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시대 -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와 만나다
김용규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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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김용규의 책을 우연히도 보름동안 두 권을 읽게 되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였는데 그렇게 되었다. 첫번째로 읽은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은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 '생각의 시대'는 그런 기억이 남아있었기에 쉽지 않은 책이라 생각하며 읽었지만 어느정도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다. 첫번째 책은 신에 대한 책이고 이번 책은 인간에 대한 책이라 할 수 있는데 불행히도 나는 신보다는 인간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던 듯 하다.

 

신에 대한 이야기는 비록 쉽지는 않아도 이해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모르는 용어들은 어쩔 수 없어도 전체적으로 흐르는 큰 개념과 줄거리는 잘 쫓아 갈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은 모르는 용어도 많이 나왔고 전체적으로 흐르는 큰 개념과 줄거리는 잘 쫓아갔지만 군데 군데 구멍이 난 것은 어쩔 수 없다. 생각해보니 어릴때부터 종교적인 환경이었고 꼭 기독교가 아니라도 다양한 종교의 이야기를 접하고 읽었기에 큰 어려움 없이 쫓아 간 듯 하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개인적으로 철학쪽 분야가 약한 것도 있겠지만 저자의 주 분야인 신이 아니라 다소 어렵게 글이 나온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도 해 본다. 그보다는 내 수준의 얇음이 문제지만.

 

책 제목이 '생각의 시대'이다. 지금 현재가 생각의 시대인지 과거 언제를 생각의 시대로 한 것인지는 표지에 명확하게 나온다.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단다. 디지털 치매라는 이야기가 나올정도로 현대인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분명히 과거의 사람들보다 현대인들은 훨씬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다. 현대인이 과거로 가서 이야기를 해도 별 무리가 없지만 과거인이 현대로 오면 이야기를 전혀 못알아들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지식과 정보라는 차원에서 볼 때 과거에 비해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해낸 인류는 역설적으로 지식과 정보의 과잉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어느 누구도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똑바르고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그들마저도 모든 지식과 정보를 전부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절름발이라는 표현은 실례일 수 있지만 어느정도 절름발이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지식인의 한계다. 지식인들이 인문적인 지식과 정보가 넘쳐난다고 해도 과학에서 출발하고 있는 엄청난 정보가 지금도 꾸준히 새롭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 이를 게을리하면 그 즉시 시대의 흐름에 도태되고 만다.

 

그 이유는 인문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고 철학은 사람의 생각에 대한 이야기인데 과학이 발전하며 예전 철학에서 이야기했던 많은 생각으로 떠들고 그럴 것이라 추측했던 부분들이 하나씩 하나씩 과학적으로 발견하고 반증되어가고 있다. 인간의 뇌에 대해 생각으로 그쳤던 철학자들의 분야가 가설을 통한 실험과 fMRI등을 통해 인간의 뇌를 들여다보는 수준으로 발전하며 철학의 자리를 대신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 심리학은 어느새 철학의 위치를 위협하고 있다.

 

갈수록 사람들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노촐되는 다양한 정보에 치여 전부 소화하지도 못하고 씹을 틈도 없이 통채로 넘기고 있다. 씹지도 못하고 넘어간 지식과 정보들은 영양분이 될 시간도 없이 전부 항문으로 나오고 있다. 과다한 음식섭취가 영양분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지방으로 변해 인간의 모습을 변해버리는 것처럼 이런 지식과 정보는 인간을 똑똑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일정 이상의 지방처럼 쓸데없다. 지식마저도 전혀 필요도 없는 연예인의 시시콜콜한 가십거리까지 포함되어있으니 더더욱.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서다. 아는 것이 없으면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게 된다. 인간이 지금처럼 엄청난 지식폭발을 한 것이 바로 아는 것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에 대한 생각을 하는 인간들이 점점 많아지면서다. 고대시대에는 지식보다는 본능적으로 움직였고 먹고 사는데 급급했다. 지식이라 할 말한 그 무엇인가가 있지 않았다. 이러한 인간은 어느순간 동물을 완전히 지배하고 지구에 진정한 주인이 될 정도가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 생각이라는 도구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생각의 시대는 동양은 배제하고 서양위주로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그리스시대에 집중을 한다. 최초의 지식은 보편성을 획득하기위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다 통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보편타당한 개념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지식이 발전하여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동물이 어떤 것을 발견해도 자신만 알고 끝이 나지만 인간은 이를 누가 봐도 알 수있도록 보편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지식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 후에 동양은 종교와 도덕이 발달하지만 서양은 학문과 예술이 발달했다. 서양의 과거로 들어가 지식과 생각에 대해 탐구하는 여정이 그래서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약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동양도 충분하게 학문과 예술이 발달했다. 전 지구적으로 서양이 득세를 하고 있어 서양의 문물들이 현대인들에게는 필수적인 지식으로 보편화되었을 뿐이라고 보는데 인도, 중국만 하더라도 과거에는 엄청난 사상이 있어 전부 다 알기에 힘들정도라고 보는데 이런 부분에서는 너무 획일적인 잣대로 본 것이 아닐까 한다.

