 책은 기대를 하기는 했어도 약간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 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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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한국사회 - 단지 공화국에 갇힌 도시와 일상
박인석 지음 / 현암사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책을 통해 잘 못 알고 있는 지식을 정정하거나 기존과는 다른 생각을 읽게 될 때 생각의 전환과 사고의 깊이가 넓어지게 된다. 한 쪽의 이야기만 듣는다면 불완전한 사고를 갖게 되고 오히려 잘못된 판단과 세계관으로 차라리 모르니만 못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아파트에 대해 의도하지 않게 지속적으로 다큐를 보고 책을 읽게 되었다. 투자로써의 아파트나 거주 공간으로써의 아파트가 아니라 문화사회 차원에서 아파트를 바라보는 관점을 보게 되었다.

 

아파트는 거주의 공간이지만 이미 온갖 욕망이 스며들어 있는 투자와 신분의 차이가 된지 오래다. 거주의 목적으로 보기보다는 투자의 목적으로 솔직히 바라보고 있는 내 자신도 알고 있다. 지금까지, 아파트를 살아 본 적이 없어 오로지 투자관점에서만 아파트를 바라보았는데 뜻하지 않게 아파트가 갖는 의미와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로 대변되는 사회에 대해 저절로 배우고 있다. 아파트는 단순히 사람들이 거주하는 건물로써의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복잡한 한국인의 본 모습을 응축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파트를 보면서 아파트가 문제라고 생각을 했을 뿐 그것이 왜 문제인지에 대해서까지는 깊게 생각하거나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굳이 알아야 될 이유가 없기도 하지만. 아파트가 문제가 아니라 단지가 문제라는 것이 '아파트 한국사회'에서 알려주는 내용이다. 아파트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우리에게만 있는 아파트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아파트는 있고 각자 자신들만의 아파트를 만들고 살고 있는데 유독 우리에게만 아파트가 다른 나라들과는 차별성을 갖게 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파트가 아니라 고민해야 할 지점은 바로 단지이다.

 

아파트가 높게 지어지고 담이 쳐져 외부와 차단되고 브랜드로 대변되는 차별성등이 전부 아파트가 문제가 아니라 단지라는 문제다. 아파트를 굳이 꼭 단지로 구성해야 할 이유는 없다. 외국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전부 단지로 지어져서 외부와 차단하고 높게 짓지도 않는다. 우리가 왜 이렇게 단지로 발달했는지에 대해 차곡 차곡 알려준다. 용적률등을 따져 볼 때 꼭 높게 짓지 않아도 얼마든지 같은 세대수를 만들 수 있지만 외부와의 차별을 두기 위해 높게 짓고 단지내에 각종 편의시설을 만든다. 국가에서 해 주는 것이 없으니 각자 자신의 단지내에서 모든 것을 가꾸고 꾸민다. 

 

단지로 만들다 보니 외부와의 차단이 생긴다. 멀쩡한 길이 이어지다 단지로 인해 끊긴다. 어쩔 수 없이 빙 돌아서 가야한다. 아파트라는 공동구간에 단지를 구분하는 벽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없는데 단지를 통해 외부와 구분하고 도시의 미관을 헤친다. 도시와 함께 조화를 이뤄 단지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우리 단지만 잘 만드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러니, 단지를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 단지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아파트 주민이지만 그들이 단지내에서 모든 것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공간이 비효율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의 아파트가 도시와의 조화를 통해 성장했다면 우리의 아파트는 단지를 통해 성장하면서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점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내것을 나누는 환경이 아니라 내것을 지키는 압축성장을 통해 아파트도 똑같이 나는 너와 다르다는 문화로 성장하게 된다. 타인이 단지를 돌아다니는 것이 불편하다. 동네 골목을 돌아다닐때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지만 아파트 단지내에서는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되어 다양성이 사라진다. 그것이 편리성과 안정성으로 대변되는 아파트를 만들었다.

