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 서울대생 1100명을 심층조사한 교육 탐사 프로젝트
이혜정 지음 / 다산에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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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그다지 관심이 가는 책은 아니다. 서울대나 하버드와 같은 단어가 들어간 책을 읽어보면 대체적으로 독자들은 좋아할지 몰라도 내용이 별로인 경우가 많았다. 결국에는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며 공부를 하니 너희들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실제로 책에 나온 내용과 다른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하버드 대학을 예로 들며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정작 하버드대학을 다녔던 졸업생 이야기를 들으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처럼 이 책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도 제목을 볼 때면 한국사회의 성적 지상주의를 이야기하는 책으로 읽혔다. 서울대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 요점정리를 하고 시험이 다가올때면 어떻게 체계적으로 공부해서 특출난 사람이 되고 높은 학점을 받는지를 알려주는 책으로 읽혔다. 하지만 그런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핵심은 서울대에서 고학점을 받는 친구들이 우수하다고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었다.


우리는 어느 학교에서나 고학점을 받는 학생은 무조건 우수하며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고학점을 받는 학생은 교수의 수업을 열심히 듣고 교수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캐치해서 과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치는 것은 맞다. 교수가 원하는 결과물을 제출하니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것도 맞다. 문제는 이런 학생들이 과연 사회에서 원하는 인재인가라는 부분에 있어 의문을 표시하는 책이다. 수용적으로 지식을 흡수하는 학생이 올바른 학생인가 여부는 다른 영역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고학점을 받는 학생일수록 수동적으로 주는 것만 받아들이는 스타일이다. 이것이 나쁜 것인가, 좋은 것인가는 분명히 토론과 논쟁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쫓아가는 전략으로 선진국까지 왔다. 아무것도 없던 시대에는 무조건 만들었고 다음으로는 무조건 흉내내서 품질을 높혔다. 이제 더이상 팔로우하는 자세가 아닌 선도하는 전략으로 해야 한다고 볼 때 한국 사회 교육구조에서는 힘들다.


그 이유가 바로 서울대에서 고학점을 받는 학생들을 통해 알려주는 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수업시간에 머리를 파 묻고 교수가 하는 모든 말을 받아적고 일체의 질문도 없이 교수가 원하는 결과만을 말한다. 이런 자세는 한국 사회 어느 곳에서나 익숙히 보는 장면이다. 지금까지 이런 전략은 빠르게 상대방의 지식을 습득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지 모르지만 자아가 없다고 할까. 지식 안에는 내가 없다. 모든 지식은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먼저 그 생각을 하고 발전시킨 것은 맞겠지만 아무런 비판없이 무조건 수용하는 것에는 발전이 없다.


이들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판단하건대 다른 생각과 의견이 있어도 그걸 표명하면 높은 학점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어느 누구도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밝히지 않고 교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쓴다. 결국에는 무조건 정답을 찾는 우리의 교육제도가 그대로 대학에서도 진행된다. 합리적인 의견 교환을 하고 다른 생각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며 자신의 생각을 더욱 발전시키지 못하고 주는 것만 받아들이는 학습이 바로 한국의 교육이다. 이 부분은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교육방법이다.

동아시아에서 유학간 학생들이 미국 학교에서 1,2학년까지는 고학점을 유지하지만 3,4학년이 되면 대부분 학점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미국 학교는 수업 자체가 교수가 일방적으로 떠들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교수는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서로 토론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교수의 수업내용을 다시 하는 복습이 중요하지만 미국은 진행할 수업내용을 미리 파악한 후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지 않으면 오히려 점수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서울대에서는 맨 앞자리에 앉아 교수의 수업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받아적지만 미국에서 어느 곳에 앉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이 다를지라도 개진하지 않으면 오히려 학점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한국 학생들의 태도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라 학생들의 수업 진행이 잘 못되었다고 한다. 서양은 공통적으로 진행되는 교안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대부분 학교가 1년 동안 학습할 분량을 잘 쫓아가지만 미국은 각 선생이 알아서 수업을 한다.