 

책에서 중요한 개념이 많지만 그 중에서 핵심적인 개념이 '개체발생이 계통발생을 반복하다'이다. 아주 작은 지식이 발전하여 생각을 만들고 이를 통해 인류가 발전했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최초의 지식은 범주화라고 할 수 있다. 흔히 패턴이라고 많이 표현하는데 우리가 보는 많은 것들을 특정 범주로 집어넣고 이해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호랑이, 치타, 표범등을 같은 범주로 우리는 인식하고 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들도 같은 범주로 묶어 이해할 때 보다 이해가 편하고 설명하기도 쉽고 받아들이기도 쉽다. 이를 위해 인간은 범주화를 하는 특성을 갖게 되었는데 이 범주화로 인해 인간은 끊임없이 실수를 한다는 점은 책에서 언급되지는 않는다.

 

서양에서 생각의 출발점은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리스를 비롯한 철학자들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 호메로스의 작품들이 바로 서양의 생각의 출발점으로 본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우리들도 알고 있는 트로이의 목마가 나오는 이야기인데 일리아스를 통해 보편화와 범주화를 서양사람들이 터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알게 되었는데 호메로스는 꼭 한 명이 아닌 당시에 떠돌던 이야기를 묶은 이야기라고 하는데 저자는 그쪽으로 본다고 한다.

 

서양에서 지식이 발전하여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들을 본격적으로 펼친 인물들은 그리스 철학자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철학자라 불리지만 당시의 철학자들은 뛰어난 지식을 갖고 생각을 거듭하여 과학자이자 의사이자 법전문자가이자 모든 분야에 통달한 사람들이다. 이 철학자들 덕분에 현대의 인류가 지금처럼 발전하고 발달된 문명을 이룩하여 살아갈 수 있었다고 본다. 꼭, 그 철학자들만의 공로는 아니겠지만.

 

생각이 처음 펼쳐진 시대로 돌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려준 후에 생각을 하기 위해 5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그것은 '메타포라(은유)' '아르케(원리)' '로고스(문장)' '아리스모스(수)' '레트리케(수사)'이다. 이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하는지 보여준다. 이 부분은 단순히 이렇다고 알려주는 것을 넘어 자신의 자녀들에게 적용하면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다고 하는데 아예 이 책을 자녀 교육서로 읽히는 것도 좋아 보였다.

 

어정쩡한 자녀 교육을 알려주는 책에 비해 현재 유행하고 있는 인문을 접목한 제대로 된 인문적인 고찰을 통한 자녀교육이라 보였다. 이미, 과거의 선현들이 적용하고 전수한 방법이니 괜찮아 보였고 현대에 어떤 식으로 적용할 것인지도 알려줘서 꼭 자녀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적용해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였는데 그 중에서도 글을 쓰고 책을 펴내고 있는 내 입장에서 참고가 되는 글이 참 많았다. 한 마디로 그 전에는 이론적인 부분은 전혀 감안하지 않고 글을 썼다면 내가 쓴 글들이 저런 이론적인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뒤늦은 앎이 왔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생각의 폭발적인 발전은 말이 아닌 로고스(문장)라 불리는 글에 의해서다. 이런 이유로 생각의 시대를 개인적으로 글이라는 타이틀로 소제목을 적었다. 사라지는 말을 보전하기 위해 외워서 후대에 넘겼다면 글이 생기면서부터 보다 확실하게 정확하게 생각을 후손에게 넘길 수 있었고 보다 많은 지식을 전달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말이 아닌 글이 나를 폭발적으로 발전시켰고 지식을 확대, 확장시키고 스스로 생각이라는 지점으로 넘어갈 수 있는 영역까지 이르렀다.

