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연구소 이야기 - 세상에 없는 것에 미친 사람들
존 거트너 지음, 정향 옮김 / 살림Biz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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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를 발명한 바로 그 벨이 만든 회사가 운영하는 벨 연구소 이야기이다. 영어 원제로는 the idea factory라고 하는 걸 보면 벨이라는 회사보다는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만든 의미라 원제가 더 책 내용에 충실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출판되면 어필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어느 책에서 우연히 벨 연구소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그리하여 벨 연구소에 대한 알게 모르게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때 마침 이렇게 벨 연구소에 대한 이야기가 출판되어 읽게 되었다. 사실, 읽을까 말까 좀 고민이 되었다. 그다지 재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

 

재미가 있다는 것과 지식을 늘리는 것은 하등의 연관이 없다. 오히려 지식을 넓히는 책들은 재미가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책은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고 새로운 지식을 알게 해 주는 책이다. 특히 벨 연구소가 어떻게 미국을 발전을 이끌었고 기초과학에서 많은 영향력을 미쳤는지 알려준다. 그 이후로 전 세계에 미친 영향력까지.

 

벨 연구소는 상당히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 연구소이다. 그 쪽 분야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하고 단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상식만으로 보자면 벨 연구소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벨 연구소와 같은 연구소는 없었고 앞으로도 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책에서 언급한 벨 연구소는 미국에서 기초과학에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벨 연구소를 통해 온갖 새로운 이론과 기술이 발전되었다는 내용이라 어떤 것인지 궁금했는데 이 점을 이 책은 해결해 준다. 단순히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를 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벨 연구소가 활발히 연구를 했던 당시의 시대 상황도 감안을 해야 한다.

 

그 당시는 독점이 용납되었던 시대였고 이로 인해 얻은 이익을 부담없이 기초과학에 투자할 수 있던 시대였다. 이럴 수 있었던 이유중에 하나가 벨 연구소가 속한 AT&T가 통신분야를 독점하면서 정부와 밀착되어 상호간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서 서로에게 윈윈이 되다 보니 벨 연구소가 금전적으로 연구에 대한 실적부담없이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세상을 발전시키는 요소들은 각 개인의 노력으로도 가능하지만 우연찮은 요소들이 결합되어 이뤄진 경우도 많다. 당대에 벨 연구소가 아무런 부담없이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유일한 연구소인 점도 작용했겠지만 그 당시 가장 전도유망하고 지식적으로도 결코 뒤 떨어질 것이 없는 인물들이 연구소에 모이면서 서로간의 시너지효과를 불어일으킨 점은 벨 연구소의 성공요소에 가장 훌륭한 점이다.

 

대부분의 연구결과들이 꼭 원하다고 해서 이뤄진 것이 없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 처럼 이 책에 나온 다양한 연구결과와 이에 따른 기술의 발전들은 뛰어난 사람들이 함께 부딪치며 이야기하고 연구에 대해 서로 공유하며 발전시킨 결과로 보인다. 뛰어난 사람들중에서 또 뛰어난 사람들이 더 발전된 이론과 차원높은 가치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책에 나온 성공적인 발견과 기술의 발전들이 거의 대부분 1940년대에 걸쳐 있다. 그 이후로도 꽤 다양한 것이 나올 수 있었는지 몰라도 책에는 40년대 이후에는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 정도의 뛰어난 기술의 발전을 불러일으킨 요소는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독점이 무너지고 벨 연구소가 해체된 것도 있었고 뛰어난 인재들이 하나 둘 씩 연구소를 떠나며 시너지 효과가 사라진 것도 이유중에 하나로 보인다.

 

지금 우리가 많이 듣고 이는 트랜지스터가 바로 벨 연구소에서 만든 것이고 단순하게 전화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장거리에서도 상대방의 목소리가 시차없이 들을 수 있고 심지어 바다 건너서도 들을 수 있게 만든 기술의 발전이 다 벨연구소의 작품이다. 트랜지스터는 결국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전자,통신 분야의 발전을 이끌었던 시초가 된 계기가 된다.

 

트랜지스터로 현대문명이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엄청난 빚을 우리는 벨연구소에게 졌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다지 알라주지도 않는다는 비극을 갖고 있다. 책의 소중함은 바로 이러한 잊혀진 역사를 올바르게 알려준다는 것에 있다. 일부 학자들에게만 알려지고 만 역사의 일부로 되었을 지도 모르는 사실이 이렇게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회자가 되고 잊혀지지 않았다면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성공이란 생각이 든다. 나같은 사람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벨 연구소에서 엄청난 발견과 기술의 발전을 이룩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년에는 치매와 같은 병으로 고생했다는 사실은 어딘지 난감했다. 그렇게 똑똑하고 시대를 앞서는 지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말년이 비슷하다는 것이 조금은 측은한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대부분 왜 치매 - 치매의 종류도 다양하니 - 로 비슷한 마감을 했는지에 대해 궁금했다. 의외로 똑똑한 사람들이 치매로 많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 역시나 그것도 궁금하다.