중, 고등학교는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대학마저도 공통적으로 진행할 수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수들이 알아서 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한다. 이걸 교수 탓만으로 할 수 없는 것은 교수들에게 강의는 교수자리를 유지하는데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알고 있는 지식을 혼자 떠들고 끝내는 것이 가장 편하다. 토론하자면 교수도 상당히 많은 노력을 해야만 한다. 이렇게 근본적으로 한국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제기를 하는 책이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이다.


이렇게 보면 암담하고 답답할 수 있지만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다. 책에서도 나온다.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얼마든지 수업방식을 변경할 수 있다. 책의 저자가 직접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낯설어하고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은 수강을 포기하기도 했는데 결국 최선을 다해 미국식으로 수업을 끝까지 마친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았다고 한다. 이 수업의 가장 큰 문제는 수치화된 점수를 받기 힘들기때문에 학생이나 부모가 불만을 가질 수 있다. 한국에서 이런 문제가 있어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극성스러운 학부모들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난리가 날테니.


이 책은 서울대 학생을 대상으로 했지만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한국사회의 문제와 맞닿아있다. 현재 한국은 하나의 전환점을 맞았다. 지금처럼 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을 수 있겠지만 지금 보다 더 잘 살기 위해 - 꼭 그래야 하는가라는 의문은 솔직히 있다 - 창의적인 인재를 만들어야 하는데 근본적으로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힘들다. 이건 한국 사회의 문화와 연결되어있다. 쉽지 않겠지만 학교에서부터 교육이 변하면 사회가 변할 수 있는 시작이 된다면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 교육 시스템이 좋다 외국 교육 시스템이 나쁘다 여부는 아니다. 대체적으로 전체가 일정 수준으로 교육을 통해 올린 성과는 부정할 수 없다. 미국의 교육 시스템은 전체를 끌어올리기 보다는 될 놈을 끌어올리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교육은 누구나 다 관심을 갖고 내 자식만큼은 이라는 생각으로 들여다보니 쉽지 않다. 그래도 변화를 모색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고 학부모들도 어느정도 인식하고 있는 중이라 본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서 나온 내용이 쉽지 않아도 접목해 보는 것이 어떨까한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일단 서울대라도 가야하지 않냐고?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교육이 변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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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배신
마크 쉔 & 크리스틴 로버그 지음, 김성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현대인은 그 어느때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을 살고 있다. 실질적으로 생존을 위한 노력을 과거보다 덜 해도 된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한 노력을 많이 해야 했지만 지금은 상당히 많은 부분에 있어 생존이 가능하다. 과거보다 덜 노력해도 되지만 인간은 과거에는 없던 다양한 문제들이 생겼다. 현대인에게 모든 질병의 근원이라고 하는 비만을 보더라도 현대에 들어와 생겼다. 스트레스로 인한 심적고통을 겪는 사람도 많아졌다.


과거와 달리 현대인은 너무 편안 삶을 산다. 하루종일 집에 머물러 있어도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온갖 볼거리가 가득 넘친다. 하고 싶은 것도 얼마든지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과거 사람들은 집에서 소일거리 없이 정말 시간을 때운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런데도 현대인이 오히려 더욱 지루해하고 심심해한다. 잠시도 무엇을 하지 않으면 무엇인가 불편하다고 느낀다. 멍하니 있는 것 자체도 못견뎌 할 정도로.