 

문맹인 사람들에게 실험을 한 결과 보편화와 범주화에 어려움을 겪고 회피하는 것을 보여줬고 이들에게 약간의 힌트를 주면 이들도 그 즉시 보편화와 범주화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것을 보면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은 인간이 인간이기를 나타내는 유일한 도구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을 줄 알고 쓸 줄 아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생각이라는 지점까지는 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마저도 생각이라는 영역에서 무엇인가 감히 외치지 못하지만.

 

'생각의 시대'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래도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치고는 쉽게 설명한다. 김용규라는 저자의 내공이지 않을까 싶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내는 능력이 진정한 능력인데 사람들은 어려운 것을 어렵게 이야기해야 능력자로 보고 쉽게 이야기하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한다는 폄하를 한다. 나도 그런 폄하를 많이 당한다.(내가 능력자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지 여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흥미롭게 지적 탐구를 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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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인생의 기회에 눈떠라 - 당신이 겪게 될 사회생활의 진짜 이야기
유재완 / 북아이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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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성격이 약간 모호하다. 에세이같기도 하고 자기계발같기도 하고 동기부여로 볼 수도 있는 책이다. 책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지가 은근히 중요하다. 한정되어 있는 시간에 특정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독서라는 것이 특정 목적과 목표를 갖고 있어야 할 필요는 반드시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책을 읽는 시간은 꽤 소중하다. 독서라는 게 상당히 많은 집중을 필요로 한다.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다른 것을 포기하고 읽을만큼 나에게 무엇인가를 준다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은 독서에서 커다란 울림과 깨달음이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겠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희박하고 각자 책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읽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제 인생의 기회에 눈떠라'는 얼핏 볼 때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부분에 대해 다소 막연하고 금방 들어오지 않을지 몰라도 나보다 먼저 살아간 인생 선배가 커피숍에서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이야기해주는 느낌의 책이다.

 

아마도,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책이 '아프니깐 청춘이다'이다. 특히,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에게 그 세대를 경험한 선배로써 자신의 진솔한 경험을 전달하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자신이 엄청나게 성공한 선배로써 너희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과 훈계가 아니고 '나도 다 알고 있어'류의 대안없는 힐링도 아니다. 분명한 대안을 청춘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선배로써 필요한 이야기를 한다.

 

청춘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걸 인연, 도전, 창의, 분노, 늦춤으로 나눠 알려준다. 아마도, 청춘들에게 이러한 개념을 알아야 하고 사회를 나가서 만나고 부딪치는 것들을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구분같다. 젊음은 모든 것을 녹일 정도의 열정과 정열을 갖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사회에서는 딱히 활용도가 낮은 것이 사실이다. 일을 시켜도 마음놓고 맡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청춘들도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도 있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것 펼치고 싶지만 세상은 알아주지도 않고 인정하려 들지도 않는다는 서운함도 있을 것이다. 일단, 시켜주면 잘 할 자신이 있는데 누구도 찾지 않는다는 자괴감은 항상 마음을 짓누른다. 윗 세대에서 바라보는 것과 자신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과의 괴리감이 꽤 크게 존재하다보니 이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10년의 법칙을 이야기하는데 저자는 3년의 법칙을 이야기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3년이라는 기간동안 노력하면 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돈을 받느냐 수입이나 수익이 있느냐의 차이다. 프로는 돈을 벌어야 한다. 3년이라는 시간정도만 투자하면 얼마든지 프로가 될 수 있다. 프로가 된다는 것은 꼭 1등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프로는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프로 선수들은 돈을 받으면서 활동하기에 프로다. 그 중에는 정점에 서 있는 사람도 있지만 1등이라 아니라도 프로라면 돈을 벌 수 있다. 돈을 벌 수 있으면 된다. 누구나 다 1등으로 노리지만 모든 사람이 전부 1등이 될 수는 없다. 그래도 프로는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 정도면 된다. 프로로써 돈을 벌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앞 길을 헤쳐나갈 수 있다. 그것이 중요하다. 1등이 1억을 벌면 꼭 1등이 아니라도 5,000만 원만 벌어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좋은 기업에 취직한 선배들이 40~50대가 되어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일을 구하고 창업을 한다.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기업에서는 꺼리기 때문이다. 어차피 맨 땅에 헤딩을 해야 한다면 한 살이라도 젊은 20~30대에 하는 것이 훨씬 좋다. 최소한 기업 입장에서는 맨 땅에 헤딩한다는 패기라도 좋게 볼 수 있는데 지금의 젊은이들은 이런 맨 땅에 헤딩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단순히 규격화된 취직을 하려고만 한다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청춘의 패기와 도전이 사라진 사회는 문제가 있다. 청춘의 특권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실패할 두려움 같은 것은 신경쓰지 않고 도전을 하는 것이 청춘이 갖고 있는 유일한 특권이라 할 수 있는데 점점 사회의 활력이 사라지면서 청춘의 특권이 없어진다면 그 사회는 미래가 없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패기와 도전정신으로 문을 두드리는 청춘들이 있기에 미래가 암울하지 않지만 갈수록 안전을 지향하는 청춘들이 많아지는 것을 볼 때 우려스럽다.