 

우리나라는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없다고 한탄하고 걱정하는 의견들이 많다. 그런 경우 미국을 예를 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서 보면 미국도 벨 연구소가 독점조항이 금지되면서 실제적으로 거대한 벨연구소에서 작은 연구소로 해체되면서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가 적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미국도 벨연구소 이후로는 기초과학에 대해 이토록 방대하게 연구를 한 연구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여전히 많은 연구를 하고 있지만 갈수록 돈이 되지 않는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보다는 실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연구들만 하고 돈이 될 수 있는 연구들만 하여 진정한 기초과학에 대한 미래가 암담하다는 마무리를 볼 때 그럼 우리나라는?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책 서두에 한국 이름으로 된 소장이 추천사를 써서 한국에 있는 자회사인지 알았는데 현재 벨 연구소의 소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식 이름도 아니고 정확히 한국 이름으로 되어 있어 그 또한 어딘지 모를 아이러니를 느꼈다.

 

기초과학은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는 분야이다. 연구를 한다고 당장 특출나거나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아 기업에게 바랄 수 없어 보인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해 줘야 할 듯 한데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늘 노벨상에 목메달고 있는 우리의 실정에 볼 때 지금부터라도 기초과학에 조금씩 국가가 투자하고 일반인들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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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페이지 책 - 찢고 낙서하고 해체하는 발칙한 책 읽기
봄로야 글.그림 / 시루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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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다보니 책을 소개하는 책도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관련 책들을 보니 상당히 많은 책들이 나와 있는 것을 알게되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책이 쏟아져 나왔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니 그 중에서 선별해서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보인다.

 

될 수 있는 한 책을 직접 읽고 내가 생각한 것을 적으려고 하다보니 갈수록 내가 읽은 책에 대한 것은 읽어도 아직 읽지 않은 책은 일부러 그에 관련된 내용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읽은 그 느낌을 적어야지 다른 사람의 글을 읽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 생각에 전염되어 글을 쓸 때 반영될까하는 쓸데없는 우려때문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이 몇 천권도 아니고 수백만권도 넘을텐데 그중에 단 1%도 못 읽을 확률이 클테니 책을 소개하는 책을 읽고 판단하는 것이 좋은 이유는 그나마 책을 읽는 편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누군가의 추천을 통해 읽고 싶은 감정이 들어 읽게 될테니 말이다. 내가 이렇게 올리는 리뷰를 통해서도 사람들이 내 리뷰를 읽고 책을 집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기도 하다.

 

그러한 대부분의 책들은 한 권의 책이나 같은 분야의 여러 책을 소개하며 저자의 생각을 전달하거나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나 읽으면 좋은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해 준다. 어떨 때는 책을 읽는 것보다 그 사람의 리뷰를 읽는 것이 더 좋은 경우도 우습지 않게 있을 정도다.

 

'0페이지책'은 분명히 책을 소개하는 범주에 들어가는 책이지만 독특하고 참신하며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책이다. 예전에 책을 읽을 때 책 중에 괜찮다고 생각하는 문구를 따로 적어서 그에 관한 내 생각을 쓴 적이 있다. 완전히 새 책으로 보전하는 나로써는 그런 작업을 따로 워드로 쳐서 했다.

 

책을 읽는 좋은 방법중에 하나가 책을 읽다가 좋은 부분이 있으면 밑줄도 치고 여백에 자기 생각도 적으면서 읽는 것이라고 한다. 좋은 책은 굳이 밑줄 치지 않아도 저절로 읽으면서 잠시 책을 나도 모르게 덮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생각할 것을 주는 책은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저자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그런지 책을 피자마자 엄청난 정성이 쏟아진다. 활자중독까지는 아니라도 책을 책으로 보는 편이라 대체로 책에서 글을 읽는데 집중하고 그림은 소홀히 하는 편인데 이 책은 도저히 그럴 수 없다. 저자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들이 책 가득히 펼쳐지는데 무척 원색적이고 화려하다.

 

책을 읽으면서 중간 중간 나오는 그림에 페이지를 잠시 멈추고 찬찬히 보게 된다. 워낙 강렬한 그림들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보기보다는 집중해서 눈을 부랴리며 보게 된다. 솔직히 어떤 의미인지는 절대로 나는 알 수 없지만 그저 그림을 잠시 들여다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의미가 된다.