이처럼 우리 생활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편안해지고 있는데 우리는 점점 더 편안하지 않다고 여긴다. 공항장애와 같이 과거에는 다소 신경쓰지도 않았던 정신적인 질병이 현대인을 괴룁힌다. 이런 이유가 무엇인지 <편안함의 배신>을 알려준다. 더욱 편안해지고 편리해진 세상을 살고 있는 현대인은 왜 이토록 힘들게 되었을까. 너무 잘 먹어 비만이 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해 정신병에 걸린다.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질병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인간은 진화관점에서 인간은 생존과 종족번식이라는 두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이 책은 생존번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인간의 생존번식때문이라고 말한다. 비만 이되는 사람은 바로 생존본능이다. 이미 이 내용은 진화관점에서 익히 알려진 내용이다. 인간은 원래 먹고 싶은대로 먹을 수 있지 않았다. 먹을 것이 부족했다. 지금처럼 먹고 싶을 때 먹고 배고프지 않아도 먹을 수 있었던 시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굶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고 매 끼니마다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며칠 동안 한끼도 먹지 못할 때도 있었다. 늘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 음식은 무조건 채워 넣어야 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있을 때 뱃속에 넣어 에너지를 충전해야했다. 여전히 음식이 풍부해진 지금도 인간의 본능은 먹을 것을 마구 먹어야 채워진다. 생존이란 내가 살아야하는 본능이다. 이런 생존본능은 과거부터 인간에게 체득된 상태다.

굳이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먹으면서 생존하려 노력했던 본능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본능은 현대에 들어와서 쓸모없는 본능이지만 인간을 지배할 때가 온다. 이럴 때 인간이 굴복하면 비만이 되거나 공항장애가 오는 등으로 우리를 습격한다.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편안함은 오히려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불편함을 선물한다. 진정한 건강과 행복은 역경과 도전에도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느끼는 능력이다.


이것은 습관이 문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습관에 따라 불편함이 배가 되며 편안함을 추구한 댓가를 치룬다.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습관이 조건화된다. 트라우마가 그렇다. 과거에 경험했던 사건이 나를 지배한다. 그런 일이 반드시 똑같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데도 우리는 생존을 위해 피하려 한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며 과거에는 병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정신병이 생긴다. 엘렙베이터에 갇혀있던 경험으로 폐쇄공포증을 겪게 된다. 


평소에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 레드썬이 되며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정신작용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불편 그 자체가 아니라 불편을 관리하고 이로 인해 우리가 성장하는 것이다. 배가 고파 먹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어 먹는다. 배가 고플 수 있다. 오래도록. 그런데도 우리는 조금이라도 배가 고프면 참지 못하고 먹는다. 이런 패턴이 쌓이고 쌓이면 점점 위가 늘어나며 더 많이 먹어도 여전히 배 고픈 상태가 지속되며 비만이 된다. 배가 고픈 불편함을 적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스스로 불편을 관리해야 한다. 불편함을 받아들이며 관리하지 않고 피하고 편안함만을 추구하면 스스로 나약해지며 온갖 질병과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 빠진다. 편안한 상태가 자연스럽게 우리가 지극히 추구해야 할 방향이 아니라 불편한 상태가 지극히 올바른 상태다. 배가 고픈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상태다. 인간에게는. 이럴 때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불편함이 아닌 배가 부른 편안한 상태만 추구하니 온갖 문제가 생긴다.


책에서 나오는 내용은 흥미로웠고 수긍은 하지만 내용이 초반에 나온 것으로 전부다. 그 덕분에 읽는데 무척 오래 걸렸고 힘들었다. 꾸역 꾸역 읽기는 했는데 말이다. 한편으로는 인간이 벌써 현재 상태로 몇 천년을 살고 있는데 여전히 변역계의 지배를 받으며 영향하에 있다는 사실은 다소 의아하다. 행동경제학을 비롯해서 많은 실험과 조사결과 그렇다고 하지만. 나도 최근에 너무 편안함을 추구했는지 다소 살이 쪘다. 불편함이 당연한 것이고 배고픈상태가 맞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불편함을 조금 더 추구해야겠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초반 3분의 1까지만 읽어도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불편함을 받아들이자.


함께 읽을 책

http://blog.naver.com/ljb1202/220049751759

http://blog.naver.com/ljb1202/188946972

http://blog.naver.com/ljb1202/220447527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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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
그레고리 클라크 지음, 이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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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멸망할 것이라 예측했던 맬서스 예측처럼 인구는 비교도 되지 않게 늘어났다. 하지만 인류는 살아남았다. 이제 과다한 인구 숫자로 지구의 종말을 예측한 것과 달리 인구가 즐어들며 멸망을 예측하고 있다. 수 백년 동안 인류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지구의 미래는 우울하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렇다. 미래를 그린 영화는 어김없이 전부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사실 불행하지는 않다. 불행하다고 느낄진 몰라도.