 

'이제 인생의 기회에 눈떠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인생의 기회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누구도 대신 인생을 살아주지도 않고 힘들고 어렵다고 함께 공감해주지도 않는다. 더구나, 함께 공감한다고 변하는 것은 없다. 오로지 자신이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 하는 인생이다. 어차피, 살아가야하는 인생이라면 청춘답게 씩씩하게 몸으로 부딪치면 좋을 듯 하다. 최소한, 실패해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청춘이라고 난 생각한다. 아무리 못하고 못해도 책임져야 할 가족은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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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면 풍경 -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르고, 일본은 한국을 너무 잘 안다
유민호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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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게 듣는 단어가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바로 일본을 지칭하는 단어다. 중국은 그런 표현을 하지 않는데 유독 일본에만 그런 표현을 한다.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나라다. 서울에서 비행기로도 1시간정도면 간다고 하니 국내 가는 것과 비슷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나라다. 그만큼 가깝지만 심리적으로 가깝지 못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 있는 관계는 이로울 것이 없다. 완전히 평등한 관계란 것은 없지만 적당히 서로 주고 받는 관계가 지속될 때 그 관계가 오래도록 유지된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한 쪽은 착취를 하고 한 쪽은 착취당하는 비정상적인 관계지만 유지 되었던 것은 한방향으로 얻을 것을 얻기만 해도 힘의 역학관계에서 유지 될 수 있었던 시대였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약간 얻는 편에 속한다.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주는 관계라면 지금과는 다른 관계로 변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주기보다 받는 것이 더 많은 관계가 일본과 한국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이러다보니 아쉬울 것이 좀 더 많은 우리에 비해 크게 아쉬울 것이 없는 일본은 우리의 요구조건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서로 적당히 공생관계로 문화, 산업전반적으로 협력을 하지만 우리보다 좀 더 앞선 기술과 인구는 아무래도 우리가 더 아쉬운 것이 많은 실정이다. 많은 부분에서 일본을 따라잡았다고 해도 부족한 부분이 존재하고 그 부분이 더 크다는 점까지는 애써 외면하고 무시하지는 말아야 한다.

 

멀리서 얼핏 보면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한국인과 일본인은 구분이 안 되지만 미세하게나마 차이가 느껴지는 것만큼 일본과 한국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일본은 우리를 너무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일본은 잘 모른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실제로 그런지는 확실하지 않다. 세계 곳곳에서 많은 분야에서 우리와 겹치는 지점이 많은 일본을 끊임없이 부딪치며 극복하려고 노력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일본을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워낙, 방대한 양의 기록을 남기는 일본의 꼼꼼한 체계에 그런 심정은 이해되지만 일본은 우리의 2배가 훨씬 넘는 인구를 갖고 있다. 그만큼 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록을 남기니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미래지향적이 되어야 하는 한일양국은 늘 과거사 문제로 일정 수준을 넘어가지 못한다. 늘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들이 심정적으로 만족하는 액션을 취해야 하는데 금전적인 액션으로 모든 것을 끝났다고 하니 우리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하고 우리 스스로 살기 위해 내린 방편의 업보이기도 하니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어려운데 늘 그놈의 정치가 문제다.

 

일본에 대해서는 참으로 많은 책과 다큐와 영화와 문화와 뉴스를 통해 우리는 접한다. 대표적으로 혼네와 다테마에라고 한다. 본심을 숨긴다는 나쁜 뜻으로 이야기한다. 좋게 보면 어느 상황이든 늘 친절하다는. 우리가 정과 한의 민족이라면 말이다. 이 책인 '일본 내면 풍경'에서는 공기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분위기'라는 뜻인데 일본에서는 특정인물의 지시로 무엇인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공기가 지배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도 누군가의 지시로 작전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지배하는 공기로 작전이 이뤄져서 정작 전범 처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중요한 6명의 인물이 천황과 회의때도 누구도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아 천황이 결정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수 있나하는 생각도 든다. 군대라는 조직에서 누군가의 지시없이 작전이 이뤄진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아 그렇다. 저자는 그렇다고 하는데.