 

워낙 풀어쓰고 주절주절 하는 줄거리나 글에 익숙한 나에게 이 책은 상대적으로 어렵게 느껴졌다. 글만 읽으면 템포를 스스로 올릴 수도 있지만 수시로 나오는 그림으로 잠시 읽는 것을 멈추고 그림을 보기도 하고 저자가 읽은 책중에 특정 문구만 따로 소개하는데 이것도 예술이다.

 

단순하게 문구에 밑줄을 쳐서 기억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문구만 살리고 그 외에 글과 여백은 온통 그림으로 점철되어있다. 문구와 관련된 그림을 그리거나 문구와 상관없는 글들은 전부 문구를 돋보이기위한 도구로 만들어 저절로 그 문구이외에는 허락을 하지 않는다.

 

페이지를 아예 뜯어 만든 듯 한데 대단한 정성이 들어갔다는 것이 보인다. 일일히 하나씩 하나씩 글자를 그림으로 지우기도 하고 모든 글자를 배경으로 만들고 글이외의 여백에 오히려 문구와 관련된 그림을 그려 문구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솔직히 나같이 문자만 읽고 그냥 저냥 술술 글만 읽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방법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책 전체와는 전혀 상관없는 특정 문구만 보여주다보니 정작 소개한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게 된다. 이미 읽은 책은 어떤 내용인지는 알면서 저자가 자신에게 깊히 다가온 문구를 읽게되지만 읽지 못한 책은 그저 보여주는 문구만 알게 된다. 사실, 책에 대한 소개를 저자가 자신의 느낌이나 책의 주인공이나 주인공 친구가 되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는 하지만 워낙 개인적인 글이라 내가 저자가 말하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몇 작품을 소개하면서 저자가 느낌 감정이나 마음에 다가온 문구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그 문구를 보여주는 것이 다라서 작품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구일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 저자가 새롭게 그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라 이 책에서 소개하는 '찢고 낙서하고 해체하는 발칙한 책 읽기'라는 표현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표현이다.

 

이상하게도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이 책을 다시 한 번 집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만 먹으면 1시간에도 다 읽을 수 있는 책이고 찬찬히 긴 호흡으로 읽으면 일주일도 걸릴 책이다.

 

누가 어떤 마음과 생각에 따라 읽느냐에 따라 지금 본인이 처한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다가오는 정도와 깊이가 다라지는 책이라 보인다. 단순하게 책만 소개하는 책이라면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지만 워낙 독특한 책이라 다시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글자보다는 그림에 보다 집중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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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 / 갤리온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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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인간은 욕망을 갖고 있었다. 수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을 풀어주지 못했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욕망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욕망이란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할 정도로 인간은 욕망을 마음껏 풀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자본주의는 특별한 이론이나 사상이 아니라 인간의 지극히 근본적인 욕망을 풀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논리이다. 다양한 사상이 만나 자본주의로 결론난 지금 이토록 자본주의가 팽배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을 극한까지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욕망을 넘어 탐욕까지 게걸스럽게 탐내는 사람들에게도 탐욕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다. 그 최후의 결과는 각자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욕망을 자연스럽게 채워준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제한으로 인해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없었던 과거와 달리 자본주의는 자신이 욕심을 내고 노력하면 그 욕망을 채울 수 있고 욕심부리면 또 채울 수 있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지식과 재능과 욕망이 다르다보니 다시 보이지 않는 계급이나 신분이나 귀천이 생겼고 이런 것들이 반복되고 점점 고착되면서 자본주의의 폐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풀어 나갈 것인가는 향후 전 세계의 인류를 위한 중요한 과제이다.

 

전작이 단순하게 볼 때 갖고 있는 돈으로 한 번 전 세계를 여행하며 데스크에 앉아 숫자로만 보이는 돈이 아니라 실제로 오고 가는 돈을 벌어 볼 수 있느냐를 도전한 저자가 이번에는 자본주의가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 돌아다닌다.

 

숫자를 통해 돈을 벌던 사람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변질(??)된 것은 바로 인간이 인간을 만났기 때문이라 본다. 숫자에서는 보이지 않던 인간이 직접 현실에서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겪는 다양한 실생활을 접하면서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하게 된 듯 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가진 사람은 더 가질 수 있고 갖지 못한 사람들은 갈수록 갖는 것이 힘들게 되는 자본주의는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점점 같이 사는 세상을 전파하기 시작했고 기업들도 발 빠르게 트랜드에 적응하여 우리가 버는 돈은 단순하게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더 이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저자인 코너 우드먼은 우연히 공정 무역에 대한 의문을 갖고 정말로 공정 무역이 공정 무역인가에 대해 직접 발로 뛰어보기로 했다. 이전까지 순전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갖고 직접 뛰어든 이 책은 경제책이라기보다는 르포라고 하는 사회문제에 대해 고발하는 책에 가깝다.