 

정부로써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민간이 알아서 다 해주니 굳이 개선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어느덧 신분을 대변하고 타인과 구분하는 상징물로 아파트가 자리잡아 아파트는 단순히 살곳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곳으로 변했다. 대한민국의 중산층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아파트에 살아야만 한다. 그 아파트 내에서도 어느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또 다시 구분되는 신분차별이 현재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전부 민간이 한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고 했다는 독일학자의 말은 우리의 아파트를 이야기할 때 근본적인 문제점을 직시하는 말이다.

 

단지내에 살기 위해 더 높은 분양가와 관리비가 들어가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같이가 아닌 나만이라도라는 생각은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의식으로써 어느덧 자연스럽게 이렇게 실생활에서 자리잡은 모습이다. 별 것 아니라 이야기할 수 있는 아파트단지 문화가 만들어 낸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국가가 청약통장을 통해 면적을 획일하게 만들고 네모 박스와 같은 아파트만 만들어진다. 외국에 비해 유독 사계절이 존재하는 나라라서 남향을 선호하고 만들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존재해도 말이다.

 

게다가, 외국인들이 놀라는 것이 우리의 주택이 엄청 밝게 넓다는 것이다. 그 비밀은 바로 베란다(발코니)에 있다. 남향으로 짓기때문에 밝은 것도 있지만 베란다는 면적이 포함되지 않고 서비스 면적이 되어 넓게 보이는 착시현상이 나온다. 더구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분명히 똑같은 평수를 분양받는데 더 넓은 것은 바로 베란다라는 서비스 면적이 점점 넓어져서 그만큼 쓸 공간을 각자 쓰기 때문이다. 베란다는 공용적인 면적으로 외국은 전부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데 우리는 샷시로 전부 막아 방의 확장을 하는 기능으로써 역할한다. 이러니, 더더욱 아파트가 몰개성이 획일적인 구조가 나오는 것이다.

 

처음부터 우리의 한옥을 닮은 구조가 나온 것은 아니였다. 외국처럼 거실을 작거나 한 쪽에 있었는데 점점 가족을 중시하는 사회문화를 닮아가며 거실이 모든 방의 중심에서 꼭 거쳐가야 하는 현재의 구조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유없는 결과가 없다고 하는 것처럼 현재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공간도 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지금과 같은 구조가 되었다는 사실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면서도 어쩌면 이토록 우리 사회와 닮아 있는지 놀라게 된다.

 

할 수 밖에 없는 목적을 위한 1차 생활(생존), 시간 내서 일부로 하는 2차 생활(여가), 그 외에 공간을 3차 생활이라고 할 때 현재 3차 생활을 위한 공간이 너무 적다. 사람은 특정 목적을 위해서만 움직이고 걸어다니고 머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3차 생활을 위한 공간이 부족하기에 이 부분을 확충하자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고 법적으로 최저가의 설계가 선택되는 단점으로 인해 만족스러운 설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데 이걸 최고의 설계로 변한다면 우리의 건축도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멋있는 설계작품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공공 시설부터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우디와 같은 건축가가 나오지 않는 것은 인물이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사회, 문화의 영향이 크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렇게 아파트 문화가 발달한 것은 좁은 땅 덩어리라고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실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수도권을 위시한 몇 곳만 그런 사실이 맞아 떨어지지 실제로 외국에 비해 인구밀도가 높지만 신도시를 보더라도 결코 인구밀도가 높지도 않은데 타성적으로 아파트를 짓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책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는데 그치는데 반해 이 책은 그에 대한 대안을 확실하게 제안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읽어도 실천이라는 부분에 있어 한 두명의 의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안은 확실한데 실행여부에 대해서는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든다.

 

힘들다고 생각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작은 부분부터 실천을 해야 한다. 정부가 분명히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 그 똑똑한 인재들이 모인 곳에서 - 작은 부분부터 노력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언제까지 모든 것을 민간에게 떠 넘기고 관망하며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거나 민사라서 끼여들기 힘들다고 팔짱을 끼고 있을 것인가 말이다. 어쩌면, 아파트 단지 문화를 변경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사회를 변화시키는 밑거름이자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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