 

책은 일본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책의 내용은 일본에 대해 알려준다기 보다는 일본에서 바라본 한중일과 미국의 역학관계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이 어떤 점이 맞고 어떤 점이 틀리고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부분에 대해 알려주는 내용을 기대했는데 그런 부분보다는 일본과 미국의 관계, 한국, 중국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게다가 책 중간에는 아예 중국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일본이 바라본 중국이 아니라 현재 중국의 위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중국은 2극이 될 수도 없고 너무 부족하다는 관점에서 설명하는데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꼭 객관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이미 결론을 낸 상태에서 모든 관점을 바라보니 약간 편향된 시선으로 본다는 느낌이 강했다. 저자가 설명한 대로 한국이 중국편향이라 나도 그런 눈으로 읽어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중국은 너무 침소봉대하여 낮게 보는 느낌이고 일본과 미국은 과하게 침소봉대한다는 느낌이었다. 나도, 미국이 쉽사리 팍스아메리카나에서 물러날 것이라 보지 않는다. 일본은 과소평가하지도 않는다. 여러 면에서 우리보다 잘 난 면이 더 많은 국가다. 과거때문에 선입견으로 때려 잡을 나라로 느껴지지만 미래발전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나라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본이라는 전체가 아닌 개인으로 볼 때 예의바르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친절한 일본인이다. 일본이라는 국가 단체일 때 무섭다고 하는데 그건 어느 나라나 다 똑같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데올로기가 결합된 모든 집단은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다.

 

현재 아베를 비롯한 몇몇 우익들이 일본은 우향우하고 있다고 하지만 책에서는 공기라는 개념을 통해 일본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그쪽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아베는 앞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란다. 아직까지 충분한 공기가 형성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제국주의때와 같은 공기가 형성될지 모르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익으로 표현되는 도쿄시장(맞나?)이 일본에서는 엔터테이너 정치인의 역할에 충실해서 오랜 기간동안 정치인으로 일본인들의 가려움을 긁어주는 좋은 정치인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외부적으로는 역사인식에 문제있는 정치인으로 비쳐질지 몰라도.

 

한국에서 일본은 없다 내지 있다라고 표현하지만 일본은 없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말 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일본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 몰라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은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소프트파워로 널리 알려져있고 한국을 몰라도 일본을 모르는 경우는 드물다. 세계에서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도 우리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이런데도 한국은 세계에서 아직도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본을 낮게 보는 우려스러운 일도 있다는 염려를 한다. 조선시대에 일본은 없다며 임진왜란을 준비하지 못한 걸 한국인으로 우려하는 시선은 느껴진다. 

 

현재 일본에서 언론은 없다고 한다. 언론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미디어라는 단어를 써서 오로지 수익에만 모든 것을 걸고 있어 진실을 밝히는 언론이 없다고 하는데 약간 갸우뚱해지는 주장이다. 미디어라고 자신들을 지칭한다고 해도 신문의 속성상 그렇게 될 수는 없을텐데 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본이라고 정의와 도덕과 기타등등이 개인마다 갖고 있을텐데 말이다.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들여다볼때 그렇게 볼 수는 있어 보인다.

 

객관성이라는 것이 힘들지만 어딘지 상당히 한 쪽으로 편향된 곳에서 글을 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고 독자는 한 쪽의 주장만이 아니라 여러 방향의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 정립을 하면 될테니 말이다. 내가 너무 이 책과는 반대방향의 이야기만 들었는지 몰라도 책의 내용은 조금 편향되었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일본에 대해 생각하고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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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틈새 NPL & 공매틈새 대부공매
김동부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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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와 공매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야다. 하지만, 투자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큰 차이는 없다. 똑같이 권리분석하고 물건분석하고 수익분석을 한 후에 입찰들어가서 낙찰받은 후에 임대내지 매매를 하면 된다. 법원에서 진행하느냐 온비스에서 진행하느냐의 차이와 인도명령이 있느냐의 차이등등이 있는데 이 부분은 굳이 따로 공부를 해야 할 정도는 아니고 경매만 조금 알고 있으면 공매는 참고만 하면 그 즉시 실행할 수 있다.