 

실제로 공정이라는 문구를 삽입한 기업이나 단체가 진정으로 벌어들인 이익을 공정하게 분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겉으로만 피해를 주지않고 환경친화적으로 한다고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친환경이라는 이름으로 더 힘들어지고 위험해진 사람들에 대해 보여준다. 이들에게 공정이라는 단어는 알지도 못하고 그저 먹고 살기도 힘들뿐더러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것은 꿈에 가깝고 자신들이 살기 위해 하는 일로 인해 목숨까지 잃어야 하는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사람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는 다들 알고 있고 그들을 위해 꽤 많은 자본을 투입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니고 이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생색을 내기위한 대책으로 이 사람의 생활은 과거나 현재나 변함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이런 문제점을 지적한 후에 직접 이렇게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현지인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기업을 하나씩 찾아가서 그들이 어떻게 운영을 하고 있고 이 기업과 함께 농사나 일을 하고 있는 현지인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결코 이들 기업이 선행을 베풀겠다는 차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기업에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단편적이거나 찰나적인 이익을 보는것이 아니라 길게 보고 긴호흡으로 이들과 함께 갈 때 더 좋은 상품이나 생산물이 나와 궁극적으로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업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대안으로 제시한다.

 

책에 나온 오지(??)의 장소들에는 한결같이 현대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광물이나 농산물이 생산된다. 윤리적인 문제로 서양기업들이 물러난 자리를 중국인들이 들어와서 이전보다 더 위험한 방법과 이익을 취하고 있어 염려가 된다는 이야기에는 조금은 서양 편향적인 생각이 들어갈 수 있지만 결코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에 조금은 윤리를 플러스 시키고 있는 서양에 비해 동양은 무섭게 자본주의의 열매만을 먹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부분이 어쩌면 서양인은 그 욕망을 충족해 봤고 그 끝에 대해 이제는 다시 생각했지만 동양은 이제서야 욕망을 충족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충족하는 중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책에 그런 말이 있다. 서양인들은 우뇌를 이제 쓰려고 하는데 중국인들은 오로지 좌뇌만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 점이 바로 현재 문제라고 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좌뇌만 발달하고 우뇌가 발달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우뇌가 좌뇌만큼 커지면 그만큼 세상은 더불어 살게 되고 같이 좋아질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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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추구 2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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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도 지속적인 행복도 지속적인 슬픔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행복하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슬프다고 느끼면서 살아가지만 그 감정이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며 기쁜 날도 있고 슬픈 날도 있고 좋은 일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기도 하고 나쁜 일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인간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일도 많다. 노력을 하면 다 이뤄진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노력을 해도 되지 않는 것도 있다. 단, 노력도 하지 않고 안 된다고 하면 안되는 것이다. 적어도 노력은 실패가 될지라도 경험이라는 자산으로 남아 더 발전할 수 있다.

 

비록 인생의 마지막에 행복하게 마무리를 할 수도 있고 슬프게 마무리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장례식에 모여서 "그래도 참 잘 사셔는데 인생 마지막에 가서.."라고 이야기를 하거나 "참 고생 고생 하셨는데 마지막에 그래도 잘 되셔서"라고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우리가 나중에 그 사람을 추억할 때 마지막 모습과 상황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보고 판단하게 된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인생은 콕 꼬집어 이야기할 수 있을만큼 쉽게 제단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책의 주인공인 새라같은 경우에 소설속에 나오는 특정시기만 다뤄지고 있다. 그 시기를 행복한 시기로 볼 지 불행한 시기로 볼지는 다른 사람이 판단 할 수도 없고 오직 본인만이 판단하겠지만 본인 조차도 그 시기에 대해 불꽃같은 사랑을 했고 자신의 재능이 꽃을 피웠으니 행복하다고 할 수도 자신의 목숨만큼 사랑한 사람들을 먼저 보내 불행하다고 할 수도 없다.

 

인생 말미에 가서 과거를 추억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쁜 일도 기쁜 일도 모두 나중에는 추억으로만 남기 때문이다. 행복은 행복대로 불행은 불행대로 웃으면서 과거를 반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 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중에 하나이다.