이 책은 내 필터링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던 책이다. 책 추천에 관해서는 믿을 수 있는 홍춘욱씨 - 물론 추천한 모든 책을 읽지는 못한다. 어려운 것도, 취향에 맞지 않는 것도 있으니 - 가 올린 리뷰와 관련 글을 읽고 계속 노렸는데 절판이다. 우연히 도서관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럴 때 참 거짓말 살짝 보태 닭살이 돋는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한 기쁨이라니. 그렇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침 쌓아놓은 책 목록도 정리가 되었고.


생각보다 읽기 쉬웠고 흥미롭고 지루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의외로 이런 책이 재미있다. 재미없고 딱딱하고 따분할 것 같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를 넓혀주고 이해하지 못한 세계를 보여준다. 매일 역사에서 배우라고 하지만 역사책을 읽는 것보다 이런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되고 지금을 알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인간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반복된다는 것을 깨달을뿐이다. 우리는 지금 똑똑하다고 믿을지 몰라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살아가는 것은 다 똑같다.


총 3파트로 나눠 올릴 예정인데 그 중에 첫번째 파트를 써 본다.


인류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나 발견과 사조와 흐름이 많은데 그 중에서 산업혁명은 인류 역사에 있어 완전히 다른 세계를 출발시켰다. 한국 현대사에서 IMF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인류역사는 산업혁명 전과 그 후로 나눌 수 있다.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는 소득 불평등은 감소시켰으나 사회간 불평등은 증가했다. 산업혁명 전보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차이는 줄었다. 부자는 더 잘살게 되었어도 가난한 자도 이전과 비교되지 않게 먹고 살 수 되었다. 하지만 사회 불평등은 더욱 벌어졌다.


인간에게 소득은 생활수준을 결정하는데 그 어떤 사상이나 종교보다 강력하다. 사상과 종교가 생활수준을 높혀주지 못하지만 소득은 생활수준을 높혀준다. 1800년 전에 인구는 최저생계수준이상으로 살았다. 다같이 가난하긴했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살았다는 의미다. 맬서스가 예측한 세상은 인구가 늘어나 식량이 부족할 것이라 봤다. 인류는 계속해서 인구가 늘어나고 줄었다. 인구가 늘어나면 생활수준이 낮아졌고 인구가 줄면 생활수준이 개선되었다. 산업혁명 전까지는.


유럽인이 불결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이 사실 똥밭이었고 아무 곳에서나 대소변을 가리지 않았고 치마는 온갖 오물이 묻어 들고 다녔다. 루이 14세를 비롯한 당시 사람들은 목욕을 자주 하면 안된다는 상식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따로 화장실이 없으니 더러운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수가 발전했다. 반면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청결의식이 강했다. 화장실도 따로 밖에 있었다. 변을 모아 독을 제외하고 거름으로 쓸 정도였다. 그만큼 청결의식이 강해 사망률이 유럽인보다 낮았다. 재미있게도 이런 사실로 인해 동아시아보다 유럽인이 잘 살았다.


산업혁명 전 사회는 토지가 절대적인 소득을 결정하는 요소였다. 토지는 한정된 자산이다. 아무리 생산성이 높아도 일정 수준 이상을 산출할 수 없는 한계를 갖는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근면성실하며 노력하는만큼 얻을 수 있었던데 반해 이전에는 반대였다. 한정된 토지에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야했다. 무척이나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한정된 토지에 많은 사람이 농사를 지으면 일은 금방 끝난다. 남는 시간은 놀아야 한다. 결국 노는 사람이 많이  생긴다. 그래도 상관없다. 서로 서로 그래야 먹고 살 수 있다.


인구가 늘어나면 잉여인원이 생겨난다. 토지에서 산출되는 생산량은 한정되어 있으니 인구가 늘면 반드시 생활수준이 낮아진다. 이처럼 인구는 소득수준과 토지면적과 기술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인구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기술이 진보하더라도 인구만 증가하고 물질수준은 높아지지 않는다. 어차피 한정된 토지에서 산출량이 일정수준이상으로 높아지지 않으니 서로가 게을러질 수밖에 없다. 참으로 역설적인 상황이다.