 

경매는 대중화로 인해 점점 먹을 것이 없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은 그래서 경매를 잘 하지 않는다는 말도 하는데 사실 그런 말을 하는 고수는 고수가 아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점을 발견하고 파악해서 입찰하는 것이 돈을 버는 방법인데 남들이 하는 물건과 똑같은 것을 하면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없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우연이 가능한 유일한 투자가 경매라고 한다. 직접 법원에 가야만 입찰할 수 있고 물건에 입찰해야만 낙찰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을 제외하면 자신의 능력과 실력과 발품만큼 보이는 것이 투자 분야 중에 하나인 경매다. 실제로, 내가 운영했던 실전반에서 단 한번도 특수물건을 들어가지도 않았고 지극히 평범한 물건 - 그 중에서도 빌라 - 에 입찰해서 수익을 낸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것을 보면 경매 투자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투자방법이다. 

 

경매만으로는 돈이 되지 않는다 생각해서 많은 사람들이 뛰어드는 분야가 NPL이다. 가끔, 터무니 없는 낙찰가를 써 내는 사람이 있는데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라 쯧쯧했지만 정작 그 사람은 저당권을 구입해서 저당금액만큼 써서 높은 가격을 쓴 것처럼 보이지만 저당권을 싸게 구입했기에 눈에 보이는 낙찰가격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이런 투자 방법이 과거에는 몇몇 사람들이 이용했지만 이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알고 투자하려 노력중이다.

 

 이런 NPL 투자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가장 좋은 점은 실제 사건번호를 갖고 알려준다는 것이다. 저자나 저자의 코칭을 통해 책에 언급된 사건을 직접 투자한 것인지 사례로만 알려주는 것인지 모르지만 사건번호와 저당금액, 저당 구입금액, 낙찰가격등을 알려주면서 수익을 낸 사례는 여타의 책에 비해서는 보다 현실성이 있어 참고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매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매점과 주차장을 운영하는 분야는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알아보고 이를 알려주는 글들도 꽤 있는데 좋은 점은 독점이라 할 수 있다. 학교 매점은 오로지 학교 학생들만을 상대로 학교에서 운영을 한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익이 일정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주차장도 지역선정을 잘 해야 하고 무엇보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계산을 잘 해야만 한다. 매점도 그렇고 주차장도 이부분이 핵심인데 수익계산을 잘 못 하면 완전히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묶이고 만다. 한 마디로 무조건 임대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과도한 낙찰은 승자의 저주에 빠져 버린다. 이런 점을 잘 피해나가면 솔솔한 수익을 볼 수 있지만 수익이 대부분 한계가 있어 이 부분에 대한 분석없이 좋다고 하는 것은 말려야 한다.

 

책은 경매의 NPL와 공매의 대부 공매에 대해 알려주는 책인데 솔직히 그다지 참신하거나 이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르겠다. 다른 책에서 NPL에 더 자세하고 친절히 알려주고 있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딱히 더 없어 보인다. 그나마, 대부공매같은 경우에는 전체적인 방법을 알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계약서등과 함께 본 적이 없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라 그 점은 플러스를 줄 수 있지만 곰곰히 생각할 때 그걸 몰라도 입찰하는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의 두께가 200페이지가 안 되고 마지막에는 NPL에 대한 뉴스를 수록했는데 가격에 비해서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내가 책을 읽는데 있어 책 내용에서 단지 5%만 얻을 것이 있으면 된다는 목적으로 읽기에 책을 통해 기존 책과는 달리 5% 정도의 지식은 얻었다고 위안을 하지만 그래도 가격에 비해 내용의 충실도가 아쉽다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나마 경매와 공매에서 투자하는 사람들이 틈새로 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알려주는 점은 플러스다. 이 점이 궁금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읽는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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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 - 故 이병철 회장이 묻고 철학자 김용규가 답하는 신과 인간에 관한 근본적 통찰
김용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백만장자라는 단어는 이미 너무 친숙하고 익숙해서 부자라는 느낌조차도 들지 않을 수 있지만 부자의 단계로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들으려면 백만장자가 객관적으로 주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닐까한다. 백만장자는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삼성그룹을 만든 이병철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더이상 적수가 없다. 이병철이 무엇인가 묻고 그에 대한 답변을 책의 저자가 한다는 구성인데 제목에 백만장자라는 문구가 있어 호기심이 갖고 철학자가 이를 답변한다는 것에 또 다시 흥미가 동했다.