 

소설속의 배경이 맥카시가 활동하던 시기라 미국의 불행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적이 아니면 아군이고 모든 걸 흑백논리로 제단하여 구분하던 시기이고 심지어 백이 되고 싶으면 주변에 있는 흑에 대해 무조건 불어야만 하던 역사적으로도 개인으로도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워낙 불신이 팽배한 시기여서 그런지 이 당시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 소설의 작가가 미국인이면서도 미국에 대해 좋지 않게 바라보기에 배경으로 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이 출판된 것이 워낙 오래되어 작가의 초기작이라 조금은 필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책을 끝까지 읽은 후에는 역시 더글라스 케네디는 이야기를 잘 엮고 보여주는 재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 거창하지도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특히, 일반 대중들이 어떤 결론을 좋아할지를 잘 알고 있고 이를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영악하고 슬기롭게 척척 풀어낸다. 우연성이 최대한 배제되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우리 인생에 대해 - 물론 우리도 우연성이 현실에서는 많이 작용한다 - 읽으면서 저절로 집중하게 만들고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더 궁금하게 만들어 읽을수록 내용에 빠져 집중하게 만들어 준다.

 

제목인 '행복의 추구'는 모든 사람들이 결국에는 각자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은 누가 숟가락으로 떠서 먹여주는 것이 아니다. 불행도 누군가 억지로 입을 벌려서 집어넣는 것이 아니다. 다 우리의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 그 결과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왕이면 불행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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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추구 1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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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광고에는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이라는 문구가 있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동물인지라 나도 모르게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지속적으로 여자의 일생의 느낌이 괜히 생긴다는 알 수 없는 편견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무려 2권이나 되는 소설이고 굳이 이야기하자면 통속소설이다. 장르소설과 작품성 있는 소설과의 차이는 모르지만 남들이 내린 구분에 의해 나도 동참을 하자면 분명히 이 소설은 로맨스 장르의 소설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구분과 상관없이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좋으면 족한것이라 여기지만.

 

1부 내내 답답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길게 내용이 전개될 필요가 있을까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사람은 미래를 기대하며 - 불행히도 미래를 기대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 현재를 살아간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어제라고도 불리우는 과거이다.

 

과거를 어떻게 지냈는지에 따라 오늘의 나는 달라진다. 어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오늘 내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행동이나 일을 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한 행동과 생각에 따른 결과물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종종 과거와는 전혀 상관없고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고 행동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감정이 이성을 누르고 활기칠 때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성적인 행동과 생각을 한다면 이 세상은 결코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성적인 사람만 가득차면 아무 일도 없이 하루 하루가 지나가겠지만 무미건조한 세상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 발전이라는 것은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 우리가 늘 곤란함을 겪고 어려움을 겪는 일들의 대부분이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 행동했을 때이다. 후회할 때도 기뻐할 때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감정은 우리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바로 이 감정을 갖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대부분 감정보다는 이성을 앞세워 모든 가치판단을 하지만 때때로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감정이 내 모든것을 지배할 때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이 아니라 기계이다. 다큐같은 것을 통해 볼 때 기계도 감정을 갖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그것은 감정을 갖고 있는 우리 인간이 감정이입을 해서 그런 것이다. 기계 자체는 감정을 갖고 있지 않고 가르칠 수도 없다.

 

'행복의 추구'는 1부에서만 보면 한 여자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다. 현실에서는 거의 드문 - 실제로 내 주변에서 이런 사랑은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기에 - 운명같은 하룻밤의 사랑을 통해 시련을 겪고 이에 대한 도피처 비슷하게 결혼을 하여 불행하게도 사랑과 정(외국에는 없는 감정이지만)을 구분하지 못해 파탄으로 끝이 났다.

 

그 이후 우연히 다시 운명같은 하룻밤의 사랑을 만나면서 1부의 내용이 끝난다. '인간은 자신도 이해 못하는 일을 저지를 때가 있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좋은 의미일 수도 있고 나쁜 의미일수도 있다. 책에서는 궁극적으로 좋은 의미로 쓰인다.

 

사랑은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랑에 빠지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해결 할 수 없다. '그냥 좋다'가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다. 설명할 수 있고 설득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조건인 것이다.

 

솔직히 책은 그다지 재미있다는 생각을 가지며 읽지는 않았다. 후반부에 들어 여주인공이 좀 자기 자리를 잡아가며 성공이라는 것을 하면서 어느덧 감정이입이 되어 조금씩 읽을만한 순간에 끝이 난다. 책에서 나온 말처럼 이 책의 배경은 1940년대라 그 당시 여자의 삶에대해서 이해하면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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