1800년 이전은 이런 이유로 출생과 사망에 따라 생활수준이 결정되었다. 대체로 출생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당시에 출생은 그 변수가 없으면 대부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아가 태어난다. 출생 후에 이들이 오래 살지 못한다. 우리가 과거 평균수명이 적다고 해서 40세가 넘는 사람이 적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60~70세까지 살아간 사람도 많다. 영유아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시기를 넘어가면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갈 확률은 증가했다.


동아시아는 영양상태 불량으로 출산율이 유럽에 비해 낮았지만 이 부분이 생활수준을 크게 결정하지는 않았다. 출생률이 아닌 사망률이 결정적인 요소다. 1800년 이전에 유럽이 동아시아보다 살기 좋았던 이유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불결이 하나의 요소였다. 청결한 동아시아는 상대적으로 사망률이 낮지 않아 인구가 늘어나 한정된 토지에서 생산되는 물질을 나눠가지니 생활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외에도 1350~1600년에 유럽을 휩쓸고 지나간 흑사병은 유럽의 생활수준을 올려준다. 한정된 토지에 흑사병으로 죽은 인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급격히 올려줬다. 사과 하나를 3명이 먹어야 했지만 이제는 1명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 당시 영유아 살해관습은 생활수준을 역시 높혀주었다. 당시 영유아를 강에 버리는 등으로 간접적인 살해로 평균수명을 낮게 만들었고 과거 평균수명이 낮은 이유는 이렇게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한 숫자가 많았다.


1870년 전에 부자가 출산율이 높았다. 이미 한정된 상황에서 부자 자녀가 많아지면 이들은 상류계층에서 내려간다. 부자가 적었던 이유다. 100평 토지를 자녀 3명이 나눠 가지면 30평 정도다. 이제 부자에서 탈락한다. 이처럼 토지가 전부였던 시대에 발전이 더딘 이유였다. 이러다보니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인구재생산이 높아져 이들 자녀가 매우 급속도로 늘어나며 사회계층이 하향이동이 이뤄진다. 끊이없이 반복되며 부자가 증가하지 못한다.


지금도 여전히 지대는 최고의 부가가치다. 인세, 저작권료 등은 전부 현대의 지대다. 산업화 이전 영국 농경사회 지대비율은 30~40%였다. 18세기 중국은 50%였고 함무라비 시대 바빌로니아는 소득의 3분의 1이 지대였다. 전체적으로 대부분 사회에서 지대는 20~40%였다. 상당히 높은 비율로 지대는 가장 강력했다. 현대에 와서 거주비가 갑자기 높아졌거나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이런 현상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며 되풀이된다.


우리 예상과 달리 1914년 이전 영국에서 인플레이션은 2%를 초과한 적이 없다. 현대에 들어와서 인플레이션이 2%를 넘어 두자리까지 간 적이 있다. 그만큼 현대에 들어와서 급격히 경제수준이 높아지며 발전했다는 뜻이다. 이는 금리에서도 확인된다. 신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고리대금업이 발달했을 뿐이지 금리는 높지 않았다. 금리는 결국에 인플레이션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낮은 금리라고 말하지만 예전에도 많이 경험했다. 인류는.