 

책을 얼핏 볼 때마다 - 꽤 오래도록 도서관에서 잡았다 놨다를 반복한 나날이 1년 정도 - 철학적인 내용을 풀었다는 느낌은 있었고 죽음이나 종교적인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백만장자의 질문이라 당연히 금전적이고 부자의 관점에 대한 문답이 이뤄질 것이라 예측했다. 비록 선문답의 내용이 이어질지라도 어느정도는 나올것이라 예상한 내 판단은 완전히 틀렸다. 이 책은 이병철 회장이 말년에 천주교의 신부에게 전달한 24개의 질문이 차동엽신부에 의해 밝혀졌고 이에 대한 답변을 책의 저자인 김용규가 하는 것인데 중복되는 질문을 제외한 총 22개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 내용이다.

 

예전부터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이라는 책이 항상 눈에 들어왔는데 바로 그 책의 저자다. 이 책의 내용은 정확하게 신과 종교에 대한 물음을 답변하는 형식이다. 종교와 신은 호불호가 갈리는 형상과 존재가 되었다. 과거에 종교와 신은 절대적인 권력과 충성심을 보이는 대상이었지만 인간이 신의 속박으로부터 탈출한 후에는 종교와 신에게서 자유로운 사상을 갖게 되었다. 이제 신은 없다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까지, 신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증명되지 않았고 아마도 앞으로도 증명되지 못할 것으로 본다.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이야기를 책은 함께 담고 있다. 이병철회장의 질문 자체가 신은 있느냐 신이 있다면 세상은 왜 그런가와 같은 종교와 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한 - 유교는 종교는 아니지만 이병철회장은 논어를 인생의 모토로 삼았다 - 질문을 종교인에게 물었고 철학자는 답변을 철학적으로 풀어 사람들에게 알려주는데 신이 있다는 입장과 신은 없다는 입장을 나란히 배치해서 독자들에게 읽으면서 가치판단을 하도록 했다.

 

책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대상은 하나님, 예수, 교황, 주교, 신부,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신이 있다는 편과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 해리스, '우주에는 신이 없다'의 데이비드 밀스를 비롯한 무신론자편과 진화론을 이야기했지만 신을 믿고 있는 다윈과 같은 파로 나눌 수 있다. 이 책은 다 읽고 리뷰를 쓰고 있지만 각 질문의 답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되고 풍부하게 제대로 해체식의 리뷰를 쓸 수 있었으리라 판단되지만 귀찮아서 이렇게 몰아서 쓰게 되는데 그렇게 할 것이라는 약간의 아쉬움도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인간의 탄생은 창조론을 믿고 탄생 후는 진화론을 믿는다. 신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지구의 역사를 볼 때 진화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절충안이라 생각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꼭 그렇게 볼 수도 없다. 책은 철학자가 쓴 신에 대한 이야기다. 무신론자가 쓴 책이 아니다. 무신론자가 이병철 회자의 질문에 답했다면 어떤 답을 했을지에 대해 저자는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무신론자들의 책을 통해 답변을 하고 있고 유신론자들의 답변은 마찬가지로 그들의 책과 성경을 통해 알려준다.

 

유신론자의 답변에서 가장 중요하고 중시해서 탐구하고 알려주는 인물은 아우구스티누스이다. 그의 고백론을 포함한 저사를 통해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 반면에 가장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보다는 우주에는 신이 없다의 데이비드 밀스를 가장 많이 언급하고 그들의 주장을 알려준다. 재미있게도 과학자로 알려져있고 실제로도 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이 작가로 불리기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꿈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주장한 바가 과학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로 들려서 말이다. 이 책이 아닌 다른 인터넷 기사에서 읽은 내용이다.

책을 읽다 문득 든 생각이 분명히 저자는 신이 있다는 유신론자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유신론과 무신론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야기를 해 주지만 뉘앙스나 설명하는 부분에서 신이 있다는 쪽의 주장에 비해 무신론자의 주장은 잘못된 논조와 판단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그들의 주장이 잘 못되었다고한다. 

 

"오늘날 도킨스와 밀스와 스텐저 같은 과학자들이 자연과학적 근거를 동원해 우주에는 신이 없다고 외치며 기독교를 미신으로 몰아가는 것은 이른바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fallacy of straw man)를 범하는 것이 된다. 허수아비 논증이란 상대방의 주장을 자신이 공격하가 쉽게 자의적으로 단순화하거나 왜곡해서 허수아비를 세운 다음 그것을 공격해 허물어뜨리는 방식의 논증인데, 그 내용을 불문하고 논리적 오류에 속한다."

