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연구소 이야기 - 세상에 없는 것에 미친 사람들
존 거트너 지음, 정향 옮김 / 살림Biz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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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를 발명한 바로 그 벨이 만든 회사가 운영하는 벨 연구소 이야기이다. 영어 원제로는 the idea factory라고 하는 걸 보면 벨이라는 회사보다는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만든 의미라 원제가 더 책 내용에 충실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출판되면 어필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어느 책에서 우연히 벨 연구소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그리하여 벨 연구소에 대한 알게 모르게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때 마침 이렇게 벨 연구소에 대한 이야기가 출판되어 읽게 되었다. 사실, 읽을까 말까 좀 고민이 되었다. 그다지 재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

 

재미가 있다는 것과 지식을 늘리는 것은 하등의 연관이 없다. 오히려 지식을 넓히는 책들은 재미가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책은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고 새로운 지식을 알게 해 주는 책이다. 특히 벨 연구소가 어떻게 미국을 발전을 이끌었고 기초과학에서 많은 영향력을 미쳤는지 알려준다. 그 이후로 전 세계에 미친 영향력까지.

 

벨 연구소는 상당히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 연구소이다. 그 쪽 분야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하고 단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상식만으로 보자면 벨 연구소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벨 연구소와 같은 연구소는 없었고 앞으로도 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책에서 언급한 벨 연구소는 미국에서 기초과학에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벨 연구소를 통해 온갖 새로운 이론과 기술이 발전되었다는 내용이라 어떤 것인지 궁금했는데 이 점을 이 책은 해결해 준다. 단순히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를 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벨 연구소가 활발히 연구를 했던 당시의 시대 상황도 감안을 해야 한다.

 

그 당시는 독점이 용납되었던 시대였고 이로 인해 얻은 이익을 부담없이 기초과학에 투자할 수 있던 시대였다. 이럴 수 있었던 이유중에 하나가 벨 연구소가 속한 AT&T가 통신분야를 독점하면서 정부와 밀착되어 상호간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서 서로에게 윈윈이 되다 보니 벨 연구소가 금전적으로 연구에 대한 실적부담없이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세상을 발전시키는 요소들은 각 개인의 노력으로도 가능하지만 우연찮은 요소들이 결합되어 이뤄진 경우도 많다. 당대에 벨 연구소가 아무런 부담없이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유일한 연구소인 점도 작용했겠지만 그 당시 가장 전도유망하고 지식적으로도 결코 뒤 떨어질 것이 없는 인물들이 연구소에 모이면서 서로간의 시너지효과를 불어일으킨 점은 벨 연구소의 성공요소에 가장 훌륭한 점이다.

 

대부분의 연구결과들이 꼭 원하다고 해서 이뤄진 것이 없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 처럼 이 책에 나온 다양한 연구결과와 이에 따른 기술의 발전들은 뛰어난 사람들이 함께 부딪치며 이야기하고 연구에 대해 서로 공유하며 발전시킨 결과로 보인다. 뛰어난 사람들중에서 또 뛰어난 사람들이 더 발전된 이론과 차원높은 가치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책에 나온 성공적인 발견과 기술의 발전들이 거의 대부분 1940년대에 걸쳐 있다. 그 이후로도 꽤 다양한 것이 나올 수 있었는지 몰라도 책에는 40년대 이후에는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 정도의 뛰어난 기술의 발전을 불러일으킨 요소는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독점이 무너지고 벨 연구소가 해체된 것도 있었고 뛰어난 인재들이 하나 둘 씩 연구소를 떠나며 시너지 효과가 사라진 것도 이유중에 하나로 보인다.

 

지금 우리가 많이 듣고 이는 트랜지스터가 바로 벨 연구소에서 만든 것이고 단순하게 전화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장거리에서도 상대방의 목소리가 시차없이 들을 수 있고 심지어 바다 건너서도 들을 수 있게 만든 기술의 발전이 다 벨연구소의 작품이다. 트랜지스터는 결국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전자,통신 분야의 발전을 이끌었던 시초가 된 계기가 된다.

 

트랜지스터로 현대문명이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엄청난 빚을 우리는 벨연구소에게 졌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다지 알라주지도 않는다는 비극을 갖고 있다. 책의 소중함은 바로 이러한 잊혀진 역사를 올바르게 알려준다는 것에 있다. 일부 학자들에게만 알려지고 만 역사의 일부로 되었을 지도 모르는 사실이 이렇게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회자가 되고 잊혀지지 않았다면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성공이란 생각이 든다. 나같은 사람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벨 연구소에서 엄청난 발견과 기술의 발전을 이룩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년에는 치매와 같은 병으로 고생했다는 사실은 어딘지 난감했다. 그렇게 똑똑하고 시대를 앞서는 지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말년이 비슷하다는 것이 조금은 측은한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대부분 왜 치매 - 치매의 종류도 다양하니 - 로 비슷한 마감을 했는지에 대해 궁금했다. 의외로 똑똑한 사람들이 치매로 많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 역시나 그것도 궁금하다.

 

우리나라는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없다고 한탄하고 걱정하는 의견들이 많다. 그런 경우 미국을 예를 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서 보면 미국도 벨 연구소가 독점조항이 금지되면서 실제적으로 거대한 벨연구소에서 작은 연구소로 해체되면서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가 적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미국도 벨연구소 이후로는 기초과학에 대해 이토록 방대하게 연구를 한 연구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여전히 많은 연구를 하고 있지만 갈수록 돈이 되지 않는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보다는 실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연구들만 하고 돈이 될 수 있는 연구들만 하여 진정한 기초과학에 대한 미래가 암담하다는 마무리를 볼 때 그럼 우리나라는?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책 서두에 한국 이름으로 된 소장이 추천사를 써서 한국에 있는 자회사인지 알았는데 현재 벨 연구소의 소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식 이름도 아니고 정확히 한국 이름으로 되어 있어 그 또한 어딘지 모를 아이러니를 느꼈다.

 

기초과학은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는 분야이다. 연구를 한다고 당장 특출나거나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아 기업에게 바랄 수 없어 보인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해 줘야 할 듯 한데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늘 노벨상에 목메달고 있는 우리의 실정에 볼 때 지금부터라도 기초과학에 조금씩 국가가 투자하고 일반인들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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