현대는 과거에 비해 안전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다. 그렇다고 과거에 살인이 일상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살인이 시도때도 없이 벌어진것처럼 보이지만 13세기 중세 살인율은 1000명당 0.2명으로 0.7%였다. 14세기에 들어 살인율은 1000명당 0.12명이었다. 지금은 더욱 줄었다는 것이 통계로 알 수 있다. 인구가 늘어나 살인건수가 많아졌을 뿐 1,000명당 살인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인류는 계속 살기 좋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과거에 토지가 전부였던 시대는 정착농경 사회로서 기본적인 자본 형태는 주택과 토지와 토지에서 나오는 산출력이 전부였다. 계속해서 되풀이하지만 이것인 전부라 맬서스가 했던 예측은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계속해서 기술발전 없이도 자체적으로 자연스럽게 출생률과 사망률로 조절해왔다. 이런 사회가 이제 상거래와 생산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차츰 차츰 인구 재생산 능력이 경제적인 성공과 밀접한 연관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본 규모가 커진 덕분에 이제 현대인의 미덕이 된 인내심과 근면성에 충분한 보상이 마련되었다. 이제부터 글자를 읽을 수 있는 능력과 숫자 체계는 드디어 미래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미루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소비의 지연은 이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자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드디어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다가오며 맬서스가 예측했던 한정된 토지에서 산출되었던 생산 한계를 극복하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정신 차리고 읽어야 한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모르는 걸 알아가는 것은 즐거워.


함께 읽을 책

http://blog.naver.com/ljb1202/220445959169

http://blog.naver.com/ljb1202/220356061224

http://blog.naver.com/ljb1202/176808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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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대화법 -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커뮤니케이션
전용은 지음 / 보랏빛소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영업을 했다. 나와 맞지 않는다고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나도 동의했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 성격 자체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친근한 대화를 못한다. 그것도 상대방은 '그래 어딘 한 번 이야기 해 봐, 너한테 속아넘지 않을테지만.' 이런 태도로 나를 만난다는 내 착각은 더욱 힘들었다. 막상 내가 하고 있는 영업조직에서 실적이 좋은 사람은 꼭 언변이 뛰어나고 막힘없이 술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여러 영업 책을 보더라도 탁월한 화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 영업을 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상대방 말을 잘 들어주고 해야 할 말을 정확하게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조건이 있지만 대화만 보자면 그렇다. 나도 거의 10년 정도를 영업조직에 머물렀다. 영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성격대로 일관성있게 못했지만 배운게 있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해야 하는지를 어느 정도 깨달았다.


대화는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우리는 말 잘하는 사람을 대화 잘한다고 봐도 그다지 가까이 있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화란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연설이 아니다. 대화란 모름지기 나와 너라는 상대방이 있다. 혼자 떠들면 대화가 아니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상대방이 들어주고 상대방이 한 이야기를 내가 들어주며 서로 탁구공처럼 핑퐁하며 주고 받아야 한다. 그럴 때 서로 대화가 이어지고 즐겁게 이야기했다고 느낀다.


문제는 지인을 포함한 부담없는 자리가 아닌 회사다. 회사는 가족보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지만 가족은 아니다. 그들과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적절하게 밀고 당기기도 해야 하고 숨길 것은 숨겨야 하고 과장해야 할 것은 과장하며 끊임없이 나를 알리고 숨기고 각인도 시켜야 한다. 특히나 같은 동료나 부담없는 직원이 아닌 상사나 직속 부하등과 이야기가 더욱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다. 그들은 내 생각을 전부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회사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대화법>의 저자는 책을 읽으면 상당히 많은 직장을 다닌 것으로 보인다. 직장에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좌충우돌을 통해 뒤늦게 깨달았고 할까. 회사를 다니며 책에 나온 스킬을 써 먹은 것이 아니라 여러 회사를 다니며 깨지고 갈고 닦으며 대화 스킬을 깨달았다. 어떤 때에는 과감히 눈치보지 않고 상사에게 가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상사인데도 부하 눈치를 보며 이야기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회사에서 하는 대화는 일상적인 대화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런 대화를 해야 한다고 조목조목 분류하며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사례를 갖고 어떤 식으로 대화를 했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매 챕터마다 저자 자신의 경험이 녹아있다. 이런 책이 대부분 다양한 사례를 뽑아 설명하는데 반해 <회사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대화법>은 전부 저자 자신의 경험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만큼 책을 읽는 재미는 좋다.