 

잠시 생각을 해보니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많은 인간의 사상에 대해 밝히고 알려주고 논쟁을 거듭했는데 신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맞는 듯 했다. 신이 없다고 주장한 철학자들도 있지만 철학자의 입장에서는 과학은 그들이 탐구할 대상이 아니고 인간이 탐구할 대상인데 인간이 갖고 있는 생각과 행동을 예전에는 철학자들이 이를 밝혀 알려줬다. 과학적으로 밝힐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철학자의 입장에서는 유신론으로 입장을 서는 것이 더 흥미롭고 생각할꺼리를 많이 던져준다는 판단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입장은 무신론자들이 유신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업신여기며 까는 것은 그들이 제대로 기독교(천주교,개신교)를 공부하고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쏙쏙 빼서 주장을 하다보니 의도적으로 잘못된 주장을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신과 종교에 대한 반박과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은 올바르지만 그 대상이 잘못되었고 손가락으로 가르친 지점이 아닌 손가락을 비판한다는 것이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과학은 증명을 해야 하는데 과학은 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또는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신이 있다는 유신론자들의 주장이 비과학적이 것과 마찬가지로 신이 없다는 무신론자들의 주장도 과학적으로 풀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지구의 탄생을 빅뱅과 여러 우주가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면서 정작 탄생 배경은 우연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신이 있다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종교가 발전을 시킨 많은 측면이 있다는 긍정적인 것도 있지만 반대로 인류를 제노사이드할 정도로 부정적인 측면도 강하다는 것도 인정된다. 그런데, 종교의 잘못된 점은 종교가 갖고 있는 잘못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종교를 앞세운 이데올로기의 문제다. 종교가 아니라도 정치, 민족, 사상등으로 문제가 된 적이 많은데 이런 것들이 전부 정치가 문제가 아니라 편향된 이데올로기가 문제다.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위해서는 지극히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정작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를 위해서 한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우는 것이 문제일뿐 종교 자체가 문제이고 신이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나는 기독교인이고 그중에서도 정확하게 개신교이다. 개독교라는 표현을 듣는 바로 그 종교이다. 흥미롭게도 신학적이지 않고 기독교를 권하지 않는 철학적인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이 그 어떤 종교서적보다도 더 객관적으로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더욱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읽힌다. 믿음이라는 대상에 대해 무조건 믿으라며 이야기하는 것보다도 무신론자들의 과학적인 이야기를 철학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과학이라 이야기하지만 그마저도 - 물리학 분야에 속하는데 이 역시도 과학이로되 과학은 아닌 학문이 되어버린다 - 애매한 무신론자들의 이야기를 반박하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된다.

 

여기서 개인적인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고백한다. 이 책을 무신론자들이나 기독교가 아닌 타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이 읽었을 때 어떤 관점으로 책을 읽게 되고 알게되는지 여부까지는 알 수없다. 이미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성장하며 믿게된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상과 믿음에 길들여져 있어 책에서 나오는 논점이 더더욱 내가 믿고 싶은 쪽으로 편향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할수는 없다. 저자가 정확하게 원한 바와는 다른 방향으로 책을 읽었을 수 있다. 아무리 읽어도 저자는 신이 있다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기독교인으로 이 책을 썼다고 볼 수는 분명히 없다.

 

이병철 회장은 종교와 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했는데 책을 읽어보면 정확하게 신을 믿고 그에 따른 종교라는 매개체로 연결되는 것인데 종교와 신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온갖 잘못된 현상과 편향과 편집적인 아집이 생겨 그 점이 문제일뿐이다. 그렇다면, 신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신론자들도 신이 있다 없다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이 있다고 믿는 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비난하는 것이니 말이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면 해결될 것이라 믿기에 그런 주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쉽게 책을 집어들어 읽을 수는 없지만 책이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다. 머리속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 움직이고 움직이며 저절로 생각이라는 것을 다양하게 할 수 있었다. 신을 믿는 입장이든 믿지 않는 입장이든 인류에게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한번정도는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용규라는 저자를 알게 되었다는 것도 있다. 이 정도의 지적수준을 갖고 있는 사람이 쉽게 자신이 갖고 있는 방대한 지식을 풀어내는 능력이 참으로 탁월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쪽 분야의 저자들을 많이 알지 못하지만 쓸데없이 어렵게 지적 허영만 글로 풀어내는 저자들이 많은데 아주 괜찮은 저자이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펴 내는 저자가 아니라 저자의 책을 자주 읽을 수는 없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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