저자가 취직을 하기 위해 했던 대화, 이직을 하며 했던 대화, 상사에게 대들며 했던 대화, 상사와 부하직원을 가교하며 했던 대화, 부하직원을 달래야 했던 대화 등. 워낙 다양한 경우의 경험으로 실질적인 대화를 보여준다. 직접적으로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대화를 하는 것이 올바르며 A부터 Z까지 실천하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알려주는 책은 나름 체계적이라 좋을순 있어도 솔직히 따라하거나 실천하지 않는다. 차라리 이 책처럼 자신의 사례를 보여주며 스스로 그렇구나 하는 책이 좋다.


특히나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성적인 판단으로 빈틈없는 논리가 아니라 공감이라 저자는 말한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따져 상대방이 할 말없게 만들어도 뒤돌아서면 논리따위는 필요없이 나에게 욕하게 마련이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공감하며 다른 전개를 펼치는 것이 좋다. 회사나에서 모든 사람이 어려워하는 재무직원에게 원하는 물품을 받아내는 내용처럼 말이다. 공감이라는 것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무조건 맞다라고 추임새를 넣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맞게 조용하거나 강하게 이야기해주거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만으로도 상대방과의 대화를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책은 상황별 이렇게 하라고 알려주는 책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굳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어느 곳에서라도 대화를 잘 하는 사람은 대접받고 서로 친해지려 한다. 나도 대화를 지금보다 훨씬 더 잘했으면 좋겠다. 나만 신나서 떠드는 대화가 아닌 함께 나누는 대화.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좀 더 체계적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상항별 대화를 잘 하고 싶다면.


함께 읽을 책

http://blog.naver.com/ljb1202/220501697603

http://blog.naver.com/ljb1202/220413235406

http://blog.naver.com/ljb1202/191059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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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국인 - 대한민국 사춘기 심리학
허태균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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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다 똑같다. 좀 더 들여다보면 인간은 각인각색이다.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고 다른 듯 같다. 같은 식구들끼리도 그렇다. 좀 더 확장해서 같은 인간이 모인 국가(민족)단위에 따라 다른 특성을 보인다. 이런 특성은 환경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나왔다. 그렇게 한국인은 한국인만의 특성을 갖고 있다. 단일 민족이라는 허상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인은 동아시아에 속하면서 각자 다른 성격의 특징을 갖고 있다.


아무리 부정하고 거부해도 이미 한국인으로 태어났다. 그 점을 피할 방법은 없다. 한국인이라도 책에서 말한 한국인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자란 사람을 지칭한다. 생각해보니 책에서 정확하게 한국인에 대한 정의는 내리지 않고 설명을 한다. 어디까지를 한국인으로 규정할 것인지도 꽤 중요한 부분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한국인은 현재 사춘기 시절을 지나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걸 사춘기라고 규정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한다.


한국인의 특징으로 주체성, 가족확장성, 관계주의, 심정중심주의, 복합유연성, 불확실성 회피를 들고 있다. 서양인이 볼 때 동아시아는 다 일본인으로 봤다. 심리학적으로도 일본인이 서양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과 연구를 함께 했기에 한국인에 대해 분석할 때도 똑같이 봤는데 맞지 않았다. 그동안 이런 점때문에 어려워했지만 이제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한국인은 한국인으로 조사한다. 한국인은 일본인과 미국인의 중간정도로 본다.


한국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주체성이다. 일본인 잣대로 한국인을 들여다보면 절대로 파악이 안 되는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다. 이 점은 오히려 미국인과 가깝다. 일본인이 개인주의지만 집단 속에서 조화를 추구하지만 한국인은 타인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집단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길 좋아한다. 그래서 자율권과 결정권이 주어지지 않으면 한국인은 무기력해진다. 그동안 한국은 제도와 법규와 메뉴얼이 부족해 마음것 주체적으로 했는데 이제는 힘들게 되었다. 여전히 윗 세대 리더들이 열심히 자신이 한 만큼 성취한 점을 갖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답답하고 이해를 못한다. 한국인의 가장 큰 특성인 주체성을 빼앗은 후에 자신들의 관점으로 바라보니 언발란스가 생겼다.


한국인은 워낙 주체성이 강하다보니 갑질을 하며 자신을 드러내야 하고 무슨 일만 생기면 다들 떼를 지어 몰려든다. 내가 여기에 있다고 외쳐야 하고 나라는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무슨 일만 있으면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한국인은 절대로 진심을 감추지 않고 마구 드러낸다. 여기서 가족 확장성까지 나타난다. 남미도 가족을 중시하지만 혈연가족만 중시한다. 한국은 가족이 혈연이상으로 확장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표현처럼.

가족이 아니더라도 이모, 삼촌으로 부른다. 국가 지도자는 가부장이다.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고 우리를 이끌어야한다. 단순 리더를 원하지 않는다. 무조건 가장이 사과를 하든 책임있는 말을 해야 속이 풀린다. 우리 편과 네 편으로 나눠진다. 가족이 확장되니. 대표팀은 우리의 아들, 딸이 된다. 이러다보니 조금만 친해지면 공식이 아닌 비공식을 요구한다. 우리 사이에..라는 표현과 함께. 저희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가 맞는 관계주의 한국인이다.


한국인은 많은 것들을 우리라고 표현한다. 같은 조직내에서도 관계가 더 중요하다. 그것도 수직화되어있으면서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단순히 수직화되면 내 역할만 잘하면 되지만 관계가 포함되다보니 저 사람보다 내 위치를 따지게 되며 체면이 중요하다. 부하직원이 나보다 먼저 진급하면 알아서 그만둔다. 일로써 서로 역할구분이 되지 않는다. 거대사회가 된 한국에서 이제는 관계주의로 통하지 않지만 여전히 한국인은 관계를 중시한다.


한국인은 무슨 짓을 했는지보다는 어떤 놈이 했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심정중심주의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말을 중요하게 보지 말고 말 이면에 있는 마음을 봐야 한다. 한 번 거절은 예의다. 그걸 알기에 또 다시 권한다. 상대방이 되었다고 해도 그 답이 진심인지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늘 의도를 알아채야한다. 나에게 한 행동이 어떤 의도였는지 알아야 화를 내거나 웃을 수 있다. 내 마음도 몰라준다고 말한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행동과 마음이 다르다. 참 힘든 국가다.


한국인은 고집스럽게 한 가지를 하는 것보다 다방면의 팔방미인을 선호한다. 다다익선처럼. 복합유연성때문이다. 한국인은 일관성있게 자신의 소신과 일치하는 행동을 오히려 싫어한다는 말도 한다. 때에 따라 유연하게 늘 대처하는 모습을 더욱 추구한다. 한가지를 특별하게 잘하는 스페셜리스트보다 제너럴리스트를 더 선호한다. 하나만 잘하는 사람을 낮게 본다. 여러가지를 다 잘해야 인정받는다. 나쁜 남자나 요부가 나에게 잘하는 걸 선호하는 심리와 같다.


한국인은 불확실성을 회피한다. 한국인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와 6.25를 거치며 생존을 위해 물질을 추구하고 성공지상이 되었고 결과만 평가하며 장기적인 전략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그가 갖고 있고 치장하고 있고 보이는 면으로 평가한다. 이런 점들은 불확실하지 않다. 누가봐도 명확히 들어난다. 진실여부는 둘째치고. 이러다보니 잘못 어긋나기 시작했다.


<어쩌다 한국인>은 심리학자가 풀어낸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인의 특징을 다른 국가와 - 특히 일본 - 어떻게 다른지 알려주고 한국인에 대해 심리적으로 알려주는 책이다. 첫번째인 주체성을 가장 강하게 동의했다. 뒤로 갈수록 꼭 한국인만의 특징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과한 측면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에 공감하며 읽었다. 심심한 천국보다 활발한 지옥을 더 선호하는 한국인답다고 할까. 이왕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서 살고 있으니 어쩌다 한국인이 되었지만 그래도 한국인으로 잘 살아가자는 지극히 꼰대스러운 말로 끝낸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다소 끼어맞추기도 있어 보인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한국인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읽는다.



함께 읽을 책

http://blog.naver.com/ljb1202/208290227

http://blog.naver.com/ljb1202/220193583603

http://blog.naver.com/ljb1202/201062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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